얼마나 오랜 시간동안을 잠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쉐도우 워커에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들어올 수 있었다. 키리조 미츠루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의식을 잃은지 세 달이 지난 것이 된다.
“죄송하지만, 아케미 호무라. 당신은.”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기능 수복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것일까? 몸체의 출력이 갑자기 저하되어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후카씨와 라비리스가 쓰러진 나를 부축해서 다시 일어설 수는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회의에 지장을 줄 뿐이다.
"후카, 상태를 봐주지 않겠나?"
" 완벽하게 정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놓친 부분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죄송합니다."
"아뇨, 후카씨의 정비는 완벽합니다. 기능에 문제는...."
"안된당께. 언니말 좀 들어. 깨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려. 무리하지 말고 쉬랑께."
그런 와중에 미츠루씨를 향해 유유히 다가가는 소녀. 이쪽을 바라보는 일 없이 곧장, 그녀에게 의견을 말한다. 정확한 단어를 찾아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이 소녀는 대체 누굴까? 차분하다못해 딱딱할 정도인 소녀의 태도, 마치 4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대 쉐도 병기 아이기스, 인간으로써의 부분이 결여된 시절의 나를.
“그녀는 아직 호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장. 다시, 연구실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케미 호무라. 돌연 나타난 이 소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과 함께였던 것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필력하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언어 기능이 마비되었어.
“에르고노믹스 연구소를 경유하는 편이 좋을거라 생각합니다. 그곳이라면 그녀도 아무 문제없이 정비가 마무리 될테니까요."
이상해.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 어떻게 에르고노믹스 연구소에 관해 알고있는 걸까?
"잠...시...만.. 기...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소녀의 제안에 반박하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는다면, 나머지 기억의 공백을 확인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무엇보다도, 아케미 호무라 소녀에게서, 조금도 인간으로써의 부분을 찾아볼 수가 없었어.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모습으로 현세했던 ‘뉵스’를 마주했을 때와 같다. 분명히 위화감을 느꼈을터인데 어째서 늦게 자각한 것일까.
"아이기스? 아이기스?!“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들만이 울리다가 끊겼다. 그리고, 그대로 페이드 아웃.
-----------------------------------------------------------------
키리조 미츠루
야쿠시마 섬, 에르고노믹스 연구소
오후 11시 24분
“......”
“.......”
갑작스러운 상황에 회의를 급히 중단했다. 물론 중요한 사안이라곤 하지만, 동료인 그녀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에르고노믹스 연구소까지 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준비된 전용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을 날아 왔으니까. 지금은, 수석 연구원들이 그녀를 정밀검사하고 있다. 대기실의 공기는 무겁다. 오랫동안, 벽시계 바늘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후카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모두, 모두 내 탓이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서 아이기스가...”
“불안하게 그러지 마랑께... 잘못될 리가 없잖여. 후카 탓이 아니니께..”
바로 옆 자리에서, 야마기시 후카는 몸을 웅크리며 흐느끼고 있다. 라비리스가 다독여주고 있지만, 마음의 상처가 큰 것일까. 만약, 이대로 아이기스가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런 최악의 상황은 여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미 예전에 그녀는, 시스템이 오버히트에서 기계로써의 생명은 진작 끝나버린 상태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을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써 각성한 것인데. 그런 그녀가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상태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괜찮아. 제대로 정비를 거치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테니 낙심하지 마라. 야마기시.”
확신할 수 없는데 거짓말을 하고 만다. 아이기스의 몸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희망하지 않으면 무너져내리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여기 계셨습니까. 찾고 있었습니다.”
대기실의 좌측 문에서,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긴 장발의 소녀. 작은 체구와 어린 나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이 분위기는, 분명히 그녀다.
“아케미 호무라? 어떻게 야쿠시마까지 올 수 있었지? 따로 호출한 기억은 없는데.”
“제 페르소나 능력은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쪽입니다. 예전에 한 번 보여드린 적이 있었죠. 이 거리까지 오는 것에 문제는 없습니다.”
확인한 적이 있다. 다소 특이한 페르소나를 다루고 있던 것도. 등에 날개가 달린, 같은 나이대의 여자아이 같은 페르소나를 소환해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마치, 여신을 형상화 한 것 같은 모습이었지. 게다가, 어느 순간에 각성을 이룬 완전체의 모습이었다. 이곳에 입단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 강력함은 끝을 알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용무는?”
“소중한 동료를 살리기 위한 목적임은 압니다만, 거대 쉐도우가 등장했다는 보고를 먼저 전해드려야할 것 같아서 급히 찾아왔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이야기하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계속 이곳에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보고라면, 간단히 연락하면 될 일 아닌가. 직접 찾아올 정당한 이유라도 있는가?”
“엄격한 분이시군요.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고고하게 누군가를 처형할 수 있는 거겠죠.”
가시가 있는 말이로군. 어째서 이런 태도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우선 흥분한 라비리스 먼저 진정시키는게 좋을 것 같다.
“이 가스나가!! 너 대체 뭐여!!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협력 기관으로부터는 이미 전체적으로 공지가 되었습니다.”
라비리스를 깨끗하게 무시하곤 좀 전의 독설에 시치미라도 떼듯 아케미는 다음 보고를 이어나갔다.
“기다려, 어째서 우리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지?”
평소에 차가운 얼굴을 하던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연다. 그러고서는 돌연, 품에서 소환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미 거대 쉐도우는 퇴치되었습니다. 이제 다음은.”
아케미는 소환기를 바닥에 내다 버렸다. 마치, 필요 없는 쓰레기를 버리듯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지금이 몇시인줄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대장. 12시죠.”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감각. 피부로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소녀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을텐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이것은, 분명 쉐도 타임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멈춰있던 것들. 뉵스를 막아낸 이후로도, 이 시간은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다시 찾아오곤 했지만, 지금은 그 농도가 어느때보다도 짙다. 마치, 3년 전의 타르타로스와 같아.
“당신들은 한 번, 세계의 의지에 거역해서 일어난 적이 있었겠지만, 지금 이 세계에선 불가능해. 왜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