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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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커피 식겠네."

그렇게 말하면 입을 댄 다희의 커피잔은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예림아."

"예."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데, 뭔지는 알고 있지?"

"예."

"미안하지만-"

그 순간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벨소리라고 믿을만한, 귀여운 컨셉의 아이돌 노래였다. 예림은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들고, 화면을 확인하고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해요. 받아야하는 전화라서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여보세요?"

다희는 커피잔을 천천히 저었다. 마실 엄두가 아직은 나지 않은, 거품이 거의 걷힌 그 머그잔에 잔잔한 소용돌이가 생겨 점점 퍼져나갔다.

"네… 네… 물론이죠. 네 … 아… 아마 아실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네… 네. 잘 알고 계시네요. 네… 수고하세요."

예림은 휴대폰의 패널을 만지더니, 탁자위에 뒤집어 올련호았다.

"죄송해요. 어디까지 말했죠?"

"예림아. 날 도와주지 않겠니? 슈프림을 물리치는데 힘을 더해주지 않겠어?"

예림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자신의 머그컵을 들더니, 한모금을 마시고 이를 음미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죄송해요. 다희 언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예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혼자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는거, 잘 알고 계시죠?'

"…물론이지. 슈프림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

"네. 맞아요. 슈프림이 뒤에서 절 후원하지 않았다면, 전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거에요."

테이블에 올려져있던 온전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티라미수를, 예림이 한 스푼 떠먹었다. 정말로 즐거워하는, 하지만 쓸쓸함이 섞인 표정을 하고서.

"다들 말은 안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후원을 받는 대신, 전 슈프림의… 그러니까, 저번달에 사회시간에서 배운 단어를 쓰면 되겠네요. 전 슈프림의 프로퍼간다의 수단으로서 사용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언니와 행동을 같이 하는건 힘들것 같아요."

거절. 예림은 다희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예림아-"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경미의 말을 끊고서, 다희가 답했다. 섭섭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사실,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지 걱정했다니까?"

다희는 멋쩍게 웃으며 그제서야 티라미수를 먹기 스푼으로 퍼먹었다.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느껴지는 극도의 달콤함.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지만 다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커피향도 은은히 입 안에 녹아들었다. 결국, 다희로써는 눈을 질끈 감고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으음-! 진짜 맛있네. 네가 추천할만 해."

"후후, 단맛을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아, 취미로 집에서 제과를 하는데, 저희 집에 언제 한번 들렀다 가세요! 마음에 드실 과자를…"

"언니! 예림아! 이럴때가 아니잖아!"

경미로써는 예림의 거절에 울음을 터트릴듯 다희를 바라보았다. 다희는 그런 경미가 너무 귀여워, 경미를 끌어안고 말했다.

"괜찮아. 정말로."

그리고 경미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한다. 경미의 어께가, 조금씩 흔들렸다.

"어짜피 세상에 우리 둘만 남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 둘만 남더라도, 넌 날 떠나지 않을거니까. 괜찮아. 예림이 없어도 우린 할 수 있어. 알겠지?"

"…그건 그렇지만요…"

"그리고, 원래 예림이에게도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싶진 않았고. 예림이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지."

그제서야, 조용히 두사람을 지켜보던 예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언니. 이해해 주셔서… 그럴줄은 몰랐는데… 고마워요…"

"아, 너까지 왜 울고있니? 예쁜 화장이 다 지워지잖아."

"흑… 하지만 죄송해서… 오랬만에 찾아와 주신건데…"

"괜찮아. 상관없대두, 음벨씨의 소식을 찾아봐준 것 만으로도 충분해."

예림이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방울방울, 뺨을 타고 눈방울이 떨어졌따. 다희는 냅킨을 꺼내 예림의 뺨을 두드리며 그 눈물을 닦았다. 보드랗고, 따뜻한 뺨의 감촉이, 종이 한장 너머로 느껴졌다. 그렇게, 다희는 예림이 진정할때까지 몇분을 기다렸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안이나 민아하고는 연락하고 있니?"

"민아 언니는 저도 연락이 안닿아요. 언니처럼 이메일도 가질 않구요. 아예 정보망에서 증발해버렸다고 해도 될 정도로요. 다른 실종된 마법소녀들과는 다르게, 그냥 자기가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진 것 같아요. 원래 민아 언니 성격이 그러니 당연한거라고 생각하지만…

안이 언니와는 자주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다희 언니는 마주치지 않는게 좋을거에요."

"왜?"


"제가 슈프림의 얼굴이라면, 안이 언니는 슈프림의 주먹이거든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커피를 한모금 더 마신 다희는, 곧 얼마 남지 않은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이 커피와 티라미수는 신세계였고, 다희는 그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저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음벨씨를 추적하는 것처럼 간접적인 도움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 사양하지 말고 의지해 주세요."

"괜찮겠어?"

"네. 그정도로 슈프림은 절 어쩌지 못해요. 그리고 오랬만에 언니와 함께한다는걸 생각하면, 제가 더 영광이니까요."

그때, 커피숍의 문이 열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아, 그리고 언니. 미안해요. 많이 급한 것 같아서요."

예림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미와 다희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이내 누군가 예림이 앉았던 자리에 와 앉았다.

가게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다희는 예림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말을 이해했다. 코코가 다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희.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대사관을 폭파시키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거야?"





8.



감식반의 감식 결과, 폭심지는 보안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폭탄은 고열의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에 강한 폭압을 뿌렸다. 1차적으로 5미터 반경 내의 모든것의 거의 대부분이 증발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가 어디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모두 동의했다. 고온의 폭발에 수반되는 강한 폭압은 보한실을 통째로 헤집어 놓았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체 부실하게 시공되어 약한 충격에도 갈갈히 찢겨나간 벽의 잔해와 함께 로비를 덮쳤다.

오후 4시, 업무 종료시간과 맞물려 북적거렸던 로비는 순간 그 맥락없는 폭발에 그 풍경이 변화했다. 크고 작은 파편이 사람들의 팔과 다리를 찢어놓았고 눈과 입을 관통해 허공으로,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날아올랐다. 수많은 사지가 원형을 잃고 허물어졌다.

보안실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땅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폭발과 충격으로 생긴 순간적인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해 자연법칙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보안실 내부에 자리잡은 시체 조각들이 충격파에 의해 붕 떠올랐다 진공을 향해 빨려들어갔고, 덕분에 보안실은 한층 더 아수라장이 되었다. 감식반은 뒤섞인 유해로부터 제대로 된 DNA 샘플을 채취하는 것을 포기했다.

결국 이 모든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CCTV를 확인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이조차도 불가능했다. 그 영상이 보안실에 있는 서버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 서버는 보안실의 다른 모든 물건과 함께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기 대문이다.

이로써 11명의 사망자와 32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대사간 테러 사건의 용의자를 찾을 수 있는 법의학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랬음에 모두가 동의했지만, 그 살벌한 생지옥의 광경에서, 아무도 그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대신, 존재하는 아주 미미한 증거를 붙잡고 야근하는 것을 택했다. 자신이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할 열쇠라 굳게 믿고서.

덕분에, 아가페 3이 찍혀있던 DVD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9.



"다시 한번 묻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거야?"

그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는 위압감서린 목소리로 코코가 내게 압박했다. 그는 냉정하고, 침착했지만, 동시에 분노에 서려있어싿. 이해할만 했다. 하지만 물러설수도 없었다.

"내 목표가 뭔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목표? 무고한 시민 수십을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거 말인가?"

"무고하다고? 웃기는 소리하지마. 무고한 시민 따윈 없다고."

"패튼을 인용한거야? 개소리고, 궤변이야. 전쟁이라도 일으킬 생각인거야? 나는 지구인의 자주적인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했지, 피에 목마른 네 광증에 찬동한게 아냐."

"미안하지만, 내가 재미로 사람을 죽였다는거야? 그렇게 보여? 천만에. 그렇다면 넌 왜 엘름과 싸울때 침묵했던거지? 그들도 목숨이 있지 않나? 그들이 마법소녀의 마법에 죽음을 맞이할때, 넌 왜 침묵한거지? 그들의 기지를 날려버렸을땐 왜? 대답하지 못할거라면, 조용히 해. 전쟁을 일으킬거냐고 물었지? 지금 내게 있어서 이건 전쟁이야. 전쟁은 이미 시작됬다고. 마법소녀가 되기로 맹세한 그 날부터, 그때 다짐했던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말야. 그리고 거기에 있어서 슈프림이나 엘름이나 크게 다를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그 잘나신 맹세때문에, 후배의 배를 가른건가?"

지희말인가.

"그 DVD를 본거야? 잘됬어."

"물론이지. 감식반에 내팽게쳐져 있던걸 내가 가져왔어."

코코는 그렇게 말하고 가방에서 갈색 봉투를 꺼내 들더니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 익숙한 봉투였다. 내가 며칠 전, 대사관에 보냈었던 그 봉투가 맞았다.

"미쳤어? 이걸 가져오면 어떻게 해?"

반사적으로 외치고 말았다.

"난 네가 이걸 보고 놀라길 바랬어. 이건 너와 이 폭발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장치였다고! 오히려 그 폭발이 널 겨냥한 것으로 착각 할 수 있게 만드는 증거였는데, 그걸 가져오면 어떻게 해!"

코코의 표정은, 어딘가 황당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감식반에게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DVD의 영상이 저화질에다 소리도 없는건 내가 가진 카메라가 수준이 안좋아서 그런 것 같아? 지문부터 아무런 증거도 그 봉투와 DVD에 남겨놓지 않았으니까 그 봉투를 대사관에 보냈었던거야. 다 널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말을 뱉고 나서야, 코코가 그 사실을 알리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널 위한거야.' 코코가 항상 했던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뒤에서, 그는 수많은 공작을 펼치면서, 그런 말로 시작하는 변명을 늘어놓고는 했었다. 이제는 공수가 바뀐 모양새였다. 그래, 설명할 수 없었겠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그랬다는 사실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는, 생각했다. 예전의 코코도 그런 생각을 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걸 코코는 알고 있을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는 그저 화난 표정을 계속 짓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이 DVD는 빨리 분석실로 돌려놔야 해. 그리고, 한동안 우리 둘은 접촉해서도 안되고."

"알아. 알고 있어. 한동안은 서로 이야기 하지 못할테니, 지금 달려온거야. 어짜피 이 폭발과 너의 연결고리를 사람들이 찾아내려면 한참은 있어야 할거니까. 이 테러의 주도자가 전부 엘름이라고, 슈프림측은 생각하고 있으니까."

"예상했던 대로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난 지금 네가 가르쳐줬던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까."

코코는, 그 소리를 듣고는 팽-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언뜻 귀여워뵈는 그 비웃음이 사실 진정한 걱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코코와 1년을 같이 지내고서야 알았다.

"그 모든건 변명일 뿐이야. 알고 있지? 네가 네 후배의 배를 갈라서 그 안에 폭탄을 집어넣고 터트려 죽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기분이 어떄?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기분이? 그 소녀가 무고하지 않았다고, 너는 자부할 수 있나?"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희의 배에 칼을 대었을때, 난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나? 기억나는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엘름을 상대할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 만약 지희가 특별했다면, 그건 그것이 첫번째였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내 첫 살인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을 따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다가올 수많은 살인을 생각하며,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태연하게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마 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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