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holic-Death In Exams(3)
Le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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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2 22:50
Death In Exams-시험 속에서 죽다
존은 안젤리카 시티 제5고등학교로 가기 전에, 중심지구의 위켓 광장에 있는 노점상 거리로 갔다. 위켓 광장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예술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을 뽐내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온갖 일이 벌어져도 다들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아, 물론 범죄적인 요소는 당연히 진압했다. 실제로 탈레반들의 테러로 인해 미국 전역이 공포에 휩싸였을 때, 탈레반들이 미국인과 한국인을 참살한 걸 보고 복수를 부르짖는 (자칭) 극우세력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그 참살극을 묘사한답시고 진짜 목을 잘라버린 일도 있었다. 조사 결과 탈레반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간의 다툼이었지만, 어쨌든 위험하다 싶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면 전부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폭력적인 요소가 포함된 게임의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금지해야 하는가를 두고 언쟁이 일기도 했다. 그 언쟁의 결과가 어쨌건, 존은 전혀 다른 이유로 위켓 광장을 찾았다. 예술가와 관람객들을 위해 곳곳에 노점상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몇몇은 영감님과 연줄이 닿아 있었다.
제레미어 쿨리지 영감님은 본래 프라임 시티에서 레스토랑을 하며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는 일, 통칭 픽서(Fixer)란 사람이었다. 다만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그는 2류, 소매상급이었다. 실제 픽서들은 얼굴은 물론 이름과 목소리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모든 정보를 취급하는 입장이다 보니 양쪽에서 비난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최대한 자신의 모습을 감춰야 중립과 목숨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다. 허나 쿨리지 영감님은 딱히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정보를 넘길 만큼 네트워크가 크지 않았고, 1류 픽서로부터 정보를 넘겨받는다는 걸 공언했기 때문에 딱히 목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쿨리지 영감님은 최근에 프라임 시티에서 벌어진 제3차 정치인 전쟁에서 이긴 편을 들었는지, 안젤리카 시티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존은 사람 같기도 하고 초식동물 같기도 한 코스프레를 한 청소년들과 도가 지나친 와패니스트들 사이를 지나치다 중국 음식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했다. 존이 다가가서 의자에 앉자, 주인이 들쭉날쭉한 억양의 영어로 물었다.
"뭘로 드릴까요?"
"만두 한 접시."
"예이."
주인이 요리를 하는 동안, 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 존이 주인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특별 소스도 뿌려준다고 하던데."
"아아, 물론 있습죠. 원하시는 게 있나요?"
"렌로우."
그 말을 주인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일곱 번이 아니라 여덟 번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존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주인도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주인이 다시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암호 한 번 참 기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렌로우란 단어를 처음 듣고 똥 씹은 표정이 된 건 당연했다. 바로 인육(人肉)의 중국식 발음이기 때문이었다. 중국 본토에서 오만가지 안 좋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다 보니 자연스레 화교들도 의심의 눈길은 물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협박과 구타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중국인 주인으로서는 이 미국인이 자신에게 수작을 거는 건가, 하고 의심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허나 존이 '일곱 번'을 언급하자 그의 의심이 싹 사라졌다. 바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과 맹획의 칠종칠금(일곱 번 잡고 일곱 번 놓아줌) 고사를 뜻했기 때문이었다. 수고스럽게 인육이란 단어를 알아내서 수작을 걸어대는 외부인들을 걸러내기 위한 이중 암호인 셈이었다. 게다가 존은 몰랐지만 쿨리지 영감님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제갈량이란 사람이 만두를 발명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만두가 중국어로 무슨 말인진 아나?"
"좋은 의미는 아닐 것 같네요."
"'오랑캐의 머리'란 뜻이야."
"밥맛 떨어지게스리."
존이 장난으로 휴지를 던졌지만 쿨리지 영감님은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들도 너무 직설적이란 걸 알았는지, '가짜 머리'란 뜻으로 썼다는군. 초창기 만두는 진짜 사람 머리 같았다는 말도 있고."
"난 전설 따위 안 믿어요."
존이 퉁명스레 말했다. 그리고 그건 바람직한 태도였다. 존이 의자에 앉아서 회상을 하는데, 중국인 주인의 들쭉날쭉한 영어가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다 됐습니다."
주인이 만두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존은 예전에 이걸 먹어본 적이 있었기에, 끔찍한 전설에도 불구하고 쉽게 만두를 집어먹었다. 문득 접시를 둘러보던 존이 주인에게 말했다.
"잠깐, 소스는?"
"내 정신 좀 봐. 여기 있습니다."
중국인 주인이 가판대 안쪽에서 검은 병을 내밀었다. 얼핏 보니 간장인 것 같았지만, 병을 두르고 있는 종이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존은 그게 핵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존은 병을 건네받는 척 하면서 간장병을 감싸고 있는 종이를 손 안에 숨겼다. 존이 다시 만두를 먹다가 주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왜 이렇게까지 비밀스럽게 한답니까?"
"뭐가요?"
"아시면서."
중국인 주인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지만, 등을 돌리려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자기들 신상정보가 털릴까봐서 걱정하는 거죠. 한국인들은 그런 거에 민감하다고 하잖아요? 옆집에 사는 칭 녀석이 한국에다가 보이스피싱 걸어대는 걸 보면 꼭 그렇진 않은 모양이지만."
"헤에. 동양은 그렇습니까?"
"동양인이 다 그렇진 않습니다."
우습게도 중국인 주인이 그것만큼은 제대로 발음하자 존은 피식 웃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제 물건은 입에 올리지도 말라고 안달을 내는 것일까. 존은 말이 나온 김에 그 얘기를 꺼내서 당사자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자신과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므로 포기했다. 존이 빈 접시를 돌려주고 일어서는데 주인이 말했다.
"그 영감님한테 꼭 전해 줘요. 암호 좀 바꾸자고. 그거 들을 때마다 얼마나 낯간지러운데."
"꼭 얘기해 보겠습니다."
존이 빈말로 대꾸했다. 쿨리지 영감님이 원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존은 광장을 나온 후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손 안에 감추고 있던 쪽지를 펼쳐서 읽어보았다.
Author
Leaving this world is not as scary as it sou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