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남매 이야기

블랙홀군 0 2,795
*설정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엔하위키의 그런저런 판타지를 참조해주세요. 
**예전에 소설제에 출품했던 글입니다. 음... 그냥 그렇다고요. 

"wanna know~ ENTER KEY to accelate... "
"!!"

까만 정장을 입고 베이지색 비니를 쓴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귀찮은지 반쯤 뜬 눈으로는, 맞은 편의 상대를 응시한 채였다. 깊고 어두운 녹색 눈은 맞은 편에 있는 남자를 응시한 상태였다. 
남자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맞은 편의 남자는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들을 공격ㅍ하고 있는 화살들을 전부 피해야 했다. 지금 이 녀석과 대적을 하도록 상황을 이끈 내가 잘못한거지, 맞은 편의 상대는 방금 전까지 기고만장했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맙소사, 내가 음유시인을 건드렸단 말인가... 제길! '

화살을 피해 이리저리 굴러다녀야 했던 상대는 노래가 끝난 틈을 타 간신히 도망쳤다. 

"후우... 겨우 끝났네. 괜찮으십니까? "
"아, 네... 덕분에요. 감사합니다. "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이곳에는 불량배들이 많으니까요. "
"네... 정말 감사합니다. "

담벼락에 기대 있던 여자는 남자에게 꾸벅, 인사하곤 사라졌다. 
여자의 뒷모습을 확인한 남자는 골목 밖으로 나와, 다시 큰길가로 향했다. 뭐,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다녀왔습니다. "
"청우 왔니? "

현관에 들어서니 부엌에서 밥을 짓던 엄마가 나와서 반겨준다. 
그리고 청우는 구두를 벗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타이를 한 손으로 풀면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
"우리 청우 좋아하는 불고기로 했어. "
"불고기... 좋지. 씻고 나올게요. "
"그래~ "

평소처럼 재킷과 셔츠, 아까 한 선으로 풀고 온 타이는 침대 위에 던져두고 방을 나오던 그는 순간 당황했다. 소파 한쪽에 낯선 여자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소파 한켠에 앉아있다가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고 나온 그를 보곤 후다닥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들어섰을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겠지. 

"손... 손님이 계셨어......? "
"응. 아버지 손님. "
"아버지 손님......? 아...... "

청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도 자기 또래는 돼 보이는 여자가, 아버지 손님이라니. 제자인가? 손님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고 여자의 옆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
"아, 안녕하세요... "

흘깃 쳐다보는 눈은 마치 토파즈를 박아넣은 듯한 노란색이었다. 
조명때문인지 살짝 파랗게 보이는 양 볼에도 노란 비늘같은 것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흘러내릴것처럼 긴 머리는 마치 밤하늘을 늘어트린 것 같았다. 

'어라...? '

귀밑머리와 뒷 머리 사이로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인간이 아닌건지, 인위적으로 이런 귀를 만든건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이 정말 특이한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청우 왔니? "
"아버지 오셨어요? "
"...... "
"여보, 손님 오셨는데...? "
"손님...? "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일어서자, 청우의 아버지도 그제서야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여자를 보고 놀란 눈이었다. 

"이... 이안? "
"아버지. "
'응? 아버지라고? '

그리고 다음 순간, 청우 역시 놀랐다. 
그러니까, 내 옆에 있는 이 여자가 나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아버지도 이 여자를 아눈 눈치였다. 

"이, 이안... 네가 여길 어떻게 온 거야? "
"어머니가 돌아가셔서요. 아버지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
"...... 소피아가...? "
"네. 사실 딱히 전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아버지라고 해도 자기가 낳은 자식은 한번도 찾아 오지 않는 사람을, 엄마는 뭐가 좋다고 그리워하시다 돌아가셨을까요. "
"...... "
"그럼, 전 전할 말 다 전했으니 가 볼게요. "
"자, 잠깐만... 이안이라고 했나요? 당신,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알아요? "
"너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버지이기도 하지... 당신, 한번도 나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 없었군요? 역시, 엄만 바보야. 이런 사람을 뭐가 좋다고... "

이안은 그녀를 잡으려고 뻗은 손을 뿌리치고 현관에 벗어두었던 신발에 발을 대충 구겨넣곤 가 버렸다. 

"이게 무슨... 나한테 누나가 있었다고......? 이게 무슨 일이예요, 아버지? 설명 좀 해봐요...도저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
"에, 그... 청우야...... 나중에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
"...... 언제까지 숨기실 작정이었는데요? 누나가 안 왔었으면,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했었어요? "
"...... 하아... 청우야... "

청우는 한숨을 푹, 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침대에 던져뒀던 재킷을 다시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나! "
"...... "

저 멀리서 이안을 발견한 창우는 큰길가로 걸어가던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 "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 줘. 이해를 못 하겠어, 그러니까... 정말 누나인거지? "
"아버지가 한번도 말씀해 주신 적 없었니? 정말로? "
"...... "
"아버지께 들어, 난 이제 모르는 일이니까... 언제 인간하고 결혼해서 동생까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버지도 인간이니까, 우리같은 바다 엘프와는 오래 살 수 없었던거겠지. "
"...... 누나. "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랑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어. 안녕. "

손을 뿌리친 이안은 노랫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청우는 집으로 돌아갔다. 

"...... "
"청우야. "
"...... 또 숨겨놓은 자식은 없으세요?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 또 있으신가요? 아버지는 어떻게... 한번도 누나 얘기를 꺼내지도 않고...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
"다 너를 위해서였다. "
"아뇨, 저를 위해서였다면 차라리 말씀을 해 주셨어야 했어요. 제가 그런 것도 이해해주지 못 할만큼 바보 멍청이로 보였어요? "
"...... "
"청우야. "
"엄만 알고 있었어? 나한테 다른 형제자매가 있었던 거? 아버지, 설마 엄마한테도 숨기셨던거예요? "
"...... "
"아니야, 청우야... "
"뭐가 아닌데요? 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엄마까지, 같이 그걸 무덤까지 가져가려고 했던거예요? "
"...... "
"실망했어요, 두분 다에게. "
"청우야! "

다시 현관을 나선 그는 근처 편의점으로 가 캔맥주 몇 개와 안주를 집어들었다. 
맥주가 든 봉지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간 그는, 벤치에 앉아 맥주캔 하나를 땄다. 치익,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어떻게 하나같이...... "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던 그는 낯선 남자 몇 며이 그에게 다가온 것을 발견했다. 
그 중 한 명은 아까 낮에 당했던 녀석이다. 분명 패거리를 데려 온 것이겠지. 

"뭐야? "
"야, 이 녀석이 아까 널 공격했던 그 녀석이냐? "
"어. "
"뭐야- 별 거 없어 보이는데. 너 진짜 이런 녀석한테 당한거냐? "

대답 대신 청우는 다 마신 맥주 캔을 피거리 중 한명에게 던졌다. 
머리에 캔을 정통으로 맞은 남자는 보기 좋게 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야밤에 싸우는 건 질색인데- 뭐, 술도 들어갔으니 좀 더 싸우기 쉬워지려나. "

자리에서 일어난 청우는 마시던 맥주를 벤치에 내려놓았다. 
저녁에 싸우는 건 상대가 잘 안 보여서 질색이지만. 소음 문제도 있었고. 
뭐, 이건 정당방위겠지. 

"hide and seek it wants to play again"
"!!"
"like a detective, I won't let it get away"
"뭐, 뭐야, 이자식? "

목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다수의 화살들이 생겨났다. 
먼저 다가서 공격하려던 패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살을 보고 주춤, 물러났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한 남자가 청우에게 돌진해 다시 주먹을 날리려던 찰나. 

"파도가 당신을 삼켜버렸죠, 내 사랑"
"!!"

어디선가 이안이 나타났다. 
막 주먹을 날리려던 남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파도에 뒤로 밀려났다. 

"나도 그대의 뒤를 따르리라 결심했어요, 이제 두려울 것 없어요"
"뭐, 뭐야, 이게? "

난데없이 파도가 밀려옴과 동시에 패거리를 집어 삼켰다.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에 놀란 청우는 이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다의 괴물들이 당신을 집어 삼켰나요, 내 사랑, 나도 당신의 뒤를 따라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겠어요"
"으, 으악! "

파도 밑에서 올라온 괴물은 패거리를 집어 삼켰다. 
이안이 노래를 끝냈을 때, 패거리는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곧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누나? "
"...... 이 동네는 불량배들이 많이 있거든. "
"......?? "
'그건 분명... 낮에 내가 했던 말인데? '
"내가 원망하는 이의 밑에서 이런 동생이 태어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녀석 말이야. 바드란 건, 원래 그런거니까. "
"...... "

손을 툭툭, 털고 이안은 벤치에 앉았다. 청우 역시 옷을 툭툭 털고 아까 마시던 맥주를 손에 들었다. 오랫동안 마개를 연 탓인지 김은 빠졌지만 아직 먹을만했다. 
그는 이안에게 맥주를 건넸다. 맥주를 받아든 이안 역시 마개를 열었다. 

"분명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겠지. 내가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네 나이는 열 네살이었으니까. "
"...... "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꽤 오래 전에 만났어. 하지만 외가쪽에서는 바다 엘프가 인간과 결혼하면 불행해진다며 이 결혼을 반대했고, 아버지는 엄마가 나를 가진 후로 소식이 끊겨서 연락이 돼지 않았지. "
"그럼 어머님은... 지금까지 누날 혼자 키워온거야? "
"...... 엄마는 지금까지 날 혼자 키우다가 돌아가셨어. 돌아가시면서도 끝까지 아버지 생각뿐이었고, 임종 직전에도 내가 아닌 아버지를 먼저 찾았어. 마지막 유언도 나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말뿐이었으니까. "
"그럼 누나는... 이제 어디로 가? 외가로 가는거야? "
"...... 외가쪽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아. 일단 살던 집은 정리해야겠지만, 아직 행선지같은 건 정해지지 않았어. "
"그럼, 나랑 같이 집에 가자. "
"...... "
"분명 엄마도 누나에 대해 알고 계실거야, 아버지가 엄마에게까지 숨기시진 않았을거라고. 그리고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누나 역시 아버지가 낳았잖아, 그러니까... 누나의 어머님이 누나를 키웠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라도... 아버지가 누나를 키워야하는 게 맞아. 그러니까 같이 들어가자. "

맥주 캔을 다 비운 청우는 이안의 손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있던 아버지는, 청우와 같이 들어온 이안을 보고 흠칫했다. 

"이... 이안? "
"...... "
"분명, 어머니는 다르지만 누나도 아버지가 낳았어요. 그러니까,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우리와 같이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저를 위해서 누나의 존재를 숨겨왔다면 이젠 저를 위해서 누나를 받아주셔야 맞다고요. "
"...... "
"지금까지 한번도, 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누나를 한번도 찾아가 본 적도, 연락을 해 본 적도 없었으면서, 무덤까지 가져가실 작정이셨으면서... 이제 내치시기까지 하면 저 정말 아버지 얼굴 안 봅니다. "
"하지만... "
"어머니가 알고 계셨건 모르고 계셨건 누나도 아버지 자식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버지가 설득을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언제까지 누나의 존재를 숨기실 수 있을거라 생각하셨어요? 천만에요. 누나, 들어가자. "
"청우야. "

아버지가 부르거나 말거나, 청우는 이안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
"녀석, 날 닮아서 고집은 세단말야... 당신은 어떻소? "
"글쎄요, 지 아비를 닮지 않아서 조숙한 아가씨 같은데요. "
"그런 얘기가 아니잖우... 당신은 이안이 여기서 우리와 같이 지내도 상관 없냐는 질문이었어. "
"청우 말, 하나도 틀린 거 없어요. 내가 반대했더라면 당신이 저를 설득해야 했다고요. 분명 어미는 다르지만, 이안도 당신 딸이니까요... "
"청우 저녀석... "

Author

8,759 (78.7%)

<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33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813
132 Evangelion Another Universe 『始』- Prologue 벨페고리아 04.08 2634
131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2 RILAHSF 04.04 2784
130 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4.03 2598
129 The sore feet song 블랙홀군 04.02 2695
128 짧은 글 댓글2 다움 03.27 2734
127 [자연스러운 문장 연습] 귀머거리 BadwisheS 03.26 2795
126 더러운 이야기 댓글2 기억의꽃 03.23 2836
125 언제든지 돌아와도 괜찮아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3.18 2851
124 죽음의 죽음 댓글3 더듬이 03.16 2915
123 현자 더듬이 03.16 2610
122 애드미럴 샬럿 폭신폭신 03.15 2904
121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1 RILAHSF 03.07 2857
120 유정아 댓글1 민간인 03.05 2939
119 LOM Sentimental Blue Velvet Ground 終章 - 상념 Novelistar 03.04 3454
118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관리자 댓글3 RILAHSF 02.27 2914
117 Vergissmeinnicht 블랙홀군 02.26 2843
116 [시?] 첫사랑 Caffeine星人 02.24 3026
115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4월의 전학생 댓글3 RILAHSF 02.22 3146
114 시시한 시 Sir.Cold 02.22 3061
113 전설의 포춘쿠키 댓글1 민간인 02.19 2933
112 [단편] 미네크라프 Caffeine星人 02.17 3001
111 [푸념시] 씻어내자 박정달씨 02.17 2876
110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댓글2 블랙홀군 02.16 2808
109 나는 너의 미래다 - 끝 민간인 02.14 2846
108 나는 너의 미래다 - 3 민간인 02.12 2869
107 [창작 SF 단편] - 인간, 죽음 Loodiny 02.10 2929
106 Hazelnut 댓글2 블랙홀군 02.09 2903
105 나는 너의 미래다 - 2 민간인 02.07 3303
104 Workerholic-Death In Exams(3) Lester 02.02 2837
103 카펠라시아 기행록 - 1 댓글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2.01 2875
102 [소설제 : I'm Instrument] 종료 & 감평 댓글11 작가의집 02.01 3217
101 [소설제 : I'm Instrument] 갯가재 Novelistar 01.31 3244
100 [소설제 : I'm Instrument] 새벽의... 앨매리 01.31 2949
99 [소설제 : I'm Instrument] 열시까지 BadwisheS 01.30 2841
98 [소설제 : I'm Instrument]Color People Lester 01.30 3502
열람중 이복남매 이야기 블랙홀군 01.30 2796
96 [창작 SF 단편] - 열역학 댓글3 Loodiny 01.27 3057
95 부고(訃告) 댓글2 가올바랑 01.25 2774
94 마그리트와 메를로 퐁티 그 사이에서. 댓글2 Sir.Cold 01.25 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