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

안샤르베인 2 2,862

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세차게 맞부딪치는 바람, 오락가락하는 시야, 허리에서 느껴지는 살 쓸림은 분명 현실의 것이었다. 멀찍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곧 지나갔다.

그는 바람의 가호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자체가 바람이었다. 한 번 발을 디뎠다가 떼면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다시 저 건너로 이동해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병사들은 이미 점으로만 보였다. 상황만 아니었다면 감탄하고 있었을 테지만 소년은 감상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납치된 건 자신이었으니까. 억, 억 하던 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얼른 내려주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행히, 그 소원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졌다.

 

"죄송합니다."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사람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곳이었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따져야 할지도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허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을 뿐. 아직도 조이는 느낌이 들고 얼얼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소년은 중요한 것을 잊었음을 생각해냈다. 약속시간이 이미 지났던 것이다.

 

"으아악! 망할!"

"예?"

"너 때문이잖아! 이거 어쩔거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소년은 그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돌변한 소년의 태도에 그는 당황한 듯 말이 없었다.

잠시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지 깨달은 듯 소년은 손을 가만히 놓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뜨린 건 그 쪽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상한 녀석."

 

소년은 새침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이미 일 다 저질러놓고 죄송하다면 다냐? 사람을 납치해놓고, 죄송하다면 다야?"

"...."

 

그는 말이 없었다.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뭔 대단한 사정이 있다고 날 여기까지 끌고 온건데? 응? 말해봐."

 

그가 더 쏘아붙이려고 할 때였다. 묵묵히 있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엘리자드 시네스 님을 알고 계십니까?" 

Author

Lv.1 안샤르베인  3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흐린하늘
어, 계속 이어지는 거였군요? 꼭 작가들은 호기심이 폭발하는 곳에서 글을 끊죠(.......)

그리고 첫째줄에 부딛치다 -> 부딪치다가 맞는 거 같아요.
안샤르베인
아하 지적 감사합니다.
제가 가끔 저게 어느게 올바른 단언지 잊어먹곤 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열람중 반항 댓글2 안샤르베인 09.03 2863
173 고래 댓글6 레이의이웃 08.31 3020
172 切段 댓글4 Novelistar 08.27 3154
171 납치 안샤르베인 08.26 2916
170 마주침 댓글4 안샤르베인 08.18 2988
169 뒤를 무는 악마 댓글2 작가의집 08.10 3819
168 작문 쇼 댓글2 민간인 08.10 3175
167 애드미럴 샬럿 2 폭신폭신 07.30 3045
166 검은 나비의 마녀 댓글1 블랙홀군 07.17 3168
165 애드미럴 샬럿 1 폭신폭신 07.15 3209
164 섬 저택의 살인 9 댓글2 폭신폭신 07.06 3071
163 섬 저택의 살인 8 폭신폭신 07.04 3183
162 네버랜드 - 3. 엄마? 마미 07.03 3184
161 섬 저택의 살인 7 폭신폭신 07.03 3015
160 네버랜드 - 2. 알브헤임 마미 07.02 2935
159 섬 저택의 살인 6 폭신폭신 07.02 3068
158 섬 저택의 살인 5 폭신폭신 07.01 2949
157 도타 2 - 밤의 추적자 팬픽 Novelistar 06.30 3024
156 섬 저택의 살인 4 폭신폭신 06.29 2941
155 네버랜드 1. 웬디 그리고 피터팬 마미 06.28 3004
154 라노벨 부작용 다움 06.27 3050
153 파리가 사람 무는거 본적 있어? 댓글2 다움 06.27 3378
152 카라멜 마끼아또, 3만원 어치 민간인 06.26 3182
151 섬 저택의 살인 3 폭신폭신 06.26 2923
150 섬 저택의 살인 2 폭신폭신 06.24 2923
149 섬 저택의 살인 1 폭신폭신 06.23 2925
148 무제 민간인 06.22 3111
147 발을 무는 악마 댓글6 작가의집 06.19 3223
146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3102
145 인문혁명 댓글2 Tongireth 06.11 3454
144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3103
143 훈련소에서 댓글1 폭신폭신 05.25 3305
142 [공모전에 낼 소설 초안] 꿈, 혁명, 그리고 조미료와 아스피린 (1) 댓글1 BadwisheS 05.19 3248
141 학교에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3 3180
140 세달만에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폭신폭신 05.12 2792
139 뚜렷 한흔적 댓글2 다움 05.10 3171
138 Spinel on the air(스피넬 온 디 에어) - 프롤로그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4.26 2902
137 마지막 약속 댓글3 안샤르베인 04.18 3036
136 빛이 지는 어둠 속 작가의집 04.14 3246
135 아름다웠던 하늘 김고든 04.10 3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