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달렸다. 도시의 바람이 소년의 귓가를 스쳤다. 잠깐이나마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시간. 소년은 이 때를 좋아했다. 주변에서
항상 감시하듯 바라보는 눈도, 수군거리는 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다. 돌아오면 한 소리 들을 걸 알지만 소년은 이내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버렸다. 지금 느끼는 즐거움이 더 컸기에.
축제가 시작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중충하던 거리는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후드를 쓰고 걷는 소년을 보고도 행인들
중 크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조금 특이한 사람이려니 했을 뿐이었다. 질서 없이 돌아다니는 군중 속에 섞이다 보면
사람 한 명쯤 숨기는 쉬웠다. 얼핏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누가 다 기억하겠는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질 않았다. 빠져나왔다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겠지. 그는 사람을 따돌리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소년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해가 지기 전에 볼일을 끝마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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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서 있었다. 앞줄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앞줄의 사람들은 둥그렇게 모여서 문지기와 출입자의 승강이를 구경했다.
원래대로라면 오래가지 못할 승강이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까닭은 문지기 앞에 버티고 선 소년 한 명 때문이었다.
소년은 모습부터 눈에 띄었다. 전신을 둘러싼 검은 망토 사이로 창백해 보이는 하얀 피부가 비쳤다. 얼굴도 역시 후드로 가려져 얇은 입술과 턱선만 드러났다. 얼핏 보면 좀 특이한 차림의 여행자로만 보였다.
하지만 손에 들린 건 평범한 종이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구경하기조차 힘든 고급 비단이었다. 귀족들도 쓰기 부담스러워하는 이 비단 조각은 끈으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이런 물건은 보통 중요한 서신을 기록할 때 사용했다.
이 범상치 않은 조합에 수문장도 난감해했다. 수상한 사람은 내쫓으면 그만이지만 손에 들린 것의 가치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년은 편지의 출처는 말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들어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정말 급하다고 했잖습니까. 들여보내주시라니까요."
"아 글쎄, 네가 누군지, 여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아야 보내줄 거 아냐."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문지기는 딱딱하게 말했다. 마냥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입장에선 이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뒷줄에서 불만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다른 한 명이 소년에게 말했다.
"이봐. 뒷사람이 기다리잖아. 나중에 얘기하자고. 여기서 기다려."
소년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군말 없이 물러나자 그제야 문지기는 본업을 시작했다.
그는 조금 물러나 성벽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흔적이 엿보였지만 허술하진 않았다.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드문드문 서있었지만 큰 경계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손에 들린 서신을 보았다. 시간 내에 꼭 전달해야 하건만 자신은 외성조차 들어갈 수 없는 신세였다. 편법이 필요했다.
소년은 가볍게 심호흡했다. 그리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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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몸을 숨겨야 했다. 갑자기 병사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단순히 숫자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전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일리는 없었다. 소년이 사라진 건 큰 일이었지만 동시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가 사람을 잘 따돌릴 수 있게 된 근원엔 떠들썩하게 소문내어 찾을 수가 없다라는 사실도 한 몫 했다.
일반적인 사건 때문이라면 병사들이 이리 많이 몰릴 리는 없었지만 소년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겐 자신의 일이 더 급했다.
소년은 어둑한 길로 접어들었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잡혀 끌려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소년은 골목길을 꽤나 잘 알고 있었다.
부랑자들을 피하고 쓰레기더미를 타넘어 발걸음을 빨리 했다. 후드가 벗겨질까 손으로 꼭 쥐었다. 한 골목만 더 지나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참 달려서인지 숨이 찼다. 소년은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무릎을 손으로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하필이면 이렇게 멀리서 보자고 한 건지 모르겠네."
숨을 몰아쉬고 나니 목이 말랐다. 소년은 이번에 뜯어내리라 마음먹은 걸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다 자리에 멈춰섰다. 근방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소년의 감은 꽤 예리한 편이었다. 수상한 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 보았다. 묘하게 자신이 있는 자리 근방이 다른 곳보다 더 어두웠다. 마치 그림자가 더 겹친 것처럼. 그러나 그 원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띄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시선에 꽂히는 것이 있었다. 펄럭이는 검은 천 사이로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이 흐릿하게 어른거렸다. 소년은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곤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사람이 있었다. 공중에, 정확히는 간판걸이에 거꾸로 매달려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곤 쉿 소리를 냈다. 그리곤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뭐... 뭐야?"
얼어붙어 있던 소년이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얼핏 보았던 얼굴이 검은 후드에 가려져서 적갈색 머리칼과 턱선만이 보였다. 그 사람은 소년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소년 앞으로 다가섰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치고 있었지만 상대방이 더 빨랐다. 어느새 그는 소년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사실 묘사를 줄이자, 문장 줄이자, 라고 좀 고민중인데 쉽진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