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콜라를 좋아했다. 코카와 펩시부터 보릿가루를 쏟아부어 만든 것 같은 맥콜까지 모든 종류의 콜라를 좋아했다. 내가 싫어하지 않는 콜라는 없었다. 언제부터 콜라를 마셨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건 아무런 상관 없었다. 나는 콜라를 좋아했다. 아니, 콜라를 사랑했다고 하는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아빠가 피자나 치킨을 사올때 마다 난 여동생과 한바탕 싸워야 했다. 내가 콜라를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참다 못한 여동생이 부모님께 징징거린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후로 우리 가족은 무언가를 사먹을 때 500ml 짜리 콜라 한 병을 더 사야했다.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 이 관행은 폐지되었다. 어른이 된 내가 가족에게 콜라를 양보할 수 있게 되서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된 여동생의 입맛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한때 나와 함께 콜라를 외치던 여동생은 콜라대신 포카리스웨트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10여년을 함께 해왔던 남매의 배신에도 내 입맛은 바뀌지 않았다. 대학 OT 때 같은 방 동기들은 나를 "콜라맨"이라고 불렀다. 1리터 짜리 콜라병을 병나발 불던게 원인이 아닐까한다. 과방 벽에 걸린 MT 때 사진에서 내 모습을 알아보기는 쉬웠다. 언제나 손에 빨대를 꽃은 500ml 코-크를 들고있었으니까. 강의를 들을때도 내 책상 위에는 콜라 두 캔이 빠지지 않았다. 알바비를 받자 마자 처음 산것도 콜라였다. 콜라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내가 콜라를 못 마시던 때가 있었다.
작년 여름 방학 때 일이었다. 그때 나는 게임을 하고있었다.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평범한 FPS 게임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은 지랄맞게 더운 날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폭염 특보라도 내려졌을거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집에는 에어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창문을 열어제끼고 선풍기를 3단으로 틀며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니터 앞에는 시원한 펩시 한 캔이 놓여있었다. 스피커에서 나는 총소리. 파리 한마리가 방 안을 날아다니는 소리. 선풍기에서 나는 모터 소리. 콜라에서 나는 탄산 소리. 그게 그날 오후 1시 쯤 내 방 풍경이었다. 거기에 소리 하나가 더 들려왔다. 동네 마트에 심부름 좀 다녀오라는 엄마 목소리. 마침 게임도 지기만해서-아마 더위 탓일거다-의욕이 없었던 나는 컴퓨터를 끄고 집을 나섰다. 심부름은 별로 어려운게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난 두부 한 모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심부름을 끝마친 나는 다시 내 방에 돌아왔다. 키보드 앞에 놓여진 콜라 캔을 흔들어보니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 먹지도 않은 콜라를 잊고 있었던거다. 자연스럽게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의자에 앉아 콜라를 들이켰다. 찜통과도 같은 방 안에 방치된 콜라는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때 이빨에 뭔가 걸렸다. 그걸로 생각보다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고춧가루 같은건 아니었다. 그보다 무게감 있는 무언가였다. 그렇다고 돌 같은건 아니었다. 그보다 부드러운, 기분나쁜 무언가였다.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급하게 컴퓨터 옆에 놓여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그 위에 입안의 것을 뱉었다. 예상대로였다. 몇시간 전만 해도 전등 주위를 돌고 있었을 파리 한마리가 콜라로 흠뻑 젖은 휴지 위에 떨어졌다. 황록색으로 빛나던 녀석의 몸은 콜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다리를 꼼지락거리지도 않고 있었다. 미지근한 콜라 속에서 최소 몇 분간 우려져있었다는 얘기다. 목 깊은 곳에서 미지근하고 역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변기에 얼굴을 들이댔다. 엉덩이 받침을 올릴 시간은 없었다.
====
가게 보면서 콜라 마시다가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여기 파리 같은게 빠진거 아냐?"라는 생각이 나서 써 봤습니다. 그 생각을 했을 때 기분 나쁨을 전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실패. 분량도 많이 뽑아내지 못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