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읽는 동안 여왕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져갔다. 이내 그가 굳어진 얼굴로 엘리자드를 보았다.
"과연... 왜 숨겨야 할 일인지 알겠군요."
엘리자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의 시선이 옮겨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왕을 보고 있던 그는 눈을 보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여왕은 다시 미소지었다.
"그런데 왜 이 편지를 당신에게 맡겼을까요? 당신은 누군가요?"
"......"
그는 대답이 없었다. 엘리자드가 눈썹을 꿈틀였다.
"여왕 폐하께서 말씀하시는데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닌가."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에 둘의 표정이 변했다. 여왕이 입을 열었다.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모릅니다. 제가 누군지 모릅니다."
둘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이토록 당황스러운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이라고 보기엔 무척이나 솔직했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앙다문 상태였다.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곤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럼 어쩌다가 부탁을 받은 거죠? 사실대로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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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
한 병사가 소리쳤다. 그들은 한 시간 째 사체의 잔해 속에서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주검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팔다리가 뜯겨 나가고, 배가 터져 내장이 흘러넘쳤다. 온전한 상태로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피에 절은 깃발이 아니었더라면 군인인지도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갑옷도 본래의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기적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그럼에도 찾아낸 사람이 있었다.
"피칠갑 상태긴 하지만, 숨 쉬고 있습니다. 몸도 멀쩡해요."
"얼른 의무소에 옮겨라."
제네시스는 잠시 본래의 자리를 비우고 직접 의무소 안으로 들어왔다. 적이든 아니든, 가치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