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3. 구명령(救命靈)

작두타는라이츄 0 2,970

여전히 전파를 타고 흐르는 정보들 사이에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다. 개중에는 사실인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유독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정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투신자살을 막는 유령'이야기였다.  

"엄마, 미안해요... 나 이제 힘들어서 안되겠어... " 

온 몸에 멍이 든 남학생이, 피투성이 교복을 입고 어느 폐건물의 옥상에 올라왔다. 보통 건물의 옥상은 잠그기 마련이지만, 이 건물은 폐건물이 된 지 오래인데다가 아무도 사겠다는 이가 없어 관리자 역시 없었다.  

너무 끝도 없는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왔다. 선생님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가, 그 녀석들은 집이 잘 사니까 분명 잘못했어도 대충 무마하고 끝낼 게 분명해. 그는 낡은 콘크리트 난간으로 다가가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 

하얀 옷을 입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였다. 옷은 피투성이여서 흰색이라고 하기엔 하얀 부분이 무늬같아 보였다. 거기다가 온 몸이 무언가에 의해 부서진 듯 너덜너덜했다. 그것은, 밑에서 난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뼈가 드러난 팔을 들어 가위표를 그렸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머리가 흔들린다. 뛰어내리길 바라는 게 아니라, 뛰어내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가 난간에서 물러서자 여자는 다행이라는 듯 엷은 미소를 보이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학생은, 그 여자가 부르기라고 한 것처럼 지나가던 사람에 의해 발견됐다.  

"...그래서 지금 김태훈 형사가 그 사건을 맡고 있는건가? 인간을 죽을 정도로 내몰았다면 그거 완전 쓰레기 아니냐. " 
"네, 그렇게 됐대요... 그래도 천만 다행이죠, 그 녀석을 보지 못 했으면 그 학생은 여기에 없었을테니까요... " 

파이로는 나쵸를 아그작, 씹으며 말을 이었다.  

"참 흥미로운 녀석이야. 인간을 홀려서 뛰어내리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뛰어내리지 말라고 부탁을 하는 유령이라니... 신기하군. " 
"으음... 그러게요. 저도 예상외라고 생각했어요. " 
"그래서 미기야가 그 녀석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떠맡은거구만? 소문이 나돈다고 할 때는 조용하더만... " 
"그렇겠죠. " 

미기야는 그 학생의 일을 수사하고 있는 형사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그 유령의 정체에 대해 확인하기로 했다. 요전에 그런 소문이 돌았을 때는 설마하는 마음이었지만, 실제로 본 사람이 있다니. 그 역시 지금까지 봐 왔던 유령들과 다른 그 유령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다 좋은데... 그럼 그 녀석은 어떻게 만나서 얘기를 나눌거냐? " 
"그러네요. " 
"일단 현, 너는 그 유령을 만났다는 사람들에게서 증언을 한 번 들어봐. 나는 그 건물로 한번 가 볼게. " 
"네. " 

현이 유령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 있을 동안, 파이로는 예의 그 낡은 폐건물로 향했다. 그 건물은 지은 지 3~4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몰골에, 패인트칠이 너무 벗겨져서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보통 그런 폐허라면 으슥한 곳을 불량학생들이 아지트로 쓰기도 하지만, 그런 흔적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지저분한 건물은 처음이군... 아무도 관리 안 하나? " 

엘리베이터는 이미 고장이 난 지 오래라, 그녀는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의 페인트칠도 군데군데 벗겨져서, 원래 이 난간이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페인트 칠이 벗겨진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통로였던데다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서, 혼불이 없었으면 파이로는 계단을 오를 엄두도 내지 못 했을 뻔 했다. 군데군데 집을 짓고 사는 거미들은 이 건물이 얼마나 낡았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옥상으로 올라와 난간 쪽으로 다가가자,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온 몸이 너덜너덜하고, 군데군데 뼈가 드러난 여자. 그녀가 파이로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내 말 들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몇 번 더 불러봤지만 그녀는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이로가 난간에서 멀어지자, 그녀 역시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라우드부터 불러야 하나... " 

파이로는 툴툴거리며 전화기를 꺼내 라우드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그는, 라우드가 건물 입구에 도착하가 옥상에서 내려가 아까 그녀가 보였던 자리로 갔다. 라우드는 땅에 손을 얹고 집중하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떴다.  

"...뭐 보이냐? " 
"여기서 뛰어내렸어... 그 여자분, 혹시 하얀 옷을 입고 있었어? 머리는 여기까지 오고... 검은 색 긴 머리. " 
"아아... 어. ...옷이 원래 흰색인지는 모르겠지만. " 
"...... 신원까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뛰어내린 것 같아... 아무래도... " 

여기서 자살했던 유령이 지박령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지금으로선 파이로도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영상이 보인 거 보면, 죽은 지는 얼마 안 된 모양이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는거겠지. ...그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 
"...잠깐만. 나 그 얼굴, 어디서 본 적 있는데...? " 

불헌듯 무언가 생각난 듯, 라우드가 멈칫했다.  

"뭐냐, 갑자기? " 
"...... 아냐, 아무것도... " 
"싱겁긴... 사무실로 돌아가자. "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라우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어딘가 어두운 얼굴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 
"아, 쿠로키 씨. 키츠네 오늘 안 나왔는데요. " 
"오늘은 오너 뵈러 왔는데... 안 계세요? " 
"잠시만요. " 

야나기가 미기야에게 연락할 동안, 쿠로키는 라우드가 있는 방 쪽을 보고 있었다.  

"저기 누구 있어요? " 
"아, 라우드요. 아까 폐건물에 갔다 온 뒤로 계속 저러고 있어요. " 
"폐건물이요? " 
"네. 요즘 투신자살을 막는 유령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잖아요, 그 유령을 실제로 본 사람이 있대요. ...그리고 저도 실제로 봤고요. " 
"그렇군요. "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말도 안 해주고, 그냥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라고만 하네요... 참, 미기야 좀 있으면 올거예요. " 
"그럼 잠깐 실례할게요~ " 

다음날, 파이로는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떄문에 잠에서 깼다. 발신인은 불명이었지만, 그녀는 웬지 이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 
-나... 히다리...  
"아, 너냐. 아침부터 웬일이야? " 
-...... 라우드... 건물에......  
"응? 라우드가 왜? " 
-그 폐건물에... 그 쪽으로 갔어...  
"...지금 미기야 옆에 있냐? " 
-응...  
"그럼 미기야 데리고 당장 그 건물로 가. 나도 곧 갈게. " 
-알았어...  

전화를 끊은 그녀는 불에 데인 듯 후다닥 일어났다. 씻을 틈도 아침을 먹을 틈도 없이, 그녀는 폐건물을 향해 달렸다. 어제 그 자리에는, 어제 만났던 그녀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멀리 옥상 난간에 기댄 라우드도 보였다.  

"야, 임마! 너 미쳤어? " 
"파이로...? " 
"라우드 씨! " 
"......" 

라우드를 올려다보며 연신 고개를 젓던 그녀는 파이로가 건물 쪽으로 달려가자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파이로는 혼불을 켤 새도 없이 한달음에 옥상으로 달려가 라우드를 난간에서 끌어냈다. 멍하니 끌려오는 그를 건물 아래로 끌고 내려온 그녀는, 뺨을 세차게 여러 번 때렸다. 그전과 달리, 그녀는 사라지지 않고 라우드를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너 미쳤냐? " 
"...... "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짓이야, 임마! 죽으려고 아주 환장했냐? 어제 하루종일 생각한다는 게 이거였냐? " 
"...일단 진정해... " 
"진정? 이보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얘 어제 여기서 사이코메트리 한 후로 계속 이랬어. 뭔 일인지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고 이러고 있다가 지금 사고 칠 뻔 했다고. " 
"......어제부터 계속 이랬다고요...? " 

간신히 파이로를 뗴어낸 미기야는 라우드를 부축했다. 그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그래! 이 녀석을 본 후로 계속 이랬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만 하고 방에 콱 틀어박혀 있다가 사고 쳤다고! " 
"...너, 누구...? 아는 사이...? " 

히다리가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지자,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이 사람의 연인이었어...... " 
"......! " 
"하지만, 난 전혀... 그러니까 전혀... 죽일 의도 없었어요...... 난 그저... 그저 편히 잠들고 싶어서 그랬는데...... " 
"...그럼 너... 이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던거야? " 
"응......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어지간히 사랑했었나보군... 야 임마, 그렇다고 뛰어내리려고 해? 그러면 니 연인이 아주 좋아라 하겠다, 어? 하여튼 이건 정신 차리면 조인트부터 차고 들어가야 돼, 아주... " 
"사실 이 사람은... 내가 이렇게 죽은 줄 몰라... 내가 너무너무 힘든 일이 있었지만, 이 사람은 들어주지 않았어... 그리고 우린 헤어졌고... 내가 죽었다는 건, 어제 당신이 여기로 데려왔을 때 처음 알았던 거예요... " 

미기야와 파이로는 할 말을 잃었다. 겨우 정신이 돌아왔는지 라우드가 손을 그녀에게 뻗자, 그녀는 너덜너덜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쓰다듬었다.  

"당신은... 여전히 바보구나, 당신은... 앞으로는 이런 선택, 하지 말아요... 나도, 그 떄의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만은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지 않길 바래서 여기 있는거니까... " 
"미안해, 세희야...... 내가 그 떄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 
"넌 임마, 얘한테 두 번 미안해해야돼. 알어? " 

라우드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파이로는 라우드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아픈지 정강이를 쓰다듬는 그를 보며, 파이로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이 녀석은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래서 여기에 있었던건데, 네녀석은 이 녀석을 상처입혀서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또 상처를 입히려고 했냐? 어? 그게 연인한테 할 태도냐? 어? 정신차려, 임마! 얘한테 미안하면 미안한 만큼 더 열심히 살라고! " 
"그래도, 옆에서 든든한 동료분이 지켜주고 계시니까... 그럴 일은 없겠네요... 고마워요, 우리 라우드 잘 부탁해요... " 
"세희 씨는 계속 여기에 계실 건가요?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되는 몸이잖아요... " 
"저도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죄로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은 선택을 하지 못 하게끔 막는 벌을 받고 있었어요... 백 명의 사람들을 그렇게 구해야 했죠... 이제 저도, 돌아갈 수 있겠네요... " 

드문드문 뼈가 보이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와, 그녀는 처음으로 살아있을 때의 모습으로 라우드를 향해 웃어보였다.  

"파이로씨, 우리 라우드 잘 부탁해요. " 
"응. ...너도 이제 편히 쉬어. " 
"네... 라우드, 내 몫까지 열심히 살다가 천천히 와... 저 쪽에서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되도록 천천히 오도록 해... " 
"세희야... 응, 천천히 있다 갈게... " 
"약속했다? 파이로씨, 혹시 라우드가 약속 어기면 또 혼내주실거죠? " 
"당연하지. 내가 혼내줄게. " 
"고마워요. " 

그녀는 엷은 미소와 함께 사라지고, 산들바람만이 불었다.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던 넷은 사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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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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