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거미 중에는 알에서 갓 깬 새끼거미들이 어미거미를
잡아먹는 종이 있다고 한다. 새끼거미는 어미를 먹고 자라 다시 어미가 된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집안에 거미가 숨어들기 시작할
때면 나는 그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해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집안에 꼬이는 그 거미들처럼 다시 찾아왔다.
막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로 엄마가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엄마의 늦은 신혼여행과 침몰한 여객선의 이야기가 종종 뒤섞여 떠올랐다.
그 날도 오늘같은 쌀쌀한 늦가을이었다. 죽었던 엄마가 교문 앞에 서 있었고, 나는 보자마자 그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도 마치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걸어와서 나를 안았다.
이후 엄마는 가끔 일년에 한두 번 찾아왔다. 어디에 있는지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알고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묘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가 엄마라는 사실에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함박눈이 내리고 이따금 못다 떨어진 마른 잎이 떨어졌다. 다시 시선이 향한 창가에 다리 긴 거미가 지저분하게 친 거미줄이 엉겨붙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치워야겠다 다시 생각하면서도 이불 속을 떠나지 못했다.
그 때 엄마가 찾아왔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고 떠났고, 실제로도 오늘처럼 그랬다. 하지만 나는 항상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무언가 불길했다.
문을 열고도 한동안 믿기지 않아서 주춤했다. 어머, 너는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는데 그러고 있으면 어떻하니? 아, 미안해요. 어서 와요, 엄마.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창가의 거미줄을 찾아내 치워버렸다. 아, 그거 내가 치우려고 했던 건데.
"내가 치우지 않았으면, 게으른 너는 거미가 알을 깔 때까지 방치해뒀을 테니까."
엄마는 말을 마치고는 빗자루를 원래 있던 구석에 박아뒀다.
우
리는 우선 차를 마셨다. 엄마를 마주하면 언제나 고민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고민하던 것들에, 내게 필요한 대답을
주었다. 마치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전부 아는 것처럼. 그렇게 찻잔이 몇 번 비고 엄마가 먼저 일어났다.
"미래야, 오늘은 조금 일찍 이야기를 마쳐야 할 것 같아."
벌써 가려고요?
"바쁜 일도 있고, 또 오늘은 네게 꼭 보여줘야 할 게 있거든."
엄마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손을 잡고, 눈 내리는 원룸촌 뒷마당을 향해 뛰었다.
엄
마가 보여주려는 게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현관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을 치우기 위해 사실
나도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빗자루를 익숙하게 찾아내거나, 내 고민거리를 마치 자신이 겪었다는 듯 알아주고 답을 주는 것을 이제서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여객선 바닥에서 건져올린 '진짜 엄마'의 시신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다. 그저 굳이
엄마인 척 하며 매번 찾아오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묻는다. 저 사람은 왜 언제나 내 엄마일까.
손을
잡고 뛰다 멈춘 눈 쌓인 마당 한가운데에, 둥그렇게 마른 바닥이 있었다. 그 위는 눈조차 내리기 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른
바닥 한 가운데로 갓 돋아난 새싹이 보였다. 잡은 손을 놓은 엄마가 그 마른 바닥 위에 섰고, 내게 말했다. 오늘 꼭 너에게
이걸 말해야 할 것 같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내가 진짜가 아니라서 실망했니?"
아니요. 난 괜찮아요. 고마웠어요. 그런데 왜 굳이 찾아와서 엄마인 척 하는 거에요?
그 사람이 말했다.
"네게 엄마가 필요했으니까."
비
록 일년에 며칠 안 되지만, 그 며칠이 네게 필요할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네가 가끔, 정말로 힘들 때 떠올리는 내
모습이 힘이 될 거라는 걸 알고, 나도 그럴 때 너를 떠올릴 때 힘이 되니까. 그래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거야. 내가 엄마이고,
네가 내 딸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내가 돌아와야 할 집이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의 내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응. 전부 말해줄 수는 없지만,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내 삶은 행복한 삶이었어. 지금은 의심이 될 지 모르지만, 네가 처음으로 너를 다시 만날 때쯤이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엄마가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둥근 바닥이 새까맣게 푹 꺼지기 시작했고, 엄마의 모습이 바닥과 엉겨붙어 사라지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정말로 해야 했던 말들을 주고받았다.
다시……올 거죠?
돌아올게.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을 때면 생각하렴. 미래야, 나는 언제나 네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 말을 끝으로 뒷마당에는 온통 눈 쌓인 바닥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눈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 편지를 쓴다. 아주 먼 미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먼 미래에서 날 기다릴, 이 편지를 열어 볼, 떼어놓을수도,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도 없는, 엄마와 나를 위한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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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이은, 시간을 주제로 한 소설인데 이번도 역시 망했습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