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인 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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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악함


 보통 감정적인 판단은 가슴이, 이성적인 판단은 머리가 시킨다고들 한다. 감정적인 판단은 대개 충동적이고, 본능적이기 마련이다. 전후 상황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행동부터 하는 이 특성덕에 감정적인 판단으로 행동한 사람들은 후에 후회할 일을 자주 벌이곤 한다. 물론 사람들이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이 감정적으로 움직이려던 몸을 멈추고 직면한 상황에 대해 분석하며 인과관계를 계산하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이목을 그 누구보다도 신경쓰는 나는 어떤 문제든간에 감정 반사적으로 움직이려는 몸을 항상 멈추고 보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 습관덕에 주변의 이목을 끌 일을 하지 않아 과묵하고 진중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아주 큰 도움을 얻었지만. 반대로. 이런 계산적인 판단만 하는 것이 위트없는, 그리고 우유부단한 나를 만드는데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생각해보건데, 상술한 것들 말고도 나에게 크나큰 하나가 더 결여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선의'다.

중학생 때 일이었다. 교회 예배가 막 끝나고 교인분들이 계단을 타고 밖을 나갈 때, 나도 그 틈에 끼어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내 옆에는 알던 분은 아니지만 키가 몹시 작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힘겹게 계단을 내려가고 계시다가 사람에 부딪히셨는지 발을 헏디디셨는지 옆으로 넘어지시고 그대로 계단을 구르고 마셨다. 계단의 중간 턱에까지 구르시고 나서야 멈춘 할머니는 신음을 내시며 자리에서 쉬이 일어서지 못하셨다. 결국 할머니는 주변분들의 부축으로 몸을 일으켜 교회 내의 의료봉사센터로 인솔되셨다. 난 그 현장 바로 앞에 멀뚱하니 서 있었다. 난 할머니가 넘어지는 것을 막을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재빨리 움직였다면 할머니가 머나먼 중간 턱까지 구를 정도로 두지 않을 수 있었고.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쓰러져 신음하시는 할머니를 부축해 일으켜 내가 직접 의료봉사센터까지 데려다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난 그저 '움찔' 했을 뿐이었다. 감정적인 선의는 작은 경련정도로 끝나버리고 그저 '별로 눈에 띄기 싫은데', '괜히 착한척으로 보일까',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돕겠지' 하는 다분히 자기보신적인 이성적 악의가 섞인 계산이 날 가로막았던 꼴이었다.

여기까지라면 다른 사람들은 '다른사람도 다 그래' 같은 말로 위로하며 그 일을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보편성을 가지고 내 행동을 합리화 하기엔 그 '움찔'이 줬던 양심의 가책과 찝찝함이 나에겐 너무 컸다. 위의 일 외에도 수두룩하게, 오늘만 해도 두세면 그 경련이 내 양심을 찔러댔기에 나는 점차 내 인생을 구성해 온 이 이성적 판단이 선의를 향한 감정적 판단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지 않던가? 음. 이 상황에 맞는 격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단 내 경우엔 오른손이 벌일 짓을 항상 알고 있는 왼손이 계속해서 오른손을 붙들고 자기 내키는 때만 놓아주는 그런 그림이 자꾸만 연상되었다. 그래서 이미 수차례 나 스스로를 선의의 충동에 맞겨보려는 시도를 해봤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인간이 습관의 생물인 만큼 오랫동안 유지해온 나의 삶의 방식을 한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선의가 매번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오는 것만은 아니듯, 내 이성적 행동이 이런 선의의 행동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움직이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언젠가 감성과 이성이 모두 선한일에 거칠것 없게 된다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인간미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나를 만들지 않을까 하며 히죽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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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거짓부렁이에 능해 소설쓰기에 머리가 조금 더 특화되있는 저한텐 수필은 역시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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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런 선의조차도 없는 인간들도 세상엔 충분히 널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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