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봄의 이야기

언리밋 0 2,355
"많이 따뜻해진 것 같지만, 아직 쌀쌀하네," 

이맘 때, 여기서 너는 그렇게 중얼거렸었지.

.
.
.

지금, 너는 어디에서, 누구와 있는 걸까.


벚꽃이 만개한 언덕 아래에서 너와 잡담을 했던 날들. 뭐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친구 이상으로 좁혀지지 않았던 거리감. 그런 미묘한 관계에서, 그 관계를 좋아했었지, 너는.

어디까지나 친한 친구로서─ 성별만 다른 친구로서, 그런 관계를 좋아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실은 외톨이었어. 한 줌도 안 되는, 그저 가식으로 가득 찬 '친구'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이뤄진 관계. 그런 가식의 한 가운데에서 때로는 혼자 울었던 적도 있었지만... 글쎄, 너를 만나고서는, 약간 변했지.

비관적으로만 보이던 세상에서 한 줌의 희망을 찾은 느낌이었어. 네가 편했어.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뻗어서 닿았던 인연이라는 것이 더욱 기뻤어. 그저 너와 같이 걷고,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그랬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일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어.


그러다가 자각했어.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걸.'

그렇지만,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했었던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무시한 게 되어버렸으니까. 어디까지나 친한 친구, 그 곳에서 머무는 관계를 바랐던 너와 나, 그리고 변해버린 나─


평범하게, 한 마디.

그리고 너는 대답했지. "...미안," 그 한 마디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고, 너에게 감사했어. 적어도, 내 감정을 이해해줬으니까.



졸업을 하고 나서, 내가 등을 돌리지 않고, 내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갈 수 있게 해 줬으니까.

그렇지만 잊는 건 괴로운 일이야. 응, 그래... 지금처럼, 그 날, 너무나 시시하게 내뱉었던, 너를 좋아해라는 말을 내뱉었던 벚꽃이 만개한 그 언덕에서 너를 잊지 못한 채, 이렇게───



쭉,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

바람이 분다.

부드럽게 바람이 불어오며,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를 흔든다.


수없이 떨어지는 벚잎의 비 아래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볼을 타고 흐르는 듯 했다.


"정말이지...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미안해.

너라면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거야.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

정말, 정말 미안해..."

.
.

그럴 필요 없는데, 너무나도 상냥한 그 모습이 기억의 한 편에서─

희미해져갔다.


잊기, 싫어. 그렇지만, 이젠 미련을 버릴 때니까.


그러니까, 한 발짝 더 내딛는다. 과거에서 허우적대지 않는다. 추억은 추억으로서 남겨둔다.

그녀와 다시 만난다는, 그런 소설같은 일은───


없을테니까.




=================================================

-ㅅ-...

Author

Lv.1 언리밋  3
7 (0.7%)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3 바톤터치 댓글1 글한 11.17 2509
252 VIII-3. 인과응보 작두타는라이츄 02.06 2510
251 경계를 넘어선 만남(完) 댓글2 안샤르베인 12.01 2512
250 계약 안샤르베인 12.30 2515
249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전개 부분 댓글4 안샤르베인 10.18 2516
248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댓글2 블랙홀군 02.16 2519
247 섬 저택의 살인 6 폭신폭신 07.02 2519
246 그와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1. 언리밋 12.12 2520
245 [어떤 세계의 삼각전쟁] 난투극 - 2 RILAHSF 04.04 2520
244 섬 저택의 살인 9 댓글2 폭신폭신 07.06 2521
243 하바네로 잉어킹 09.25 2522
242 [자연스러운 문장 연습] 귀머거리 BadwisheS 03.26 2526
241 미아 이야기 2 (끝) 네크 08.06 2526
240 [소설제: STEP] 종료입니다! 댓글2 QueenofBlade 12.22 2527
239 Resolver(리졸버) - 1 댓글5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9.14 2527
238 해바라기 소이소스 11.18 2528
237 부고(訃告) 댓글2 가올바랑 01.25 2528
236 [Project:Union] 유트뵐리스와 차문화 Badog 03.26 2528
235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529
234 VI-2. Gloxinia 미식가라이츄 08.24 2529
233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Novelistar 10.25 2530
232 HIGH NOON -1 잉어킹 11.21 2533
231 VIII-2. Rimen game 작두타는라이츄 01.14 2533
230 미래의 어떤 하루 주지스 01.07 2534
229 반의 성공, 반의 실패 안샤르베인 09.22 2535
228 이복남매 이야기 블랙홀군 01.30 2536
227 Robot Boy - 1 댓글1 Novelistar 03.14 2536
226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2537
225 붉은 찌르레기 이야기 네크 01.23 2538
224 사신의 서 - (0) 엣날 옛적에 Badog 02.11 2538
223 Workerholic-Death In Exams(1) 댓글2 Lester 12.17 2539
222 Workerholic-Death In Exams(3) Lester 02.02 2539
221 [습작] 죽음을 거스르는 방법 Prologue 댓글4 앙그라마이뉴 09.14 2542
220 여느 4월 때와 같은 날씨였다. Novelistar 05.04 2543
219 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 2 댓글4 네크 07.10 2546
218 무제 민간인 06.22 2547
217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2549
216 Cats rhapsody - 1 민간인 11.23 2557
215 외전 3. Adventure for Death 작두타는라이츄 11.13 2559
214 더러운 이야기 댓글2 기억의꽃 03.23 2562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