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꽁트 - 빈티지 패션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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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재식이 사기꾼이 아니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내가 매니저로 쓰고 있지만 이 자식은 형편없는 사기꾼이고 남의 똥꼬털까지 벗겨 먹을 인종이다. 그가 한 번도 불법적인 행동을 하거나 당국에 적발된 사실이 없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뼛속까지 사기꾼이고 나 같은 장사꾼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인종이다. 지금은 괜찮아도 언젠가는 큰일을 낼 놈이란 얘기지.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한결같은 확신이다. 본사에서 무슨 생각으로 그를 고용했는지 굳이 내 밑에 매니저로 보낸 이유가 뭔지도 짐작이 간다.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내가 독박을 쓰면 되니까. 분명 그런 계산이 서있을 것이다.

 

녀석을 따라다니는 소문만큼이나 가져온 기획도 범죄의 냄새를 풀풀 풍겼다. 긴급조치요원이라고? 하! 긴급단두대 요원이라 부르지 그래? 이런 기획을 정말로 실행했다간 실적은 고사하고 감방에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렇게 되면 본사에서는 어떻게 수습할는지? 정말로 점장이 뉴스보도를 타도 본사가 무사할 수 있을 거라고 믿나? 본사는 그런 천치들만 인사부에 앉혀 놨나? 모르겠다. 나의 걱정도 모른 채 녀석은 오늘도 웃는 얼굴이다.

 

“어이구 점장님 나오셨습니까?”

 

나는 녀석이 빙글빙글 웃으며 인사하는 게 싫다. 브띠끄 패션 명동점은 내가 입사 직후부터 지켜온 지점이다. 나 또한 매니저를 거치고 각고의 노력을 퍼부어 점장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한때는 명동바닥에서 먹히는 옷의 80%는 내가 팔아치운 적도 있다. 나는 실적을 냈었어! 근데 이제 와서 이런 새파란 놈더러 내 목을 치라고 하는 거야?

 

내가 저놈 기획서를 찢어발기고 본사에 전화를 했더니 그 인사과 과장이란 놈이 뭐라고 했더라?

 

“그는 현시점에선 최적의 인물입니다.”

 

“뭐? 사업 말아먹는 데 최적이란 얘기야?”

 

“아뇨, 당신 지점을 활성화 시키는 거 말입니다. 그는 벌써 몇 군데의 지점을 되살렸어요.”

 

“그놈이 쓴 기획이란 걸 당신한테 얘기해줬잖아! 그래도 모르겠어? 아니면 내가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안경을 쓰고 다니는 놈일 거다.

 

“굳이 말씀드리면,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안경을 쓱 밀어 올렸겠지. 재수 없는 자식!

 

“자자, 오늘부터 시작이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식이 말한다. 녀석의 손에는 며칠 전부터 뻔질나게 돌린 전단지가 들려있다. ‘빈티지 스타일 바겐세일!’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짓인가?

 

“아무 걱정도 안 되나 보군.”

 

내가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잘 될 겁니다.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정말로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렇게 믿는 거야?”

 

“여러 번 해봤거든요.”

 

나는 법전에서 사기에 관한 모든 조항과 판례를 찾아서 읽어주고 싶었다.

 

약 한 달 전에 우리 지점은 특이한 행사를 벌였다. “무엇이든 환불해드립니다.” 나는 김재식이 장차 무슨 짓을 할지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약 일주일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옷을 “환불”해줬다. 환불……. 사실 그건 환불도 아니다. 손님들은 어디서 산지도 모르는 옷도 우리 지점에서 샀던 옷이라며 가져왔다. 개중엔 그럭저럭 멀쩡한 것도 있었지만 어떤 건 구멍투성이거나 그렇게 되기 일보 직전의 옷이었다. 특히 어떤 여자는 명백히 타업체의 제품인 것을 들고 와서 당당히 환불을 요구했다.

 

“3년 전에 이 가게에서 산 게 틀림없다니깐요! 12만원짜리!”

 

나는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그때 김재식 이 자식이 어떻게 했는가?

 

“죄송합니다. 잠시 착오가 있었네요. 점장님 그거 12만원에 환불해드리세요.”

 

난 눈이 튀어나오려는걸 붙잡고 있느라 결국 환불은 다른 직원이 해줬다. 그 달은 기록적으로 많은 손님이 들었지만 기록적인 적자였다. 나를 제외한 직원들은 환불 이벤트를 미끼로 다른 상품의 재구매를 유도하려는 작전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지. 김재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녀석의 목적은 따로 있었고, 그걸 아는 건 나뿐이다. 물론 그 목적이란 것도, 너무나 확실하게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드디어 오픈시간이다. 전단지 효과만은 톡톡히 봤는지 손님들이 벌써부터 진치고 있다. 문이 열리자 마라톤 경주라고 시작된 것처럼 달려들고, 횡하던 매장이 모처럼 꽉 들어찼다. 나는 일부러 사무실로 들어가서 첫 클레임이 어느 시점에서 터져 나오나 기다렸다. 기다렸지만……. 클레임은 없다. 손님들의 아우성은 서로 상품을 뺏어가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손님들 중에 물건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걸레같이 닳아빠진 옷을 이리저리 재보면서 진지하게 옷을 골랐다. 무슨 짓이야? 당신들은 정말 눈도 없어? 그리고 무슨 계시처럼 그 여자를 봤다. 한 달 전에 12만원을 환불 받아간 여자.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지만, 지금 여자가 보고 있는 옷은 한 달 전에 들고 왔던 바로 그 옷이다. 물론 상표는 우리 걸로 바꿔달았지. 오줌이 마려웠다. 하지만 여자는 잠깐 돌려보다가 쇼핑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그걸로?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건가?

 

“손님, 도와드릴게 있을까요?”

 

“네? 알아서 둘러볼게요.”

 

“그…… 옷은 마음에 드십니까?”

 

“이거요? 그러니까 담았죠. 좀 비켜볼래요?”

 

아아 그러십니까……. 이 여자만이 아니다. 저쪽에도, 또 여기에도. 아마 자기가 환불한 제품을 더 비싼 값에 사가는 바보는 얼마든지 있다. 너희가 무슨 금붕어냐? 몇 년씩 입은 옷을 한 달 만에 깨끗이 잊어버렸다고? 그건 전부 상표만 다시 붙였다고. 심지어 몇몇은 세탁도 안 했어!

 

저쪽에서 김재식이 확성기까지 동원해서 소리친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 브띠끄 패션에서 준비한 최신 빈티지 스타일입니다! 정가의 70%로 모시고 있습니다! 제품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골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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