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 After their life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 1,804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그녀 혼자서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빌딩 옥상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처참한 그녀의 시신을 사람들이 수습하는 것이었다.

 

"이제 좀 알겠어? "

"......? "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딘가 음침해보이는 여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팔목에 무언가를 채웠다. 반은 하얗고, 반은 검은 종이같은 것이었다. 놀이공원에 놀러가서 자유이용권을 사면 이렇게 손목에 채워줬던 것 같다.

 

"이건... "

"자, 넌 이미 죽었어. 그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심혜진씨? "

"제 이름을 어떻게...? "

"저승사자니까. 망자의 이름 정도는 알아야 데리러 가거든. 자, 티켓도 배부했으니 슬슬 이동할까? "

 

로즈마리는 혜진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그녀는 다른 곳에 들러서 사람들에게 아까 자신이 찼던 것과 같은 것을 채웠다. 팔목에 채운 무언가를 여자는 '티켓'이라고 불렀고, 티켓을 받은 사람들은 속속들이 모여 지하철 역 아래 낡은 플랫폼으로 도착했다. 예전에는 쓰였지만, 지금은 가끔 회송 열차가 지나다닐 뿐이라는 낡은 플랫폼이었다.

 

"하얀 티켓은 이 쪽, 검은 티켓은 저 쪽 대기실로 가세요. 반반은 이쪽, "

 

여자가 가리키는 곳에 서자, 잠시 후 열차가 도착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오래 된 기관차 모양의 열차였다. 열차라 정류장에 서자, 안에서 사람들이 나와 티켓과 무언가를 번갈아가며 확인하고 사람들을 태웠다.

 

"보자... 심혜진씨, 자살자시고... 4호차로 가세요. "

"......? "

"자, 자. 뒷사람 타야 하니까 빨리빨리 이동합시다. "

"아, 네. "

 

그녀는 기차에 올라타 4호차로 간 다음 빈 좌석에 앉았다. 4호차로 가기까지 지나쳤던 사람들도 그녀처럼 티켓을 차고 있었지만, 전부 흰 티켓이었다. 4호차로 가는 길에나 간간이, 그녀처럼 하얀색 반, 검정색 반인 티켓을 찬 사람들이 보였다.

 

"4후차 탑승객이시군요. 4호차는 탑승객이 적은 편이라, 따로 좌석 지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한 곳에 앉아주세요. "

"아, 네. "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대체 무슨 일이 릴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이 손에 채워진 티켓, 망자들이 모이는 기차역... 설마, 말로만 듣던 사후세계는 실존하는 걸까?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한 차례 소동이 있었지만 승객들은 무사히 탑승했고, 곧 쉬이익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차가 움직였다.

 

"실례합니다, 합석해도 될까요? "

 

그녀의 옆에,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합석을 제의했다. 어차피 죽은 사람들끼리 교류할 필요가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적어도 가는 길에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통성명을 했다. 자신은 박태린이고, 보이스피싱에 속아 동생의 수술비로 쓰려고 마련했던 돈을 날려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서.

 

"보이스피싱이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대요? "

"글쎄요... 아마 쉽게 잡히지는 않을겁니다. "

"하긴, 그렇죠... 대포통장에 대포폰을 쓰니...... "

"그런데 혜진씨는 어쩌다 그런 선택을 하시게 된 건가요? "

"...... "

 

그녀는 꿈을 잃어버렸다. 인생도 잃어버렸다. 부모님은 그녀를 게임 도전과제 정도로 취급했다.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도, 꿈도 처음부터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어릴적부터 강요해 왔던 꿈이었고, 그녀는 그때문에 학대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수학여행도 부모님이 바득바득 우겨서 가지 못 하고 집에 틀어박혀 공부를 해야 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집에서도 밤새서 공부를 해야 했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잠드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수능시험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자,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를 억지로 기숙학원에 넣으려고 했다. 그 때,  그녀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반발하고 집을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부모님에게 순응해야 했던 현실이 싫었다. 너를 믿는다는 말, 네가 잘 돼야 우리 집안이 산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지금은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야겠지, 그리고 똑같은 일을 또 당하게 될 거야.

 

결국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지만, 홀가분했다.

 

"어떻게 그런... "

"자, 자, 손님들.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만, 슬슬 식사 시간입니다. 곧 주문을 받으러 갈 테니, 메뉴를 정해주세요. "

 

그제서야 그녀는 좌석 옆에 놓여있던 메뉴판을 발견했다. 메뉴판을 보고 메뉴를 고른 두 사람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오자,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는 금방 준비되었고, 곧 따끈따끈한 식사가 나왔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식사인지도 모르겠다. 수능을 제대로 못 본 이후로는 제대로 된 밥조차 주지 않았던 탓인지, 밥을 한 숟갈 먹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튀겨주던 돈까스 맛이 났다. 마트에서 산 소스를 가득 뿌려서 그대로 포크에 찍어 먹으면, 참 맛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잠시 후, 쉬이익하고 김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멈춰 섰다. 바깥은 어딘가 이질적인 곳이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캄캄한 곳이었다. 기차가 도착한 곳에는 지하철 역처럼, 개찰구만 보였다.

 

"자, 자, 승객 여러분. 명계에 도착했습니다~ 어서 내려주세요. "

 

열차가 완전히 멈춰 서고, 사람들은 열차에서 내였다. 열차에서 그녀가 갓 내리자마자 열차는 떠나버렸고, 맞은편에서 붉은 머리의 여자가 열차를 타는 것이 보였다. 맞은편에 서 있던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나아가고, 그녀도 개찰구 쪽으로 나왔다. 개찰구에는 역시나 정장을 갖춰 입은 직원들이 서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티켓을 확인하겠습니다. "

"여기요. "

"4호차... 자살자시군요. 자살자는 저 쪽으로 가셔서 4번 출구로 나가주세요. "

 

직원의 안내대로 출구로 향하자, 열차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한곳에서 대기중이었고, 이내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그는 사람들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후, 박수를 짝짝 쳐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끔 했다.

 

"자, 자, 주목. 여기는 명계입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죽어서 여기에 온 거고요. 여기서 여러분들은 자신의 죄에 따라 벌을 받고 과거의 기억을 버린 다음 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 곳의 주민이 될 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뭐, 아무튼 설명은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은 지금 질문하세요, 앞으로 판결 받으러 들어가면 판결 끝날때까지 아무도 못 만나요. "

"이건 뭔가요? "

"명계행 열차 티켓입니다. 흰색은 죄가 없거나 경미란 쪽, 검은색은 죄가 무거운 쪽. 보통은 흰색 아니면 검은색이지만 여러분의 티켓은 특별해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죽였으니까요. "

"......! "

"하지만 안심하세요. 예전같았으면 무조건 자살자에게 벌을 내렸겠지만, 명계도 사정이 꽤 좋아져서 말이죠... 일단 사정청취를 한 다음에 벌을 내릴지, 아닐지를 결정할겁니다. "

"그 판결이라는 건 얼마나 걸립니까? "

"짧으면 수 시간, 길게는 반나절까지도 걸립니다. 자, 자. 이럴 시간이 없군요... 이 앞으로 나가시면 사정 청취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도 여러분처럼 스스로 삶을 등지고 온 자들이니까 편안히 털어놓아주시면 됩니다. 거짓말은 해봤자 금방 들통나니까 하지 마시고요. "

 

입구로 들어가자, 방이 보였다. 어릴 적 다녔던 피아노 학원이 생각나는 문이었다. 유리창 같은 것도 달려는 있었지만, 불투명한 유리라 안이 보이지는 않았다. 유리창 밑에는 문패가 달려 있었고, 문패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복도를 쭉 걸어가던 혜진은, 자신의 이름이 적인 문패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책상과 다과가 있었고, 의자가 두 개 놓여있었다. 맞은 편에 있는 의자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기처에서 봤던 사람들과는 달리,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하얗고 커다란 숄을 걸치고 하얀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어서와요. 심혜미씨, 맞죠? "

"아, 네... "

"편히 앉아요. "

 

그녀가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있던 여성은 찻잔을 내밀었다.

 

"밖에서 들었겠지만, 이 곳은 혜미씨가 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에 대해 사정청취를 하는 곳이예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을 죽인것이기 때문에 중죄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요... 남편때문에요. "

"저, 저는...... "

 

그녀는 죽기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할 때도, 부모님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여러 번 털어놓았었던 마음의 고통을 전부 이야기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지만,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는 달랐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말을 끊지도 않았다.

 

"심한 일을 당하셨군요. 그런 부모들도 종종 있지요... 12월이 되면, 그런 부모님들때문에 이른 나이에 명계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슬픈 현실이죠... 그런 부모들은 말이죠, 자신이 이루지 못 한 것을 자기 자식을 통해 이루려고 한답니다. 집안의 기둥이라느니, 너만 잘 되면 된다느니... 전부 인사치레일 뿐이죠. "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제 얘기를 귀담아들어 준 게 처음이었어요...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척들, 상담실에서조차 들어주지 않았는데... "

"그렇지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아요.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법을 모르고 역효과를 낳기도 하지요. "

 

어쩐지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명계에 오면서부터, 쭉 편안했다. 어릴 적에 느꼈던 따뜻함을, 비로소 다시 느낀 것 같았다. 열차에서 먹었던 밥도, 지금 내 말을 들어주는 이 사람도. 어릴 때는 다정했던 부모님이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린걸까.

 

사정 청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몇 사람만이 보였다. 입구에서 기다리전 남자는 곧 판결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말을 건넸다.

 

"보아하니 아직 젊은 아가씨같은데,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신 건가요? "

"저는 제 꿈을 잃어버렸어요. 부모님이 강요하는 대로 살아왔거든요. 항상 공부, 공부, 공부... 학교에서도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도 거의 감금되다시피 했어요. 내가 힘들건, 아프건 부모님들은 억지로 공부를 시켰어요. 수능을 망할 것 같으니까 억지로 기숙학원으로 보내려고도 했고... 너무 괴로웠어요. "

"저런... "

"열차에서 먹었던 돈까스도, 안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도... 어릴적이 생각났어요. 어릴 때 엄마가 해 줬던 돈까스... 어릴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줬던 엄마...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대체 언제부터 뒤틀려버린걸까요? "

"이 곳에 있다 보면, 참 희한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해요. 부모란, 낳아준다고 전부 부모인 게 아닌데... 그 본분을 다 해야 부모인건데, 그것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아가씨의 부모님도 언젠간 벌을 받을겁니다. 아가씨를 고통스럽게 한 벌을요. "

"그럴까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부모님이 뉘우칠까요...? "

"그럼요. 지금 두분 다 울고 있습니다. 아가씨를 그렇게 만든 것을 후회하고 있어요. "

 

나는 이미 죽어서 명계로 넘어왔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람. 헛웃음이 나왔다. 살아있을 때나 좀 잘 해주지, 살아있을 때는 거의 학대에 가깝게 공부를 시켰으면서 이제 와서?

 

"뭐, 후회한들 늦었지요. 죽은 사람이 그런다고 살아돌아오나요? "

"애초에 살아돌아간다고 해도, 그 고통이 또 다시 반복될거예요. ...저런 부모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아요. "

 

판결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사정 청취가 빨리 끝나는대로 결과도 금방금방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다행히도 생전에 겪었던 고통이 정상참작되어서, 중형은 면했다. 명계에서 계속 지낼 것인지, 아니면 환생할지 여부만 결정하면 된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당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지금 못 누린 많은 것들을 더 누려보고 싶으시다면 환생을 하시면 되는 거고, 아니면 이 곳에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좋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환생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환생하는 영혼은 저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

 

혜진은 환생자들의 대기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좋은 부모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바람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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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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