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7. Clearing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 2,208

미기야와 라우드는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그 곳은 평범한 아파트였지만,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였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이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언니가 여동생을 죽였다고 한다.

 

"아무리 둘이 다툰다지만 어떻게 언니가 여동생을 죽일 수가 있어요? "

"...오빠를 사랑한다고 여동생이 부모를 죽인 일도 있었으니... 현실이 소설보다 더한 경우도 있죠. "

"그렇긴 하지만... "

"일단 라우드 씨, 영상부터 확인해주세요. "

 

라우드는 현장 근처에 있는 쓰레기봉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쓰레기봉투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쓰레기봉투였고 얼핏 봐서는 쓰레기통을 비우려다 만 것 같았다. 하지만 영상을 확인한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언니가 쓰레기봉투를 가져 온 목적은 여동생을 죽인 다음 그 봉투에 넣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대체 자매가 얼마나 사이가 안 좋았으면... "

"옆집에 사는 사람들 말로는 이 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고 하는데, 다툰 내용이 집 청소에 관한 것이었대요. 언니는 깔끔하다 못해 결벽증이 있었고, 그래서 동생에게 항상 집이 더럽다고 청소 좀 하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던 모양이예요. "

"청소...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

"왜 그러세요? "

"이 쓰레기봉투, 언니가 여동생을 죽인 다음 담으려고 샀던 거예요. 일반적으로 가정용 쓰레기통은 100L나 50L같이 큰 봉투는 안 쓰고, 기껏해야 20L인데... 이 봉투, 업소용이네요. "

 

하얗고 큰 쓰레기봉투는 50L짜리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가정집에서 쓸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사건 현자에서 발견되었고, 언니에게 쓰레기봉투에 대해 물어본 결과 여동생을 죽인 다음 담아서 버리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여동생을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소리를 들은 옆집에서 경찰에 신고를 해서 그 전에 잡히게 된 것이었다.

 

"흠... 형사님, 혹시 가족들의 연락처는 아시나요? "

"네. 안 그래도 피해자의 부모님께서 지금 현장에 와 계십니다. "

"으음... 그럼 제가 한 번 만나봐도 괜찮을까요? "

"네, 괜찮습니다. 마침 저희도 물어볼 게 몇 가지 있으니 같이 가시죠. "

"라우드 씨, 현장을 좀 더 둘러봐주세요. 저는 피해자의 부모님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

"네. "

 

라우드는 현장에 남아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더 찾아보기로 했고, 미기야는 피해자의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현장을 나서자, 근처에 도착한 중년의 부부가 보였다. 두 사람은 형사와 함꼐 다가오는 미기야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일로 뵙게 되서 유감입니다... 한정훈 형사입니다. 이 분은 괴담수사대의 유키나미 미기야씨고요.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갑작스럽겠지만 몇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두 사람이 자주 다퉜는데, 그 이유가 집안 청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혹시 댁에서 두 분과 함께 지낼 때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나요? "

"네. 현서는 병적으로 청결에 집착하는 아이였어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샤워를 했고, 자기 방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오지 못 하게 했어요. 현진이가 방에 들어왔다가 머리카락 한 올을 흘리고 간 것 때문에 크게 화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정신과에 데려가려고 했지만 현서가 크게 화내는 바람에...... "

"그 때 현서를 데려갔어야 했어요... 억지로라도 데려갔어야 했습니다... "

"...... "

 

현장에 도착한 정훈이 보기에도 집은 상당히 깔끔했다. 이 정도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모델하우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는데, 그게 언니가 병적으로 청결에 집착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때문에 자매는 매일 다퉜을 것이고, 급기야 살인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정신과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나아졌을 지도 모르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현서씨가 그런 분인 걸 아셨을텐데도 현진씨가 같이 지내게 된 이유가 뭔가요? "

"현진이가 대학을 이 근처로 진학했는데, 아무래도 자취방을 알아보자니 비싸고 통학하기에는 거리가 꽤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현서와 함께 지내기로 했던 거예요. "

"그렇군요... 학교가 많이 멀었나요? "

"S 대학교예요. 집에서 통학하면 왕복으로 네 시간이라 현진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

 

미기야가 자매의 부모와 얘기를 나눌 동안, 라우드는 자매의 방을 조사하고 있었다. 여동생의 방으로 들어서자,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장에는 전공서적과 노트들이 한가득 꽂혀 있었고, 책상 위에도 전공서적이 있었다. 아마도 시험기간이었던 모양이다. 라우드가 책상에 손을 얹고 눈을 감자, 두 사람이 다투는 영상이 떠올랐다. 현진이 현서의 방에 들어갔을 때 옷에서 작은 보풀 하나가 떨어진 것 때문에 크게 싸우게 된 것이었다.

 

"이 정도인데 어째서 한 번도 의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거지... "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있었지만, 암호로 잠겨있어서 로그인은 하지 못 했다. 대신 그는 책장에 꽂혀 있던 작은 노트를 발견했다. 평범한 노트처럼 보였지만, 내용을 보니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에는 오늘은 무엇 때문에 다퉜는지, 그리고 그 날 하루의 일과 등이 적혀 있었다.

 

라우드가 일기장을 천천히 읽고 있을 무렵,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뒤에 나타난 것은 뭔가 재미있는 것을 찾은 듯한 표정을 짓는 아나키나시스였다. 그녀는 이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자매가 어떻게 되었는지 역시.

 

"여기서, 언니가 여동생을 죽였죠? 두 사람은 집의 청결때문에 다투고 있었고... "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

"언니를 만나고 왔거든요. 여동생은 못 만났지만... "

"...여동생이라면 이미 명계로 내려갔을 겁니다. "

"아아, 그렇겠네요. 그럼 명계로 가서 만나야 하나... "

 

지금 장난하자는건가, 라우드는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상대는 싸운다고 이길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화를 겨우 참았다.

 

"전 지금 그쪽이랑 농담 할 시간이 없습니다. "

"알아요. 그런데 그 언니 말이예요. 자기가 무슨 잘못인 지 모르는 것 같아요. 완전히 뒤틀려 버렸으니까요? "

"진작 의학적인 조치를 취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

"그 조치, 언니 쪽에서 거절했어요. 억지로라도 끌고 간다 한들, 뭔가 달라졌을까요? "

"...그래서, 본론이 뭡니까? "

"그 여자애, 판데모니움으로 끌고 갈 거라서요. 죄질... 죄질도 물론 악하지만, 정신이 뒤틀려버려서 인간들은 물론이고 명계에서도 판결을 제대로 내리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

"판데모니움...? "

"우리같은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공간이예요. 아마 그 아이, 그토록 바라던 완전무결하고 깨끗한 공간을 얻게 될 거예요. 그럼, 이만. "

 

아나키나시스가 사라지고,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는지 라우드는 파이로에게 연락했다. 그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나키나시스가 현서를 판데모니움으로 끌고 갈 거리는 얘기를 했다. 아나키나시스는 뭔가 알고 있는 듯, 전에 있었던 오빠를 사랑한 나머지 부모를 죽인 여동생도 그 곳으로 끌려갔다며, 판데모니움으로 끌려가기로 예정된 대상에게는 관여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를 했다. 탐문 수사를 마친 미기야에게 얘기를 했을 때, 미기야 역시 판데모니움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 이상 관여할 부분은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날, 집에 돌아가던 라우드는 아나키나시스와 다시 마주쳤다.

 

"또 만났네요? "

"그러네요... 마침 궁금한 게 있었어요. "

"궁금한 거? 뭔데요? "

"판데모니움은 어떤 공간이길래... 파이로도 오너도 전부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까? "

"그 곳은 마물들의 본거지예요.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죠. 명계, 무간지옥, 어비스, 그리고 아포칼립스에서도 거부당한 인간이 가게 되는 생의 종착지라고 할까요... 그 곳에서 인간들은 우리 속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거예요. "

"...... "

"물론, 죽고 나서 그 인간의 혼은 마물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겠죠. "

 

라우드는 문득 궁금해졌다. 마물들의 본거지라면, 대체 그 곳은 어떤 곳일까? 그 곳에 가는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곳으로 한번 가볼 수 있을까요? "

"판데모니움에요? 그 곳은 인간들이 가기에 별로 재미있는 곳이 아닐텐데요? "

"어차피 상식이 우리와 다른 존재들이니 그렇겠죠. 다만... 대체 어째서 판데모니움으로 끌려가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건지, 그게 궁금할 뿐이예요. "

"뭐... 본인이 원한다면. "

 

아나키나시스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고 현서를 찾아갔다. 현서는 유치장에 갇혀 있었지만, 어떤 공간이든 통과할 수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나키나시스는 라우드를 기다리게 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 현서를 데리고 나왔다. 현서를 데리고 나오자마자 아나키나시스는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고, 셋은 판데모니움으로 이동했다.

 

그 곳은 인간이 지내는 곳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사람과 형태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들이 여럿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전부 마물인 모양이었다. 그들을 지나쳐 아나키나시스는 현서와 라우드를 이클립스에게 데려갔다.

 

"어라, 너는... 괴담수사대에 있는 인간이잖아? 이 녀석도 뭐 잘못했어? "

"여기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와 보고 싶었다네요. "

"희한한 인간이로군... 옆에 얘는 뭐야? "

"이 아이는 가장 완견무결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갈 아이예요. 정신이 뒤틀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

"가장 완견무결하고 깨끗한 공간이라... 그래, 하나 있긴 하지. 그 곳으로 보내도록 해. "

 

아나키나시스는 현서를 데리고 가장 완전무결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갔고, 라우드는 이클립스의 앞에 홀로 남겨졌다.

 

"넌 뭐가 궁금해서 여기까지 네 발로 온 거냐? "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오게 된 건지... 경위는 아시나요? "

"언니가 여동생을 죽였다... 그리고 가해자는 매우 심각한 결벽증 환자였지. 다른 사람들의 피까지 말려 죽을 정도로 말이야... "

"맞아요. 그래서 이 곳으로 끌려 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파이로나 오너에게 했더니, 이 이상 우리가 관여해서 좋을 게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

"음? 아아... 그렇지. 애초에 마물들은 인간들과 상식선 자체가 달라. 너희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우리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너희들이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우리들은 당연히 여겨. 그리고 애초에 판데모니움으로 끌려온다는 건 죄질이 정말 악하거나 정신이 심각하게 뒤틀려서 지하에서도 안 받아주는 것들을, 마물들이 심심풀이로 구경한다고 끌고 오는 거거든. "

"...... "

"여기로 끌려와서 여기서 죽으면, 그 혼의 소유권은 온전히 판데모니움으로 넘어가. 에너지원이 되는거거든. 즉 여기로 끌려오는 시점에서 그 인간의 육신과 혼의 소유권은 인간, 그리고 명계의 관할이 아닌 마물의 관할이 되버려. 그리고 마물들은 자기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들을 남이 건드리는 걸 굉장히 싫어하지. "

"...... "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튼 여기로 끌려오게 될 인간들이라면 너희들은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아. "

"그럼... 현서씨가 끌려간 완전무결하고 꺠끗한 공간이란 어떤 곳인가요? "

"저 녀석, 결벽증 말기던데... 동생을 죽이기 전에 다퉜던 게, 방에 들어왔을 때 옷에서 떨어진 작은 보풀때문이었지? "

"...네. "

"뭐,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단 잠깐 겪어보는 쪽이 낫겠지.. 괜찮아, 어디까지나 체험이니까. "

 

이클립스의 말이 끝나자 라우드는 온통 하얀 공간으로 이동했다.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고,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은 물론이고 집기류 하나 없는 공간이었다. 벽과 바닥이 어디인지, 쳔장은 어느 높이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라우드가 그 안에서 소리를 내봤지만 소리조차 파묻혀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공간은 대체... '

 

공간을 더 둘러보던 그는 이클립스의 앞으로 돌아왔다.

 

"둘러보니 어때? "

"아무것도 없네요. 천장은 어느 높이이고 바닥은 어디인지, 어디까지 이어진 공간인지... 소리가 바깥으로 들리지도 않을 것 같고, 아무 것도 없어요. 싱크대나 화장실같은 것도... "

"그야 음식은 밖에서 줄 거고, 씻겨주기도 하니까. "

"그런데도 이게 형벌이 돼요? "

"그 공간은 외부로 소리조차 나가지 않는 이차원의 공간이야. 음식도 제공해주긴 하지만 부스러기가 떨어지거나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 한정적인 메뉴고. 그리고 너는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생활하다 보면 자기 자신때문에 공간이 더러워지는 경우도 있어.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분비물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피부 각질이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와 떨어지기도 하지.  "

"그럼 사람이 들어가면... "

"네가 잠깐 들어갔을 땐 몰랐겠지만, 그 안은 원래 공기만으로 채워진 공간은 아니야. 공간을 완전무결하고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공간 내부로 들어오는 다른 것들을 서서히 분해시켜버리는 물질들로 채워져 있지. 그 안에 들어가는 인간들을 서서히 갉아가며 분해하는 거야. 빠지는 머리카락,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들, 각질까지 전부 다. 그러다가 그 공간에서 숨이 끊어지면 몸이 완전히 분해되는거지. "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산 채로 분해되어 가는 건가요? "

"그런 셈이지. 물론 분해되어 가는 사람은 분해되는 줄도 모르는 채로 분해되는거고.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부스러기가 떨어지거나 더러워지면 안되기때문에 메뉴는 흰죽으로 고정되어 있어. "

 

아무것도 없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흰죽만을 먹으면서 산 채로 분해되어 간다. 그 공간에서 그렇게 지내면서 느낄 것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보면 최악의 형벌이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온 라우드는 사무실로 돌아가 현서가 이클립스로 끌려갔음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도 함께.

 

"완전무결하고 하얀 공간에서 죽만 먹으면서 분해된다라... 그것도 형벌이라면 형벌이지. "

"그 자체로 형벌이 되는건가요? "

"생각해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안 닿고, 안에서 무슨 소리를 질러도 닿질 않아. 그리고 아무 것도 없고 다른 사람도 없이 온전히 혼자있는거야. 완전무결하고 하얀 아포칼립스에 불과한 공간이야. 시계가 없으니 여기는 몇 시인지도 모르고, 날짜 감각도 모르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지. 넌 그런 공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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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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