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경비회사 습작

노숙까마귀 0 1,666

  나에게는 직장 후배가 하나 있었다. 상하이에서 온 애송이였는데 함께 일한지 3개월이 되었었다. 일하며 잡담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녀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남동생이 있다. 어렸을 때 개에게 크게 물려 개를 싫어한다. 넓은 모래 사막을 직접 보는게 꿈이다. 견문을 넓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이 일에 자원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맙소사. 이 일이 견문을 넓힐 좋은 기회라니. 인도로 배낭여행 가는 것도 이것보다 더 안전하고 도움될텐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녀가 반 년 내에 죽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일에 그럭저럭 잘 적응했다. 조금 나사 빠진 여자긴 해도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자신이 뭘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지인들과도 마찰 없이 잘 지냈다. 상식 밖의 일을 경험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잘 적응했다. 죽을 뻔한 적이 한 번 있었지만 무사히 살아남았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도 잘 버텨냈다. 그녀는 조금씩 베테랑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지난 달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통조림 수송 행렬을 호위하고 있었다. 중간에 한 마차의 바퀴가 부서져 고쳐야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며 잡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이 음식점을 한다고 말했다. 훙사우러우가 끝내주니 나중에 같이 가면 반값에 대접해주겠다나. 나는 줄거면 공짜로 주지 반값은 뭐냐고 받아쳤다. 우리 둘은 뭐가 재밌는지 키득거렸다.

 

  이때 한 마차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웃음을 멈췄다. 수십가지 생각이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몰래 숨어있었나? 왜? 어떻게 마차에 탄거지? 인부들이 숨겨준건가? 또다른 공모자가 있을까? 마차 바퀴가 고장난 것도 관련이 있나? 산적이랑 손을 잡은건가?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한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안전장치를 풀고 소리가 난 마차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총을 겨눈 채 왼손으로 마차 입구에 늘어뜨려진 천을 걷어냈다. 마차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당거리는 총소리가 행렬 전체에 울렸다.

 

  마차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8살 쯤 되어보이는 작고 추레한 남자 아이였다. 아이는 조용히 배를 움켜쥔 채 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몰려든 사람들 중 한 남자가 글로 표현할 수는 없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 남자는 마차 중 하나를 모는 마부였다. 그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아이가 아빠가 일하는걸 보고 싶다고 몰래 따라나온 모양이었다. 마부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다. 수송대 중 아무도 아이를 치료할 수 없었다. 트럭이 있었다면 제 시간에 의사에게 갈 수 있었겠지만 비용 문제로 수송대에는 트럭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동안 그녀는 굳은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이론상으로 그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은 아이가 멋대로 작전 구역에 들어와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다. 비록 몇몇이 그녀를 "CBK"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별명을 듣는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조금 달라졌다. 행동이 조금 느려졌다. 앞장서지 않으려 했다. 가끔씩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냈다. 무엇보다도 업무 중에는 잡담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계속 말을 섞게 되었다. 그녀는 거의 매 주말 술을 마시자고 나를 불러냈다. 나는 밤 늦게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 일은 오후 3~4시 쯤에 인사불성이 된 그녀를 숙소 안에 던져넣고 나서야 끝났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녀를 더 잘 알게되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이번 분기까지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올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났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더이상 생고생 안해도 되겠네"라는 생각 역시 동시에 떠올랐다. 그녀는 상하이로 돌아가 부모님의 가게를 도울거라고 했다. "휴가 때 한 번 와보시죠. 공짜로 드릴게요."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날 밤은 일찍 끝났다. 우리는 오전 1시에 헤어졌다. 그녀는 아침에 보자며 바를 나갔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게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후 그녀는 또다시 달라졌다.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걸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주말 밤에 같이 술 마시자며 부르는 일도 사라졌다. 하지만 업무 중 잡담을 하는 일은 여전히 없었다. 우리는 가끔 만났을 때 하는 안부 인사 외에는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어젯밤이었다. 그녀는 고급 위스키 한 병을 든 채 내 방 문을 두들겼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그녀는 비틀비틀 걸어와 탁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녀는 수송대 호위 임무를 맡았다. 이때 수송대를 모는 마부들 중에는 저번 사건의 그 마부도 있었다. 그녀는 그 마부에게 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아들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오해였든 아니든 그녀는 그의 아들을 죽였다. 심지어 그녀는 마부의 손에 죽을 각오까지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본 마부가 한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아들 일은 죄송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다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꿇어올랐다. 분노였다. 아버지씩이나 되는 인간이, 아들이 개죽음을 당했는데, 아들을 죽인 년에게 사과를 하다니. 그녀는 마부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곳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흐느꼈다. 나는 이런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양주를 한 잔 따라 얼음을 띄운채 건내며 말했다. 여기가 이상한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는 잠시 동안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보더니 잔을 받아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부의 아이를 죽인 날부터 그녀는 편히 자지 못했다. 진짜인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유령은 그녀를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방과 같은 곳에 진입할 때 그 사건이 다시 일어날까봐 두려웠다. 길거리에서 아이를 볼 때마다 마부의 아이가 겹쳐 보인다. 꿈을 꿀 때마다 아이가 배에서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안겨온다. 술에 몸을 완전히 절여야만 잠에 들 수 있었다. 요즘은 암시장에서 수면제를 사서 먹고있다. 모두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해야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하이로 돌아가면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라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녀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의식적으로나마 느낀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나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 앞에는 대장이 인상을 찌푸린 채 서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A에게 무슨 이상한 것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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