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는 혹시나 싶어 양피지를 뜯어보았다. 자신이 밀봉해놨던 그대로였다. 편지가 도달하지도 못했다는 것은...
"제가 왔을 땐 이미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제네시스는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전서구도 죽을 정도로 최전방이 괴물의 소굴이 됐는데 아이는 어떻게 무사하게 온 거지? 비밀스럽게 아이를 호위 겸 감시 임무를 맡았던 수색병도 서둘러 오느라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다친 구석은 없었다. 무엇보다, 괴물은 그가 근처에만 있어도 반응하는데, 그 괴물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이는 제네시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그가 바로 이어서 설명했다.
"원래라면 위험했겠지만, 도와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와줘?"
"예. 좀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제네시스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을 일행을 보호하면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해봤으나,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결국 설명을 요구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예. 젊어 보였는데 하는 말은 꼭 어르신 같았습니다. 그 말린 머리도 그렇고..."
그제서야 제네시스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거기에? 제네시스는 아이를 빤히 보았다.
"그렇게 강한 분은 처음 봤습니다. 저랑 그 분을 보호해 주시면서도 한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들었나?"
"아뇨. 그건 여쭤보지 않아서..."
어차피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미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혼자서 은둔하고 있는 사람이 왜 그곳까지 왔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위험한 사람도 아니었으므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고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최전방이 이미 괴물들로 점령당한 상태라면 가봤자 개죽음만 당하는 꼴이 될 터였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시선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사람을 살리는 게 훨씬 중요했다. 무엇보다 다시 전투에 나서려면 괴물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네시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부관님은..."
"부관?"
제네시스는 부관이란 말에 표정을 찡그렸다. 철저하게 자신을 속이고 있다가 뒤통수를 친 인간에게 존칭을 쓰는 것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부관님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뭐라?"
"그자는 다른 분들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지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모습을 바꿨는지 상상은 안 갔지만, 가장 믿음직한 사람으로 나타나서 불신을 심어줄 줄이야. 제네시스는 다시 물었다.
"죽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얼굴 가죽을 뜯어보고 알았습니다. 그 전에 목잘린 시체가 발견됐다고 들어서 혹시나 했습니다만..."
제네시스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이는 말없이 장군을 보다 막사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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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아?"
메이다나가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야, 이것저것 일들을 많이 겪었잖아."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이럴 때의 그는 마치 인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정표현이 없었다. 이윽고,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역시, 그렇구나."
아이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저, 기억이 되돌아오기 전에 죽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