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류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제네시스는 느낄 수 있었다. 괴물들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목의 울림이 잦아졌고, 더욱 호전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동시에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처단해야 할 제 1순위로 생각하고 있었다. 왜?
생각을 더 뻗어갈 수가 없었다.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발치로 굴러오는 것이 있었다. 약병이었다.
아이는 검을 겨눴다. 그리곤 짧게 말했다.
"부탁합니다. 메이다나 씨."
"뭐, 뭐를?"
순식간에 간격이 좁아졌다고 생각했다. 피가 튀었다. 다음 순간, 부관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내, 내 팔!"
메이다나의 목을 옥죄던 팔이 끊어졌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부관은 팔을 감싸느라 인질을 더 이상 잡고 있지 못했다. 메이다나는 곧장 제네시스에게로 달려갔다. 제네시스는 기절한 상태였다.
"아버지! 아빠! 정신 차려요!"
재빨리 약병의 액체를 상처에 붓자, 상처가 사그라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메이다나는 한숨을 돌렸다. 그 당시에 죽었던 병사들은,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었는데...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죽었을 지도 몰랐다. 메이다나는 고이는 눈물을 훔쳤다. 어떤 적이라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저런 자에게 잡혀서 아무 것도 못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병사들은 다시 나타난 아이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 분명 가버렸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길..."
다들 머리를 모아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메이다나가 소리쳤다.
"다들 일어서요! 전부 저애한테 맡길 셈이에요?"
"그, 그럴 순 없지!"
아이와 같이 싸웠던 병사들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괴물들은 전부 아이에게만 시선을 쏟고 있었다. 이 때야말로 기회였다. 혼자서는 당해낼 수 없지만, 여럿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메이다나도 검을 뽑았다. 지금까지 배웠던 검술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젠 자신이 실력을 보일 차례였다.
"뒤통수에 눈도 없는 놈들, 각오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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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는 눈을 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통증이 오히려 살아있다는 실감을 주었다. 그가 눈을 조금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무병들과 함께 있는 아이와, 너무 울어서 눈이 부어버린 메이다나가 눈에 들어왔다.
메이다나는 장군이 깨자마자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말에는 원망과 동시에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의무병들은 혀를 차면서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제네시스는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못말리겠군. 대체 언제부터 이런 건가?"
"사흘 전부터입니다."
짤막한 대답에 제네시스가 돌아보았다. 아이는 처음 봤을 때의 그대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럼 내가 사흘 동안이나 잔 건가?"
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네시스가 머리를 긁적이는데 의무병이 와서 말했다.
"정말이지 큰일날 뻔 하셨습니다. 하마터면 다른 병사들처럼 돌아가시는 줄..."
"그럼 내가 죽길 바랬나?"
농담삼아 한 말에 의무병들은 당황했고, 메이다나는 그 말에 제네시스에게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힘을 실은 주먹은 아니었지만 혹여나 피해가 갈까 싶어 사람들이 붙잡았다.
"지, 진정하세요."
"아빠 진짜 싫어! 이 바보! 멍청이!"
결국 메이다나는 의무소 밖으로 끌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제네시스는 물끄러미 안을 둘러보다가, 아이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네가 예정일보다 일찍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고맙다."
"오히려 늦은 셈입니다."
제네시스는 웃으려다 말고 그 말에 아이를 보았다. 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단순히 겸양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무슨 의미지?"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만,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제네시스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제네시스는 아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정말 아이가 괴물을 끌어들이는지 알고 싶다고. 아이때문에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아이가 사라지면 괴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오해가 풀리는 것이니 다시 합류한다 할 지라도 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네시스는 아이를 최전방으로 보내면서 몰래 수색대원 중 한 사람을 딸려 보냈다. 주변을 수색하는 것이 임무니만큼 며칠 사라져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어디까지나 그가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이라는 가정 하에서였지만.
"그럴 리가, 편지는 제대로 보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품을 뒤적이더니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자신이 부친 것이었다. 제네시스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은, 이미 괴물들 소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