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하는 아내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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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은 감기와도 같다. 미열과 기침, 두통. 발병 후 일주일즈음 지나면 두통은 심해지고 피부에 고름이 돋기 시작한다. 또한 설사를 계속 하기 때문에 금새 탈수에 걸리고 만다. 이주일째, 고열은 더더욱 심해지고 급기야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보통 그 시점으로부터 삼일 안에, 환자는 사망한다.

작은 산촌에서, 그 역병의 시발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었다. 모두들 추측에 추측을 거듭할 뿐이었다. 아낙네들 사이에서는, 그 원인이 왠일로 저녁을 마다하고 케르트로 돌아갔던 우체부였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리디아에게 밥 한끼를 얻어먹고는 사라져버린 한 떠돌이 때문이라고도 했다. 누군가, 꿈과 꿈을 타고 다니는 검은 고양이가 머릿속에 새끼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다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악마의 소행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면, 마녀의 짓이라던가.

그렇게 사람이 죽기 시작하고, 서로 기침이 나오는 것을 조급히 감추고, 불태운 집의 잔해가 바닥에 깔리고, 묘지가 아닌 구덩이에 시체가 파묻혀지기 시작한지 몆주가 지났을까, 남편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믿고싶지 않았다. 단순한 감기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빌었다. 하지만 일주일뒤, 그의 손등에서 고름을 발견했을때 현실을 직시할 수 밖에 없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그이의 아내인 나 또한 피하기 시작했다. 작은 마을이건만 사람을 보기 점점 힘들어졌다. 상점은 다가가는 순간 문을 닫곤 했다. 순식간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었으니. 그의 병이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모든 일을 해야했다. 그것이 아내로서의 의무였다. 그이 또한, 내가 병에 걸렸을때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굳게 믿고, 약을 찾았다. 하지만 병에 좋다는 약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최선을 다해 약초를 구하고 달이고 쪄서 그에게 먹이고 바르고 재웠다. 그렇게 일주일 쯤 지났을까, 그는 환각을 보기 시작했다.

마녀의 집으로 가야할 차례가 왔다.

바로 그 날, 황혼이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조용히 마을을 나섰다. 붉게 물든 노을 덕에 낙엽으로 가득 찬 가을 숲은 메마른 갈색으로 싸늘하게 식어 침묵하고 있었다. 가을,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계절.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마다 긴 로브자락에 두텁게 쌓인 낙엽이 쓸리고 그 밑의 나뭇가지가 부러져 그 공허한 소리를 숲 속에 퍼트렸다. 행여 누가 볼새라, 그 소리 하나하나에 가음을 졸였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푸르게 빛나는 운명의 별이 한없이 청명한 밤 직전의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때, 멀리서 마녀의 집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순전한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몇달 전 지나왔던 길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그 불빛에 가슴 한켠이 차분해졌다.

늙고 거대한 고목이 마녀의 집을 둘러쌓은채 자란 것인지, 아니면 고목의 뿌리 사이에 집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마녀의 집은, 떠날때는 미쳐 눈여겨보지 못한 기괴함과 괴상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뒤틀린 창문 사이에서 불빛이 일렁이며 새어나오고 있었고, 굳게 닫힌 문짝은 어떻게 그 사이에 집어넣었는지 육중해 보이면서도 균등하지 않은 다각현 형태를 띄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하며 들어가야할까,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렇게 멀리서 머뭇거리고 있을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집 안에서 나왔다.

루치아였다.

그녀는 마녀와 문가에서 대화를 잠시 나누더니, 품속에 무언가를 안은 모습으로 다시 마을로 향했다. 후드를 눌러썼지만, 그녀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서서 좌우를 둘러보고는 발걸음을 재촉해나갔다. 재빨리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부스럭, 부스럭. 낙엽을 밟는 그 고요한 소음이 점점 멀어져갔고, 이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밤을 채웠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남편이 어제 감기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었었다. 십중팔구, 나와 같은 목적으로 마녀를 찾아 온 것이리라.

약. 약을 위해.

자신감이 생겨났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동지가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문을 연건 마녀가 아니었다. 여섯, 일곱살쯤 되어보이는 작은 소녀였다. 마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데려온 아이인 것일까. 마녀가 하는 일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소녀도 약의 재료로 쓰려는 것인가? 아니면 나처럼 주워온 것일까? 머리가 아파왔다. 마녀의 일과 더 이상 엮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더 이상 그녀와 엮였다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약만 가지고 빨리 떠나자.

기구한 운명의 소녀는 열린 문 틈 사이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날 올려다 보았다. 그 순진한 눈빛을 보아하니, 소녀는 마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안타까웠다. 차마 그 눈빛을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을 들어 올리자 소녀의 등 뒤에 서있던 마녀가 입에 파이프를 물고서 나를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달만이네."

그 역겨운 말과 함께, 입에서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 말대로였다. 네달만이었다. 그 시간동안, 그녀는 변한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이런 소녀를 끌여들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을 직감했다. 역겨웠다. 마녀가 역겨웠고, 그런 마녀에게 도움을 구하러 온 자신도 역겨웠다.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의연해야한다. 그런 모습을 그녀에게 드러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사랑하는 그이를 위한 것이므로.

"들어와. 기다렸다고. 얘, 길다야, 거기 서있지 말고 엽차 좀 내오거라."

마녀는 손에 들고있던 무언가를 내려놓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길다라는 이름의 소녀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마녀가 들어간 방과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곧 문 앞에 혼자 남겨졌다. 뒤를 보았다. 숲이 있었다. 침묵의 왕국. 마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문 옆에는 육중해 보이는 나무 몽둥이가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그 몽둥이를 지나쳐 들아간 내부는, 생각 외로 아늑했다. 지난번 이 곳에서 깨어났을때에는 마녀에게 집중하느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마녀가 들어갔던 방으로 따라 들어가자, 맨 처음 깨어났던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섰다. 침대 옆의 조그마한 탁자는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옆의 의자에 앉은 마녀가 손짓으로 침대에 걸터 앉길 권했다.

"다 같이 앉아 차를 마실만한 응접실이 마땅히 없어서 말이지. 미안해."

대답하지 않았다. 어짜피 길게 있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으니까. 주위를 둘러봤다. 눈에 띄게 변한거라고는 없었는데, 어딘가 크나큰 위화감이 동시에 존재했다. 마치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간것 같은 공허한 느낌. 향내음이구나. 뒤늦게 꺠달았다. 지금 이 곳에서 나는 냄새라고는 젖은 흙 냄새 뿐이다.

소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고급스러운 찻잔과 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면서 잘 손질되어 있는 골동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청아하고도 아름다운데다 손이 많이 갔을듯한 장식이 달려있는 자기를 보자, 순간적으로 집에 있는 식기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투박하고, 낡고, 깨지고 부러진 바로 그릇과 컵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을 살아도 손에 만질 수 조차 없는 수준의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마녀는 이런 찻잔에 차를 내어놓는 거지? 만약 자신에게 이런 자기가 있었다면, 자신에게 적대적인 손님 따위에게 내어놓을 찻잔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렸어? 한달? 일주일? 하루? 설마 한시간?"


"뭘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네."

"뭐긴 뭐야. 네 사랑하는 남편이 '실수'를 한 순간 말야."

남의 귀중한 사람을 건드리는 마녀의 얼굴은 웃음기로 가득해있었다. 기분나빴다.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을 구경하는 부모마냥, 그녀는 내 남편을 모욕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반박하고 싶었다. 언성을 높이고, 내 사랑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됬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이를 위한 약이 필요하니까.

"네가 알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 일 때문에 찾아온 것도 아냐."

"뭐,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돼. 아무리 여름이 지났다지만, 그 정도로 몸을 과도하게 감추고 있다면 그 의미는 상당히 적나라하니까."

"단지 숲이 추웠을 따름이야. 오해하지 말라고. 그것보다, 필요한게 있어."

마녀는 입고리를 치켜올리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무례했다. 담배 연기가 이 사이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일단 들어는 보지. 뭐야?"

"최근 마을에 돌고 있는 역병에 대해 알고 있어?"

"증상을 말해봐."

"맨 처음에는 감기 같은 증상이 나타나. 기침과 두통을 호소하고, 몸이 뜨거워져. 일주일쯤 지나면 피부에 고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설사를 하기 시작하지. 그렇게 일주일이 또 지나면 환각을 보고,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지."

"그래서?"

"남편이 오늘 환각을 보기 시작했어."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한모금 마셨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차는 매우 훌륭했다. 그 풍미가 온몸에 돌아 피로가 가시고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모금의 효과가 그 정도였다. 아마 찻잔에 못지않은 물건이리라.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내게 뭘 바라는거야. 남편분을 살릴 마법의 약이라도 드릴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는 그 모습을 보더니, 웃다가, 폭소하고는, 실소하다, 표정이 굳어 진지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물었다.

"지금 뭘 믿고 그런 부탁을 하는거지?"

차의 향을 맡았다. 차를 마셨다. 맛을 음미했다. 옅은 푸른 빛을 띈 차는 이국적인 바람을 머금고 자라난 것만 같았다.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독해져야했다. 생각했던 말을 생각하고, 꺼내야 했다. 그이를 위해서.

"당신은 마녀야. 모두가 그걸 알고 있지. 당신도 부정하진 않았고. 만약 내가 그걸 마을 밖에 알리면 어떻게 될까? 이단심문관이 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네 피부를 벗기고 인두로 지져 고문해 네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밝혀내겠지. 그리고..."

"잠깐. 그만해."

마녀가 말을 끊었다. 

"미안하지만, 너무 멍청한 이야기라 오래 들어주기 힘들어서."

"뭐?"



5.

그녀는 대답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깔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름 진지하게 준비한 카드였다.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패.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 현실을, 그녀는 부정하려 하는걸까?

"하나만 물어보자. 몇살이야?"

"열.. 열 일곱."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세상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아, 아가씨. 네가 말했듯, 모두 내가 여기 있는걸 알아. 그리고 모르겠지만, 다들 내게서 도움을 받고는 하지. 물론 다들 자기가 마녀의 도움을 받았노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고립된 것도, 버림받은 것도 아니야.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장대를 치켜들고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파이프를 다시 빨아들였다. 깊게, 정말 깊게, 타들어가는 담뱃재의 불꽃이 얼굴을 환하게 비출만큼, 혐오를 감추기 위해서, 파이프를 빨아들였다. 담뱃대가 부들거리며 떨려왔다. 그리고, 연기를 뿜어냈다. 매케한 연기에 촛불이 일렁이며 꺼질듯 말듯 흔들렸다.

"넌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남편과 결혼한게 언제지? 5년? 6년은 됬나? 그동안 남편의 뒷바라지만 하며 살아왔겠지. 남편의 세계가 곧 너의 세계였고, 그가 말한게 곧 진실이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란다, 아가씨.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남편을 스스로 죽인 마녀가 아니었나? 사람을 납치하고 내장을 꺼내 약의 재료로 사용하던 이교도가 아니었나? 그런 내게 찾아와 뭘 바라는거지? 사실, 내심 내가 네 남편을-"

그녀는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날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아와 뇌리에 박혔다. 그 말들과 함께 뿜어져 나온 연기로 방안의 공기는 탁해져, 마음대로 숨쉬기 힘들어졌다. 그녀는 나를 마저 보기 힘들었는지, 뒤로 돌아 머리를 쓸어 넘기고 관자놀이를 짚었다. 갸녀리고 주름진 투박한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난... 잠시 나가봐야겠어. 여기서 기다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문을 꽝 닫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답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떠난 빈 방 속에서, 그녀의 세계가 내가 사는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게 중요한 것이 그녀에겐 아무것도 가치도 없어 보였고, 그녀가 내게 권하는 것은 내 기준으로는 전혀 상황에 들어맞지 않은 이상한 해답뿐이었다. 그녀가,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내놓은 대답과 대안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무엇을 잘못한건지 생각해 보려 했다.

고요한 방 속, 그녀가 말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잔뜩 날이 선 그 말들은, 생각할때마다 내 기억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조각조각 찢어진 기억은, 나의 세계는, 고요히, 다시 하나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 이국의 차는? 최고급 찻잔은? 독특한 향은? 따뜻한 온기와 호의는? 거칠고 어두운 숲 속에 나를 데리고 보살펴준 그녀의 행동은?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잘못한건 나였다. 모든 것을 잘못했다.

그걸 외면하고 싶었다. 모든것을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살던 세상이 저항했다. 내 자신이 저항했다. 남편과 함께 했던 지난 6년이, 마을에서 살아온 시간이, 아낙네들과의 이야기가, 올바른 신부에 대한 오랜 교훈이, 저항하고 있었다. 과거가 말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에 대해서도, 남편에 대해서도. 고로 그녀는 틀렸다.

허나 과거는 틀렸다. 나보다 많은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다른 삶을 살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그녀가 알았기에 그녀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로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바라보는 진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날 도우려 했다. 그녀의 방식으로 도우려 했다. 그리고 그게 진실이었다. 나에게는 최선이 아니어보였을지라도, 그녀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의는, 무한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난 그 선물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럴 자격이 없었다. 나는 아직 내 남편을 사랑하니까. 그이를 사랑하니까. 내가 가장 외로웠을때, 그이는 내 곁에 있었다. 비록 그가 날 버렸을지라도. 내가 가장 무기력했을때, 그이는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비록 그가 날 묶었을지라도. 내가 가장 무지했을때, 그이는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비록 그가 나에게서 지식을 빼앗아 갔을지라도. 그이가 나를 때리고 상처입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라도, 나는 그이를 사랑했다. 그는 내가 가진 전부였다. 아니, 내 자신이었다.

그녀의 선물을 받기 위해선, 난 내 자신을 부수어야했다. 내 세계를 부숴야만 했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내 남편을 구하고 싶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얼마만이었을까, 이미 말라버린줄 알았던 눈물이 눈가를 촉촉히 적시기 시작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5/6.

"자? 음.."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 내 말이 너무 심했어."

"날 기억하는지 모르겠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내 모습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으니까."

"내 남편은 의사였지. 아니, 사실 사제에 가까웠어. 다친 이를 보듬고, 쓰다듬고, 치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친 이의 붕대가 되고, 눈먼 이의 지팡이가 되고, 약한 이의 수호자가 되어라'. 팔그람 경전의 한 문구지. 신자도 아니면서, 그 문구는 내 남편의 좌우명이었어."

"그를 도와 난 여러 마을을 도와다니며 병자를 치료했었지. 숲에서 약초를 구해 약을 만들기도 하고."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보다 뛰어나지야 않았지만,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줬어."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마음의 병 또한 병이니까."

"이 마을, 그러니까 상트 존즈도 그 중에 하나였지. 그때, 어렸던 널 얼핏 본 기억이 나네."

"힘들었지. 하지만 난 그이를 사랑했어. 그이도 나를 사랑했고. 우리 둘다 우리의 일을 사랑했어."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에 부쳐했어."

"너무나 많은 여자가 자신의 남편에게 맞고, 버림받으면서도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했는지. 비슷한 상황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았어."

"하나를 고쳐도 열이 남았고, 백이 남았고, 그리고 언제나 우린 늦을 수 밖에 없었어.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아내가 죽고 말았어."

"알아. 물론, 여자만 고통 받는건 아니었지. 노인, 어린이, 장애인, 병자, 하지만 기억에 남는건, 자기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를 잡고 놓지 않으려는 그녀들이었어."

"오지랖인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결코 그걸 포기할 수도 없잖아. 나에겐 그게 내 인생이었어."

"덕분에 괴로워 하지 않아도 되는, 나와의 무관한 일로 괴로워한거고."

"우리 둘은 그렇게 계속 돌아다녔어.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랑하는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더라구."

"어느날, 우리는 한 아내를 돌봤어. 다친 여성이었지."

"언제나 같은 변명. 굴렀다던가."

"다음날 그의 남편이 찾아와 내 남편의 머리를 후려쳤어. 내 남편은 그렇게 죽었지."

"그래서, 그게 나의 이야기야. 내 세계고."

"널 봤을때, 예전의 네가 떠올랐고, 지금의 네가 떠올랐어."

"그리고 널 돕지 못한 내가 또다시 애처로워졌어."

"지금까지 난 뭘 한걸까."



"약은 여기 있어. 정확한 병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대증치료를 우선으로 약을 배합했어. 무엇보다 잘 쉬고, 편안해야겠지만."

"떠나가도 잊지는 마, 난 널 언제나 도울거야. 다른 사람을 언제나 돕는것처럼 말야. 그것만은 잊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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