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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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님과 함께

 고슬고슬하게 잘 된 흰 쌀밥을 밥공기에 내오니 상담사님은 얼굴에 환하게 불이 켜진 듯 반색하셨다.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소반에 얹어 나오는 밥공기와 나머지 밑반찬들을 얼른 상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상담사님이 제대로 된 밥상을 이리 반기시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막상 웃을 수만은 없었다. 

“있으세요. 제가 할 테니까.”

미소지어드리며 비릿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징어숙회가 담긴 접시와 초고추장이 담긴 종지를 상에 다 내려놓았다. 그제야 나도 상담사님과 마주보고 밥상에 앉았다.

“그럼, 잘 먹을게...”

상담사님이 밥숟갈 한 가득 따끈한 밥을 푹 퍼서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셨다.

“우와, 밥이야 밥.”

거기에 잘 익은 김치도 젓가락을 짝 찢어 드시는 상담사님의 얼굴엔 화색이 만연했다. 그냥 그대로 먹는 모습만 지그시 바라봐도 배가 불러질 듯싶었지만 괜히 쓸데없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나도 한 술 떴다. 집어먹은 오징어숙회는 예상대로 비린 맛이 다 날아가 버리고 담백한 맛만 남은 채 오동통한 살이 기분 좋게 씹혔다. 상담사님을 다시 보니 드시는 속도가 허겁지겁 그 자체. 걸신이 들린 것 같다. 체라도 하시면 큰일이니 드시는 속도를 늦출 겸 근황에 대해 여쭤보기로 했다.

“요즘 상담중이시던 그 아이는 어때요?”

상담사님은 양 볼 가득히 소불고기를 오물거리던 입을 더욱 재빨리 놀려 이내 꿀떡 삼키시곤 물잔의 물을 한 모금 들이키셨다.

“그게, 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어. 뭐랄까.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내가 피상담자인 그 애한테 말리는 느낌이야. 애 기가 너무 세더라고.”

그러면서 밥을 한 술 더 뜨신다. 나는 반찬 주위로 눈동자를 돌돌 돌리고 계신 상담사님의 밥숟갈 위에 해파리냉채를 조금 집어다 얹어드렸다.

“천천히 드세요. 그렇게 저하고 있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세요?”

턱에 손을 괴고 지그시 바라보며 장난스레 상담사님을 떠보는 투로 말하자, 상담사님은 얼굴을 붉히시며 얼른 수저를 입으로 가져가셨다. 그리고 아까처럼 재빨리 씹어 삼키셨다.

“아니! 아니지! 밥이 너무 맛나서 그래. 시...식기라도 하면 음식에 대한 모독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아하하하!!”

피 상담자는커녕 저녁밥상 앞에 같이 마주앉은 사람에게도 말려드는 저 천진한 성격. 언제 봐도 귀여웠다.

“그나저나. 애가 어떻길래요?”

상담사님은 붉어진 얼굴을 수습하려 애쓰며 더듬더듬 내 말에 대답하기 시작하셨다. 일순 밥상 밑 상담사님의 바짓자락 사이로 발끝을 넣고 다리를 간질이면 어떤 재미진 반응이 나올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너무 상담사님을 몰아붙이는 것 같아 그만뒀다.

“응. 예전에 말했다시피 걔가 방에 틀어박혀선 나오질 않는 히키코모리... 그러니까 방구석 폐인이잖아. 다른 많은 사례서처럼 그 녀석도 안에서 뭔가에 몰두해 있는데, 그게 참 곤란하달까... 무섭달까... 위험하달까...”

막상 이야기하면서도 밥상에서 눈을 못 떼시는 상담사님을 위해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불고기를 집어 오물오물 거렸다. 상담사님도 비로소 다시 수저를 들고 드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상담사님의 입가에 초고추장이 묻은걸 발견했다. 손을 뻗어 엄지손가락으로 그걸 쓱 닦아내드리고 이젠 내 엄지손가락에 묻은 초고추장을 핥아먹자, 상담사님의 얼굴이 또 빨개진다. 그냥 말없이 미소지어드렸다. 반응 하나하나가 정말 앙증맞아 계속 장난치고 싶을 수준이었다.

“그.. 걔가 빠져있는 게 ‘러브 크래프트’라고. 소설작가 이름인데. 혹시 이 작가 알아?”

나는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물론 잘 알고 있죠, 상담사님.

“무슨 기괴한 괴물같은게 나오는 공포소설인가 그런 종류인데. 그 녀석은 소설을 실제처럼 여기는지 자기가 거기 나오는 괴수를 소환할거라느니. 망상에 젖어서 떠들어 대. 가끔은 정말 자기네 ‘가족까지 제물로 바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어서 섬뜩하다니까. 정작 방에서 나가는 문고리조차 겁내하는 녀석이지만 말야. 어휴. 딸이 자길 제물로 삼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걸 알면 그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그 댁 아주머니가 너무 불쌍하단 말이지.”

상담사님은 한숨을 툭 쉬시곤 밥상 한켠에 놓여있던 조기구이의 살점을 데어 드셨다.

“생선처럼 생긴 뭐하고 접촉을 진짜 했다느니. 그 괴물의 애를 가지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상담이고 뭐고. 머릿속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야.

그 후 한참 상담사님과 나는 밥 먹는 데에 집중했다. 핼쑥하던 상담사님의 모습도 뱃속에 뭔가 좀 들어가니 조금 더 나아진 것 같아 기뻤다.

“그래도 매일매일 밥도 거르시고 꾸준하게 상담해주시고 있으니 상태가 좀 나아지고 있죠? 그 애.”

이제 바닥을 보여오는 밥공기를 닥닥 긁고계신 상담사님께 그 아이에 대해 다시 물어봤다.

“응. 그거야 뭐. 그렇지 않았다면 몇 개월 동안 상담한 이유가 없으니까. 초반엔 서로 문을 사이에 두고 말로만 상담했을 지경이었다고. 알잖아?”
“네에.”

나긋나긋한 말투로 대답해드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상담사님은 밥공기의 마지막 한 숟갈을 불고기와 함께 맛있게 드시며 나에게 되물어오셨다.

“그나저나, 오늘도 내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요즘 넌 어때?”
“아...”

이러시면 안 되죠. 상담사님? 나는 난처한 모습을 지으려는 얼굴을 수습하며 밥상 밑의 발을 살며시 움직여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상담사님의 바짓가랑이에 뱀이 들어가듯 슬쩍 들이밀었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다리를 간질였다. 상담사님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진다.

“풉. 정말 부끄럼쟁이시라니까. 후식 갖고 올게요.”

과정이 능란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상황에서 벗어나, 주방에서 따끈하게 데운 식혜를 한 사발 떠왔다. 상담사님은 잠시 식혜위에 둥둥 뜬 밥알을 바라보시다가 곧이어 꿀떡꿀떡 한 사발을 다 비우셨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찬찬히 훑어봤다.

“전 상담사님이 이렇게 잘 드시는 모습만 봐도 좋아요.”

상담사님은 붉은 얼굴 그대로 머쓱해져서 헤헤 웃으셨다. 그리고 이내 상체를 내 앞으로 기울여 얼굴을 점점 가까이 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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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어. 다음에도 또 올게.”

상담사님을 현관문밖까지 배웅해드리자, 더듬거리시며 감사인사를 하신다. 뭘 또 이런 걸 가지고 그러실까.

“언제든지요.”

나는 상담사님의 얼굴을 향해 오른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리고 왼쪽 귀에 대고 손가락을 딱 튕겨 소리를 냈다. 상담사님의 상기된 표정이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번엔 오른쪽 귀. 딱 소리와 함께 상담사님은 절도 있게 출구를 향해 뒤돌아서셨다. 난 상담사님의 뒤돌아선 양 어깨에 손을 올려 몸을 밀착하곤 오른쪽 귀에 대고 속삭였다.

“상담의 원활을 위해서, 상담자의 희망사항을 조금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다시 물러선 뒤 왼쪽 귀에다 대고 다시 손가락을 딱 튕겼다. 상담사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 문을 열고 나가셨다. 언제든지 오셔도 좋아요 상담사님. 과연 다시 여기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식혜의 달착지근한 맛이 아직 느껴지는 입 안에서 혀를 한번 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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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는 음모론 먹방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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