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Witch on Tanks -Prologue : 그는 그렇게 마녀에게 홀렸다.-

LucifelShiningL 1 3,174
'아, 일이 왜 이렇게 꼬이게 되었을까.'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비릿한 쇠의 냄새.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중구난방으로 굴러다니는 이 곳.

그렇다, 전장이다.

그리고 저 쇳덩어리들은 전장의 지배자, 전차였던 잔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명 잘 설득해서 결혼이라도 해 둘 껄 그랬나...'

그 전차의 잔해들 중, 무언가 안에서 폭발했는지 갈갈이 찢겨져 불타오르고 있는 검게 그을린 한 대.

그리고 그 바로 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한 사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붉게 더럽혀진 금빛이였고, 눈은 빛을 잃은 푸른색이였다.

'졸려오네. 이대로 자버리면 두 번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겠지.'

사내의 복부에는 긴 쇳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우라지게 아프네, 젠장. 저쪽은 아직도 여기 주변을 돌아다니네. 폐품 수거라도 할 셈인가? 계속 땅이 울리니 잠들지도 못하잖아...'

사내는 겨우 움직이는 고개를 젖혀 가까워지는 땅울림의 원흉을 바라보려 했다.

역광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유난히 납작한 형태의 커다란 쇳덩이가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코앞까지 다가와 멈춰선 쇳덩이.

사내는 실루엣으로 보아 경전차란 것을 무심코 파악했지만 그것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갖게 하지 못했다.

죽어가는데 전차를 알아본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허나 문득, 머릿속에서 스쳐가는 기억의 조각에 사내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자신이 조종하던(지금은 고철이 되어 자신의 근처에서 불타고 있는) 전차를 이런 꼴로 만든 장본인이였기 때문이다.

'어지간히도 내가 미움받을 짓을 했나보네. 직접 찾아오다니. 내가 대체 뭘 했길래...'

덜컥, 하고 해치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지면으로 뛰어내린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해져가는 사내의 시야에 거꾸로 들어온 검은 실루엣.

'여자...?'

사내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 실루엣을 심도있게 관찰하였다.

긴 망토같은 머리카락.

일반적인 전차병들의 복장이 아닌 정복 차림이지만 꼭 맞게 맞춰진 듯, 드러나는 매혹적인 신체의 곡선.

다만, 가슴부분의 곡선은 그리 풍만하진 않았다.

역광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은게 상당히 아쉽다는 듯, 사내는 한숨을 내쉰다.

'아, 아쉽군. 이런 꼴일 때에 몸매가 가슴만 빼면 끝내주는 여자를 보게 될 줄이야...'

그 때 들려온, 사람을 단번에 홀릴듯한 아름다운 미성.

"다 죽어가면서도 여자를 밝히는 구제 불능의 수컷인가."

가벼운 비웃음이 섞인 말에, 그 사내는 '맞는 말이지.'하고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듯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다.

"용케도 이쪽의 사격을 8번이나 피했더군. 덕분에 좀 '발끈'해서 말이야."

그 여인은 다가와 사내의 복부에 박혀있는 쇳조각을 발로 지긋이 밟아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분명 조종수석을 노렸는데 말이지. M4 셔먼은 흔하니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외워버렸거든."

사내는 숨조차 가누지 못 할 격통으로 괴성을 질렀고, 그 여인은 싱긋 웃으며 천천히 발을 떼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조종수석이 아닌, 탄약고에 명중했다는 점이지."

여인은 그의 건너편에서 불타고 있는 고철 덩어리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다.

"착탄하기 직전에 차체가 회전, 그리고 탄약고에 명중, 유폭..."

여인은 사내의 몸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유폭이 일어난 차량에서 생존한 인원이 있고, 비교적 부상도 가볍단 말이지."

'이게 가볍다고?'

여인은 사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자신이 타고온 전차에 등을 기대어 앉혔다.

"더군다나 열린 해치가 조종수석 해치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뭐라는거야?'

"네놈은 참 운이 좋아, 마음에 들었어. 아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내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조종수라서 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이봐.'

여인은 사내에게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이대며 협박조로 선택지를 건넸다.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나? 선택은 자유다. 이대로 길바닥에서 뒈질 것이냐, 내 밑에서 일할 것이냐. 물론 살려줄테니 공짜로 부려먹겠다는 의미는 결단코 아니다. 최고의 대우를 해 주지."

사내는 피식 웃으며 쿨럭거렸다.

'이게?'

그렇지만, 사내는 아직 죽고싶지 않았기에, 길게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여 승낙해버렸다.

물론, 이 선택이 후에 후회를 부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여인은 가학적인 미소와 함께, 칼을 다시 칼집에 집어넣고 허리춤의 허리띠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어 그 사내의 상처에 주사하였다.

그리곤 사내의 멱살을 잡아 들쳐메고 전차 위로 올라타려 하였다.

문득, 사내는 그 전차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눈에 담았다.

납작한 차체와 포탑.

차체에는 해치가 없었고, 포탑 위에 두 개의 해치가 있었다.

푸른빛 도장.

'이건... ELC AMX인가...? 취향 한번 매니악하군. 응?'

포탑의 한쪽에 커다랗게 뚫려 전차 건너편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멍과 그 안에 붉은 액체에 젖어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좌석.

"아, 먼저 안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야 자리가 비겠군."

여인은 사내를 포탑 위에 잠시 눕히곤, 전차 안에 들어가 쇳조각들과 뭔가 붉은 덩어리들을 밖으로 내던졌다.

'...으엑, 저 쓰레기들의 정체가 뭔지는 대충 상상이 간다 가.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자동적으로 되는걸 어째야 할까...'

"좀 더럽긴 하겠지만, 참아둬. 실력 좋은 의료진하고 계약하고 있으니까. 즉사만 아니면 왠만해선 다 살려내는 실력자들이니까 안심해. 비용은 나중에 그쪽에게서 청구할거긴 하지만."

'...돈 뜯을 생각인거냐!'

그리고는 뚫리지 않은 쪽의 좌석에 그 사내를 앉히곤, 다 박살나다 시피 한 피투성이 좌석에 여인이 앉았다.

"아까 전 한창 격전중일때 105mm 철갑탄으로 직격당해서 말이야. 덕분에 조종수석이 엉망진창이 됬다니까."

사내는 몸서리치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즉사했지. 상반신이 반쯤 사라진 채로."

'그런 말을 태연히 하다니... 이 여자, 이쁜 외모에 비해 속은 아주 검구만, 새까매...'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쩍 벌린 사내에게 여인은 싱긋 웃으며,

"그러다 혀 잘리겠다."

하곤 급발진을 하였다.

'우왁! 진짜 성격 더럽네!'

어느정도 달리자, 어디선가 잡음에 섞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차내를 쩌렁쩌렁 울리자, 사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귀아파...'

"...님...답.......... 마녀님! 들리십니까! 응답바랍니다!"

그 목소리에 여인은 손을 옆자리로 뻗어, 무전기의 송수신기를 손에 쥐고 들려온 목소리에 답변을 하였다.

"여기는 마녀, 희귀한 전리품을 확보, 이제부터 본대에 합류하겠다."

환호하는 목소리와, 한탄하는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온다.

"갑자기 무선 침묵하신 채 사라지셔서 어디서 뒈지신 줄 알았습니다! 마녀님!"

주변에서 웃음 소리도 함께 들려온다.

"뭐, 마녀님이 뒈지실 일은 제가 늙어 뒈질때까지는 코빼기도 구경 못 할 일이겠지만서도입니다!"

"무전기가 좀 상태가 안 좋아서 말이지. 여하튼, 의료반에 무전좀 해줘. 응급 수술 준비해달라고. 배율은 2.5배라고 전해줘."

"2.5배? 상당한 레어를 주우셨나 봅니다? 알겠습니다!"

'사람을 무슨 취급 하는거냐... 레어라니... 난 도대체 어디서 어긋난 걸까...?'

사내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극심한 통증이 다시 한번 사내를 괴롭혔으나 이내 '살아있으니, 뭐 이걸로 됐나.'하곤 웃었다.

그리곤, 슬쩍 곁눈질로 제대로 확인하지 못 했던 여인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한다.

비단같은 긴 검은 머릭카락과, 그와 대조되는 맑고 하얀 피부.

매혹적인 분홍빛 입술에 부드럽게 날선 콧날, 살짝 올라간 눈꼬리, 긴 속눈썹.

그리고 마치,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괴물같은 핏빛의 검붉은 눈동자.

기괴한 눈동자에 소스라치게 놀란 사내는 방금전 들었던 무전의 내용에서 어렴풋이 스쳐가는 두 글자.

'그러고보니 무전에서... 마녀라 불렸지? ...마녀...?'

"마녀!? 끄허으걱!"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어진 두 글자.

그 덕에 다시 사내를 괴롭히는 복부의 통증과 함께, 여인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녀... 그래, 그렇게도 불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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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입니다.

어떻게 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잇기전에 리플로 선언해주시고 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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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꽤나 재밌어 보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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