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lover(리졸버) - 2

[군대간]렌코가없잖아 2 2,666

Epc. 1022. 11. 24(Fri) 2:00 PM

 레베데프 저격미수 사건 이후, <스포트라이트> 지에 들어온 메이의 사진은 현장에 있던 수많은 기자들이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조명탑 뒤에 숨은 범인의 그림자를 포착했기 때문에 다른 신문사나 방송국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그 댓가로 메이에게 떨어진 건 사례금 5만 크로나에 보너스로 받은 3만 크로나, 도합 8만 크로나가 전부였다. 물론 평소 받는 금액보다 3만 크로나 더 받긴 했지만, <스포트라이트>지가 자기 사진을 팔아서 번 돈을 감안하면 적어도 백만 크로나 정도는 떨어져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메이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룸메이트, 캐서린이 어제 받은 원고료 2만 크로나를 지금 받은 돈에 합치면 집세에 보태고 끝이구나, 하며 메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무리 메이가 백만 크로나를 받았다고 해도 지금은 돈 쓰며 놀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던크로스 홀에 두 발의 총성이 울린 이후, 전쟁이 끝나며 사라졌던 ‘발키리’에 대한 공포가 다시 한 번 PL을 덮쳤고, 사람들은 외출을 꺼리기 시작했다. 경찰청장이 저격미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경찰이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다른 치안 문제는 없으므로 시민 여러분은 과도한 행동으로 불안을 키우지 말고 생업에 종사해 달라는 발언을 했지만, 메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창문이란 창문에 죄다 나무 판자를 덧대고 있는 걸 보면 그 말은 불안에 빠진 사람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밖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메이는 받지 못한 돈 때문에 우울해 할 시간에 저격미수 사건을 조금 더 취재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었지만 밖은 위험하다고 자기를 말리는 캐서린이 눈에 밟혀 그냥 쉬기로 했다. 메이의 결정에 캐서린이 마음을 놓자, 메이는 내가 <스포트라이트> 지 소속이었으면 내 몫은 제대로 떨어졌겠지만 캐티 언니가 맘을 놓지 못 했겠지. 가끔 이래서 프리랜서가 좋을 때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받을 수 있는 돈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메이는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찾았어?”

 캐서린은 2인용 식탁에 앉아 23일자 <스포트라이트>지 2면에 실린, 총성에 도망치는 관중들이 찍힌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메이를 보며 말했다.

“못 찾았어. 어휴,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눈 빠지겠네.”

 메이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범인의 그림자가 찍힌 사진을 자세히 본 결과, 회색 그림자처럼 보이는 범인의 실루엣은 사실 회색 위장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린 메이는 이후에 찍은 관중석 사진에 위장포를 쓴 채로 도망가는 범인이 찍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진 속 저격범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 반드시 이 안에 범인이 있을 거라며 셔터를 누르게 했던 확신이 무색하게도 사진 속에 범인은 없었다.

“저기 메이, 범인이 위장포를 벗고 도망갔을 거라곤...”

“현장에서 위장포는 안 나왔대.”

“벗더라도, 자기가 어디 숨겨서 가져갔다면 안 나왔을 거잖아.”

“아 그랬... 잠깐, 그럼 난 무슨 바보짓을 한 거야!”

 캐서린은 살짝 흘러나온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린 뒤, 메이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캐서린의 말 한 마디에 메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뒷목을 잡았고, 캐서린은 그런 메이를 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자 이제, 바깥은 위험하고, 메이가 꾸미던 일은 처음부터 안 될 일이었으니 그냥 간만에 내 일이나 도와 주는 건 어떠니? 이 언니는 오늘도 다가오는 마감과 홀로 싸우고 있단다. 메이의 도움이 필요해~”

“캐티 언니, 그 동안 내가 먹칠한 원고가 몇 장이고, 내가 붙인 톤은 또 몇 장인 줄 알아? 난 기자지 언니 어시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래도 일 다 끝나면 매번 밥 사줬잖아. 최소한 공짜로 부려먹는 건 아니잖아?”

“밖은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애초에 밖에 못 나가면 밥도 못 사먹잖아!”

“아, 그렇네?”

 메이는 자기 말의 모순을 가볍게 넘기는 캐서린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캐서린은 그 눈빛마저도 가볍게 넘길 뿐이었다.

“뭐, 어쩔 수 없네.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내 방으로 들어와~”

 캐서린은 이런 말을 남기고, 조용히 ‘작업실’ 이라는 팻말이 붙은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내가 어쩌다 이런 언니 집에 얹혀살게 된 거지, 하는 생각이 메이의 머릿속에 잠시 스쳐갔지만 이내 지금 자기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과, 위장포를 가방 같은데 넣었다면 그 큼지막한 위장포가 들어갈만한 큼지막한 가방을 멘 사람을 찾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메이의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 생각에 따라 메이는 다시 한 번 2면의 사진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가 숨은 그림 찾기를 재개한 지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TV 옆에 있는 전화기가 따르릉 하고 울리기 시작했고, 메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타이밍 좋게 내 작업을 방해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냐, 혹시나 잘못 건 전화라면 전화국에서 번호를 찾아내 한 소리 해주리라, 하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테일러 탐정 사무소입니다. 혹시 메이 화이트베리 양 되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탐정 사무소’ 라는 말에 메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사건에 협조해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여쭤 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테일러 탐정 사무소의 남자는 능숙한 텔레마케터처럼 친절하게 얘기했지만, 다급한 상황인지 말이 조금 빨랐다.

“헙조요?”

“네. 정확히는 화이트베리 양이 찍은 <스포트라이트>지 2면에 올라온 사진의 원본 필름을 저에게 주실 수 있는지 여쭤 보려고 합니다.”

“필름은 왜요?”

“제 의뢰주가 지난 월요일에 실종된 사람을 찾고 있는데, 화이트베리 양이 찍은 사진에 그 사람으로 보이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아... 잠시만요.”

 메이는 남자의 말을 듣고 곧바로 테이블에서 신문을 들고 왔다.

“제가 지금 그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혹시 실종된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사진 오른쪽 끝에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긴 머리 여자가 찍혀 있을 겁니다. 그 사람입니다.”

 메이는 남자의 말에 따라 다시 한 번 숨은 그림 찾기를 시작했다. 아까 그렇게 찾아도 나오지 않던 회색 그림자와 다르게 사진 오른쪽 구석에서 너무도 쉽게 나온 정답은, 한 남자의 손을 잡은 채 뒤를 돌아보고 있는 긴 머리 여자였다. 너무 작게 나와서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과, 옆에 있는 남자에게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메이는 곧바로 전화기 옆에 놓아 뒀던 검정 유성펜을 들어 긴 머리 여자에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네, 찾았어요.”

“보다시피 이 사진만으로는 얼굴이 구분되지 않아서 좀 더 큰 사진을 인화해서 확인하기 위해 필름이 필요합니다.”

 남자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 메이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허탕 친 줄만 알았던 숨은 그림 찾기에서 의외의 성과가 나왔다. 아마 처음에는 <스포트라이트> 지에 직접 연락을 했다가 필름 값으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서 조금 더 싼 값을 부를 것 같은 메이에게 전화를 건 상황이라는 것이 보였고, 거기다가 필름을 줘도 그만이고 안 줘도 그만인 메이와는 다르게 탐정 사무소 양반은 메이의 필름이 없으면 안 될 상황, 다시 말해 협상의 주도권이 메이에게 있는 상황이라는 결론도 나왔다. 그래서, 메이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좋아요. 그런데 신문사에선 사진 값으로 얼마 달라고 했죠? 저에게 그 값의 십 분의 일만 주신다면 곧바로 필름 넘겨 드릴게요.”

 메이는 말을 마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신문사에서 요구했을 금액의 십 분의 일만 해도, 신문사에서 받은 돈의 2~3배는 될 테니, 이번에야말로 대박이 눈에 보였다.

“거기다가 제가 편집장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취재 필름을 넘겨주는 거, 엄연한 계약조건 위반이라는 거 아시죠? 저도 리스크를 감내하고 그 쪽에 협력하는 거니까 위험 수당도 조금 붙여 주셔야겠네요. 그럼 한, 24만 크로나 플러스 8만 크로나, 도합 32만 크로나로 거래성사네요. 어때요?”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메이의 말에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메이는 성급히 이 침묵을 부정으로 받아들인 뒤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그 전에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돈이라... 그것도 좋지만 화이트베리 양 같은 사람들은 돈보단 ‘특종’ 에 더 끌리겠죠.”

남자는 ‘특종’ 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 말대로, 메이는 특종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끌려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기로 했다.

“저는 의뢰주가 제게 맡긴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 가며 저격 현장에 나타난 실종자가 저격수와 그 뒤에 있는 자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실종 자체도 이번 사건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번 사건과 실종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언론은 단 한 군데도 없더군요. 잘만 하면 이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독점으로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32만 크로나보다 더 큰 금액이 들어올 수 있는 특종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메이는 남자의 말을 곱씹어 본 뒤 남자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기자에게 있어서 기삿거리, 그것도 아무도 손 댄 적 없는 기삿거리가 무시무시한 유혹이라는 사실을 이 남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좋아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일까지 저희 사무소로 필름을 들고 온다면 저에게 협력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 거 없어요. 지금 갈게요.”

 메이가 망설임 없이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남자는 메이의 반응을 예상한 건지 역시, 하는 혼잣말을 했다.

“사무소 주소가 어떻게 되나요?”

“남구 아스널 가 124번지 3층입니다. 지하철 역 바로 앞이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메이는 곧바로 전화기 옆에 놓인 메모지에 유성펜으로 주소를 적었다.“주소 다 적었어요. 그럼 바로 갈게요.”

“이따 사무소에서 뵙겠습니다. 그럼.”

 남자가 전화를 끊자, 메이는 자기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 안에 고이 모셔 둔 필름통 중 1022/11/22(2) 라는 라벨이 붙은 것을 꺼내 책상 위 카메라 가방에 넣은 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며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거울 앞에 빨간 모자와 머플러가 돋보이는 트렌치코트 차림의 여기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메이는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고 캐서린의 작업실 앞에 섰다. 노크를 몇 번 하자, 귀 위에 펜 하나를 걸친 채 작업을 하던 캐서린이 바퀴 달린 의자채로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어, 메이...? 어디 가게?”

“밖이지 어디겠어.”

 메이의 말에 캐서린은 고개를 들어 메이를 올려보았다.

“아...”

 캐서린은 메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묘한 소리를 냈다. ‘아까 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라고 하려던 말이 무언가가 불타고 있는 메이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목구멍에서 막혀 버린 탓이었다. 캐서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았는지, 메이는 캐서린을 보고 씨익 하는 밝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알잖아. 난 아무리 위험해도 가야 할 땐 꼭 간다는 거. 금방 다녀올게, 캐티 언니.”

 메이는 곧바로 캐서린에게 등을 돌린 뒤 현관을 나섰다. 캐티도 그런 메이를 말리지 않고 배웅만 할 뿐이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메이!”

 메이는 곧바로 아파트 1층 현관에 메인 자전거를 꺼내 타고 텅 빈 골목을 빠져나갔다.

 

Resolver Episode 1 : 길버트 아인게이츠의 그림자

Chapter 1 : 교차하는 두 사건

To be conti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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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없입니다.
이번 분량은 좀 짧게 써졌네요. 다음 주엔 시간도 있으니 좀 길게 써지겠죠. 쓰는 김에 설정적인 부분을 조금 보충해 보겠습니다.
1. 연도 앞에 나오는 Epc.는 Eclipse Calendar(일식력)의 약자입니다. 설정 정리를 하게 되면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2. 크루세리아의 화폐 단위는 '크로나' 입니다. 화폐 가치는 1크로나에 10원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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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흐린하늘
~화이트베리는 무슨 열매인가요~

여자애가 기자정신이 타오르네요.
메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짤 때 마거릿 버크화이트라는 여류 사진기자를 모티프로 삼았는데, 이름 짓다 보니 버크화이트가 의미불명의 과정을 거쳐 변형되어 화이트베리가 되었습니다. 저도 뭐지 싶어요.

추가로 메이라는 이름은 동방에 나오는 신문쟁이, 샤'메이'마루 아야에서 따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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