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안샤르베인 0 2,522

도망가는 동안에도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저도 모르게 귀를 막았지만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순 없었다. 땅의 울림도 느껴졌다. 괴물이 내는 속도가 덩치에 맞지 않게 빨랐다. 그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곤 소리를 삼켰다. 괴물은 곧장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현자가 다급하게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지만 말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괴물이 변질된 팔 한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내리쳤다.

 

"으악!"

 

땅이 폭발하듯 무너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파편에 맞아 둘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쓰러진 말은 다리를 다친 건지 일어나지 못했고, 그대로 주먹에 희생됐다. 그는 정신차리자마자 일어난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주저앉은 자세로 뒷걸음질쳤다. 이내 등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괴물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 상황이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그는 멍하니 주먹이 날아오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

 

=====================

 

"제가 기억하는 건... 그것 뿐입니다."

 

기억을 정리하면서 이야기하느라 그의 이야기는 간헐적으로 끊겼지만,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손은 꽉 쥔 뒤였다. 손이 무릎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본 제네시스가 뭔가 더 추궁하려 드는 부장을 제지했다. 부장은 탐탁찮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하나만 더 묻지. 그 괴물 외엔 본 것이 없나?"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네시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보내주었다. 그가 나가자마자 옆의 부장이 제네시스에게 말했다.

 

"믿을 이야기가 못 됩니다. 수색대가 그렇게 이 근방을 뒤졌는데도 괴물은 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자넨 저 아이가 그 많은 사람들을 찢어죽였다고 생각하나?"

 

부장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체격도 체격이거니와 저 얇디얇은 팔에서 그런 괴력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참하게 찢긴 시체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네시스가 다시 말했다.

 

"물론 아직 진실을 다 말한 것 같진 않은것 같지만, 기다려보세. 기다리다보면 뭔가 나오겠지."

 

=====================

 

제네시스는 막사 천을 걷으려다가 멈춰섰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근방을 기웃거리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물끄러미 수십 개의 눈을 보더니 그대로 천을 확 걷어버렸다. 우당탕 소리가 났다.

제네시스는 이마를 짚었다. 입구에 무너진 채로 엎드려 있는 사람들은 베실베실 웃으며 장군의 눈치만 보았다. 그리고 벽력같은 호통이 터졌다.

 

"당장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할까!"

"히익!"

 

메이다나를 포함한 병사들이 재빨리 일어나서 차렷 자세로 섰다. 장군은 싸늘하게 말했다.

 

"허락없이 영내를 기웃거리는 자는 엄벌로 다스릴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장군은 한숨을 쉬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아이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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