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가 눈을 떴을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침대의 캐노피였다. 하얀 레이스에 황금색 자수가 놓여있는 캐노피. 리에가 알고 있는한 이런 장식의 캐노피가 있는 방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일본어가 아닌것만은 확실한 언어로 중얼거리는 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것 같았다.
그리고 리에가 몸을 일으켰을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리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네, 덕분에.."
"다행이네요, 붓기도 많이 빠진것 같고. 뼈에도 이상이 없었으니 한두시간이면 원래의 예쁜 얼굴로 돌아갈거예요."
"감사합니다."
"먹을래요? 어디 찬장에 있던 누텔라를 발라봤는데."
에파가 식빵을 내밀었다. 초콜릿 비슷한 무언가가 발라져있었고 이미 조금 먹었었는지 한입 베어 문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먹어둬요. 홀몸도 아니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리에의 뱃속에는 저의 사랑스러운 아기가..."
"네?!"
"농담이니까 그렇게 놀라지 말아요. 치료때문에 나노머신을 주사했거든요. 걔네들은 치료중엔 에너지를 엄청 먹어대니 밥을 먹어두는게 좋아요. 안그러면 그 자랑스러운 가슴에서 지방을 빼서 쓸지도 모르니까.. 리에양은 아침식사도 못먹었으니까 들어요. 좀 먹어봤는데 독은 없는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한낫 하녀로써, 손님께 이런일을.."
"하녀? 누구의 하녀 말이죠? 저 2층 구석 방에 총맞고 죽은 시체의 하녀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근거도 없이 범인으로 몰아갔던자들의 하녀?"
"아..."
리에에 눈에 눈물이 고이는듯 하자 에파는 고개를 돌렸다.
"사요언니, 코토리의 누텔라 못봤어?"
"누텔라? 분명 거기 올려놨었는데..."
"코토리의 누텔라가 없어졌어!"
"누텔라가 발이 달린거솓 아니고.. 야 니가 먹은거 아냐?"
"발라먹을 빵도 없는데 무슨 누텔라야..."
우시로미야 가의 자손들은 방에서 무슨일이 있더라도 절대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방에 갇혀있었다 할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말에 즐겨하던 보드게임도 잡히지 않는듯 보드게임은 널부러져 있었다. 기운없어보이는 도중에 오직 어린 코토리만이 제 기운을 유지한채 자신의 간식거리를 찾고 있었다.
"이 섬에 친척들하고 사용인들밖에 없는데 누가 죽였다는거지.."
"코토리 앞에서 그런말 하지맛."
"아 미안."
코토리는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말도 실감하지 못하는듯 이리뒤지고 저리뒤지고 있었고 소마는 굶주린 배를 잡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먹은채였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어른들이나 사용인들조차 이쪽엔 관심을 가지지 않은 모양이였다.
"살인범이 돌아다니니 밖으로 다니지 말라 이건가... 젠장, 그 살인범이 외부인이라는 보증도 전혀 없는데 말야. "
"그만둬 소마, 그보다 코토리가 아무것도 못먹고 있는데 뭐 간식거리가 없을까."
"사요 다이어트용 간식 있지 않아?"
"아침에 코토리한테 다 줬어."
"그걸 다먹었다고?!"
"코토리는 아직 애니까.."
하아, 소마가 한숨을 쉬었다.
"젠장. 뭐 일단 먹고 보자고. 나와 카오루형이 먹을것좀 가지고 올게."
"방에 연약한 나와 코토리만 남겨두겠다고?!"
"범인이 너보다 연약하겠지."
"이녀석이..."
"어때 카오루형? 이러다간 뱃가죽이 등에 붙겠다고."
"그게 낫겠군. 그런데.. 코토리는 어디있지?"
찰칵.
세사람이 깨달았을때, 코토리의 모습은 없었고 문은 방금 누군가가 열고 나간듯 자동으로 잠겼다.
화장실에 들어갔던 리에가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기에 에파는 살짝 불안한듯 했다 거의 회복되었다지만 그래도 부상자인데 화장실에 혼자 두는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자기 집도 아닌데 화장실에 있는 사람에게 쳐들어가기도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 문이 열리자 꽤나 안심하는듯 했다.
리에는 얌전하게 다가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인사했다.
"여제님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감히 여제님께 더없는 폐를 끼쳤습니다."
"네? 아아 뭐 그런걸. 빗발치는 탄환 속보단 무난한 상황이였는걸요."
"저 같은건 그대로 버려두셔도 되었을텐데..."
"훗, 전 한번이라도 같이 잔 사람을 버리지 않아요."
순간 리에의 얼굴이 붉어지자 에파는 살짝 웃었다.
"그보다 하녀노릇은 좀 쉬어도 된다니까요. 부릴 사람도 죽었고 말이죠. 어차피 유산싸움은 유서라도 남겨두지 않은 이상 시간이 좀 걸릴것 같고.."
"하지만.."
"뭐, 어차피 길어야 며칠 지나면 태풍은 지나갈꺼고. 그때쯤이면 배가 올거예요. 경찰도 올거고.. 아니, 그냥 여기서 조명탄을 쏘면 헬기가 오겠죠. 그때까지만 기다리고 이 섬을 뜨면 그만. 뒷일이야 어차피 경찰이 알아서 할거고 사실 아이노미야인가 하는 잡스런 가문따윈 별로 신경쓰고 싶지도 않네요."
"잡스러운 가문이 아닙니다! 주인님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전후 몰락한 아이노미야가를 일으키신 분입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암울하게 살아가던 저를 발탁해서 어엿한 하녀로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이렇게 고마우신분을 잡스럽다고 하는 무례는 삼가주십시오!"
"아... 미안해요 사과하죠."
"아니요, 오히려 이쪽이 죄송합니다. 손님되시는 귀한분에게 이런 폭언을 하다니..."
그렇다면 이런 사정이 있는 아이를 살인범으로 몰았다는건가. 어처구니 없는 바보들이로군. 에파가 생각하고는 팔을 쭉 폈다.
"뭐, 제대로 된 식사도 기다릴 겸. 어차피 며칠간은 할것도 없이 여기서 농성해야 할 판이니 잠깐 살인방법이나 생각해볼까요?"
적어도 그렇게 존경하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정도는 납득시켜 주는게 좋겠다고 에파는 생각했다.
"분명 여제님께서는 주인님께서 6시간정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집사님께서는 그 근처 방에서 주무시는데 총소릴 듣지 못하셨을까요?"
"네, 총소리는 들렸겠죠."
"집사님께서는 그런말씀을 안하셨습니다만.."
"아, 그건 간단해요."
리에는 너무나도 당연한듯 대답하는 에파의 말에 다시 입을 열었다.
"거기다가 그 시간에는 아무도 주인님의 방에 있을수 없습니다. 사용인들은 12시 이후에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고 열쇠는 쿠로사와씨와 주인님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방의 자물쇠는 특별해서 간단히 열수 있는것도 아니고 복사도 무리라고.."
"그럼 쿠로사와씨가 열었을수도 있잖아요?"
"쿠로사와씨가 그러실리가 없습니, 그날밤의 열쇠는 제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음? 어째서 리에씨가?"
리에가 하녀복에서 열쇠를 하나 꺼냈다. 커다란 열쇠의 모양은 적어도 스켈레톤 방식으로는 열수 없는 자물쇠의 열쇠라는걸 짐작할수 있게 했다.
"어째선지 주인님께서는 다음날의 아침식사를 저에게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원래는 쿠로사와씨가 해온 일이였습니다만..."
"그런가..그럼 열쇠로는 못열겠네.. 그렇다고 창 밖에서 쏠수도 없고.."
에파가 시선을 창문으로 돌렸다 그리고 얼핏봤었던 사건 현장을 떠올려본다. 사각은..분명 나온다. 책상에 앉아있었다면 근처 나무 어디서든 올라가서 저격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창문이 문제, 깨진 유리창은 커녕 총알구멍 하나 없었는데. 설마 폭풍이 불고 있는 마당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을 멍청이도 아닐테고. 그럼 역시 안에서 쐈었다고 봐야 하는데..
"아, 모르겠다. 알고싶지도 않고"
에파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에파로써는 그냥 머칠 지나면 집에 가면 그만이다. 무차별 살인범이였다면 총에 탄창을 잔뜩 들고 보이는 족족 쏴죽였을테니 무차별 살인범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외부인인 자신을 건들 이유가 없다. 애초에 무차별 살인범이였고 총을 들고 날뛰었다면 지금쯤 에파의 손에 벌집이 됐으리라.
"저기..부탁입니다. 부디 주인님을 죽인사람을 잡아주세요."
"하아?"
"그분은 지옥같았던 고아원의 생활을 끝내주셨고 제게는 상냥하게 대해주셨어요 바로 쫒겨났을게 뻔한 실수가 몇번이나 있었지만 인자하게 넘어가주신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제 은인같으신분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수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가 할수있는거라면 뭐든 할테니까.. 이때까지 모아놓은 봉급도 있고.."
"흐응. 돈은 넘쳐날정도로 많아서 필요 없는데..."
에파는 느끼한 눈빛으로 리에를 훑어보았다.
"보수는 몸으로 받을까..?"
"상관없습니다."
"헤에."
전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에를 보고 귀찮음이 좀 가셨는지 에파는 침대에서 일어나 리에에게 가볍게 절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럼 클라이언트, 사건 현장으로 가보시겠습니까?. 보수는 후불로 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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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텔라 마시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