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리겜 소설제]풍운! 북채선생

Lester 1 3,258
이름 : 風雲!バチお先生(풍운! 북채선생)
게임 : 태고의 달인
곡 : 링크(게임상에서의 모습보다 더 길기 때문에 40초부터 듣는 것을 권장), BGA 없음

타이코가와(太鼓川).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때 북으로 유명한 동네였다. 여기서 만들어진 북은 노나 가부키 같은 전통예술은 물론 신사나 마츠리(축제)에서도 쓰인다. 북에 이름을 써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정한 문양을 넣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북에 지나지 않지만 북을 치는 고수(鼓手)들은 몇 번 손을 대 보면 그 북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온 힘을 다해 신명나게 두들겨도 다른 북에 비해 쉽게 해지지 않으며, 미묘하지만 그 소리가 훨씬 청아하다. 그것이 바로 명기(名器)인 것이다.
그러나 전국시대를 겪는 동안 여기서 대대로 북을 만들었던 사람들 역시 피난민이 되어 여기저기로 도망갔고, 이 고장의 특산품인 북과 그 유명세는 일장춘몽처럼 사라져버렸다. 전쟁이 끝나자 각지로 흩어진 장인들이 모여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으나, 전란에 죽거나 부상당해 팔을 잃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인력이 부족하여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노쇠한 장인들을 필두로 다시 북을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전쟁 이후의 평화로움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잔치를 위해 북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덕분에 타이코가와는 다시 북의 고장으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무언가가 달라졌다. 도시 전체가 북보다는 그것을 가지고 노는 축제, 더 나아가 그 축제에 빠지지 않는 음식과 음악, 미녀로 가득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북을 만드는 작업장보다 요릿집, 유곽으로만 몰려들었고 자연히 북을 만드는 작업장은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장인들이 마을 중앙에 모여서 다같이 살며 작업을 했던 거대한 집은 이제 도시에서 가장 큰 회관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세대의 변화에 떠나간 장인들도 있었으나 새로운 장인들이 그들이 기술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마음가짐의 차이였을까. 그들은 전쟁 이전의 장인들의 기술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고, 결국 타이코가와의 북은 점차 다른 지방의 북과 별반 차이가 없는 하급으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희 스즈미야 회관의 기생들이 춤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탁자에 놓인 흐릿한 촛불로 밝히는 어둠 속에서 회관의 조장(자세한 직급은 모르지만 직원들의 팀장급)이 말하자 손님들 모두 침을 삼켰다. 조장이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방과 방을 잇는 장지문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화장을 한 미녀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춤을 췄다. 그와 함께 시종들이 재빨리 방 곳곳에 있는 등에 불을 밝혔고, 손님들은 오색찬란한 불빛 아래에서 기생들이 교태를 부리는 걸 보자 환호성을 지르거나 넋을 놓았다. 그리고 좌우에서는 악공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여 연회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거기서 북을 치는 고수들 중 한 남자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듯 멍한 표정으로 북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과 달리 그의 손은 다른 사람들과 확실히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기생들이 무대에서 내려와 손님들 사이사이에 껴 앉아서 시중을 드느라 그에게 가까이 왔지만, 다른 악공들과 달리 그는 기생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조장이 손님들과 부딪치지 않게 다가와서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 말은 자신들도 따로 마련된 조촐한 연회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얼른 달려가는 악공들과 달리 그는 따로 떨어져 나와 복도로 향했다.
“쇼고 씨는 오늘도 안 낀대요?”
한 처녀 악공이 묻자 나이가 많은 남자 악공이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 노부코. 저 녀석은 원래 저렇다구.”
“하지만 외톨이같이 행동하니까 뭔가 이상하잖아요.”
“자,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니 가서 즐기자고.”
짧은 대화를 한 뒤 그들은 쇼고라 불린 남자와 멀어져 갔다.

쇼고는 소매에서 담뱃대를 꺼내 불을 붙인 뒤 복도에서 스즈미야 회관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등불이 가득했고, 거리는 전쟁이 끝났다는 기쁨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쇼고 자신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 자신이 즐길 돈이 없어서도 아니요, 놀 줄 몰라서도 아니었다. 흥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국시대 이전, 그는 여기서 태어나 자라면서 북을 만들었던 장인들 중 한 명이었고, 전쟁 이후 얼마 전까지도 북을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설명하기엔 긴 이유로 북 만드는 것을 그만두고 한낱 악공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느니, 고자라느니 하고 듣는 사람이 무안할 말을 쑥덕거렸지만 쇼고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때, 복도 저 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기생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몇 걸음 못 가더니 난간 너머로 고개를 빼고는 먹은 것을 토해냈다. 화장을 하고도 얼굴이 좀 붉은 걸 보니 술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한참 후에야 속을 진정시킨 기생이 뒤늦게 쇼고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말을 건넸다.
“죄...죄송합니다! 계신 줄도 모르고...”
“됐소.”
쇼고가 간단히 대꾸했다. 하지만 기생은 계속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오늘 처음 들어와서...”
“그러니까 됐다고. 것보다 이름이 뭐야?”
“사...사나에요.”
그녀가 다시 사과하려 하자 쇼고는 손을 내저어서 막으며 말했다.
“좋아, 사나에.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이제 가도 좋아.“
“아, 알겠습니다!”
사나에는 가다 말고 갑자기 뒤돌아서서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쇼고는 별 관심을 다 가지는군,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짧게 대답했다.
“쇼고다.”
“감사합니다!”
신입 기생이 뒤뚱거리며 사라지는 걸 보고 쇼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래가지고 어떻게 오래 버틸는지.

“들어가게?”
쇼고가 신발을 신고 뒷문(앞문은 손님들을 맞이해야 해서 이용하기 힘들었다)을 나서자 옷가지를 세탁하는 아줌마가 밖에서 들어오다 물었다.
“그 다음 일정이 없으니 가서 쉬어야죠.”
“젊은 사람이 덩치도 좋은데 좀 어울려요. 인기 많게 생겼구만.”
아줌마가 들어가면서 한마디 하자 쇼고는 옅은 웃음으로 답례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다시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고, 놀아도 흥이 나지 않았다. 북 만드는 데만 전념하다 보니 가족도 어느새 떠나갔고, 그나마 같이 일했던 동료 장인들도 전란에 흩어진 것도 모자라 소식이 완전히 끊겨 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되니 북 만드는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놓았고, 그 때문에 기술도 점차 잊어버리던 차에 생계가 위험해지자 결국 북 치는 일이라도 맡게 된 거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건지, 뭘 해야 하는 건지 잃어버린 일종의 공황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는 회관을 나와 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연신 피워댔지만 담배가 다 떨어지자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는 담뱃대를 도로 소매에 집어넣었다. 그 때, 저 쪽 골목에서 뭔가 다툼을 하는 듯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쇼고는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무슨 일인가 궁금해져서 그 쪽으로 향했다.

“이...이러지 마세요!”
“뭐야, 남자 후리는 게 네 직업 아냐?”
쇼고가 큰 키를 이용해서 슬쩍 보니 아까 자신 앞에서 구토했던 사나에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흥미진진하다는 듯 구경만 했다. 사나에를 둘러싼 취객들 중 한 명이 그녀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자, 같이 놀지 않겠어. 너도 분명히 좋아하잖아.”
“싫어!”
그 때 별안간 큰 주먹이 날아오더니 그 남자를 때려눕혔다. 모두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쇼고가 사람들을 제치고 와서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취객들 중 한 명이 금세 술이 깼는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이 꼰대는?”
“우리 회관 직원이다. 손대지 마라.”
“지랄하지 마셔, 그냥 참견하지 말고 꺼지는 게 좋을텐데.”
그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사나에에게 손을 대자 쇼고가 그 팔을 툭 쳐서 내리며 경고했다.
“손대지 말라고 했다.”
“늙은이는 빠져!”
이번엔 취객 쪽에서 먼저 주먹을 날렸다.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던 쇼고가 얼굴로 주먹을 그대로 받아냈지만, 아까 그 남자와 달리 쓰러지지는 않았다. 취객이 의외의 상황에 놀랄 사이도 없이 쇼고는 그의 배를 발로 한 번 차자마자 앞으로 기울어진 취객의 머리를 무릎으로 찍어서 쓰러트렸다.
“이 새끼!”
다른 취객 한 명이 쇼고의 뒤에서 껴안아서 그의 팔을 비틀었다. 하지만 쇼고는 붙잡힌 상태로 뒤로 달려들어서 자신을 붙잡은 남자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벽에 부딪친 취객이 비명을 내지르며 순간 팔의 힘을 풀자, 쇼고는 얼른 그 남자를 잡아서 낮은 담벼락 너머로 집어던졌다. 딱 2초 후 담벼락 너머에서 장독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쇼고가 다른 녀석은 없나 둘러보는데 사나에가 급하게 외쳤다.
“조심해요!”
순간 쇼고는 등에서 예리하면서도 긴 고통을 느꼈다.

마지막 취객이 어느새 칼을 뽑아들고 쇼고의 등을 벤 것이었다. 쇼고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자 취객이 칼을 든 채 쇼고를 삿대질하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늙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왜 피를 보게 만드냐고. 사무라이는 제 앞길을 막는 녀석을 벨 수도 있다는 거 몰라? 죽고 싶어?!”
“쇼고 씨!”
쇼고는 등으로 손을 가져가서 만져봤다. 피가 묻어나오긴 했지만 칼을 휘두른 사람이 술에 취해 있어서인지 제대로 벤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쇼고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언제든지 북을 칠 수 있게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북채를 꺼내며 말했다.
“북은 말이다, 절대로 가죽이 빠지지 않게 꽉 매 놓아야 하는 거야.”
“뭐 어쩐다고? 크게 말해!”
취객이 술을 깨려고 노력하며 빈정거렸지만 쇼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야만 좋은 북을 만들 수 있지.”
“지랄! 어서 덤벼!”
“무슨 말인지 아냐?”
“뭔데?”
취객이 쇼고의 말에 되묻는 사이 쇼고가 달려들며 외쳤다.
“확실히 끝내두란 얘기야!”
쇼고가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오며 북채를 휘두르자 취객이 북채를 베어버릴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앞으로 날아오더니 나무 북채와 맞닿자 취객은 자신이 그걸 베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깡’ 하고 금속성의 소리가 나자 그는 매우 놀랐다. 목검을 만들 때나 쓰는 나무로 북채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취객이 들고 있던 칼이 싸구려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됐든 쇼고는 북채를 쥐지 않은 손으로 북채를 받치면서 칼을 막았고, 취객은 칼을 휘두르느라 잠시 틈을 보이게 되었다. 쇼고가 틈을 놓치지 않고 북채로 취객의 머리를 후려갈기자 그 남자는 맥없이 쓰러졌다.

“오오오!”
취객들이 모두 쓰러지자 구경꾼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쇼고는 아픈 등을 매만지며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여자였다. 사나에가 무작정 그의 품으로 안기자 쇼고가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그, 그래도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기다릴 테니 어서 집으로 가시오.”
“그보다 상처가...”
“별 거 아니오.”
쇼고는 북채를 다시 허리춤에 매달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사나에도 자기 집으로 가려다가 쇼고 곁으로 와서 그와 함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같이 가도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가는 길이 다른데?”
“사실 저도 이쪽으로 갑니다.”
“흥.”
웬일인지 쇼고가 그녀의 팔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대로 걷던 도중 사나에가 다시 쇼고에게 물었다.
“내일도 함께 걸어도 되겠습니까?”
“문제없지.”
“그 이후도요?”
“몰라.”
쇼고가 대충 대답하고는 딴 곳을 쳐다봤다. 사나에도 더 말하지 않고 계속 팔짱을 낀 채 같이 길을 걸어갔다. (終)

Author

Lv.1 Lester  3
578 (57.8%)

Leaving this world is not as scary as it sounds.

Comments

NoobParadeMarch
1. 의외성이 부족합니다. 스토리 구성 단계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거나, 연출의 부족이겠지요. 연출의 부족 쪽이라면, "북채가 단단했다"가 반전일텐데 복선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공격받을 수 있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2.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있는 스토리로 보이지 않습니다. 쇼고의 개입이라든지, 북채가 단단한 점이라든지 - 왜 그런지, 왜그래야 하는지가 드러나지 않고 다소 갑작스럽습니다.
3. 반면 곡의 분위기와 전투씬은 잘 맞아들어간다는 느낌입니다. 리겜 소설제라는 환경상 음악의 요소를 무시할 수 없는데, 확실히 "축제"라는 분위기라든지, 전투씬이라든지, 곡의 분위기와 잘 맞는 소재들로 채워져 있다.
4. 단단한 북채는 일반적으로 독자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으로, 관련된 부분을 조금만 다듬으면 반전으로서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Lester님이 시간에 쫓기고 있었던 걸까요.
5. 여담입니다만, 결국 쇼고의 근본적인 문제도, 마을의 근본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군요. 의도한 것인지, 결과적으로 그리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모든 일이 해결되어야만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도 아니기에, 크게 거부감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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