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gissmeinnicht

블랙홀군 0 2,848
*Vergissmeinnicht-물망초. Vergiss mein nicht는 '나를 잊지 마'입니다. 물망초의 꽃말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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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체가 죽은 후, 루카는 그녀의 묘에 꽃을 놓아주고 마을을 떠났다. 바보 같은 녀석, 하늘에 있는 연인이 빨리 왔다고 슬퍼할텐데.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에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그 녀석이 뛰어내릴때라도 구했더라면 어땠을까. 먼저 간 남자친구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살아야 하는거라고 했더라면. 
인간을 적대시하던 그녀였지만, 비바체의 일은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보같은 녀석... 그래도, 연인과는 만났겠지. '

며칠동안 떠돌아다닌 탓인지 배가 고팠던 그녀는 근처 마을에 들어섰다. 

"사람이 없는건가...? "

마을 안은 휑하니, 어린아이와 노인을 제외한 젊은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는 먹을 것 얻어 먹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마을 입구에 세워진 비석을 발견했다. 

「물망초 언덕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시오」

'이 마을의 명소인가보지. '

그녀는 비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갔다. 아직 봄인데도 파란 물망초들이 한가득 피어 있었고, 그 사이로 잘 닦인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가 보니 언덕 꼭대기에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수령이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아보였지만, 그래도 여기서 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것 같았다. 
나무의 옆에는 표지판이 있었다. 

'음...? '

「먼 옛날, 벨타와 루돌프는 연인이었다. 
두 사람은 강가를 걷다가 작고 파란 꽃을 발견했다. 
"꽃, 예쁘다. " 벨타가 말하자
"그럼 내가 따다 줄게. " 루돌프가 말했다. 
벨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돌프는 꽃이 피어있는 기슭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하늘은 그 꽃에 사람의 손이 닿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벨타에게 꽃을 흔들어보이던 루돌프는 갑자기 밀려오는 물쌀에 휩쓸려 갔다. 

ー나를 잊지 마!(Vergiss-mein-nicht!)라는 말과 함께...」

나무로 된 표지판의 밑부분은 잘려나가 없었다. 폭풍이라도 불었던 모양인가 보지, 그래도 글을 읽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지천에 널린 것도 물망초뿐이고, 애초에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나무 말고는 별로 볼 것도 없겠다, 그녀가 막 돌아서려던 그 때였다. 나무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는 저의 눈물」

그리고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뭐, 뭐지? 우산도 없는데- "

「바람은 저의 숨, 저의 이야기」
「가지와 잎은 저의 손」
「당신이 저에게 주신 물망초는 여기에 있어요」

거센 바람이 불다가 멈추더니, 나무 안에서 여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치 그 안에 사는 정령처럼 땅에 다리가 붙은 상태였다. 금발에 바다와 같은 푸른 눈이 아름다운 여자는 소중한 것을 받들듯 물망초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저 여자가 벨타라면 저 물망초는 루돌프가 준 것이겠지. 

"루돌프? 어디에 있어요? "
"...... 벨타? "
"루돌프...? "
"잘못 봤는데. "

그제서야 눈앞에 붕 떠있는 루카를 본 여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구곤 눈물을 흘렸다. 

"오늘도 오지 않는군요, 루돌프... "
"......루돌프? 네가 벨타인가? "
"네...... 제가 벨타예요. 이 꽃은 그이가 저에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돌아올거라고 했는데... "
"...... 잊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냐? "
"분명 그이는 자기를 잊지 말라고 했지만, 전 계속해서 기다리면 돌아올거라 생각해요. "
"...... "

바보같다. 언젠간 기다리면 올 거라고 생각했다니. 
그렇게 루돌프라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나무의 정령이 된 것일까. 나무에 깃든 그녀는 언덕 가득 물망초를 피워냈겠구나. 그 꽃들을 보고 루돌프가 자기를 기억해주길 바란거겠지. 
루카는 아예 언덕 전체가 파란색으로 보일 정도로 피어난 물망초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꽃들도 네가 피워낸거냐? "
"네. 물망초를 피워놓으면 언젠간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
"...... "
"당신은 누구신데 이렇게 떠 있는거죠? "
"...... 뭐, 너라면 말해도 상관 없겠지... 나는 레어 얼터다. 인간들하고는 다르지. "
"레어 얼터...? 당신, 그러면 인간이 아닌가요? "
"뭐- 보시다시피. "
"......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요. "
"루돌프를 찾아달라는거면 거절이다- 나라고 해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인간들보다 정보력도 약해. "
"...... "

무언가를 부탁하려던 그녀는 루카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당신이라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
"다른 레어 얼터들도 그렇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같은 건 없어. 그런 거라면 차라리 인간에게 부탁해. "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전부... 전부 그이는 죽었을거라고...... "
"너 여기에 몇 년동안 있었는지 기억은 하냐? "
"아마도... 몇십년 지나지 않았을까요...? "
"정확히 50년 됐다. 물론 살아 있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50년 전에 급류에 휩쓸린 사람을 현대에서 찾는 건 무리야. 나나 너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루돌프라는 녀석이 여기에 대한 얘기를... 그리고 네녀석이 깃든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오길 바라는 것 밖엔 없어. "
"...... "

그녀는 슬픈 눈으로 루카를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해도 더 이상은 무리야. "
"...... "

그녀는 이내 눈물을 흘리곤 나무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사실인걸.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50년 전에 실종된 사람을 어떻게 찾아? 설령 살아있다고 해도 그 때의 기억을 잊어버렸다면? 그렇게 돼면 찾아도 의미 없잖아. 
그녀는 벨타가 깃든 나무를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바보같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무리라는 걸 모르는구만... '

웬지 씁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루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후우- 이 세상에 루돌프가 한둘인 줄 아나... 으으- 그나저나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는거지? "
"손님이신가보군요. 물망초 언덕에 다녀오시는 길이신가요? "
"힉- 뭐야, 놀랬잖아. "

등 뒤에서 낯선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 마을 청년인 듯 했다. 
저녁까지 일을 하다 돌아왔는지 한 손에는 농기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감자가 든 자루를 들고 있었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그나저나... 물망초 언덕에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
"그런데? "
"그럼 벨타도 만나보셨습니까? "
"벨타...? 아, 그 나무에 깃든...? 당연히 만났지... 얼마나 바보같은 녀석인지 몰라. 루돌프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니까... "
"루돌프를...? "
"응. 50년 전에 휩쓸려간 사람을 어떻게 찾아. 설령 찾는다고 해도 기억이 온전할 것 같냐. 애초에 살아있을 가능성도 별로 없고. "
"잠깐... 루돌프라고 했어요? "
"그렇다니까. 왜 그러냐? "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청년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리고 감자 자루를 든 손에 농기구를 들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집으로 데려왔다. 

"뭐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죄송합니다. 분명 언덕에 있는 벨타는 루돌프를 찾고 있다고 했죠? "
"그렇다니까. "
"그 사람, 지금 저희 마을에 안장돼 있습니다... "
"뭐? "
"그 사람이 강물에 휩쓸려서 여기에 왔었어요. 자기를 루돌프라고 말하면서, 벨타를 애타게 찾다가 휩쓸려온 지 엿새만에 죽었습니다... 지금은 묘지와 유골밖에 남지 않았지만... "
"잠깐... 그럼, 벨타는 어떻게 여기에 깃든 정령이 된 거냐...? "
"그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벨타가 깃든 나무를 루돌프의 묘지 근처에 심을 예정이었지만, 그 근처에는 밭과 과수원이 있어서 지금의 언덕에 심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후에 벨타가 깃들었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
"...... 서로가, 서로를 잊지 않았군... 그럼, 루돌프의 묘를 이장해야 하는건가... "
"그렇습니다... 촌장님께 얘기하면 아마, 흔쾌히 들어주실겁니다. 내일 저랑 같이 가 봐요. "

정말, 서로를 잊지 않고 있었구나. 
루돌프는 죽기 전까지 벨타를 부르다가 죽었고, 지금은 그녀가 그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늘이 정말로 시샘이라도 했던 것인지 강물이 갈라놓은 인연을, 이제 다시 하늘이 이어주려는 모양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녀는 비바체의 일을 떠올렸다. 남자친구와 사귄 지 일주일만에 하늘이 시샘해 이승과 저승으로 떨어졌던 연인. 그리고 비바체는 남자친구를 따라 저승으로 가 버렸지. 

'역시 신이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란 말이지... '

다음날, 루카와 청년은 마을 촌장을 찾아갔다. 
꽤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서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초가지붕도 교체할 때가 됐는지 꾀죄죄하고,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촌장님 계세요? "
"음...? 자네가 어쩐 일인가...? "
"루돌프의 일로 찾아왔습니다. "
"루돌프...? 아, 그 청년 말하는겐가...? 들어오게나.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머리를 숙이고 집 안으로 들어섰지만, 셋이 앉기에는 꽤 좁아보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앉자, 촌장은 컵에 물을 담아 내 왔다. 

"이 분은 누구신가...? "
"마을에 온 손님입니다. 어제 물망초 언덕에 갔다가, 벨타를 만났답니다. "
"벨타를 만났다고? "
"그렇습니다.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물망초 언덕의 벨타가 찾는 루돌프의 묘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로 휩쓸려와서 엿새 후에 죽었다는것도. 그리고 벨타가 깃든 나무를 루돌프의 묘에 심으려고 했지만 공간이 좁아서 지금의 물망초 언덕에 심었다는 것 역시. "
"그... 그렇다네. 하지만, 루돌프의 묘를 이장하려고 시도하는 족족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미뤄왔던게지... "
"...... "
"그 역시 하늘의 뜻인가... "
"어쩌면 하늘은 자신의 꽃에 마음대로 손을 댄 것 때문에 진노하셨을 수도 있겠군요. "
"그 이상 진노하면 안돼는 거 아닌가? 이미 이 생에서 그들의 인연은 끝났어. 한쪽은 쓸려온지 엿새동안 연인을 찾다가 죽었고, 다른 한 쪽은 나무에 깃들어 죽지도 살지도 못 하는 채로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서 무슨 진노를 더 해? "

얘기를 가만히 듣던 루카가 물잔을 탁, 내려놓았다. 
이 전의 비바체의 일 역시도 그랬지만, 이 정도로 갈라놓았음에도 화가 안 풀린다면 그건 말도 안 돼지.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다시 물잔을 비웠다. 

"저기... "
"거기서 진노를 더 한다면 신의 자격을 박탈당해도 상관 없는 것 아닌가? 애초에 그럴 정도로 치졸한 신을 신으로 모시는 것 자체가 난 수치라고 생각하는데. "
"...... "
"후우... 이 전에 안타까운 일을 한번 겪어서 나도 모르게 격해졌지만... 이장해. 설령 하늘이 아직도 화가 안 풀려서 방해한다면 그때는 내가 가만 있지 않을거니까... "
"음... 잠깐... 혹시 벨타가 손에 들고있는 게 있었습니까? "
"루돌프에게서 받은 물망초를 들고 있었어. "
"...... 그럼 그 물망초를 루돌프의 묘에 심게 하세나. 하늘이 그 둘을 지금까지 갈라왔던 것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그 물망초에 손을 대서 그런거라네. 루돌프의 묘를 이장하고 벨타가 든 물망초를 심는다면 하늘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겠는가. "
"!!"

그 날 오후, 청년과 촌장은 루카와 함께 루돌프의 묘를 찾았다. 
묘비도 없는 봉분을 조심스럽게 파헤쳐보니, 안에는 루돌프의 유골이 있었다. 

"연인을 곧 만날거야. 하늘이 이 이상 너와 연인을 갈라놓으려 한다면, 그 때는 내가 막아줄테니까... "

루카는 루돌프의 유골을 조심스럽게 들고 벨타가 깃든 나무를 찾아갔다. 
나무는 인기척을 느끼고 또 다시 노래를 했고, 곧이어 나무 안에서 벨타가 나왔다. 

「비는 저의 눈물」
「바람은 저의 숨, 저의 이야기」
「가지와 잎은 저의 손」
「당신이 저에게 주신 물망초는 여기에 있어요」

"루돌프...? 아, 당신이군요... 그런데 그건...... "
"...... 정말 멀리 돌아와서 만났구나. "

벨타는 루카의 손에 들린 유골을 보고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유골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연인이야. 루돌프는 여기로 휩쓸려온 후 엿새동안 너를 찾다가 죽었어. 너도, 네 연인도... 서로 잊지 않고 기다려 준 덕분에 이렇게, 지금에 와서 만날 수 있게 된 거야. "
"아아, 루돌프...... "
"...... 살았을 때 만났으면 좋았으련만... "
"안타깝습니다, 벨타 씨... "

루카는 그녀에게 루돌프의 유골을 건넸다. 유골을 받아든 벨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벨타. 이제 루돌프의 무덤을 여기로 이장할거야. 앞으로는 둘이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어. "
"...... 루돌프... "
"대신 부탁이 있어. 그 물망초를 루돌프의 묘지에 심어줘. "
"이... 뮬망초를요? "
"하늘은 인간이 그 물망초에 손대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강기슭에 피운 거였어. 그리고 지금까지 너희를 갈라놓았던 것 역시 그 꽃을 네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너와 네 연인이 한 자리에 있는 대신, 그 물망초를 무덤가에 심어서 이 곷을 볼 때마다 너희를 기억하게 하면... 하늘의 분노도 조금은 누그러질거야. "
"알겠어요... 흐윽- 루돌프... 미안해요... 이제서야 만났어요...... "
"...... 미안할 것 없어. 서로, 서로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켰으니까... "

청년이 땅을 파고, 루카는 구덩이에 루돌프의 유골을 넣었다. 
그리고 촌장이 무덤의 흙을 고른 다음, 벨타는 그녀가 들고 있었던 물망초를 무덤가에 심었다. 

"고마워요. 그이를 찾아줘서... 저도 이제는 쉴 수 있겠어요... "
"......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쉬어. "

루돌프의 무덤가를 손으로 토닥인 벨타는 미소를 짓고 사라져버렸다. 
순간 휙 불어온 바람과 함께 언덕에 남은 것은 파랗게 피어난 물망초와 루돌프의 무덤, 그리고 벨타가 깃들었던 나무 뿐이었다. 

"이제 된거겠지... "
"두 사람도 이제는 편히 쉴 걸세... "

촌장과 청년도 나무를 뒤로 하고 마을로 돌아갔다. 
루카 역시 나무를 한 번 쓸어보고 언덕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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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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