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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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네로
~죽을 정도로 화끈한 맛

#1
 

홀은 손님이라는 놈들이 질러대는 돼지 멱따는 소리, 그리고 여기저기서 팁만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웨이터 놈들이 탁자 위에 식기니 그릇을 집어던지는 소리로 아주 귀청이 터질 것 같았다. 나도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호세, 빨랑 갖다 주고 와.”

카운터 너머로 투코가 퀘사디야 접시를 건넸다. 투코의 면 주방장 모자는 땀으로 절어 있었다. 냉방이라고는 고물 선풍기 정도밖에 없었는데, 홀은 그렇다 쳐도 주방 안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의 온도일 것이다. 사실 투코나 견습들 표정만 봐도 뻔한 일이었다.

“이봐, 웨이터! 주문한 지 지금 몇 분이나 됐는 줄 알아!”

저쪽 테이블에서 일 주일은 안 씻고 면도도 안 했을 놈이 외쳤다. 아직 식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의 코와 이마에 땀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다. 지저분한 셔츠의 목 언저리는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 갑니다 가요!”

“니놈 새끼들은 옥수수를 키워서 토르티야를 만드냐!”

“예, 예!”

나는 위태롭게 오르차타 잔이니 먹고 난 치미창가 얼룩으로 범벅이 된 접시를 가득 들고 오는 노땅 훌리오를 피해, 날씨만큼이나 절절 끓는 퀘사디야를 들고 갔다.

“주문하신 퀘사디야 나왔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듯, ‘지극히 평범한 서빙’을 했다. 아, 이럴 때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저 놀라는 표정 하고는.

“씨팔, 접시 던지지 마! 팁 받기 싫냐!”

털보가 소리를 질렀다.

“주는 대로 처먹으쇼.”

“뭐, 새끼야!”

나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어깨 너머로 보니 털보는 퀘사디야를 게걸스럽게 쑤셔 넣고 있었다. 오늘 저녁쯤에는 몸에 냄새가 밸 정도로 뒷간을 들락날락거리게 되겠지. 시계를 보니 슬슬 점심 영업 끝날 시간이었다.

"최고군......"

 담배나 피우거나 창고에 짱박혀서 잠이나 자려고 어슬렁거리다가, 나는 주방 안의 꼴을 쳐다봤다. 맙소사, 투코는 무슨 원수라도 다지는 것처럼 도마를 두드려 대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

투코는 한참 도마를 두들기다가 내 쪽을 쳐다봤다. 그는 자기 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뒤, 이쪽으로 향했다. 아무렴, 안 들릴 만도 하지. 나는 아직도 투코가 귀가 멀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너도 알잖아!”

투코가 소리쳤다.

"아아......"

길이 닦이면서 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 거리게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날파리들도 꼬였다. 마약 갱단들. 병신 같은 명분이나 내세워서 삥이나 뜯는 민병대 놈들. 가끔 들러서 땅이나 사재기하는 재수 없는 양키들. 투코의 문제에는 모두가 관여해 있었다. 그에게 이번 연회는 인생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렇게 고기 다지고 양념이나 칠 때가 아니라고......! 뭐 해, 새끼들아! 일 안 하고!”

 투코는 애꿎은 도마를 탕탕 쳐 댔다. 견습 놈들은 눈치만 슬슬 보다가, 그제서야 황급히 저마다의 일로 돌아갔다. 안에는 불과 절절 끓는 날씨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무겁고 끈끈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미치겠구만......"

쉬는 시간을 이런 걸로 날려버리기는 싫었기에, 나는 적당히 간을 보다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차피 오늘도 밤새도록 홀에 있어야 하니까, 이렇게 받아주다간 밑도 끝도 없었다. 잠시 눈이라도 붙이려고 나오다가, 나는 마침 옆에 나와 있던 훌리오랑 마주쳤다.

“이봐, 불 있나.”

 훌리오가 말했다. 그는 오른손에 필터 없는 궐련을 쥔 채로 매끈하게 다듬ㅅ은 염소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으면 불이라도 붙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지배인이 자기 식당에서 한번만 담배 피우는 꼴 보면 죽여 버린다고 그랬잖슴까.”

“자기도 뻑뻑 피우잖아. 엿이나 먹으라고 그래.”

훌리오가 킬킬거렸다.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기괴한 웃음을 한가득 띄웠는데, 항상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턱수염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충동을 참으며 나는 주머니를 뒤져 성냥을 꺼낸 뒤, 놈의 끄트머리를 내 부츠에 대고 북 문질렀다. 불꽃이 일었다. 훌리오는 내 손에서 성냥을 나꿔챘다.
“불 여씀다. 뭐가 그리 급하신지......”

“안 피우는 놈이 알 리가 없지.”

훌리오는 궐련을 입에 문 채로 불에 갖다 댄 다음, 한 모금 빨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구만. 내일 연회 준비는 잘 되어 가나?”

“잘 되어 가다마다요. 덕분에 아주 죽겠슴다. 일은 일대로 하고, 연회 준비는 또 연회 준비대로 하고......”

“혹시 또 아냐. 일이 잘 성사되면 돈푼이나 찔러 줄지.”

“글쎄요. 저는 먹고 살기만 하면 족함다.”

나는 그가 떠드는 소리도 듣기 싫었기 때문에, 대충 뒤로 슬슬 빠졌다. 음식이 맛있는데 연회가 실패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물론 그건 큰 오산이었다.
 

#2
한참 좋은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거칠게 흔들었다. 나는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해 끈적끈적한 눈을 떠서 주변을 봤다. 제기랄, 드디어 내 낮잠 장소가 들통 났군.

“이봐, 호세, 일어나!”

나를 깨운 건 훌리오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평소의 느물거리는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일어나서 허겁지겁 식당 쪽으로 뛰어가다가, 그쪽에서 총성과 비명소리가 들렸다. 총성은 몇 번 더 울리더니, 완전히 잦아들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래!”

뒷문으로 슬금슬금 들어가자,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 사람 몇이 널브러져 있었고, 집기니 뭐니 다 박살나 있었다. 불한당들이 저마다 엽총이며 리볼버, 정글도를 들고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오늘부터 여기는 우리 차지다.”

앞에 있던 놈이 말했다. 놈의 얼굴 한 가운데에 깊이 파인 상처를 보고서야 나는 저 깡패 새끼가 뭐 하는 놈이었는지 떠올렸다. 여자나 애들도 꼴리는 대로 쏴 죽이는 정신병자 군벌 엘 콘도르와, 그보다 나을 거 없는 패잔병 놈들이었다.
“내일이면 중요한 연회가 있소! 그건......”

지배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꺼냈다. 너무 땀을 많이 흘리고 있어서, 나는 누가 그에게 양동이로 물이라도 퍼부은 줄 알았다. 

“하, 씨발 새끼들. 말 참 안 듣네.”

지배인은 결국 말을 맺지 못했다. 총성과 함께 바닥에 흩뿌려진 자기 뇌수 위에 넘어졌으니까. 그의 눈가에서 땀인지 눈물이 흘러내려, 핏물과 섞였다. 엘 콘도르는 아직도 초연이 피어오르는 총을 옆에 있던 부하에게 던져 줬다.

“저 새끼처럼 되고 싶은 놈 있으면 또 나와 봐.”

엘 콘도르가 말했다. 침묵만이 자리 잡았다. 옆에서 투코는 이를 박박 갈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개판이 되었는데도, 보안관인지 비역쟁이인지 모를 존슨 놈은 오지도 않았다. 지금쯤 손 벌벌 떨면서 밀주나 마시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없는 걸로 알지. 뭘 야려봐? 머리통 온전한 채로 나가고 싶으면 눈 깔어.”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훌리오가 말했다. 그 역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이야기는 끝났어. 당장 꺼져!”

결국 주방에 있던 나와 투코도 밖으로 끌려 나가고, 레스토랑의 문은 굳게 닫혔다. 마을 최고의 레스토랑 하바네로는 오늘로 마지막 영업을 끝냈다. 모두들 망연자실한 눈으로 레스토랑 정문만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투코가 말했다.

“이젠 몸값은커녕 빚도 못 갚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투코는 내 멱살을 잡았다. 그는 정말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네가 뭘 알아?! 빚쟁이 놈들이 내가 이번 달 돈은 갖다드리기 어려울 것 같군요, 라고 이야기하면 그래,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처자식 걱정은 하지 말거라. 고 할 것 같아? 저 사막 모래 밑에 묻힌 시체만 해도 수십 구야. 물론 다 능력 없는 가족들 덕분에 그렇게 된 거지. 씨팔......”

투코는 계속 욕을 내뱉다가, 내 멱살을 잡던 손을 풀었다. 우리는 모두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돌아갔다. 나는 지금까지 레스토랑에서 숙식을 해결했던 탓에, 문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막 근처의 밤은 추웠다.
 

#2
 

보안관 사무실 안은 나태함에 찌든 냄새가 났다. 나와 훌리오 앞에 앉아 있는 보안관 존슨은 범죄자를 쫓기보다는 남자 꽁무니를 쫓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작자였고, 무엇보다 더러운 그링고*였다. 마을이 이렇게 개판이 된 것에는 그의 책임도 없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백인을 말함.

“미스터 존슨, 우리 식당이......”

“몇 번이나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어린애들도 아니고 떼쓰는 것도 적당히 좀 하십쇼.”

존슨이 말했다. 그는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 몹시 피곤해 보였다.

 “우리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요. 식당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요.”

 훌리오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백인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어디선가 피 묻은 돈이라도 받아 챙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링고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 뒤로 푹 드러누우며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나도 일찍 관짝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소. 식당 일은 유감이요. 들어가 보시오.”

 “빌어먹을!”

 훌리오는 나오며, 옆에 있던 배럴을 걷어찼다.

 “이래서 그링고들은 안 돼......”

훌리오가 중얼거렸다. 나도 덩달아 암담한 심정이 되었다. 투코도 투코지만, 이 마을에서 레스토랑을 제외한다면 먹고 살 방법이라고는 없는 상황이었다. 빚쟁이, 현상범, 군벌 잔당,  보안관까지. 우리 같은 놈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까......”

“없어. 죽기 싫으면 집어치워.”

내 말에, 훌리오가 대꾸했다. 투코는 아까부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젠 다 끝났어...... 이봐, 투코. 최근 사는 건 어때.”

“이거.”

투코는 품 속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더러운 천으로 싼 것을 풀어서는, 우리에게 보여줬다. 들고 있는 건......비현실적일 정도로 시퍼런 조각이었다. 사람의 부속지보다는 고깃덩어리에 더 가까워 보이는 시퍼런 손가락. 가운데에는 뭔가 눌렀던 자국까지 있었다. 잘려나가는 순간까지 끼고 있을 무언가.

“어떻게 할 거야.”

“지금이라도 쳐들어가서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겠어.”

투코가 말했다. 그의 눈은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개죽음만 당할 뿐이야. 치안유지 명목으로 놈들이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기억나나? 군벌 놈들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엄한 우리한테 빼앗은 엽총으로 실적을 올리러 갔지. 이봐 투코. 결혼은 또 할 수 있어. 하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라고.”

훌리오가 떠들어대자, 투코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훌리오의 이빨 한 두 개가 바닥에 먼지랑 섞여 나뒹굴 거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투코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꺼져, 훌리오. 지금까지는 댁이 우리보다 나이도 많고 그래서 참았는데,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모가지를 뽑아서 똥구멍에 쑤셔 넣어 주겠어.”

투코가 씹어뱉었다. 훌리오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봐, 투코. 들어봐.”

"뭘 들어보라는 거야. 너랑은 관계 없는 이야기니까 가봐.“

“분명히 총은 우리가 손에 넣을 방법이 없어. 하지만 폭약은 상대적으로 느슨하지.”

“뭐?”

“폐광산에 가면 아직도 쓰다 만 다이너마이트니 화약이 나뒹굴고 있다고. 보안관 놈들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건 하나도 몰라.”

“아, 확실히 그랬지.”

훌리오가 말했다. 그는 투코의 눈치를 슬슬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랑 관계 없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아니야. 놈들은 내 유일한 생계를 앗아갔다고. 내가 음식점 서빙 말고 이제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어?”

“젠장, 본론만 말해.”

 나는 내 계획을 늘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훌리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그리고 투코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호세, 네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 치고는 제법 그럴싸 하구만.”

 “그래서? 이건 병신 같은 소리야. 나는 그놈들 똥꼬나 빨아주면서 기다릴 생각 따윈 없어. 그리고 계획이 성공한다고 쳐도,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은 죄다 죽을 텐데? 누군가는 건물 안에서 시간을 끌어야겠지.”

 투코가 말했다. 그는 그대로 자기 집도 아닌 방향으로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그를 붙잡았다.

 “제기랄, 투코. 이건 유일한 기회라고!”

 “만일 성공한다고 치자. 그 다음에는 어쩔 거냐? 너희는 왜 이러는 건데? 그래봐야 누명만 더 뒤집어쓰겠어?”

 “널 위해서야, 투코.”

내 말을 듣고, 투코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원래의 단춧구멍만한 눈으로 돌아갔다.

 “웃기는 소리들 하지 마. 무슨 꿍꿍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날 생각한다면 집어 치워. 특히 당신, 훌리오.”

 “이것 참 섭섭한 소리군 그래.”

 훌리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빙글빙글 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투코가 옳을지도 몰랐다. 나는 단지 내 복수를 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그럼 건강해라."

 투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리고 주인공이 빠진 채, 인욕의 한 달이 흘렀다.
 

#4
 
“이제야 좀 고분고분해진 것 같군.”
 
엘 콘도르가 말했다. 나는 그에게 걸맞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과 굴욕이 있었던가. 그와 똘마니들이, 원래 우리 집이었던 곳에 앉아 있었다.
 
“......”
 
“그래, 한 달 전이랑은 눈빛부터 다르구만. 봐, 얼마나 좋냐고. 이게 바로 윈윈이지.”
 
엘 콘도르 놈이 말했다. 주위에 있던 따까리들이 바보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예, 그렇습죠.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
 
“너, 최근 존슨이랑 붙어 다니던데. 설마 둘이서 비역질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농담이야, 농담! 어차피 존슨 그 새끼는 호모새끼답게 아스파라거스만도 못한 물건을 가졌을 테니 상관없겠지. 어젯밤은 즐거웠나?”
 
“농담도 심하십니다, 나으리.”
 
“오늘 메뉴는 뭐지?”
 
“특제 몰레를 곁들인 퀘사디아입니다. 요리 하는 친구는 개인 사정으로 이 마을을 떴지만, 그래도 그 친구보다 괜찮은 요리사가 있더군요.”
 
반만 맞는 소리였다. 투코보다 나은 요리사는 유카탄 반도 전체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받아, 조심스럽게 날랐다. 펄펄 끓는 퀘사디아 접시. 놈들은 어딘지 불쾌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볼까.”
 
놈들이 열심히 식사하는 동안, 기다리고 있던 훌리오가 창고에 식자재로 속여서 갖다 놓은 도화선에 불을 붙일 것이었다. 놈들은 디저트는 저 세상에서 먹게 되겠지. 놈들이 한참 음식 맛을 보고 있는 동안, 종업원 일동과 나는 유유히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
 
수십 개의 총구가 나를 겨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아차렸지?
 
“개수작 집어치워. 그거 바닥에 얌전히 내려놓고, 무릎이나 꿇으시지. 딴 새끼들은 뒈지기 싫으면 다 나가!”

그들은 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 훌리오는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건 오해요 나으리.”
 
“아닌데? 여기 있는 친구는 너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더군.”
 
“유감이군, 호세.”
 
훌리오가 재수없는 염소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뒤에서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뒤에서 따까리 하나가 정강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퀘사디아 철판이 바닥에 엎질러지며 엉망이 되었다.
 
“훌리오? 이 후레자식!”
 
“꿇으란 소리 안 들리냐?”
 
“배신자 새끼......부끄러운 줄 알아, 노땅.”
 
다음 순간, 얼굴 반쪽이 불타는 것 같은 격통이 찾아왔다. 멀쩡한 눈에 보이는 건 발뿐이었다. 방금 변소를 다녀왔을지 피웅덩이를 지났을지도 모르는 지저분한 장홧발. 너무 아파서, 나는 퀘사디아에 고추를 좀 덜 넣을 걸 하고 후회했다.
 
“아아아아아아악!”

“시끄러워, 이 자식아!”
 
“훌리오, 이 개새끼......어떻게 당신이 이럴 수가 있지? 투코한테 부끄럽지도 않나?”
 
“노후를 걱정할 필요도 생겨서 말야. 어차피 마을에 돌아오지도 않을 놈한테 미안할 건 또 뭐가 있겠나. 이 친절한 신사 분께서 내게 한몫 챙겨 주신다고 그랬거든.”
 
“씨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나?”
 
“정성들여 차린 상이니, 실컷 퍼먹고 배탈이나 나서 뒈져버려라, 좆같은 새끼들아. 몰레에는 내 똥오줌도 들어갔으니 열심히 음미해 보시라고.”
 
“새끼, 마지막까지도 말 참 똥같이 하네......”
 
“그 새끼 끌고 나가서 치워. 시체는 개한테 먹이로 주고.”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세상이 끝장나기라도 할 것 같은 총성이 울렸다. 다행히 나는 바닥을 핥고 있었던 덕분에 무사했지만, 다른 놈들은 아니었다. 바닥이 시뻘겋게 물들고, 이어 얼굴이니 가슴팍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시체들이 널브러졌다.
 
“뭐야!”
 
“제기랄, 피해!”
 
“아아아아아악!”
 
“이 개----”
 
익숙한 목소리였다. 주방에서도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 물론 이 총성 너머서도 들렸다. 하지만 나도 유탄에 맞아 죽게 생긴 판이라, 마냥 반가워할 판은 아니었다. 나는 급한 대로 내 얼굴을 짓밟던 놈의 시체 밑에 기어들어갔다. 다행히 투코도, 놈들도 내가 뭘 하는지는 신경도 못 쓰는 것 같았다.
 
“놈을 죽여!”
 
총성이 계속 울렸다. 유탄이 위의 시체를 때리는지, 간헐적으로 누가 나를 계속 바닥에 패대기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끼들아아아아아아!”
 
“내 노후가...... 내 꿈이......”
 
옆에 훌리오가 엎어져서 중얼거리다가,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는 평소의 뻔뻔한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표정으로 죽어 있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한 놈이잖아! 뭐 하는 거야!”
 
엘 콘도르가 소리 질렀다. 저 멀리서 투코가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총성은 빈도만 줄어들었을 뿐, 멈출 줄 몰랐다.
 
“그게, 으아아아아악!”
 
“젠장, 이딴 곳에서 뒈지다니......”
 
가슴팍에 바람구멍이 뚫린 엘 콘도르를 마지막으로, 총성은 힘이라도 빠진 것처럼 잦아들더니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시체들을 헤치고 일어나, 상황을 살폈다. 가게는 완전히 개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문에는 투코가 서 있었다.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의 몰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처참한 꼴. 그의 옆에는 구닥다리 카트 위에, 총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개틀링 포 하나가 얹힌 물건이 서 있었다.
 
“투코? 투코! 정신 차려!”
 
나는 그를 일으키려다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맥박이 없었다. 뻣뻣하게 굳은 그의 손은, 마지막까지도 개틀링의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다.
 
“오 맙소사, 투코, 투코......”
 
멀리서 개 짖는 소리와, 사람들이 소리치는 게 들렸다. 이젠 다 지긋지긋했다. 군벌도, 보안관 놈들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얼굴 반이 뭉그러진 날백수가 살아갈 방법은 정해져 있겠지. 하지만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라도 좋았다. 나는 반쯤 눌러 붙은 얼굴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저린 다리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너희는 포위됐다! 얌전히 투항해라!”

놈들은 빨리도 와 있었다. 맨 앞에 허리띠 차고 오는 것도 까먹은 존슨 놈이 보였다. 횃불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스무 명은 될 거였다. 최소한 총으로 무장했을 스무 명. 저마다 총이니 뭐니 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 나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하고 모가지는 아까운 개자식들. 헛웃음이 나왔다. 만일 놈들에게 잡히면, 즉석으로 누명을 뒤집어쓴 뒤 사형私刑을 당하고, 모래 이불이나 덮게 될 것이었다. 나는 놈들의 말을 무시하고, 창고 쪽으로 갔다.
 
“훌리오 자식......”
 
나는 구석에 쌓여 있는 포대더미 하나를 주머니칼로 찢어 열었다. 안에서 시커먼 가루와 함께 너트니 볼트, 그리고 못이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아직 치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오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
 
밖에서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전부 끝낼 때가 왔다. 구질구질하게 혼자 갈 생각도 없었다. 혼자 목숨으로 끝내기에는, 놈들에게 진 빚이 너무나도 많았다. 남은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마을 최고의 식당 하바네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중얼거리며, 성냥을 한 움큼 꺼내, 부츠에 대고 슥 그었다. 불꽃이 일어났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여러분이 좋아해 마지않는 엔칠라다, 치미창가, 그리고 퀘사디아입니다...... 뭘 먹건 간에......”
 
문을 부수고 들어왔는지,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성냥 다발의 불꽃이 대를 태우고 내려오며, 손가락까지 핥았다.
 
“죽을 만큼 화끈한 맛이 특징이지요.”
 
“당장 손에 들고 있는 거 놓고...... 뭣이!”
 
놈들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의 표정이 번졌다. 존슨 놈의 눈은 너무 크게 벌어져서, 꼭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걸 감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그대로, 포대더미에 성냥다발을 던졌다.

==
묵힌다고 해서 다 좋은 술이 되는 건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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