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SF 단편] - 열역학

Loodiny 3 3,061

 네, 응시번호 137644번, 존 타이터 씨 맞으시죠? 네? 응시번호가 안 맞으……아, 죄송합니다, 트랜스레이터에 기수법 자동 번역 기능을 꺼 놨네요. 은하 공용 기수법은 10진법, 아니 잠깐 이게 왜 이래? 그래요, 8진법이니까 보니, 웬만한 기술자들도 알아서 8진법으로 변환해 주거든요. 응시번호 49060번, 존 타이터 씨 맞으시죠? 출신 행성은 테라(Terra), 종족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성적으로는 방출계 단형(Staminian-S)¹. 태어나신 지 약 671088640 우주초² (5*8^9 우주초, 현재 단위로 806836450 초 정도) 정도 되셨다고 하셨죠? 아, 한참 더 사셨군요, 예. 하지만 결국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기준으로는 젊은 축이지 않으십니까? 아마도 그래서 이런 ‘황당한’ 곳에 지원하신 것이겠지요.

 저기,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아미노산 D형, 탄수화물 L형 맞죠? 아, 반대인가요? 그냥 냉수면 되겠습니까? 네, 그럼 물 한 병 좀 부탁할게요, 메인 컴퓨터.

 네,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대충 보입니다. 대체 이 회사가 뭐 하는 곳이기에 하는 일도 비밀, 심지어 33554432 우주초(2*8^8우주초, 현재 단위로 40341823 초 정도)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 입사 테스트를 보는가……. 상당히 긴 이야기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입사 테스트를 통과한 당신이라면 이런 이야기에도 도망가지 않을 거라 믿어봅니다. 집중하고 잘 들어주세요, 당신이 자원한 곳, 즉 ‘엔트로피 기사단’의 역사와 목표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지금으로부터 머나먼 미래, 어딘가에 노우레기 족 한 명이 있었습니다. 시제가 조금 이상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수 있을 테니까. 네, 노우레기 족 한 명이 있었습니다. 당신도 잘 아는, 그 다리 많은 노우레기 족이요. 어디에나 있을 법하죠?

 그런 노우레기 족이, 넘어졌습니다. 그 다리 많은 노우레기 족이 말입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사실입니다. 고무 밴드, 리모컨, 재미없는 무협지 한 권, 모노폴 한 컵을 들고 넘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새끼발톱이 부러지고 말았죠.


 그리고 그 순간, 은하계 최초의 영구기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네, 물론 저희가 모든 은하계를 분자 단위까지 샅샅이 뒤져보지는 않아서, 어딘가에는 그보다 먼저 영구기관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견되지 않았고 사용되지 않은 영구기관이라면 있으나 마나잖습니까. 그래서 ‘최초의 영구기관’이라는 말을 쓴 거니까 이상하다는 표정 짓지 마세요.

 네? 그게 아니라 영구기관이 제작된 게 이상하다고요? 아니죠, 잘 생각해 보세요. 노우레기 족의 새끼발톱에서 일어난 생화학 반응이 재미없는 무협지의 싸구려 종이 사이사이에서 생겨나는 반데르발스 힘과 반응하고, 그 과정을 모노폴이 증폭시키고 그 에너지가 리모컨을 통해 고무 밴드에 전달되면 고무 밴드의 탄성력이 가해진 힘보다 더 커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영구기관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행성 하나를 날려먹은 건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구기관의 에너지만 있다면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 행성의 원자 하나하나를 전부 되돌려 행성을 조립, 복원하는 것도 불가능이 아니니까요. 영구기관 자체도 그닥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영구기관을 만드는 데마다 새끼발톱 하나를 부러뜨려야 한다면 생산할 수 있는 영구기관의 수는 한정됩니다. 결국 영구기관은 부자들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재생 시술이라는 게 개발되기 전에는 말이죠.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부러질 새끼발톱을 빠르게 재생시킬 수 있는 걸 보자마자, 수많은 다성계 대기업들은 재빨리 생산시설을 갖추어 영구기관을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서 신기술도 계속 도입했습니다. 포드 프리펙트라는 자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개발했죠.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저중력 재배 바나나이끼 열매 껍질보다 마찰이 줄어든 컨베이어 벨트가 균형 감각이 뛰어난 노우레기 족을 넘어뜨리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알아챈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의 은하 네트워크 소설 사이트들을 개설해서 재미없는 무협지들이 계속 찍혀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영구기관은 대중화되었습니다. 약간의 돈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영구기관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구기관을 사용하면 무한대의 돈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요. 어떤 일이든지 가능할 만큼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취미로 행성으로 당구를 치는 사람들이 대거 우주교통법 위반으로 기소될 정도였으니까요.

 행성의 원자 하나하나를 재조립해서 낙원을 만들고, 별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항성들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고, 망자의 구성성분을 다시 되돌려서 죽은 사람마저도 살릴 수 있는 세상. 영구기관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천국이었습니다.


 물론 그를 위해, 막대한 에너지가 사라졌고요.


 그럼 묻겠습니다. 사용한 에너지는 어디로 가나요? 네,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형태가 변할 뿐입니다.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더 이상 쓸모없는 형태로, 폐열로 변해 버립니다. 영구기관은 매연처럼, 증기처럼, 자우그 족의 생체 공장이 토해내는 불쾌한 오물처럼 폐열을 뱉어냈죠.

 그리고……우주는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끝없이 뜨거워졌습니다. 말하자면『우주 온난화』일까요.

  절대영도에 가까웠던 우주는 꾸준히 온도가 올라갔고……결국, 별들조차 녹아버릴 만큼 온도가 올라갔습니다. 녹아내리는 별들 앞에서 사업가들은 비명을 질렀죠. 영구기관을 내장한 에어컨이 미친 듯이 팔려 나가고 있었거든요. 물론, 에어컨이 팔리면 팔릴수록 우주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에어컨을 더 강하게 틀었죠.

 

 과학자들은 이를 보고 어이가 시공 바깥으로 날아갔습니다. 특히 ‘어이’를 뇌 위에 탈부착이 가능한 신경 세포 집합 형태로 가지고 있는 허얼 족의 ‘어이’ 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을 연구하는 데 적합했습니다. 온 우주의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세밀히 관찰하여 결국 타임머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이미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들여서 현실을 뜯어고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어찌 됐든 상관없는 이야기였죠.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결국 플랑크 온도까치 치솟은 우주의 열기에 의해 모든 원자들은 물론 영구기관마저 파괴되기 시작했을 때, 환경운동가들이 뒤늦게 영구기관의 사용 중단을 촉구했을 때, 과학자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세 시간 동안 연구소 구석구석을 뒤져 타임머신의 키를 찾았고, 한 과학자에게 미래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타임머신에 시동이 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가용에너지를 총동원해 시간을 거슬러 올랐습니다. 영구기관이 만들어졌던,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그 과학자는 연설에 능숙했고, 현명했습니다. 자신이 타고 온 것이 타임머신임을 증명하고, 영구기관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했습니다. 사람들은 영구기관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절대로 영구기관을 연구하거나 설계하지 말자는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일이 그것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람들에게 있어 타임머신은 영구기관 이상으로 흥미로운 대상이었던 겁니다. 곳곳의 물리학 연구소는 미래에서 타임머신이 전송될 때 일어난 현상들을 토대로 자신들의 타임머신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것이 양산되어 각 가정에 널리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당장에 양산이라고 해 봤자 타임머신을 탄 다음, 타임머신을 타기 전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이 타고 있는 과거의 타임머신을 들고 돌아오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무한히 늘어난 타임머신은 순식간에, 심지어 고객이 타임머신을 주문하거나, 타임머신이 생산되기도 전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들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형벌불소급의 원칙 때문에 법이 제정되기 전의 과거로 가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형사를 따돌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포기할 수도 없었던 것이, 그랬다간 실적에 눈이 먼 형사들이 연말이면 타임머신을 타고 의류가 발명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 수많은 원시 종족들을 풍기문란으로 연행해 올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어떤 바보가 그 장난을 생각해 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간대로 가서, 그 시간대의 자신을 데려와 자신 대신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폭행하거나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갔을 뿐만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다른 시간대에 넘기는 밥벌레들이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한히 늘어났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이 우주는 결코 충분히 풍요롭지 못했습니다. 식량을 소모하는 속도는 다른 시간대에서 식량을 배송해오는 것보다 훨씬 빨랐으니까요. 모든 행성에 있는 풀 한 포기, 우라늄 한 조각, 정신 에너지 한 모금을 다 먹어버린 그들에게 참혹한 기근이 닥쳤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은 자는 극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왔던 그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위대한 열역학의 법칙을 거스르려 하는 모든 시도는, 결국 이 우주에 파국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그는 살아남은 과학자 동료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뜻을 밝혔고,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자들을 모아 기사단을 설립했습니다.

 기사단의 목적은 단 하나. 열역학의 법칙을 위배하는 모든 발명과 현상을 차단함으로써 이 우주를 지키는 것. 타디스, 드로리안, 덴라이너, 타임 코스모스, TPDD, 전화 레인지, GN드라이브, 큐베, 노심, S2 기관, 모멘트……그 외 수많은 타임머신과 영구기관을 우리는 역사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사단은 수많은 시간대에서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왔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시간대에서 활동해 왔었었고, 활동해 왔었는 중이며, 활동해 왔어 올 것입니다.

 이제 당신도 우리의 일원이 되어 이 우주를 지키게 될 겁니다. 524288 우주초(2*8^6 우주초, 현재 단위로 630341초)의 신입 교육이 끝나고 나면, 당신은 당신의 종족이 우주로 진출하기도 전이었던 먼 과거의 고향, 테라로 파견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설명 드리죠.

 그러면 사원 숙소 방을 먼저 배정받으시길, 동지여.



1) 은하계 전체의 지적 생명체 중 절반 이상이 인류와 비슷한 성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종족 전체에서 번식 기능을 가진 개체가 극히 드물거나, 성별이 세 가지 이상 존재하거나, 어류처럼 체외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방출계(放出系)란, ‘Stamimi-’ 라는 접두사에서 보듯이 꽃의 수술처럼 체외로 유전 물질을 방출하는 방식으로 생식하는 개체에 해당하는 분류이다. 단형(單形)이란, 전체 종 내에서 방출계에 해당하는 성 카테고리가 하나라는 것(Sole)을 의미한다. 인류는 일생 중 성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변이형(Trans)은 붙지 않았다.

2) 우주의 모든 종족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단위는 가장 기초적인 물리학 상수인 광속과 플랑크 상수에서 유래한 ‘플랑크 시간 ≒ 초’ 이며, 이를 토대로 1 플랑크 시간의 배 ≒ 1.20228 초가 ‘우주초’ 로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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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Loodiny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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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레나
히치하이커 5권에서 인피니딤 엔터프라이즈가 새로운 안내서에대해 설명하는거랑 4권 부록에서 공무원들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우주선에대해 설명하는 파트를 합친것같네요
Loodiny
비슷합니다. 히치하이커 보고 쓴 거라서요.
Caffeine星人
재밌게 읽다가 "타디스, 드로리안, 덴라이너, 타임 코스모스, TPDD, 전화 레인지, GN드라이브, 큐베, 노심, S2 기관, 모멘트……" 대목에서 급뿜.

유쾌한 글이네요. 저도 저렇게 즐거운 글을 써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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