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erholic-Death In Exams(2)

Lester 3 2,963
Death In Exams-시험 속에서 죽다



"뭔가, 존. 여태껏 아무런 연락도 없더니만. 아쉬울 때만 찾는 겐가?"
나이가 많은 남자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자 존은 큭큭 웃었다.
"네, 아쉬운 게 있어서 찾았습니다. 우리 관계가 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뻔뻔하군. 것보다 나는 왜 네 전화를 받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끊어버리거나 안 받아도 되는 건데 말야. 나이를 먹으면서 망령이 들었나."
속 보이는 줄 알면서도 존이 늙은 전화상대를 달랬다.
"망령은요, 인정이 많아지신 거죠. 영감님이 자비로워지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계속 떠들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전화 끊기 전에 원하는 걸 이야기해 봐. 어짜피 질문이라고 해봐야 정해져 있겠지만."
"하하, 한 방 먹었네요."
존의 입이 정말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그래, 최근에 들어온 일거리 없어요?"
"일거리야 많긴 하지만, 내가 자네랑 거래한 지가 벌써 얼만가. 자네가 어떤 일거리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없군요?"
존이 착잡한 투로 물었다. 길바닥에 채이는 변호사보다 더 많은 게 범죄자고 범죄자보다 더 많은 게 일반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반인들이 범죄자에게 용건을 부탁하진 않았다. 물론 사회에는 좋은 일이었지만, 존처럼 범죄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겐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영감이 툴툴댔다.
"말을 하면 끝까지 듣게. 난 일이 없다고 한 적은 없다구. 그러니까 자네 성격에 안 맞는 일이라도 하겠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우리 위대하신 휘태커 씨께서 늙은이의 말 따윈 귀담아듣지 않으려-"
"네네,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네요."
범죄자라고 해서 예의도 모르는 막되먹은 놈은 아니었다. 이해관계라면 아무리 더러워도 웃는 얼굴로 마주하는 게 이 바닥이었다. 물론 존이 영감님에게 친하게 대하는 건 이해관계라기보다는 오랜 동료 관계여서 그랬다. 어쨌든 영감님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는지 존에게 말했다.
"뭐, 계속 강조하지만 큰 건은 아닌데. 괜찮겠나?"
"지금은 아무 일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친구 딸내미의 운전기사 노릇을 계속하다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키겠어요."
"아아, 클린트네 딸내미?"
예전에 존이 몇 번 언급한 것과 상관없이 영감님 역시 리넷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프라임 시티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정보원 중 하나이니까. 그리고 존이 몰랐던 사실이지만 사실 클린트는 영감님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클린트는 프라임 시티가 아닌 안젤리카 시티의 경찰이었는데, 경찰측 정보를 유출한다는 건 분명히 용납되지 않을 행동이었으나 법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신속히, 몰래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었다. 존은 직업이 직업인지라 클린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대의명분'을 듣게 되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경찰은 시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그런데 말야, 범죄자들 중에는 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녀석들이 존재해. 다들 아는 대로 정치가나 조폭들이 그렇지.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데도 별로 언급이 안 되는 녀석들이 있어. 누군지 알아? 바로 청소년하고 외국인들이야. 뭐 미래의 새싹이니 다문화니 하면서 존중하는 건 다 이해한다구.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덕분에 걔네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잠깐의 일탈이니 탄압이니 주절댄다고.
동양의 어느 나라 운전사하고 우리나라 운전사하고 사고가 나서 나한테 합의를 봐달라고 요청한 사람들이 있었어. 정황을 보니까 동양 사람 잘못이 확실했어. 하지만 그 사람이 고국의 가족이니 뭐니 눈물콧물 다 흘리길래 나는 우리나라 운전사더러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했지. 상대방도 관대하게 받아들여줬고.
그런데 그게 실수였던 거야. 2주일 뒤에 신문을 보니까 그 동양 운전사가 또 사고를 냈더라고. 그것도 음주운전. 상대방이 제대로 화났는지 결국 동양 운전사는 큰집에 갔어. 난 거기까진 괜찮았어. 그런데 당시 사건을 맡았던 동료가 동양 운전사가 내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 경찰 말로는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해서 그랬다'라고 전하더라고. 물론 그 친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간단히 씹고 넣었지만. 내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을 넘길 순 없잖아?"

"그런데, 걔가 왜?"
"지 애비를 닮아서 경찰인지 탐정인지 되겠다고, 제 주변을 들쑤시잖아요. 생각 같아선 그냥 닥치라고 해 주고 싶은데, 친구 딸내미라 그럴 수도 없고."
"동업자라서 그렇겠지."
"저 그렇게까지 쌀쌀맞은 사람 아닙니다?"
영감님이 놀리자 존이 바로잡았다. 영감님이 말했다.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하지 말고 차라리 그냥 말해버리는 건 어떤가? 가끔은 정공법이 특효약이거든."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것보다 일의 내용은 뭐죠?"
"내 정신 좀 봐. 나이를 먹으면 이렇다니까. 큰 문제는 아니야. 자네가 있는 안젤리카 시티의 제5고등학교의 학생이 의뢰한 거라네."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살인청부랍니까?"
"내용을 들으면 더 어이가 없어질걸. 이번에 중간고사를 보는데 자기 반 학생 중에 교사랑 결탁하는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녀석이 있다고, 그 쪽을 조사해 달래."
"…허허, 참."
존은 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 일, 할 건가, 말 건가?"
"해야죠.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것보다, 그거 의뢰한 녀석, 혹시 리넷은 아니죠?"
"그러면 자네가 리넷한테 들킬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아, 그렇네요."
문득 리넷이 정말로 사실을 알고 존한테는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걸 숨기기보단 당당하게 따질 터였다.
"자세한 사항은 자네가 늘 찾아가는 곳에 맡겨 놓겠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존은 클린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리넷은 금세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존이 윗층에 대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리넷!"
"왜, 삼촌?"
리넷이 창가에서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존은 다시 집 밖으로 나가서 말했다.
"시내 나가서 친구들 만나고 올 거니까, 집에 있어. 어디 안 나가지?"
"안 나가!"
"약속도 없어?"
"있는데, 나가지 말라며!"
"아냐, 나가도 돼. 삼촌이 시내까지 못 태워다 준다고 얘기하려고 그랬지."
"나도 버스 탈 줄 알아!"
리넷이 손에 든 토끼소녀 인형을 던지려는 시늉을 하자 존은 장난으로 얼른 두 손을 모아서 받으려 했다. 리넷은 그 모습이 어이가 없었는지 고개를 집어넣고는 창문을 닫았다.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차를 빼서 시내로 향했다.

======================================
조아라에서 연재하는 그레이 스트리트(Gray Street)와 같은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소설이라고 얘기를 했던가요? 그레이 스트리트에서의 사건을 여기서도 언급하긴 했는데 여기 분들은 조아라에 잘 안 가시니 모를 수도 있겠네요. 1편에서 '마약전쟁' 운운했던 게 바로 그 내용이었습니다만...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여기로 가셔서 에피소드 #4(63~74회)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리넷이 손에 든 토끼소녀...이건 무엇에 대한 언급인지 눈치채셨나요?

Author

Lv.1 Lester  3
578 (57.8%)

Leaving this world is not as scary as it sounds.

Comments

Sir.Cold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Lester
감사합니다.
Portal
토끼발이 진화해서 토끼소녀가 된건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13 외전 24. 404호에 소원 빈 사람 있어?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1.05 1016
412 외전 23. 소원을 들어주는 폐건물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1.05 1020
411 XIII-3. 루도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8.10 1426
410 XIII-2. 폭탄 만칼라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14 1444
409 XIII-1. 변형 블랙잭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10 1480
408 Prologue-XIII. Pandemonium royale_집결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03 1383
407 XII-8. Intermission (4)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7.01 1288
406 XII-7. 등가교환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21 1120
405 외전 22. 어느 폐건물 이야기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13 1128
404 외전 21. 예정된 불행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11 1138
403 XII-6. 무능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5.27 1141
402 외전 20. 어서오세요, 메피스토 상담실에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5.27 1158
401 XII-5. 물욕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4.17 1190
400 XII-4. Achivement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4.03 1190
399 외전 19. 괴의(怪醫)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2.20 1403
398 XII-3. 짐조의 깃털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1.20 1421
397 XII-2. 붉은 봉투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1.09 1302
396 XII-1. 흔적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2.29 1357
395 외전 18. 우리 엄마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2.02 1494
394 Prologue XII. 자승자박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18 1456
393 XI-9. 백물어(百物語)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04 1495
392 XI-8. 거울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0.01 1606
391 XI-7. STALKER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8.29 1604
390 XI-6. 전쟁의 상흔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8.13 1654
389 XI-5. 우산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28 1820
388 외전 17. After their life_STYX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6.15 1863
387 XI-4. 정산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5.27 1662
386 외전 16. 기묘한 PC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5.26 1777
385 XI-3. 살아있는 지옥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5.12 1777
384 XI-2. 꽃다발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4.28 1849
383 XI-1. Snowball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3.16 1850
382 Prologue-XI. 백면단도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3.16 1858
381 외전 15. 겐소사마 전설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3.02 1948
380 외전 14. 저주받은 단도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3.01 1799
379 X-8. 인생의 가치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2.14 1845
378 X-7. 집착이 가져온 업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2.03 1829
377 X-6. 무지가 일으킨 파란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1.11 1942
376 외전 13. 무한의 추격자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2.10 2010
375 X-5. Loop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25 2027
374 외전 12. After theie life_the black ticket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11.11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