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NOON -3

잉어킹 0 3,169
HIGH NOON (3)
-Highway to Hell

*이 글은 특정 인물, 단체, 아무튼 기타등등과 전혀 관계가 없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인물(+고인) 소개


총잡이- 주인공. 키는 7피트 반. 몸무게는 220파운드. 개조인간 총잡이다. 아무리 심한 상처도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재생해버리며,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지난 이야기에서 빌리의 자객 마리아치 밴드 '칠리 콘 카르네'를 박살내고 죽음과 향락, 도박의 도시 데스 베이거스로 향하게 된다. 사실 지금까지 이름으로 불린 적이 한 번도 없다.

할리 데이비슨 3세-총잡이의 애마. 애팔래치아 종이다. 주인의 덩치와 무게를 감당할 정도로 덩치가 크다. 애칭은 할리. 사실 주인처럼 개조되어 있어 크고 아름답고 시끄럽고 멋진 오토바이로 변신할 수 있다.

칠리 콘 카르네-마리아치. 기타리스트 칠리, 아코디언 연주자 콘, 마라카스 연주자 카르네로 구성되어 있'었'다. 빌리가 보낸 자객으로 이들의 악기는 전부 살인무기. 맥과 피말리는 전투 끝에 전부 지옥으로 떨어졌...던가?

젊은 커플-밖에서 살인 마리아치가 날뛰는데도 몸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충격파의 탄환을 맞고 사망했다.

#1

천지를 울리는 파열음과 함께 수장룡首長龍의 머리가 박살났다. 놈은 머리 없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고는 오아시스 위에 맥없이 둥둥 떴다.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유독해 보이는 녹색 체액이 오아시스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지만. 이런 놈이 살고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젠장. 물이라도 퍼 올까 해서 왔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놈의 이빨에 독이라도 있었는지 물려 뜯겨나간 자리가 심하게 가렵다. 사흘 전에는 분명히 사막인데도 험준한 산맥과 협곡이 막아 심하게 돌아서 가야 했다. 덕분에 온종일 포장로를 찾느라 꽤 고생했다. 사막의 모래는 자석 성분을 강하게 함유하고 있어서, 나침반 따위는 아예 병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엄을 발휘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것은 순전히 밤의 별과 육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전에는 모히칸 머리를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도적단 놈들이 덤비기에 총알 비를 선사해 주었다. 물론 살아서 돌아간 놈은 하나도 없었다. 한 놈이 상하체가 분리된 몸으로 기어서 도망가길래 손잡이로 골통을 박살내서 숨통을 끊어 줬다. 카르네도 그렇게 해서 확실히 목숨을 끊었어야 했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놈은 이미 도망간 지 오래이기에 기분이 마치 변소에 들어갔는데 생각해 보니 휴지를 안 가져왔고, 안에도 휴지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 같았다. 어제는... 내 입으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산맥과 협곡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사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과 인물을 봤다는 것 뿐이다. 이 사막을 횡단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사막은 미쳤다.

#2

수장룡의 대가리를 날려버린 시점으로부터 하루하고도 약 30분 전. 나는 오토바이의 후사경을 통해 정체불명의 트럭이 쫓아오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도로의 무법자 맥트럭이었는데 뒤에는 매우 무거워 보이는 컨테이너를 싣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도 윈드실드에는 두껍게 선팅이 되어 있어 안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림자 덕에 운전석에 누군가가 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닥 트럭이랑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평화주의자인 나는 속도를 줄이고 구석으로 할리를 돌렸다. 하지만, 트럭은 속도를 올리더니 내 쪽으로 돌진했다.

"졸음운전 하지 말라고!" 다행히도 오토바이라 선회가 빨라 반대방향으로 급히 꺾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럭은 계속 나를 노려 방향을 미친 것 마냥 틀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졸음운전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속력을 최대한 올려야 했고, 잠시나마 놈을 따돌리는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트럭은 보기와는 다르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간격을 줄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윈드실드를 겨누어 한 발을 발사했다.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취소된 면허는 지옥에서 다시 따라구!" 앞 창이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허옇게 변했고, 제대로 맞춘 모양인지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 거미줄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바닥에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빙글빙글 돌고 있어야 할 미치광이 트럭은 잠시 움찔했을 뿐 그대로 계속 달려오고 있었다. 놈의 그릴이 불길하게 빛났다. 이번에는 타이어를 조준했다. 귀를 찢는 천둥소리가 울렸다. 잘못 본 걸까? 분명히 타이어에 명중했지만 총알은 타이어를 뚫지 못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시 튕겨 나왔다. 탄두는 바닥에 한번 튄 다음 내 머리 위를 스쳐 저 멀리로 날아갔다. 하마터면 내 총알에 내가 당해서 죽을 뻔한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탄의 충격이 전달되기는 한 모양인지 트럭은 착탄과 동시에 눈에 띄게 좌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금방 다시 쫓아왔지만.


나는 트럭의 타이어에 대고 탄창을 모두 비웠고, 튕겨나온 총알 중 세 발은 거의 내 머리를 박살낼 뻔했다. 결국 트럭은 제 자리에서 몇 바퀴 돌면서 긴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그제서야 저 앞에 멈춰 섰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나를 육포로 만들려고 했는지 구경하려고 오토바이를 세우려고 했지만, 멍청하게도 손이 미끄러져 오토바이 째로 옆으로 넘어져서 길게 굴렀다. 욕을 내뱉으며 내 왼다리를 깔아뭉갠 수백 파운드짜리 쇳덩이를 치워보려고 했지만 나를 태우고 다니고도 멀쩡하게 움직이는 할리답게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한참 오토바이랑 씨름하던 중에 트럭 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에 미친 운전수가 차 밖으로 기어나오는가 싶어서 그쪽을 째려봤지만, 나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트럭의 여기저기가 접히고 들어가며 무언가로 변형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리의 변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접힌다기보다는 녹아내린다는 쪽이 더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았다. 트럭은 녹아내리면서 당나귀가 교미하는 소리와 콘서트장에서 수많은 소녀 팬들이 지르는 비명을 합쳐놓은 것 같은 기괴한 소리를 냈고, 서서히 거인의 형상을 갖추었다. 어림잡아 내 키의 5배는 될 것 같은 덩치에, 굳이 적의를 담고 휘두르지 않더라도 치명적일 게 틀림없는 거대한 팔과 다리, 몸의 여기저기에는 녹다가 만 트럭의 부속품-바퀴, 헤드라이트, 깨진 윈드실드 등-이 흉측한 부스럼마냥 여기저기서 삐져나와 있었지만 나름 멋있다면 멋있다고 할 수도 있을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때 트럭이었던, 게이같이 생겼지만 간지나는 거인은 내가 정신을 놓고 바라보는 사이 변형을 마치고 이 쪽으로 서서히 돌아봤다. 놈의 얼굴을 본 나는 경악했다.

틀림없이 고자로 만들었을 터인 카르네가 거대한 로봇과 퓨전한 모습으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3


"씌씌프프트트키키까까안안빠빠쪄쪄요요... 아아아아 마마이이크크 테테스스트트...... 컴컴퓨퓨터터를를 재재부부팅팅하하라라고고?? 나나에에게게 그그런런일일은은 있있을을수수가가 없없어어...... 하하! 됐다." 카르네를 닮은 로봇은 마치 복화술이라도 하는 것 마냥, 전신에서 알 수 없는 소리(남자의 굵은 목소리와 여자의 미성이 겹쳐진 그런 소리였다)를 내며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다음 놈이 '입'에 해당하는 부분을 열었다. "후후... 너를 죽이기 위해 내가 지옥에서 다시 돌아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놈은 그 뒤의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통에 총탄을 가득 쏟아줬기 때문이었다. 놈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잠시 뒤로 휘청하더니 다시 균형을 잡고 원래대로 돌아왔다. 엉망진창으로 박살나고 피투성이가 된 머리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해 버렸다. "......마마이이크크 테테스스트트...... 예예의의도도 모모르르는는 이이 벌벌레레같같은은 자자식식!! 너너 때때문문에에 다다시시 조조정정해해야야하하잖잖아아!! 저저멀멀리리서서 쳐쳐박박혀혀서서 들들어어라라...... 볼볼륨륨은은 충충분분하하게게 키키울울테테니니까까...... 그그리리고고 앞앞으으로로 사사람람의의 말말은은 주주의의깊깊은은 태태도도로로 경경청청하하도도록록......" 분노한, 하지만 더 이상 스빼니쉬로 말하지는 않는 '카르네'가 거대한 팔을 휘둘렀고, 나는 거기에 얻어맞고 할리와 함께 뒤로 저 멀리 날려져 버렸다. 다행히 대비하고 있어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몇 번의 딸깍거리고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놈이 다시 기계인지 유기질인지 알 수 없는 물질로 된 입을 열었다. 놈이 공언했던 대로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커져서 사막이 쩌렁쩌렁 울렸다. "내 이름은 트랜스젠더.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한 무적의 로봇이지." 뭐라고 하건 말건. 나는 다시 장전했다. "망할 새끼! 사람이 말하면 좀 들으라고!" 이미 말 형태로 돌아가 있었던 할리 위에 올라타자마자, 놈이 홧김에 집어던진 타이어 한 짝이 옆을 쏜살같이 스쳐 지나갔다. "처처음음에에는는...... (철컥거리는 소리) 빌어먹을! 아무튼 처음에는 정말로 고통스러웠지. 차라리 서너 번 더 거세당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거대한 트럭으로 변해 있었지. 몸의 기능을 완전히 익히는 것은 정말로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쫓아왔다는 것은 내가 그 기술을 모두 익혔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죽어라, 총잡이! 칠리와 콘의 원수를 갚아주마!" 로봇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자, 놈의 전신에서 끈적한 액체를 뒤집어쓴 기관총 비슷한 것이 솟아나오더니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나는 할리를 타고 돌격하며 쏟아지는 화망, 그리고 놈이 미친 듯이 휘두르는 거대한 주먹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놈의 중요한 부위를 겨누어 쐈다. 다행히 정통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지만, 주먹이 내리친 곳에서는 무슨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모래의 기둥이 솟았다. 탄이 맞을 때마다 트랜스젠더는 기묘한 춤이라도 추는 것 마냥 움찔움찔 경련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눈 먼 총알이 로봇의 자랑스러운 물건을 명중시킨 모양인지 뭔가 폭발하는 상쾌한 소리와 함께, 트랜스젠더가 고간을 양 손으로 가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사격이 잠시 멎었다. "비겁한 놈... 거길 노리다니!" 나는 무릎을 꿇고 있는 놈에게 납덩이를 잔뜩 선물해 줬지만, 놈은 갑자기 무릎을 꿇은 채로 도약해 이쪽으로 쇄도해왔다. "JAJAJA! 멍청한 놈! 내가 무릎을 꿇었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대처는 힘들었지만, 다행히 카... 트랜스젠더의 움직임이 너무 직선적이라 방향을 급선회하여 간발의 차이로 피할 수 있었다. 슈퍼맨 자세로 날아오던 트랜스젠더는 나를 스치고 뒤로 멀리 떨어져서 쭉 미끄러졌다. 그 바람에 사막에 순식간에 거대한 사구 하나가 더 생겨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면으로 싸우면 답이 없기 때문에, 나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비겁한 놈! 내 정의의 주먹을 받아라!" 왼쪽으로 1피트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엄청난 열기와 함께 레이저의 기둥이 발생했고, 그 경로에 있었던 모래가 전부 녹아 유리가 되었다. 뒤를 돌아보자 트랜스젠더는 묘한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멀쩡하게 재생한) 놈의 크고 아름다운 물건은 레이저 포 발사로 인한 막대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낮의 기온이 몇 백도를 오가는 사막인데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라! 쫓아가서 널 박살내 줄테니까!" 발사한 후에는 움직이기가 힘든지 여전히 묘한 자세로 웅크려서 방열하고 있는 놈을 내버려두고 나는 계속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로 잠시 몸을 돌려 놈의 고간에 총알 한 방을 더 선사해 주었다. "이런 개자시이이이이이익!" 폭발음과 함께 트랜스젠더의 처절한 비명이 사막에 울려 퍼졌다.

#4


물론 그걸로 죽어버렸다면 정말로 좋았을 테지만, 자칭 남자이자 여자인 최강의 로봇 트랜스젠더는 빨리도 재생해서 내 뒤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트럭으로 변신해 있을 때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느린 속도였지만, 할리가 달리는 속도와는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달려오는 놈의 발 밑을 겨냥해서 쐈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면서 트랜스젠더는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렇게 몇 번은 놈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지만 여러 번 고간을 당해서 빡친 트랜스젠더는 무서운 집념으로 쫓아오고 있었고, 거리가 적합해지자 뒤에서 숨 막힐 정도의 화망을 뿜어냈다. 용케 전부 피해냈지만 총탄 몇 개가 모자를 스치며 구멍을 숭숭 뚫어버렸다.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죽어라!" 뒤에서 매서운 살기가 느껴져 말을 우로 급히 틀자, 방금 있었던 자리로 다시 거대한 레이저의 기둥이 발생했다. 놈의 말 그대로, 거리를 계속 벌릴 수는 있어도 트랜스젠더에게 치명상을 줄 수는 없었고, 할리가 달릴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가 트랜스젠더는 전혀 지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달리던 중 눈앞에 끝없는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다행히 할리는 영리한 말이라 그 한참 전에 멈춰 섰지만, 내 무게와 할리의 무게가 더해지는 바람에 정작 멈추는 건 정말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멈춰서게 되었다. 자갈 몇 개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래에는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갑자기 불어났는지 폭류가 흐르고 있었다. 자갈은 흔적도 없이 하얀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소름이 돋았다.

뒤를 보자 로봇이 이제는 기다리는 것도 지쳤는지 어기적거리는 자세로 방열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언제라도 너 따위는 끝장낼 수 있다는 기분 나쁜 태도라 나는 다시 놈의 고간에 총알을 한 발 넣어 주었다. 놈이 주저앉아서 몸을 비틀며 절규하는 사이("아무리 재생해도 거긴 안돼!") 나는 다시 비어버린 약실에 검지만한 탄을 가득 채워 넣었다. 등 뒤에는 절벽, 눈 앞에는 지옥에서 돌아온 호모 로봇.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간이 재생한 카르네가 바로 앞으로 다가와서 나를 밟아버리려고 한쪽 다리를 들었을 때-

나는 할리를 몰아 절벽 위로 최대한 높이 점프했다. 그런 뒤 가뜩이나 균형이 안 잡히는 카르네의 발 밑에 총알 세 발을 박아 넣었다. 덕분에 약해진 지반은 트랜스젠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졌고, 발 디딜 곳을 잃은 놈은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나도 역시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5

  

절벽은 위에서 봤던 것보다 더 높았다. 떨어지면 말 그대로 뼈와 살이 분리되겠지. 물론 트랜스젠더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 그에게서는 아까와 같은 여유는 그리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할리의 갈기 뒤를 뒤져 버튼 하나를 찾았다. 누르자마자 할리의 다리 부분이 변형하기 시작했다. 젠장, ‘비상 탈출 장치’ 주제에 이 정도로 느려 터졌을 줄이야.

  

"이 아무 짝에도 쓰지 못할 빌어먹을 놈의 자식... 날 엿먹이다니! 이렇게 된 이상 네놈도 데리고 가겠다...!" 트랜스젠더가 손을 마구 휘둘렀다. 한 번은 그 책장만한 손이 나를 잡아채서 으깨버릴 뻔했지만, 총알을 박아준 덕분에 손은 엉망진창으로 박살나며 폭발해 버렸다. 나는 놈이 손을 부여잡고 저주를 토하고 있는 동안 옆에 나 있는 관목이니 돌부리를 붙잡았지만, 잡기가 무섭게 끊어지거나 부숴져 버렸다. 그러다 옆을 보니, 놈은 어느 새 제법 그럴싸한 자세를 잡고 고간포를 충전하고 있었다. 놈의 고간이 불길한 인광을 뿜으며 마구 진동했다. 아마 저걸 그대로 맞으면 그슬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나는 계속 떨어지는 중이었고, 피할 곳 따위는 없었다.

  

“끈질기군...”

  

“하하하! 마지막에는 큰거 한 방으로 보내야지! 빌리... 칠리... 콘... 끝났어.” 놈이 서서히 몸을 이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내 총구는 이미 그를 겨누고 있었다.


“그런 대사는 죄다 끝난 다음에나 하는 거야, 멍청한 놈아.”

  

나는 방아쇠를 세 번 당겼다. 큰 폭발-머리카락이 그슬렸는지 탄 냄새가 났다-이 일어났고, 덕분에 트랜스젠더는 건너편 벽에 부딪친 뒤 더 빨리 추락하기 시작했다. "끄...끝까지 거길 노리다니... 이 개자식!" 그 와중에도 재생하고 있던 트랜스젠더는 악을 쓰면서 떨어져 내리다가, 수면과 부딪치며 큰 물기둥을 만들었다. 순간 죽었나 싶었지만, 잠시 뒤 놈의 머리가 수면 위로 솟아 나왔다. 놈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폭류에 휩쓸려, 연신 떴다가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너를 죽이게 된다면, 그건 바로 나 트랜스젠더일 것이다!" 협곡이 트랜스젠더의 목소리로 울렸다. 물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게 뻔하니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수 미터 위에서야 변형이 끝났고, 할리는 네 발 끝에서 화염을 뿜었다. 떨어져 내리는 속도 역시 천천히 내려가더니 수면 위에서야 겨우 멈췄다. 뺨에 튀는 물방울을 맞으며,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척추 밑에서부터 누군가가 얼음으로 훑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트랜스젠더는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날뛰는 물보라를 헤치며 할리가 천천히 솟아올랐고, 나는 반대편 절벽 위에 무사히 착지해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다음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 사막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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