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NOON -1

잉어킹 0 2,788

*이 은 제 물, 체, 튼 등 그 떤 도 가 는 한 다.


#1


'빌리와 유쾌한 친구들'이라는 집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론 없을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가족들이 죽고 나는 불구가 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잘생긴 얼굴.

그 멋진 몸.

그 눈부신 미소.


#2

"빌리는 어디에 있지?" 나는 내 애총을 여자에게 겨누며 말했다. 선술집 안은 온통 어두컴컴했고, 나와 여자의 대치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사람들과 먼지와 땀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얼핏 20대 초반으로도 보이는, 개척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주 풍의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는 50 니트로 익스프레스를 사용하는 거대한 총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데도 그다지 위축된 기색이 없다.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안 알려줄꼬얌☆ 너, 총이랑 총 잡는 꼴을 보아하니 개조인간인 모양이네? 하지만 빌리쨩이 있는 곳은 알려줄 수 없어."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겁도 없이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여자의 다리를 조준해서 격발했다. 말하는 데 다리는 필요 없을 테니까. 도리어 알고 있는 걸 더 술술 털어놓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입고 있는 나풀나풀한 옷과 가녀린 몸에서는 전혀 연상할 수 없는 놀라운 속도로 여자는 총알을 피했다. 총탄이 박힌 나무 바닥에는 굉음과 함께 큰 구멍이 뚫렸다.

"아하하하! 나는 캐러미티 제인.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빌리쨩과 유쾌한 친구들 중 한 명이지. 넌 빌리쨩을 찾아갈 수 없을 거야. 여기서 죽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뒤, 제인의 몸이 서서히 변형되기 시작했다. 귀여운 얼굴은 스테로이드를 잔뜩 맞은 불법격투장 선수마냥 광대뼈가 튀어나오며 우락부락하게 변했고, 나보다 머리 두세개는 더 작은 키는 전신에서 불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근육들과 함께 급속도로 성장해 어느 새 신장이 내 두배는 되는 근육 고릴라로 변화했다. 하지만 더 끔찍하게도 입고 있던 옷은 찢어지지도 않고 캐러미티 제인의 몸에 그대로 맞춰 늘어난 것 같았다. 차라니 눈을 후벼버리고 싶은 광경이었지만 나는 즉시 총을 겨누고 발사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총알이 맞았으면 그래로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놈이 더 빨랐다. 무시무시한 괴성과 함께 내지른 캐러미티 제인의 거대한 주먹에 맞고 나는 카운터 뒤로 날려져 버리는 것과 동시에 몸 여기저기서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찬장에 등을 대고 부딪치자 술병과 잔들이 떨어져서 깨지며 파편과 알콜을 내게 쏟아부었다. 젠장. 공짜 술은 원없이 먹는군. 구석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바텐더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선생들! 나가서 싸워요! 내 가게가 망가지잖아요!" 하지만 근육 고릴라가 그쪽을 쳐다보고는 갑자기 바텐더를 덮치더니, "시끄러워♥"라고 굵은 목소리로 말한 뒤에 그의 목을 꺾어버렸다. 굵은 나무가 부러지는 것 같은 역겨운 소리가 났고, 바텐더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축 늘어졌다. 아마 두번 다시 잔을 닦을 수는 없겠지. 고릴라는 바텐더의 시체를 뒤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뒤에 다시 내게로 달려왔다.

아까 제인의 주먹에 맞아 날아가면서 총을 한 정 놓쳐버렸다. 아직 반대쪽 홀스터에 한 정이 남아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자칭 빌리와 유쾌한 친구들이라고 떠들어대는 잔챙이들을 상대할 때는 이런 상식 밖의 괴물은 없었다. 나도 불구가 된 이후 개조 수술을 받아 어느 정도는 인간을 초월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로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내가 얻어맞은 충격과 고통으로 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어느 새 고릴라가 내 턱 앞까지 다가와 미친 듯이 나를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네가! 박살날 때까지! 때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겠어!" 캐러미티 제인의 무시무시한 파운딩에 몸의 여기저기가 부러지고 부숴지고 있었다. 최대한 방어 자세를 잡는다고 잡고 있었지만 그것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 미친 고릴라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나는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죽은 척이었다. 나는 즉시 엎어져서 눈을 까뒤집고 축 늘어졌다. 그런 다음 호흡을 멈췄다.

곰에게는 소용없다지만 고릴라에게는 또 모르지.

#3

얼마나 맞았을까. 드디어 고릴라의 주먹이 멈췄다. 실눈을 뜨고 눈 앞을 보니 고릴라가 씩씩거리면서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괴물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오줌을 지렸다가는 그대로 맞아 죽을 것 같았으니까 차마 쌀 수는 없었고, 당장이라도 질식해 죽을 것 같았지만 계속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전신이 몹시 아프고 쑤신데다가 몸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줄지도 미지수였지만 아무튼 나는 살아 있었다. 고릴라의 씩씩거리는 소리 외에는 주점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호호호! 드디어 뒈져버린 모양이네♥ 아, 근데 너희들." 고릴라가 애교 넘치는 굵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사람들이 피해 있는 구석을 쳐다봤다.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제인을 쳐다봤다. "너희들 내가 싸우는 거 봤지, 그치?" 제인은 끔찍한 미소(물론 본인은 최대한 귀엽게 짓는다고 짓고 있었겠지만)를 지으면서 술집 안의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사람들은 죄다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런데 저희는 지금부터 어떻게 되는 건가요?"

누군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마. 이 모습을 본 이상 모두 죽을 것이다!" 제인이 사람들을 향해 멧돼지처럼 돌진했다. 그리고서는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의 목을 꺾고 골통을 박살내는 등 학살을 시작했다. 이제 내게는 관심이 없는 게 틀림없었고, 나는 무거운 손을 움직여 내 팔뚝만큼이나 굵은 총을 침대에서 아가씨 다루듯이 뽑아, 반쯤 일어선 채로 고릴라의 뒤통수를 향해 겨눴다. 그와 동시에 제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아저씨 하나의 복대를 뚫다 말고 이쪽을 무섭게 돌아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체크메이트.

"너 이자식! 어떻게 귀여운 숙녀에게 이런 비열한 짓을 할 수가 있는 거야!" 설득력 없는 망언을 마구 던지는 고릴라였다. 나는 천천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유언은?"

"닥쳐! 너를 차버리겠어!" 고릴라는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했지만 총이 불을 뿜었다. 겨냥이 살짝 빗나가서 쇄골 밑을 맞췄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코끼리나 코뿔소도 일격에 죽이는 무시무시한 탄환에 제인의 왼팔괴 좌반신 대부분이 파편과 피를 튀기며 조각나 떨어져 나갔고 재기불능의 상처만이 남았다. 고릴라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이래서 헬스 안 한다는 거였는데!" 고릴라는 징징 짜며 바닥에 엎어져 맹렬하게 자반뒤집기를 시작했다. 나는 확인사살 겸 잘 안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일어나 흉측한 머리에 대고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뭐, 이 정도면 확실히 영영 숨이 끊어졌겠지. 고릴라의 머리는 형체도 남지 않고 붉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고릴라의 피가 난장판이 된 선술집의 바닥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4

내가 한 것은 근육 고릴라를 손봐준 것에 불과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친절은 지나쳤다. 거절했다면 타르에 굴린 다음에 깃털을 꽂아 철봉에 태우고 다녔을 것 같아 그 마을에서 사흘 간 반강제로 머무르게 되었다. 물론 공짜 밥과 숙소는 제공되었지만 캐러미티 제인의 시체와 술집을 정리하는 것 역시 내 몫이 되었다. 어차피 내 애마 할리 데이비슨 3세(애팔레치아)도 휴식이 필요했고, 나도 망가진 몸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군말 없이 빈둥거리게 되었다.

슬슬 파리가 꼬이기 시작한 캐러미티 제인의 사체를 치우던 중, 제인의 사체에서 로켓 하나를 찾았다. 나는 로켓을 열어보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눈부신 미소. 꿈에서 나올 것 같은 그 눈부신 미소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악몽들이 숨어 있다가 익사체마냥 의식의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나는 토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로켓을 자세히 봤다. 로켓의 뚜껑 부분의 안쪽에 검붉은 얼룩으로 작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제인. 우리는 서쪽으로 갈 거야. 데스 베이거스에서 무사히 보자. GE 계획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B the GK

데스 베이거스. 환락과 도박, 범죄의 도시. 대륙 서쪽에 있는 거대한 사막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신기루 같은 도시라는 풍문만이 따를 뿐이었다. 대체 거기서 뭘 하려고 하는지, GE 계획은 뭘 의미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지금부터 서쪽으로 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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