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의 무게 (4), 完

글한 1 2,720

   솔직히 말하면, 그날 밤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졔의 말에 따르면 비가 그치지 않아서 취한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는데, 내가 어떻게 그 거리를 걸어서 왔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집창촌 안이었다. 나는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 밤 그녀와 하룻밤을 보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멍졔는 내 추궁에도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게 뭐가 그렇게 문젠데요? 이런 태도였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도대체가 상식이 통하지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이 거리를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태풍이 벌써 온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집 안에 갇혀버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최대한 떨어진 채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졸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잠깐이지, 그런 의미 없는 침묵을 참지 못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살아요?

   멍졔는 눈을 떴다. 졸고 있는 척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뭘요? 왜 꿈이나 팔고 사냐구요. 그게 내 직업인데 그럼 안 되나요? 좀 더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잖아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게 내 인생이에요.

   빗줄기가 창문을 내려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거 알아요? 가끔은 꿈을 사간 사람이 환불해달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꿈을 물러달라는 말이죠. 한번 꿨던 꿈을 안 꾼 걸로 해달라니, 웃기죠?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내가 판 꿈은 팔았을 때부터 내 꿈이 아닌데, 자기가 꾼 게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예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아요? 멍졔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이러면 웬만한 사람들은 부담감 느끼던데. 내가 눈길을 피하자 그녀는 깔깔 웃었다.

   그녀가 계속 말했다.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어떡해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데. 멍졔가 기면증이라는 건 그때 알았다. 아무 때나 쉽게 잠에 들고 마는 병.

 

   꿈을 꿨다.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솜을 닮은 목소리였다. 무거워졌다가도 가벼워졌다. 그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꿈을 계속 꾸기로 했다. 나는 소리로 색깔을 보고 있었다. 소리로 듣는 색깔의 느낌은 눈으로 볼 때와 전혀 달랐다. 색깔의 명암이나 색감과는 관계없었다. 그 느낌은 무게의 차이에서 오는 것에 가까웠다. 색깔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그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그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자 나는 텅 빈 공허감의 정체가, 내 몸 속에서 흘러나간 그게 솜의 색깔이 아닌가 싶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굉장히 사소한 감정이었다. 사소했기에 느껴진 그 들었다. 감정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독이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벼울 때는 한없이 가벼웠다가 순식간에 관계에 젖어 무거워지는 것. 나는 꿈을 꾸고 난 뒤 내가 솜의 색깔로 칠해져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자취방 천장 벽지에 그려진 무늬의 개수를 셌다. 개수는 아무리 세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수를 세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쯤을 세고 있는지 헷갈렸다. 시작지점으로부터 규칙적으로 무늬를 세어나가도 어느 지점에서 나는 길을 잃고 어느 것을 세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거기서부터 다시 무늬를 세나갔다. 엉터리로 센 무늬의 수는 모두 105개였다. 틀리다고 해도 내가 다시 그 무늬를 세기 전까지는 105개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직도 L을 잊지 못했느냐고. 리우에게 고백했을 때의 말이 떠오른다. 리우는 내 고백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L만 따라다니던 녀석이 무슨 고백이야. 지금은 다 잊었어. 솔직히 말해, L 대신이지? 절대 아니야. 그럼 L 잊을 수 있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는 결국 끝까지 그 부분만은 얼버무려 넘어갔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 안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걸 없앤다는 것은 내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녀를 잊는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우에게 했던 그 말줄들은 다 진심이었다. 그것만은 틀림없었다.

   우선은 리우를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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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호평을 받아 신기했던 글.

수정을 해야 할 방향도 알고 어디가 틀렸는지도 알지만 한동안 묵혀둬야 할 작품.

한참 잠들어 있다, 다시 떠오르면 명확해지는 부분이 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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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문장이 어색하지 않아서 호평을 받으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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