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비의 마녀

블랙홀군 1 2,577
-안녕, 아저씨. 

이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말이었다. 
내가 갈 때에도 서럽게 울고 있던 그녀는, 그 후로 며칠쨰 보이지 않게 됐다. 
부끄러워서 나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그런 그녀가 그 날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가끔 들려오던 그녀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그녀가 쓰던 물건들만 남은 채였다. 
하루정도야 안 나올 수도 있는거지, 라고 했지만 며칠정도 이 상태가 지속이 돼자 그녀가 걱정돼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그렇게 약한 녀석인데 설마 안 좋은 선택을 해버린 건 아니겠지. 걱정도 됐지만 곧 나오겠거니 싶었다. 아니면 혹시, 친구를 통해 소식이라도 들려주겠거니 했다. 

-아저씨. 

'응? '

며칠동안 잠잠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에 없었다. 
환청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이쪽이야. 

'뭐야, 대체 어디서... '
"저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
"아아, 아냐, 아무것도... 나 잠깐만 볼일 좀 보고 들어갈게. "

-아저씨, 여기야, 여기. 

순간 눈앞에 까만 나비 한 마리가 보였다. 
따라오라는 듯, 나비는 내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앞서가면서도 잠깐 서서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나비를 따라 가니, 눈앞에서 까만 나비뗴가 모여들고 그녀가 나타났다. 

조용히 눈을 뜬 그녀는, 고개를 들어 에메랄드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서 종전처럼 장난기나 웃음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까만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야, 와 줘서 고마워, 아저씨. "
"너, 너는... 베아트리체? "
"...... 응. 나야. "
"어떻게 된 거야, 이게...? "
"아저씨가 정말 와 줄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아저씨는, 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같은 건 안 쓰고 있었으니까. "
"...... "
"나, 이제는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거든. ...내 삶의 이유였던 아저씨가 그걸 포기하라고 했으니까, 난 이제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거야. 그래서... 아저씨를 며칠동안은 볼 수 없었어. 아저씨, 보고싶었어. "

도대체 왜 호칭이 아저씨로 굳은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뭘 하고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사실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마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표본같은 건 잘 못 만드는데, 어떻게 할까... "
"너답지 않게 왜 그런 얘기를... "
"...... 아저씨가 생각하는 나다운 건 뭔데...? "
"...... "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나는 더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거야... 아저씨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아저씨는, 이 나비들이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

여전히 나비들은 그녀의 주변을 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나비들은 이 세계의 나비들이 아닌 것 같았다. 온통 까만 색인 나비의 주변에, 안개같은 것이 피어있었다.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너, 설마... "
"응. 난 이제 마녀가 된 거야... 아저씨, 아저씨는 몰랐겠지만 내가 아저씨를 좋아하고 있었던 건 진심이었어. "
"...... "
"나, 가볼게. 아저씨는 바쁜 사람이니까 오래 붙잡아두는 거 싫어하잖아? "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나비 떼로 변해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딘가 슬퍼보이는 두 눈, 그녀의 영상이 머릿속에 한동안 남아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영상이 오랫동안 남아, 그 날은 일찍 집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 

막 자려고 누웠던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자? 

"아니. ...너, 여기 있는거야? "

-아니. 그냥 불러본 것 뿐이야. 

더 할 얘기가 있는 듯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자려고 눈을 감을때마다 그녀의 영상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경쓰였다. 
그럼 보이지 않았던 몇일동안 그녀는 어디에 있었던걸까. 마녀가 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음날, 나는 그녀를 불러보기로 했다. 

"베아트리체. "

-응? 날 부른거야? 

"들려? "

-응, 선명하게 들려. 무슨 일이야, 아저씨가 날 부르고...? 

"지금 어디에 있어? "

-지금? 집에 있어. 

"집...? 결계...를 말하는거야? "

-응. 마녀에게 집이란, 결계니까. 그건 왜 물어보는건데? 

"만나서 얘기좀 할 수 있을까 해서. "

-나랑? 

"응. "

-좋아. 전에 만났던 곳으로 갈게. 

"나도 그 쪽으로 나갈게.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그녀와 만났던 잔디밭에 막 도착했을 때, 또 다시 나비떼가 모여들고 있었다. 
곧이어 나온 그녀는 또 다시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표정이 전혀 없는 얼굴로. 

"무슨 일이야, 아저씨가 날 먼저 다 부르고...? "
"너, 어제 나한테 할 얘기 있었지? "
"응?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 "
"어제, 너... 나 불렀을 때 말이야. 자냐고 물어봤을 때. "
"아... 응. "
"무슨 말이 하고싶었던거야? "
"...... "

그녀는 대답 대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바람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걸 묻는거야? "
"그야...... 신경쓰이니까... "
"아저씨는 다른, 신경써야 할 사람이 있잖아. 난 안중에도 둬본 적 없으면서 이제와서 왜 그 말이 신경쓰이는데? "
"...... "
"아저씨. 인간이 마녀가 된다는 건 비가역적인거야. 아저씨가 이제와서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다시 인간이 될 수는 없어. 인간이 흘리는 마지막 눈물이라는 건, 이미 인간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흘리는 눈물이니까... "
"베아트리체. "
"...... "
"미안해. 이제와서 사과하기엔 좀 늦었지만... "
"...... 그렇게 평생 자책해줘, 내가 아저씨를 좋아했던 만큼... "

차갑게 쏘아붙이고 돌아가려던 그녀를 간신히 붙잡았다. 
여전히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아직 어린 탓인걸까. 

"아직도 할 얘기가 있어? "
"베아트리체. "
"왜? "
"마녀가 인간이 되는 건 비가역적인 거라고 했지...? "
"응. "
"그럼, 지금 이대로라도 좋으니까...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
"아저씨... 곁에 있어달라고? 하지만 아저씨가 옆에 두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아? "
"...... 그런 의미가 아냐. 난... 널 다시 만났을 때 묻고 싶었던 게 많았어.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며칠동안 네가 안 보여서 걱정했었어. 정말로... "
"아저씨가... 날? "
"응. 넌 몰랐겠지만, 쭉 걱정하고 있었어. "

그녀는 의외라는 듯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혀 몰랐다는 듯, 돌아가려던 발길을 돌려세운 그녀는 다시 내 쪽을 향했다. 

"몰랐어. 아저씨가 날 걱정했을 줄은... "
"날 그렇게 불러줘서, 그리고 와 줘서 고마워. 넌... "
"...... 아저씨. "
"...응? "
"...... 나, 아저씨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어. 아저씨는 날 그렇게 아프게 했고,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도 난 아저씨를 여전히 좋아해. 나도 이런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인간이었을때도, 정신을 차려보면 난 어느새 아저씨가 좋아져 있었고, 그래서 걱정하고, 화내고, 질투했던거였어. 그리고 지금도 거기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어. ...지금은 인간이 아니지만, 나... 계속 아저씨 곁에 있고 싶어. "
"베아트리체... "
"미안해, 아저씨. 나, 아직 아저씨 많이 좋아해... 갈게. "

나는 막 돌아가려던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마치 인형이 휘청거리며 쓰러지듯, 그녀는 내 품에 폭, 안겼다. 

"가지 마... 베아트리체. 그러니까 네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거야. "
"정말, 내가 아저씨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
"응. 네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해. "
"고마워, 아저씨. "

그녀는 내 볼에 그녀의 볼을 부볐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부드러움이었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잔 탓인지 면도를 못해서일까, 그녀의 하얀 볼에 살짝 긁힌 자국이 났다. 

"아저씨, 면도 안 했어...? "
"아, 미안. 요즘 잠을 못 자서... "

Author

8,759 (78.7%)

<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Comments

흐린하늘
~~포켓몬 팬픽을 기대했는데~~

롤리타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13 관찰 안샤르베인 09.12 2596
212 VII-1. 갇혀버린 영웅 작두타는라이츄 03.18 2591
211 [백업][밝음 소설제 출품] The Lone Star NoobParadeMarch 09.27 2587
210 [소설제-천야] Nighthawk's Dream 카페인성인 11.06 2587
209 과제로 낼 예정인 소설 - 발단 부분만입니다 댓글6 안샤르베인 09.29 2586
208 VI-6. Die Schwarz Tulpen 미식가라이츄 10.13 2586
207 한방꽁트 - 풍운 마왕동! 1부 cocoboom 04.10 2584
206 더러운 이야기 댓글2 기억의꽃 03.23 2583
205 외계로부터의 에코 프렌들리 계획 댓글2 잉어킹 12.01 2582
204 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 4 네크 07.18 2582
203 切段 댓글4 Novelistar 08.27 2580
202 나는 너의 미래다 - 끝 민간인 02.14 2579
201 겨울冬寒 Novelistar 12.04 2578
열람중 검은 나비의 마녀 댓글1 블랙홀군 07.17 2578
199 Cats rhapsody - 1 민간인 11.23 2573
198 외전 3. Adventure for Death 작두타는라이츄 11.13 2572
197 [본격 휴가 나온 군인이 쓰는 불쌍한 SF 소설] 나방 (#001 - 강산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뿐) 레이의이웃 06.11 2567
196 Workerholic-Death In Exams(3) Lester 02.02 2564
195 무제 민간인 06.22 2563
194 마법소녀는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중! 2 댓글4 네크 07.10 2562
193 Workerholic-Death In Exams(1) 댓글2 Lester 12.17 2556
192 [습작] 죽음을 거스르는 방법 Prologue 댓글4 앙그라마이뉴 09.14 2556
191 여느 4월 때와 같은 날씨였다. Novelistar 05.04 2554
190 HIGH NOON -1 잉어킹 11.21 2552
189 반의 성공, 반의 실패 안샤르베인 09.22 2552
188 유리 구슬과 밤이 흐르는 곳 - 2 Novelistar 10.25 2552
187 손님을 맞는 이야기. 폭신폭신 06.05 2551
186 사신의 서 - (0) 엣날 옛적에 Badog 02.11 2551
185 붉은 찌르레기 이야기 네크 01.23 2550
184 해바라기 소이소스 11.18 2547
183 이복남매 이야기 블랙홀군 01.30 2547
182 미래의 어떤 하루 주지스 01.07 2546
181 VI-2. Gloxinia 미식가라이츄 08.24 2546
180 VIII-2. Rimen game 작두타는라이츄 01.14 2545
179 Resolver(리졸버) - 1 댓글5 [군대간]렌코가없잖아 09.14 2544
178 Robot Boy - 1 댓글1 Novelistar 03.14 2544
177 따뜻함을 사고 싶어요 다움 04.09 2543
176 [Project:Union] 유트뵐리스와 차문화 Badog 03.26 2543
175 부고(訃告) 댓글2 가올바랑 01.25 2542
174 미아 이야기 2 (끝) 네크 08.06 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