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목걸이
주지스
2
2,923
2014.10.05 21:42
최근들어 눈코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오래간만의 휴일다운 휴일이라 푹 쉬고 싶었다. 적어도 오후 두 시까지는 동면하는 산짐승마냥 푹 자려 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가위에 눌리더라. 목덜미로 무언가 걸리적거렸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목을 짚어봤는데 글쎄, 목에 올가미 같은 것이 씌어있는게 아닌가.
나는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목을 열심히 더듬어보니 걸리적거리던 것은 다름 아닌 개목걸이었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잠기운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고, 나는 잠기운으로 퉁퉁 부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침상 옆으로 사람 비슷한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목에 걸린 개목걸이에서 뻗은 줄은 그 자가 잡고 있었다. 나는 그 자에게 물었다.
"……뭐야 이건."
"맨날 잠만 자니까 오늘은 내가 직접 와서 깨워주기로 했어."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연인인 S였다. 사귀기 전에는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만만찮은 괴짜였다. 이것도 필시 이제까지의 그녀의 행실대로라면,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떠오른 아이디어'거나 아니면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생각해낸 재밌는 놀이'겠지. 뭐,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잠이 깨기는 깼다.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니 '휴일다운 휴일'에는 역시 잠만 자기에는 아까운 것 같다. 깨워줘서 고맙다고 감사라도 해야 하는건가.
……그나저나 이 목줄은 잠이건 분위기건 심각하게 깬다.
"잠 깼으니까, 이제 풀어줘."
"싫어."
당연하다는 듯 거부했기에 더 이상 군말 하지 않았다. 재차 설득하기가 귀찮았다. 그녀 말하길, 화장실에 들리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때만 목줄을 풀어주겠단다. 볼 일을 마치면 목줄을 다시 채우겠다고. 나는 한 번 풀어준 목줄을 내가 순순히 다시 찰 것 같냐고 비꼬듯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예상했다는 듯,
"목걸이와 와이어의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는 이 제품은, 특수 설계한 강력한 전자석 접합부를 이용해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저절로 척 연결이 되기 때문에 너무 멀리 있지만 않으면 문제 없어."
라며 컨트롤러로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확실히 이 개목걸이는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전자석을 이용해 쉽게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사오는 걸까.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얌전히 그녀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나는 목이 묶인 상태로 씻고, 밥을 먹고, 대충 옷을 차려 입고 그녀를 따라 나왔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한적한 휴일 교외에서 목줄을 매달고 그녀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시선이 부담스러운 내가 그만 하면 안 될까, 물으니 S가 답했다.
"괜찮아, 하나도 안 이상해! 귀여워 보일 정도야!"
……아니 이상해. 이 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면, 그 녀석은 분명히 아주 위험한 녀석이라고.
아무튼 내가 투덜거리면서 끌려가고 있는데, 엄마 손을 잡고 뒤뚱거리던 꼬맹이가 내게 삿대질을 하며 서투른 몇 단어를 내뱉었다.
"어, 어엄마!…… 강아지야, 강아지!"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 아이를 쳐다보자 아이 엄마가 다가와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사과했다.
"어……어머. 음……, 미안해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요. 은서야, 오빠한테 '미안해' 해야지, '미안해!'"
아이 엄마는 나와 S의 사이에 늘어진 와이어에서 어디로 시선을 떼야 할 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와이어 안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특수 설계 전자석이라도 들어 있는 걸까. 나는 꺼림칙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쫓아 보고 싶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잘못한 건 목줄을 잡고 있는 이 여자니까요.
뒤뚱거리는 아이가 어지간히도 귀여웠는지 S는 한 번 안아봐도 되나고 은서 엄마에게 물었다. 괜찮댄다. S는 은서를 들어올렸다.
"아이, 귀여워라! 은서야, 언니 예뻐?"
"응!"
분위기가 이전보다는 밝아졌다. 그녀는 은서를 안고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목줄은 단단하게 잡고 놓아주지를 않더라.
어쩔 수 있나. 나는 바지주머니를 뒤졌다. 마침 사탕이 하나 있었다. 딸기맛이다.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 자지러지게 웃는 아기의 손에 사탕을 쥐어주었다.
"사탕!……."
개가 주는 사탕을 받는 상황이 어색했던 걸까. 말이 없다.
나는 그녀가 은서를 내려 놓고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의 길고 긴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모습으로 서서 지켜봐야만 했다.
그 후로도 우리는 걸었다. 벤치에서 멈춰서 잠시 쉰다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거나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어야만 했다. 걷는 것 외에 다른 걸 해보고 싶어도, 이런 꼴로는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좋다고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나를 하루종일 끌고 다녔다.
저녁이 다 될때까지 우리는 걸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데이트라는 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우리는 새빨갛게 타는 노을이 잘 보이는 벤치에서 잠시 멈췄다. 목이 뻐근했다. 나는 S에게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침에, 내가 방으로 들어올 때까지도 퍼자기만 했던 벌이야. 엄청 잘 자더라?"
그녀가 목줄을 바짝 잡아당겼다. 내 목과 그녀의 거리는 이십 센티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나는 켁켁거리며 그녀에게 따졌다.
"변명하지 마.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거잖아."
"어떻게 알았어?"
나는 대답했다.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구나, 그렇다면 너도 이렇게 끌려다니는 걸 원래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녀의 의외의 질문에 나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그래.
나도 좋아서 이러는 거야.
그랬다. 사실 나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말을 마치고도 기분이 멋쩍어서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살짝 웃는다. 나도 어색하게 웃는다. 우리는 그렇게, 엷은 노을빛으로 물든 목줄이, 내 목과 그녀의 오른손을 연결한, 그 상태 그대로 언제까지고 벤치에 앉아 마주보고 있었다.
────
최초로 써 본 라이트노벨. 아무튼 그렇습니다.
대화나 심리가 간결한게 잘 어울리네요.
문체 한정으로 '김영하 짝퉁'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