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안샤르베인 2 2,920

심문이 시작됐지만 제네시스는 적에게서 별다른 정보를 캐내지 못했다. 그저 마법으로 모습을 바꿨으리라 추측만 했을 뿐, 적의 실체가 누구인지 온전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죽인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는가 고심했다. 고문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있게 해 주겠지만 그것이 유용하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보내지 않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군대가 돌아가기 전에 앞서서 사실을 알려야 했다. 누굴 보내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될까. 전서구는 이미 죽어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수도에는 적이 있었다. 호시탐탐 트집거리를 찾아서 자신을 끌어내리려 하는 적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보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었다.

제네시스의 시선이 옮겨갔다. 아이는 묵묵히 병사들을 돕고 있었다. 여전히 과묵해서 속을 알 수 없는,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움이 되었던 아이. 본인도 기억을 잃었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강했다.

제네시스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어깨에 손이 올라가자 그가 뒤돌아보았다. 그리곤 90도로 인사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군님."

"부탁할 일이 있다. 잠깐 막사로 오너라."

 

막사 안은 장군과 아이 둘만 있어서 조용했다. 제네시스는 주변을 둘러보곤 아이에게 비단 두루마리를 건넸다. 아이는 그것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게...무엇입니까?"

"서찰이다. 전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전 길도 모르고..."

"지름길 지도라면 여기 있다. 꼭 이 날짜 내로 도착해야 한다."

"저, 그것만이 아니라..."

 

제네시스는 아이가 무슨 말을 할 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제네시스는 또 다른 물건을 내밀었다. 받아들고 보니 그것은 호적패였다. 그것도 아주 솜씨좋게 위조된.

 

"특수임무용이다. 진짜와도 거의 구분이 안 되지."

"...그렇군요."

 

아이는 호적패를 만져보았다. 잘 깎아낸 호적패의 표면은 우둘투둘했다. 제네시스는 잠시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해서는 안 되는 부탁이다만...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구나."

"...알겠습니다. 누구를 찾으면 되는 겁니까?"

"엘리자드 시네스. 시네스 가를 찾아가라. 그 뒤엔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다."

 

장군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자신이 저 아이를 믿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단을 품 속에 조용히 넣었다. 그러고 나니 망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가볍게 목례한 후 다시 물었다.

 

"지금 출발하면 됩니까?"

"그렇다. 식량도 챙겨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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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은 상당히 험난했다. 길의 흔적이 끊기기 일쑤였고 조금만 헛디디면 굴러떨어질 좁은 통로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길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어떤 존재였던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장군의 부탁이었다. 서찰을 제대로 전해줘야 했다. 다행히도 얼마 가지 않아서 마을이 나온다는 표시가 있었다. 오늘은 그곳에서 잠시 쉬면 되겠지.

장군은 비상식량 외에도 돈도 꽤 쥐여주었다. 방 하나 잡는 덴 지장없을 듯했다. 며칠간 쉬지않고 달려온 덕에 몸이 꽤 피곤했다. 오늘만큼은 푹 쉬어도 괜찮겠지. 아이는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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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흐린하늘
저 애가 처음에 왕자 납치한 걔인거죠?
안샤르베인
넹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