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죽음을 거스르는 방법 Prologue

앙그라마이뉴 4 2,794
#1
아주 오랜 옛날.
 
마녀가 많이 살았던 무렵. 마녀들은 다양한 마법을 배우고 쓰며 살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이제 마녀가 4명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마녀들 사이에서 금단의 비술로 남아있는 술법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 원본은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의 태고에 미지의 신에 의해 미지의 언어로 기술되었고, 지금은 누군가가 그것을 대륙의 고(古) 언어인 할페니아 어로 번역한 사본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지만 마녀들은 그 술법이 인간들에게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깊은 곳에 금단의 마법을 걸어 숨겼고 마녀들이 사라진 지금은 존재조차도 알 수 없게 되었다.
 
 
#2
이제는 마녀의 존재조차 전설로 남아가기 시작하는 언젠가.
 
대륙 북서쪽 망각의 숲에 사는 마녀 쇼콜라의 집에 오랜만의 손님이 방문했다. 작달막한 키에 허름한 구름 무늬 원피스 차림. 머리칼은 라벤더를 연상케하는 연한 보라색이었고 보라색 오른눈동자와 빨간색 왼눈동자의 오드아이를 가진 특이한 외모의 여자아이 였다. 응접실로 소녀를 안내한 쇼콜라는 의자에 앉혀두고는 간식거리를 가져와선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말없이 소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얼마간의 침묵후 소녀는 쇼콜라가 차려준 쿠키와 차를 이따금 손대면서 어렵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톨이었던 어린 시절. 실험과 약물로 얼룩진 몸에 대한 아픔. 전쟁 통에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가족의 정에 대해 알았다는 기억. 그들과 가족으로 지내면서 만든 수많은 추억들. 그런 오랜 옛날 이야기였다. 소녀는 무덤덤한 어조로, 이따금 가족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할때만 밝은 목소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이야기들을 몇분, 몇시간이고 잠자코 들어주고 이따금 맞장구를 쳐주던 쇼콜라는 소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걸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본인이 무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렇지, 분명 남들에게 들려줄만한 성격의 내용은 아니다. 쇼콜라는 소녀의 이야기에서 찾은 두개의 감정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그리움'과 '비탄'.
 
소녀가 갑작스레 쇼콜라를 불렀다.
 
"그래서 말인데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때보다 몇배나 더 말을 꺼내기 어려워보이는 눈치였다. 쇼콜라는 그런 소녀의 의중을 눈치채고는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최대한 다정하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괜찮아. 말해봐.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도와줄게."
 
이어지는 소녀의 말은 쇼콜라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내용이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어요."
 
"진심...이야?"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당황해하는 쇼콜라와는 대조적으로 소녀의 대답은 확고했다.
 
"네."
 
그러고보니 문득, 아주 오래전에 그런 술법이 적힌 비법서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린시절의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얼핏 떠올랐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존재 자체가 금단의 비술이었던 술법을 지금의 쇼콜라가 무슨 수로 이 소녀에게 건내준단 말인가. 가진 패가 없는 쇼콜라는 결국 소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런 비술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렇지만 마녀들이 살아있던 그 시대에서도 그 술법이 시행되었다곤 한번도 못 들어봤지."
 
"그런가요..."
 
소녀는 쇼콜라의 대답에 대단히 실망하는 눈치였다. 크게 한숨을 쉬면서 소녀는 차와 과자 값의 지불이라는 듯 금화 두닢을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돌아가려는 소녀를 불러세운 쇼콜라는 자신에게 과거 이야기를 어렵사리 이야기해준 대가로 대륙 동쪽에 있는 또다른 마녀에게 가보라고 조언해주었다.
 
쇼콜라의 왼손에 분홍빛 연기가 몇초간 피어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서신은 보내놨어. 네가 도착했을때 즈음이면 알거야."
 
"네. 고맙습니다."
 
소녀는 쇼콜라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곤 그대로 나가버렸다.
 

#3
쇼콜라의 조언으로 찾아간 망자의 숲은 대낮임에도 꽤나 어두운 숲이었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한참을 걸어간 끝에 보인건 반쯤 허물어진 동양의 신사와 비슷한 집이었다.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관리가 끊긴지 적어도 십수년은 됀 듯 거의 폐허라 해도 무방한 상태였다. 소녀는 마녀의 취향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녀를 불러보았다.
 
"실례합니다."
 
순간, 소녀의 눈 앞에 푸른 연기가 갑자기 모여 소용돌이치더니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모여든 연기는 차차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장발에 동양풍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앞섬에 삼각형, 등뒤에 큼직한 검은 깃이 달리고 단정하게 메여진 하얀 스카프와 소맷자락과 깃에 하얀 줄무늬가 들어간 검은색 세일러 복을 입은 열예니곱살 즈음으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되어 소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 곳 망자의 숲에 거주하는 마녀이자 지배자, 와지마 레이코(和島 零子)였다.
 
와지마 레이코는 쾌활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쇼콜라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네."
 
그녀도 사실 쇼콜라의 서신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이내 마음가짐을 정리하고 소녀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짐짓 놀라는 채 하며 말했다.
 
"넌 너도 모르는 새에 엄청난 일을 저지르려는 모양이더라구."
 
와지마 레이코는 이야기를 할때 주로 수많은 진실과 사실에 적당한 거짓을 섞어 대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쇼콜라에게 당부 받은 것도 있어서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실 쇼콜라가 소녀를 자신에게 보낸데엔 바로 와지마 레이코 자신이 죽음과 가장 동떨어진 인간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요."
 
"그래.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건 할게 못돼."
 
밖에서 이야기 하기도 뭐하니 집 안에서 이야기하자며 와지마 레이코는 소녀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겉보기와는 달리 내부는 의외로 그런데로 평범했다. 쇼콜라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자 소녀는 놀라는 눈치였다. 어쨌든 소녀를 거실에 앉혀두고 마주앉은 와지마 레이코는 속으로는 솔직히 적잖이 당황했다. 이왕 찾아온 소녀에게 그런건 없다고 그대로 돌려보내는건 무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도 뾰족한 수가 있는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짐을 떠맡긴 쇼콜라를 적잖이 원망하면서 와지마 레이코는 이 제멋대로인 소녀를 어떻게 만족시킬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선 와지마 레이코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빛바랜 녹색 잉크가 말라붙은 암갈색 종이조각이었다.
 
"이게 아마 네가 찾던 물건에서 나온걸거야"
 
"이건?"
 
소녀에게 보여준 그것은 와지마 레이코 자신이 불로불사의 마녀가 되는데 사용했던 마도서 '아캬바라 노트'의 파본이었다. 안그래도 원본이나 사본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파본인데다 레시피아 어로 기록된 불완전한 복제 파본이었기에, 그녀에게 영구의 생명을 부여하는 대가로 자신은 그저 낡아빠진 종이 조각으로 전락했다.
 
"마도서의 파본 복제품. 사실 이건 죽은 자를 살리는게 아니라, 그냥 불로불사를 주는 거에 불과해."
 
"......"
 
아무 말 없이 종이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녀.
 
"네가 찾고 싶은건 결국 죽은 자를 되살리는 술법이 적힌 비법서란 말인데..."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는데 그건 나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어."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소녀는 감정을 숨기는데 굉장히 서툴렀기에 쇼콜라나 와지마 레이코나 소녀의 감정을 눈치채는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래도 와지마 레이코는 쇼콜라의 추천으로 여기까지 온 소녀의 발품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쇼콜라에게 당부 받은 것도 있어서 다른 방안을 꺼냈다.
 
"널 나한테 보낸걸 보면 쇼콜라도 딱히 해결해줄순 없었나보네?"
 
"네. 그래서 마녀 님한테 가보라고 하셨어요."
 
곰곰히 생각하던 와지마 레이코는 소녀에게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거실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한 2층 복도를 건너 가장 마지막에 있는 청록색 문에 다다랐다. 문 표면을 가볍게 두어번 두드리며 와지마 레이코는 누군가를 불렀다.
 
"시오리 언니. 바쁜데 죄송해요. 잠깐 나와주실 수 있으세요?"
 
몇분 간의 침묵후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쪽으로 얼핏 보이는건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꽂힌 서고였다. 이내 그곳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목까지 오는 청색 롱 스커트에 하얀 비단 블라우스와 연갈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노란 리본으로 가볍게 묶었고 얼굴에는 검은색 둥근 테 안경을 끼고 있었
다. 대륙 서쪽의 별의 사막에 사는 별의 마녀, 하시모토 시오리(橋本 栞)였다.
 
"안녕 레이.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시오리는 언제나 와지마 레이코를 레이라고 불렀다.
 
"언니가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별일이네."
 
얼굴에 만연한 웃음기를 머금은 시오리는 하고 있던 서고 정리를 뒷전으로 미루고 레이코를 따라 문 밖으로 나왔다.
 
소리없이 닫힌 문을 뒤로 한채 레이코와 시오리는 이내 1층 거실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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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흐린하늘
음? 망각의 숲에서 망각의 숲으로 이동했네요? 망각의 숲이 두 곳이 있는 건가요?
앙그라마이뉴
어... 이제야 깨달았다.
잘 봤습니다.
작품 외적인 평가를 하자면 쇼콜라에 마녀라고 하니까 예전에 투니버스에서 하던 만화 하나가 떠오르네요(...)
앙그라마이뉴
감사합니다.
슈가슈가룬 이라면 어쩌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