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홀린 게 아닐까,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세차게 맞부딪치는 바람, 오락가락하는 시야, 허리에서 느껴지는 살 쓸림은 분명 현실의 것이었다. 멀찍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곧 지나갔다.
그는 바람의 가호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자체가 바람이었다. 한 번 발을 디뎠다가 떼면 이 지붕에서 저 지붕으로, 다시 저 건너로 이동해 있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병사들은 이미 점으로만 보였다. 상황만 아니었다면 감탄하고 있었을 테지만 소년은 감상에 빠져 있을 수가 없었다. 납치된 건 자신이었으니까. 억, 억 하던 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얼른 내려주기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행히, 그 소원은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졌다.
"죄송합니다."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사람은 커녕 사람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 곳이었다. 소년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따져야 할지도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허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했을 뿐. 아직도 조이는 느낌이 들고 얼얼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소년은 중요한 것을 잊었음을 생각해냈다. 약속시간이 이미 지났던 것이다.
"으아악! 망할!"
"예?"
"너 때문이잖아! 이거 어쩔거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잊어버린 채 소년은 그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돌변한 소년의 태도에 그는 당황한 듯 말이 없었다.
잠시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지 깨달은 듯 소년은 손을 가만히 놓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뜨린 건 그 쪽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상한 녀석."
소년은 새침하게 그를 쏘아보았다.
"이미 일 다 저질러놓고 죄송하다면 다냐? 사람을 납치해놓고, 죄송하다면 다야?"
"...."
그는 말이 없었다. 소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뭔 대단한 사정이 있다고 날 여기까지 끌고 온건데? 응? 말해봐."
그가 더 쏘아붙이려고 할 때였다. 묵묵히 있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엘리자드 시네스 님을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첫째줄에 부딛치다 -> 부딪치다가 맞는 거 같아요.
제가 가끔 저게 어느게 올바른 단언지 잊어먹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