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쇼

민간인 2 2,858
 
 
 그가 언제 나타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바로 관심 받지 못했다. 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 몇몇만이 자신이 처음 보았던 때와 장소, 여름이 끝날 즈음, 대전 으느정이 시내 맥도날드 맞은 편 건물 앞에서 시작되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는 홀연히 나타나 그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범상한 글쓰기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글쓰기란 내밀하고도 섬세한 작업, 과정보다 결과로 보여지던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했던 것이다. 자신의 다리 길이만한 캐리어를 끌고 와서, 노트북과 간이 책상과 의자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스크린과 빔 프로젝트를 설치한다. 그리고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를 연결한다. 글을 쓴다. 쓴 글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스크린으로 보여진다. 1994년의 종말 서곡,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제목을 썼고, 문단을 나눈 후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보여준 작문의 특징은 멈춤 없음이었다. 그의 글은 제목 결정을 위한 잠깐의 고민 후 쭉쭉 내려갔다. 우리는 변했다. 열기가 꺼지고 거품이 터졌다. 그는 적었다. 알지 못하는 새에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허우적댔다. 너는 울었다. 대전역 광장에 학생들이 모이고, 충대생들은 밤마다 유성으로 갔다. 통행금지의 습관이 이어졌다...
 
 그는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적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는 사람이 늘었다. 눈여겨 보아도 오래 자리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그 수가 점점 늘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놀러 나온 여학생부터 시작되어 2주가 되니 세 명으로 늘었다. 주말에 놀러 나왔다가 비상한 관심을 가진 남자 고등학생 한 명이 있었지만 주중이 되자 학교로 가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보는 사람이 늘었다.
 
 그가 쓰는 내용은 과거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사이에 미스터리와, 잃어버림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내가 나왔다.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김영삼이 당선되고 하나회를 해체했을 때 불현듯 느꼈다... 몇 명이 그의 글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수가 넘어서자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 글이 주는 속도를 느꼈다. 시대의 고전들과 비교해 대단한 글이 못되었지만, 사람들은 이야기에 굶주린 듯 활자의 진행에 넋을 놓았다.
 
 나는 세상의 원리야. 정의와 비겁 사이를 오가지. 모든 일의 원흉이자, 미래의 시작이야. 한 소녀가 나타나서 얘기하는 대목에는 거리 일대가 조용해졌다. 사내와 동행하던 여자가 사내의 친한 동생한테 겁간을 당하고, 여자가 얼결에 친한 동생을 칼로 찔렀다. 사내가 들어와서 피범벅이 된 방을 본다. 소녀의 말이 떠오른다. ...무사한 사람은 없어.
주변 상인들은 그를 마뜩찮아 하고 영업에 방해된다고 무어라 했지만, 손님들이 늘어나자 마치 긍정적인 방관자처럼 굴었다. 그는 유명해졌다. 그를 따라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서울 명동에서. 그 다음 광주 금남로에서. 천안 야우리와 안양 일번지. 부산 서면. 대구 동성로 순으로 거리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났다. 언론에서 다루는 비중도 달라졌다. 이제 지역 언론에서만 그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글만 적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스크린으로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적은 것이 끝이었다. 언론에서는 그들을 거리 작가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다른 지역의 거리 작가들과 달랐다. 시작하면 한 번도 쉬지 않았고, 한 번도 사람들을 응대한 적 없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가 아닌 그가 쓰는 방식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모방하기 시작해도, 그는 자신의 글에 집중했다. 가을이 끝날 즈음이었다. 한기가 대전으로 올라왔다. 그의 글도 마무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다. 그는 자신과 있던 여자가 백화점에서 죽었음을 직감한다. 소녀가 나타난다. 나는 모든 사람이야... 나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자 운명이야... 그리고 사내가 사라진다. 글도 거기서 마쳤다. 대전 시내의 화요일 오후.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질문하기 위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정리하고 떠났다. 자신이 쓰던 주인공 처럼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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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흐린하늘
왠지 이상이나 박태원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민간인
뭐 사실 별 뜻 없이 쓴겁니다(...) 길거리 퍼포먼스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착상을 적당히 구체화시킨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