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 도착한 뒤 폰을 켰다. 내가 폰을 꺼놓은 사이, 너는 읽으라며 수많은 말들을 보냈지만 나는 깡그리 무시했다. 나는 네게 전화했다.
서울이야.
……꼭 와야겠어?
신림 몇 번 출구로 갈까.
너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2번 출구.
알았어. 기다려.
나는 미래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다. 미래는 불안해했지만 울지 않았다. 신림역 2번 출구에서 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모습을 보니, 나는 울며 너를 간절히 용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한 마디라도 잘못 뱉으면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너는 말했다.
미래도 데려왔어?
내가 말했다.
혼자 나온 거야?
너는 내 물음에 대답했다. 어……. 그리고 말했다. 까페로 가자.
나와 미래는 너를 따라갔다. 서울 공기의 유독함이 내 숨을 졸랐다. 앞서가는 너가 무어라 말했지만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내 되물음도 묻혀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않았다. 아무 말도 않으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던 너도 점차 조용해졌다. 우리는 까페에 들어가서 자리잡았다.
너는 말했다.
난 별로 할 말 없어. 미래는 이리 줘, 내가 데려갈게.
나는 이를 악물었다.
공부는 좀 했어? 좀있음 시험이잖아.
응, 그냥저냥.
……난,
나는 묵직한 무언가를 삼켰다.
……너를 위해 너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어. 근데 넌 허락하지 않았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냐.
난 너를 잘 안다고, 너가 그렇게 말했지. 너는? 너는, 나를 알아?
너는 말했다.
"왜 너를 알아야 해?"
주먹 쥔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뭐가 되는데?"
"난 너보고 좋아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전혀 미안하지 않구나."
"미안해."
그 말의 무미건조에서, 나는 어떤 대화도 잇지 못함을 알았다. 너가 말했다.
"이제 돌아갈거야. 고양이 돌봐줘서 고마워. 데려갈게."
"미래는 내가 데려갈게. 그러고 싶어."
"무슨 소리야. 내 고양이야 미래는."
미래도 너에게 가는 것인가. 나는 고양이의 이동장을 열었다. 너는 미래를 꺼내 안았다.
그러자 미래는 네 품에서 발버둥쳤다.
"아!"
미래는 네 손을 긁으며 품안에서 나왔다. 너가 호소했다.
"미래야, 엄마랑 가야지, 왜 그래."
미래는 너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그러더니 너를 보며 야옹, 한 번 울고는 내게 뒤돌아섰다.
나랑 갈래? 나는 미래에게 물었다. 미래는 내게 대답하듯 다가오더니, 벌린 팔에 안겼다. 고단한 듯 눈을 감고 골골거렸다. 나는 망연해하는 너를 보며 말했다. "내가 데려갈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나는 돌아섰다. 너에게서 떠났다.
나는 통로로 나와 고양이를 끌어안고는 멀어지는 너를, 서울을 낯선 풍경을 보았다. 나와 미래만이 남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너와 헤어진 뒤 분명해졌다. 나는 돌아가는 무궁화 하행에서 배 사장님에게 전화했다. 네, 사장님, 저에요. 전에 알아봐주신 곳에서 일하려고 전화드렸어요.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더 알아봐주시겠다구요? 네, 고맙습니다. 괜찮아요, 학교 학점은 딸 수 있으니까요. 일하면서 졸업할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는 나를 보며 야옹, 울더니 다시 눈을 감아 골골거렸다. 내가 무엇이 되는지는 너는 신경도 쓰지 않으리라.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너. 하지만 당당하며, 자존심을 잃지 않는 너. 잘 때마다 다가와 품에 안겨 체온을 나눠주는, 나를 선택하고, 떠나지 않은 너. 이제 나는 너를 위해 살리라. 너는 나의 미래다. 나는 너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