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 : I'm Instrument] 새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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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 - Silent love


빨려들어갈 것 같은 밤하늘, 빠져버릴 것 같은 은하수, 그 사이에 놓여진 다리는 침묵.

 * * *

저녁 7시 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만족스런 저녁을 제공해줄 식당을 찾다가 발견한 곳의 천장은 플레네타리움(planetarium)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였다.

어둡고 푸르스름한 천장은 움푹 들어가 있어서 이글루의 천장을 연상시키는 형태였고, 천장의 어두운 색깔에 대비되는 새하얀 별들이 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길거리에 있는 평범한 식당이 아니라 우주에 세워진 정거장 안에 있다는 착각을 주고도 남았다.

식사하는 내내 말 한마디 없이 밥 한술 떠먹고 천장 보고 밥 한술 떠먹는 것을 반복하던 친구는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오자마자 불쑥 말했다. 오늘 별을 보러 가자고.

나는 그 말에 수락했고, 우리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각자 준비를 하기 위해 헤어졌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졌을 때 큰 파문이 이는 것처럼, 플레네타리움을 닮은 식당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파문을 남겨놓았다.

그래서 정말 충동적으로, 별을 보러 떠났다.

 * * *

밤 10시. 망원경, 쌀쌀한 날씨를 대비한 두툼한 옷, 허기를 대비한 여러 음식과 참고용으로 쓸 별자리판과 손전등을 가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2분 후, 친구는 한 눈에 봐도 많이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왔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도시의 외곽 쪽에 있는 산은 거리가 적당히 떨어져 있었고, 공기도 적당히 맑아서 별을 보는 데 괜찮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차를 등산객들을 위한 주차장에 주차시켜 놓고, 우리는 누가 시킨 것처럼 말없이 산의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밤 11시 반. 정상에 도달하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도시의 야경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들이 도시를 구성하는 모습도 나름 장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다고 무심결에 생각했다.

새벽 12시. 정상에 올라온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캔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나름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에 도달한 지는 꽤 되었지만, 여전히 쓰게 느껴지는 커피는 역시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을 슬쩍 보니까 친구는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새벽 2시 반. 고요했다. 심장소리마저 가깝게 들리는 정적과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은 마치 우주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주었으나, 나즈막하게 부는 약간 서늘한 밤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이름모를 벌레가 우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면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우리들이 우주가 아닌 산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는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다 보면 그 속에 빠져 익사해버릴 것 같아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친구와 눈이 마주쳤지만,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도 쑥쓰러운 기분이 들어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는 코코아를 홀짝이는 소리만 들렸다.

새벽 3시. 우리는 동시에 일어났고, 동시에 짐을 챙겼으며, 동시에 산을 내려왔다. 서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제약을 건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친구의 사이에는 침묵이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인 것처럼, 산을 내려오고 차에 타고 원 위치인 약속 장소로 돌아올 때까지 어떤 소리도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히 들렸다.

다음에 또 별을 보러 가자고.

집에 도착해서 벽장 속에 망원경을 넣고 나니까, 수평선에 비치는 어스름한 빛이 밤을 몰아내고, 새벽을 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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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 주인공과 친구의 성별은 딱히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의 상상의 여지에 달려있습니다.
2. 제목을 '새벽의 기묘한 천체관측'으로 하려다가 그만뒀습니다. 기묘한 부분이 없어서요. 즉흥적으로 쓴 거라서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3. Silent love는 마침 가사가 'silent love'만 몇번 반복하는 거라서 노래의 컨셉(?)에 맞추기 위해 대사를 최대한 적게 넣었습니다. 절대로 대사 쓰는 게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4. 창작의 고통은 '내가 고자라니'에 맞먹는 것 같습니다. 끄아아아 5KB도 못 쓰다니.
5. 마감 직전의 작가가 어떤 기분일지 이해가 잘 되는군요. 그리고 마감 시간은 이미 넘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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