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한 방울의 눈물이 되던 날

Novelistar 2 3,069
언젠가 세상에 이런 말이 던져진 적이 있다. 아주 먼, 머나먼 미래지만, 태양계의 주축이자 수많은 생명을 지구에 잉태시킨 태양이 활동을 멈춘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먼,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의 거리 너머에 놓인 미래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역사적인 날. 태양이 서서히 쪼그라들다 한 방울의 눈물로서 화하는 어찌 표현 해야할지 모를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 날 이 풍경을 바라볼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태양은 서서히 늙어가고 있었다. 여태까지 늙어왔듯이 일정한 속도로,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경험 많은 마라토너처럼 꾸준하게,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그 순간,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구 위에는 그 전에 있었던 문명들의 잿더미가 아직까지도 마저 다 깎여나가지 않아 수북이 쌓여 있다. 산과 들과 바다의 굴곡을 이루며 잠시나마 온전한 대자연 그 자체로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오랫동안 녹아들어 자연스러웠다.
 
햇빛은 해가 뜨건 지건 항상 노을빛이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산의 능선과, 저 너머 지평선에는 그렇게까지 찬란하게 빛나지 못하는 태양의 빛을 부드럽게 흩뿌려주는 여러 금속들이 쌓여 우그러들고 있다. 서서히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크기가 예전만치 못한 그 작은 태양은 마치 가을 날씨 마냥의 온도를 지구에 흩뿌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이미 몇몇 고목을 제하곤 절멸했고, 그 때문에 몇몇 텅 빈 황야와 사막에 덩그러니 서있는, 외로운 모냥으로 뻗어나가고 우그러든 고목들의 위로 그 오렌지 비취빛 노을이 비칠 때.
 
셀 수 없는 떠오름과 짐이 반복되었고, 서서히 그 약속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일부, 감성이 풍부하였던 이들의 준비물. 단 한번의 리허설도 있을 수 없는, 여타 피날레와는 달리 아주 방대하고 손아귀로 움켜쥘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사건. 어머니를 위한 피날레가 다가오고 있었다. 태양은 서서히 희옇게 변해갔다. 부플어오르는 정도는 서서히 커져갔고 시간도 빨리 흘러갔다. 호스티스 병상에 누워 창가의 햇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 환자처럼.
 
 
하염없이 스쳐 지나가는 광경이 생경하여 다시금 알아차리고 난 뒤에 생각해보았다. 그 순간은 바로 내일로 다가와있었다. 수많은 카세트 테이프가 기관총의 총알처럼 끼워진 채 늘어져 있는 구형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무사히 그 높은 쓰레기의 산에서 넘어지지 않고 온전하게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쓰레기가 우그러들며 무너지며 감춰져 있던 몇몇이 드러났고, 애초부터 정상에 서서 태양을 바라보고 있던 고참들은 말 없이 신참들을 환영하며 그 날의 다가옴을 알렸다. 수많은 명화들과, 쓰리디 입체 이미지 상영기와, 수많은 책들의 산도 드러났다.
 
어찌보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이 어머니 태양의 임종을 잊어버리진 않았나보다.
 
 
 
문득, 너무나도 슬픈 햇빛이 살며시 일어나기에 바라보았다.
빛은 엄청나게 진한 오후의 것과 다름 없었고, 태양은 서서히, 마지막 등산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태양은 너무나도 거대하였지만 빛은 그렇지 아니했고, 그렇기에 마치 지구에 마지막 포옹을 하려는 것처럼 태양은 바로 앞까지 다가온 듯 보였다. 빛이 서서히 지평선으로부터 올라왔고, 그 순간, 모든 라디오가. 덕지덕지 먼지가 쌓여있는 책들과 명화들과 상영기의 산 위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의 범위 안에서, 마지막 어머니의 일주를 응원하고 있다.
 
임종 직전 녹음하여 중간중간 거센 기침이 콜록이는 배철수의 DJ 멘트와 그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롤링 스톤스의 Satisfaction이 살며시 지지직거리며 나오고 있었고, 수많은 상처입고 찌그러지고 군데군데 낡은 옛 백색 가로등들이 점멸하여 책들과 명화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영사기에서는 인류가 이룩한 모든 영상매체들이 서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올 즈음에는 태양이 정오까지의 등정을 절반쯤 마친 상태였다.
 
수많은 에술인들의 한마디씩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태양의 임종 날짜를 알지 못해 준비하지 못한 이들도 문명의 도움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스케치는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며 밑자락을 찰랑였고, 베토벤과 모짜르트 등의 교향곡은 위에만 먼지가 쌓인 레코드 플레이어로 전 지구에서 동시에 웅장하고 아름답게 울려나오고 있다. 어머니에게 들릴까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언제나 그랬듯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으며, 헤밍웨이와 도데와 포와 그 외 수많은 책 속의 작가들은 그들의 책 페이지로나마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봄에 감사하듯 미풍에 천천히 펄럭이며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있다. 희미하게 설국이라 보이는 책의 주변엔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마치 눈보라처럼 책을 에두르고 있었고, 오웰은 왠지 모르게 슬퍼하는 듯 이따금 페이지를 멈춘다. 수많은 춤과 희극과 오페라들이 영사기를 통해 지나갔다. 피에타는 지는 태양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햇빛을 받는 예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지 않았다. 피에타에만은 가로등이 켜있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런 예수를, 혹은 태양을 안고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머릿자락만이 지평선 너머로 보일 때. 마침맞게 지구와 머나먼 태양의 크기가 겹쳐졌고, 그렇게 모든 라디오가 서서히 지지직거리며 멈추었다. 어머니는, 기침을 한 번 크게 하시더니 적막함 속에 크게 팽창했다 그 반동으로 한없이 우그러드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 방울의 눈물이 되셨고, 칠흑같은 암흑 사이로 달과 별의 빛이 비치는 라디오에서는 그저 주인 모를 안녕 인사만이 나오고 있었다.
 
산 그 자체이거나 위에 놓여있던 인간의, 지구의 모든 것들은 거의 영원에 가까웠던 기다림을 끝내고 피날레에 만족한 듯 서서히 무너졌다. 비록 그 누구도 기억하거나 보지 못했을지라도.
 
 
 
 
Fin
 
 
 
 
The Day Sun becomes like a drop of tear
 
2014 01 01
05 33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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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Caffeine星人
담백하고도 즐겁고도 씁쓸하고도 슬픈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