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카미 유우
미타키하라
오후 5시 30분
“이번 내리실 역은 미타키하라. 미타키하라입니다.”
기차의 안내방송은 고향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다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만큼 오랫동안 떠나 있었기 때문인 것일까.
한적한 시골동네였던 이나바시와는 모든 것이 틀리다. 고개를 살짝 들자 고층 빌딩의 무리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내가 어릴 적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마을이었던 곳이었지만, 두바이를 모티브로 시에서 개발을 추진하고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별로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어쩐지 지금에 와서는, 두바이에 도착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분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도 이런 평가를 하고 있다니.
아니, 괜찮아.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이어져 있다. 친구들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나바에 다시 방문하는 것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기회가 될 때 언젠가 다시 들러야겠다.
1년간 살다 온 시골마을에서는 여러 가지로 큰일들이 많았다. 페르소나 능력의 각성이나, 마을 내에서의 살인 사건, 그리고 원흉이었던 아다치나 이자나미와의 싸움. 그 도중엔, 사촌 여동생인 도지마 나나코도 휘말렸었다. 만약, 냉정함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있었을지도 모른다.
비일상적이고 꿈만 같았던 하루하루가 끝이 났다. 내일부터는 또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부모님이 마중하러 나와 주었다. 만난 이후로는, 여러 가지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1년 동안 많이 의젓해졌다고. 아마, 저쪽에서 겪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말해도 믿지 않으시겠지.
오랫동안 떠나있었던 집의 방에 다시 돌아왔다.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펜트 하우스다. 기능성에 있어선 일본식 집보단 낫겠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다. 이나바에서 쓰던 물건들이 박스에 담겨져 있다. 이사 전문센터에 의뢰한 물건들이다. 정리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다. 박스 안엔, 치에와 요스케,나오토 등등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 액자로 만들어져 있다. 잘 보이는 곳에 놔둬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피곤하기에 일찍 잠들기로 했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바로 눈이 스르르 감겨온다. 기차로 이동해오는 시간이 상당히 길었던 탓일까.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이곳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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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번 다시는 벨벳룸에 방문하게 될 일이 없을 것이라 이고르는 공언했었다. 그래, 이곳은 벨벳룸 같은 장소가 아니다. 꿈을 꾸고 있는 걸 자각할 수 있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묘한 풍경이다. 마치, 안개가 잔뜩 꼈던 TV 속과 비슷하다. 오래된 영사기에서 비춰진 화면 같은 것이 공중에 떠있다. 무슨 장면인걸까 이건. 어딘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무기 같은 걸 들고 쉐도우 같은 무리들과 싸우고 있다. 페르소나를 구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걸까.
얼마 전엔, 라비리스에 관련된 사건에 휘말렸던 일도 있었다. 우리들뿐만이 아닌, 다른 페르소나 능력자들을 만나기도 했었고. 키리조 그룹에 관련된 사람이라던지, 특수창설부대라던지.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지만, 언젠가 또 만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 꿈도 일종의 암시는 아닐까.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과연, 주인께서 알아보셨던 분.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엘리자베스라고 합니다.”
화면의 잔상으로부터 특색있는 은발머리에 호박색 눈동자를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벨벳룸의 주민이다. 게다가, 마가렛의 여동생라던가. 꽤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었지. 다른 대화는 제외하고 우선, 핵심부터 물어보는게 나을 것 같다. 꿈의 내용 중, 쉐도우와 싸우는 여자애들에 관한 것에 대해 엘리자베스에게 질문했다.
“그것은, 저희들의 주인이 가진 기억. 반역의 이야기가 쓰여지기 전의 오래된 동화입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반역의 이야기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현재 저희들, 벨벳룸의 주민들은 그쪽의 세계에 개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녀’의 눈에 닿지 않는 ‘꿈’ 속이라면 이렇게나마 인사를 드릴 수 있겠지요.”
그녀라니? 누굴 말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것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그녀는 결코 당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이나바시에서 떠나온 지 이제 겨우 하루가 되었을 뿐인데. 페르소나를 구사하게 되면서부터는 여러 가지 일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일도 각오해야하는가.
“걱정하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련을 넘어왔던 당신이라면, 이번에도 분명.”
그러다가, 갑자기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의 홀로그램처럼 흐릿해져가기 시작했다.
“벌써, ‘그녀’가 알아차린 것 같군요. 저는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지금의 ‘당신’을 ‘그녀’에게 들켜서는 안되니까요. ‘그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때에, 벨벳룸은 다시금 손님을 위해 그 문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까지 부디.”
기다려 줄 수 없는 건가. 엘리자베스는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선 사라져버렸다.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사라진 곳에선, 어떤 장면들이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서 내다보는 것처럼 지나가고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녀들의 모습. 그리고, 내가 태어난 미타키하라에서 그들이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장면들이 계속 해서 오버랩되고 있다. 영사기의 묵은 화면들이 감기는 중, 이상하게 위화감 같은 것이 들었다. 뭘까, 이 불길한 느낌은. 톱니바퀴가달린 거대한 인형이 공중 위에 떠있는 형상이 보여지다가 이내에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별의 바다가 나타났다. 중력이 사라진 것일까? 마치, 우주에 떠있는 것 같다. 태양계의 일부로 보이는 장소에서, 눈이 따가울 정도의 광채가 비춰졌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광채는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을 것이었다. 혹시 엘리자베스가 말한 ‘그녀’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니, 다르다. 살기라던지 적대감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호박색 눈동자의 여자아이. 광채와 같은 빛을 띈 하늘거리는 옷에 여러 갈래의 날개를 지니고 있다. 천사가 연상되는 모습. 적은 아닌 것 같다.
“그대는 나, 나는 그대.”
머릿속에서 울리는 음성. 바깥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마치 안에서 진동하듯이 들려오는 여자아이의 목소리. 분명, 내 눈 앞의 천사가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저쪽 세계의 주민인 것일까? 어디에선가 만나봤던 것처럼 익숙하다. 포근하고 따뜻한 빛. 지금까지 만나왔던 이들과 공유해온 ‘인연’의 힘과 같은 성질이었다. 페르소나인가?
소녀는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미소를 지은채 서서히 점멸해가기 시작했다. 우주 전체에 광채가 확산되어 덮음과 동시에, 나는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는 오전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 바늘이 이상한 쪽으로 향해있어서 처음엔 어리둥절 했지만, 내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거꾸로 뒤집혀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거겠지.
꽤 세게 부딪힌 것 같은데. 상당히 아프다. 창가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아침이 된듯 하다. 몸을 추스리고 일어서서 곧장 옷을 갈아입고 씼었다. 그대로 1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는데. 집이 조용한 것을 알았다. 아침밥이 랩에 싸여진 채로 놓여져 있는 것을 빼면 어제와 별다르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부모님의 쪽지가 놓여져 있기도 했고.
어디보자. 다시 학교에 등록수속을 넣기 전까지는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오늘은, 부모님 두 분 다 일찍 출근하신 것 같다. 워낙에 학구파이신 분들이라, 아마 이번에도 조사한 유적지들에 대한 강연을 서두르신 것일지 모른다. 오늘은 뭘할까.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도 없다. 다시 동네를 돌면서, 익숙해지도록 해볼까. 혼자서 외출하기로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초조해질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