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NOON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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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NOON (5)
-Sin City
 
등장인물 소개
 총잡이- 주인공. 키는 7피트 반, 몸무게는 220파운드. 개조인간 총잡이이다. 지난 이야기에서 로스트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인디언 전사 제로니모 조와 인형사 돌메이커 보니를 쓰러뜨리고 마침내 데스 베이거스에 도착했다.
 
할리- 맥의 애마. 애팔래치아 종. 오토바이로 변신할 수 있으며, 아슬아슬한 장면을 찍기 위한 로켓식 비상탈출장치와 지금까지 장착해두고 딱 한번 쓴 개틀링도 숨겨두고 있다. 얼마나 많은 장비가 숨겨져 있을지는 생각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
 
제로니모 조-전통의 미사일과 플라즈마 화살로 싸우는 선주민 전사. 막대한 화력을 퍼부어서 총잡이를 거의 죽이기 직전까지 갔지만, 간발의 차로 패하고 죽었다. 

돌메이커 보니-한 번에 수십마리의 인형을 부릴 수 있는 인형사. 제로니모 조를 도우러 왔지만, 팀워크 불량으로 패하고 죽었다?

#1

나는 할리에 탄 채로 걸었다. 주위로 차들이 지나가며 성난 경적을 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 가라고 하지 않았나. 지긋지긋한 사막과는 다르게, 데스 베이거스는 거의 녹지였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호텔과 거기 딸린 카지노가 한 블록 건너 하나 있었다. 시꺼먼 피라미드나 제정 로마시대의 건축물, 그게 아니라면 미치광이 건축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도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호텔들. 흥청망청 거리는 카지노와 거기서 쫓겨나는 빈털터리 패배자들. 물론 그 중 어떤 것도 즐길 여력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중, 옆으로 차 하나가 멈춰 섰다. 뒷 창문이 열리더니, 외눈박이 뚱뚱보의 모습이 드러났다.
 
“Somebody set up us the bomb!(해석: 이 말똥이나 흘리고 다니는 병신새끼야! 걸리적거리지 말고 길에서 꺼져! 덩치도 큰 놈이 길가에서 지분지분거리고 뭐하는 짓이야!)” 

그는 이 동네 특유의 사투리, 데스어語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가 분량 늘리려는 개수작으로 넣었을 법한 이 동네 말투는 얼핏 들으면 공용어 쌍욕이나 헛소리로밖에 들리지는 않지만, 자기들 나름대로는 말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방언 계의 모르도르라고 할까. 다행히 이쪽 출신들이랑은 많이 접할 기회가 있어서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아니, 내가 타고 있는 건 분명히 차인데. 모르냐? 마차도 차라고.” 

내가 말하자, 네눈박이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문을 열고 내렸다. 뒤의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가운데, 차에서 그 말고도 총을 든 놈들이 두 놈인가 세 놈이 더 내렸다.
 
“Good evening. How are you?(해석: 그래, 외지인 씨발놈아. 마침 돈도 잃어서 기분 나쁘던 참인데 네놈으로 화를 풀어야겠다?)” 

놈도 22게이지 샷건을 들고 있었다. 

“Nice to meet you.(해석: 놈을 죽여.)” 

하지만 다 죽어가는 내 기준에도, 놈들은 지독하게 느렸다. 무엇보다 협박을 하려 드는데 총을 겨누고 시작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글렀던 것이다. 다들 네 발의 총성과 2초 남짓한 시간 동안, 놈들은 모두 피안개가 되고 남은 부속은 바닥에 뒹굴었다. 비명이나 사이렌 소리를 예상했었지만, 경적 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렸을 뿐이었다. 

“Party time!(해석: 살인이야!)”

계속 할리 위에 타고 가며 주위를 보니, 몇 명인가의 사람들이 낙담한 표정으로, 혹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돈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이런 동네인 건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 정도였을 줄이야. 잠시 고민한 뒤, 나는 인도로 다니기로 했다. 가는 곳마다 이래서는 곤란하니까. 뒤에서 큰 폭발음과 비명 소리, 쌍욕이 들렸다. 머리 위로 파편이 스쳐 지나갔다. 병원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2

“거의 다 됐습니다. 그런데 뭐 하다가 이렇게 다치셨는지요. 심지어는 몸 전체가......” 

여의사가 붕대를 꺼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죽음과 질병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저번에 칼침을 맞은 부위를 봤다. 철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뻣뻣한 실이 살과 살을 간신히 붙들어 매놓고 있었다. 

“댁 알 바 없수다.” 

“호호호, 그렇군요.” 의사는 어색한 웃음을 띄우며 붕대를 감았다. “상처에 들어간 건 일종의 지효성 소화독이라고 보셔도 좋을 것 같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녹아들어가서 죽었겠지만, 환자분의 좀 특이한 신체조건 덕분에......”

“뇌 주름마다 화약 먼지가 껴 있을 촌뜨기에게는 말이 좀 어렵다고 생각한 적 없나, 의사양반.” 

여의사는 그 말을 듣고 쿡쿡 웃었다. 그녀는 붕대를 다 감은 다음에, 내 등을 힘껏 쳤다. 캘러미티 제인에게 맞았을 때의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저절로 낫는 상처가 아니란 이야기에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상처는 계속 벌어지겠죠. 일단 억지로 봉합은 해 놓긴 했는데요.” 

내 표정을 봤는지, 의사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둘러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낫는 방법은 없어?”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른 의사를 소개해 드릴 수도 있는데.” 

여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어째 말하는 투가 ‘차라리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여 받는 게 나을 거에요’에 가깝게 들렸다.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옆에 있던 메모지에 펜으로 약도를 마구 휘갈긴 후 건넸다.

“이 주소로 찾아가 봐요. 아, 내가 소개해서 찾아왔다고 절대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약도는 지독하게 지저분한 글씨로 휘갈겨져 있어서,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뭐 하는 사람인데 그러쇼.”

“실력 좋은 의사죠. 아주 실력 좋은 의사.” 

의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채로, 붕대로 칭칭 감은 배를 붙잡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마구 엉킨 선과 동그라미가 인도하는 곳은 심지어 병원조차도 아니었다. 번화가에서는 한참을 가야 할 법한 구석탱이 동네였다. 무면허 의사인가? 나는 할리 위에 올라탔다.  

#3

아주 어릴 때 본, 싸구려 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싸구려 아파트가 눈앞에 서 있었다. 도저히 이 도시와는 어울린다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건물에 위태롭게 붙어 있는 비상계단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안에서 튀어나온 건 시뻘건 머리카락을 뿔처럼 희한한 형태로 말아 올린 괴인이었다. 금방이라도 말아 올린 머리카락 양 끝에서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만큼이나 희한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돌팔이의 전형 같은 모습이었다.

“Are you okay? Answer me!”(해석: 뭐야? 저리 비켜!) 빨간 머리는 비쩍 마른 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나를 밀어낸 뒤, 계단을 두 개씩 세 개씩 넘어 밑으로 뛰어갔다. 영문도 모르고 밀려난 내 뒤로, 경찰 둘이 뛰어왔다. 그들은 아마도 내가 찾아가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작자에게 총을 겨눴다.
 
“Suck your old man’s pickle! (해석: 꼼짝 마! 너를 살인미수 및 불법의료시술행위로 체포한다!)” 그런데도 돌팔이가 계속 도망가자, 그들은 돌팔이 쪽으로 발포했다. 하지만 돌팔이는 마치 관절이 없는 것 같은 기괴한 움직임으로 총알을 피하고 있었다.

“Go to hell, you faggots!(해석: 나는 그 친구들에게 작은 선물을 해준 것뿐이라고!)” 돌팔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안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가운 입은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각자 사타구니니 머리 위에 기계로 된 팔이니 다리가 하나씩 더 달려 있었다. 그들은 패닉 상태로 돌팔이를 쫓아가려다가, 경찰들이랑 엉켜서 더 기괴한 꼴이 되어버렸다.

“Somebody set up us the bomb!(해석: 아아아아악! 저놈! 저놈이!)”

“How are you gentlemen!(해석: 살려줘! 저 정신병자가 우릴 이런 꼴로 만들었어!)”

“You! (해석: 놓아 줘야 잡지, 멍청한 놈아!)”

뒤에서 총성과 비명이 어지럽게 섞여 울리는 가운데, 나는 뒤에 세워뒀던 할리에 올라타 박차를 가했다. 돌팔이는 그 혼란을 틈타 상당히 거리를 벌려 놓은 상태였다. 한참을 쫓아가다가 할리의 덩치로는 들어가지도 못할 골목이 나와서, 두 발로 뛰어가야 했다. 돌팔이와의 거리는 불과 수 미터였고, 놈은 이 주위의 골목길은 훤히 꿰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사라졌다 싶으면 뒤쪽에서 나타났다. 쫓아가면 어느 새 앞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여기서 놓치면 이 지긋지긋한 상처를 빌리와 싸울 때까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봐! 도망가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난 환자라고!” 

놈이 다시 눈앞에서 담장을 넘기 전에 외치자, 놈은 소름끼치는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봤다.

“뭐, 환자라고!” 

놈은 도마뱀에 가까운 몸동작으로 벽을 기어 내려온 다음, 이쪽으로 왔다. 

“그래, 어디가 아프신가? 누구한테 소개받고 왔지?”

“여의사였는데, 내가 자기한테 댁 소개시켜 줬다는 거 불지 말라고 하더군.”

“그 년이 무슨 일로 날 소개해줬대? 입이 가벼운 것이 아주 마음에 드는군. 이쪽이야, 이쪽으로 오시게.” 

돌팔이가 앞장섰다. 골목의 아무 것도 없는 벽을 몇 번 건드리자, 벽이 접히고 열리며 할리까지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의 입구를 만들어 냈다. 입구는 어둠이 장막을 이룬 것처럼, 밀도를 가진 그림자에 의해 가려지고 있었다. 

“내 이름은 딕 존슨 주니어라네. 보통 ‘매드닥’이라는 시덥잖은 별명으로 부르는 놈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가 어둠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가, 허리를 굽혔는지 얼굴만 삐져나왔다. 덕분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머리통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육편 조각 더미로 만들 뻔했다. “뭐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한참 망설이다가 머리를 집어넣자,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4

“어때, 대단하지 않나?”

안은 보는 것과 달리 굉장히 넓었고, 새하얀 공간에 눈이 아플 정도의 형광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벽이니 바닥은 쓰고 난 솜이나 붕대, 온통 피니 정체불명의 쪼가리 등의 의료폐기물과 지저분한 도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매드닥이 들어오자마자 불쾌하게 사람을 연상시키는 기계들이 어디선가 우르르 몰려와 휩쓸고 지나갔고, 방 안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깨끗해졌다. 놈들은 나타난 것처럼 다른 쪽의 통로로 사라졌다.

“선주민 테크놀로지의 정수로 꾸민 진료실이지.” 딕이 말했다. 선주민 테크놀로지라는 말에, 저절로 등 뒤에서 오한이 타고 올랐다. 바로 그 선주민 테크놀로지에 바싹 구워질 뻔했으니까. 뭐라고 대답해 보기도 전에 등 뒤에서 바퀴 달린 의자가 굴러오더니, 반응하기도 전에 나를 강제로 주저앉혔다. 의자에서 수많은 플러그와 벨트가 튀어나와 내 몸을 단단히 묶었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오오! 전 환자에게 썼던 모드를 해제하는 걸 깜빡했군.” 매드닥이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벨트니 플러그가 다시 말려 들어가며, 나는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이런 시설을 숨겨두고 있는 주제에 왜 아까는 경찰에게 쫓기고 있었지? 굳이 왕진 같은 건 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왕진이라고? 그건 왕진이 아냐. 취미생활이지.” 매드닥이 말했다. 그가 손을 뻗자, 아까의 기계인형들이 잘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트레이를 몇 개 끌고 왔다. “정말 멍청한 놈들이라니까! 이 동네에서 콜걸을 부르면 다 늙어서 시들어버린 할망구가 올지, 아니면 인체개조를 좋아하는...... 내가 뭐라고 했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어디가 아프지?”

“이걸 붙일 수 있는 건 댁밖에 없다고 해서.” 나는  웃옷을 벗고 붕대를 풀었다. 돌팔이는 이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흠, 사람 치고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 했더니, 사이보그였군.”

“그쪽의 뿔인지 뭔지 모를 머리카락도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하지만 돌팔이는 전혀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상처를 살피고, 거기서 샘플을 채취해 넣기 바빴다.

“제대로 점검을 받은 지 얼마나 됐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돌팔이가 옆에서 작은 막대 비슷한 걸 꺼내서 갖다 댔다. 막대가 몇 번 삑삑거리는 잡음을 내더니, 끄트머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 홀로그램을 투사했다. 물론 내가 봐야 하나도 모르는 영상들이었지만, 돌팔이는 그걸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개조받은 놈들은 항상 천년만년 팔팔할 거라고 생각한다니까.” 돌팔이가 관절에 막대를 갖다 대자 그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미치겠구만.”

“요 일주일 간 제대로 쉰 적도 없었겠군.”

“어제야 이 도시에 들어왔으니까. 뭔가 문제라도 있는 모양이구만.”

“일단 좋은 소식은 네가 목숨은 건질 수 있으리란 거고, 나쁜 소식은 당분간 자숙의 기간을 가지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앞으로는 살아있을지 어떨지 보장할 수 없다는 거지.”

“젠장, 언제 빌리놈이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자리에 쳐자빠져 있으라는 거냐!”

“빌리? 설마 빌리 더 게이키드를 이야기하는 건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 중에 빌리 더 게이키드를 모르는 놈은 하나도 없지.”

“그럼 일이 더 쉬워지겠군.”

“그리고 그에게 개인적인 숭배를 바치고 싶어하는 놈들도 수두룩하다고.”

“댁도 그런 부류인가?”

매드닥은 내 쪽을 보더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내 손이 총 손잡이 쪽으로 향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놈에게 개인적인 숭배를 바치고 싶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놈을 잡아다가 한 올 한 올씩 떼어서 살펴보고 싶거든.”

“그럼 됐어.”

나는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매드닥이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아까 사라졌던 벨트니 스트랩 등이 다시 튀어나와 내 몸을 옭아맸다.

“이 개자식......! 결국 이런 식으로!”

“아니, 오해하지 마. 나는 널 빌리에게 갖다 팔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내 마음에 든 환자가 생겼을 뿐이지. 네게 세 가지를 말해주지.”

“뭔지 별로 궁금하지는 않군. 그렇다면 빨리 처치나 해 줘.”

“첫 번째. 오래 살고 싶다면 이 도시에서 빌리 더 게이키드를 죽일 생각은 하지도 말 것. 지금의 넌 그에게 상대도 되지 않겠지.”

“하아? 웃기는군. 놈의 부하라는 놈들도 지금까지 잘 죽여 왔다고.”

“직접 만나면 잘 이해하게 되겠지. 두 번째. 거듭되는 여행 끝에 네 몸은 완전히 한계에 이르렀으니까, 처치를 하더라도 당분간 요양이라도 할 것. 원한다면 여기서 묵어도 좋고, 싫다면 아는 호텔을 소개해 주지.”

“요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 번째. 마침 마취제가 다 떨어진 참이었거든. 수술 중 각성이 일어나지 않으란 보장은 없는데, 일단 이걸로 참아달라고.”

매드닥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그게 뭔......”

다음 순간, 눈 앞에 불이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5 

나는 한참 뒤에 감쪽같이 메워진 배의 상처와, 머리 뒤에 난 거대한 혹과 함께 매드닥의 소굴을 나섰다. 개인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에 대한 보복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은인은 은인이었으니까.

“내 진료실에서 지내지 그래. 나는 괜찮다고. 아니, 오히려 환영이지!”

매드닥이 말했다. 그는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내 몸을 여기저기 훑고 있었다.  

“아니, 댁 친절은 고맙지만 됐어. 여기서 뭘 더 달고 나오는 것은 혹만으로 충분하니까.”

“안타깝군......나중에라도 연락하라고.”

매드닥이 품에서 뭔가 꺼내서 건넸다. 구깃구깃한 명함이었는데, 명함에는 ‘매드닥 존슨 jr. 장기매매, 인체개조, 사이보그 시술 싸게싸게 해 드립니다. I-LOVE-BODY-MOD’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걸 대충 받아 탄띠 옆에 끼웠다.

“호텔 고모라라는 곳에 가보라고. 그 명함을 보여주면서 내가 보내 왔다고 하면 바로 방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매드닥이 말했다. 나는 슬슬 그의 호의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참이라,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것 참 고맙군. 다음 번에 봅시다.”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야.”

매드닥이 말했다. 나는 할리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나가면서 몇 번을 돌아봤는데도, 매드닥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할리에 타면서도, 놈의 시선이 계속 느껴지는 것 같아서 오싹한 기분이었다.

 호텔 고모라는 입구에서부터 무슨 고딕 소설의 배경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시대착오적으로 솟은 첨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희한한 코스튬의 미치광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지키고 있는 무장한 바운서들 덕분인지 난동을 부리거나 하는 놈은 거의 없었다. 

“비켜, 씨발! 저리 비켜!”

아니,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정문이 열리더니 지폐를 잔뜩 품에 안은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그 뒤로 정장을 입은 깡패들이 뛰어나와 총을 들고 그를 쫓았다.

“저 놈 잡아!”

“어이, 거기 당신! 나 좀......”
 
총성과 함께, 머리가 절반이 된 남자가 바닥에 엎어졌다. 피 웅덩이 위로 지폐가 떨어져 물들었다.

“시체는 가져가서 소각로에 태우고, 지폐는 회수해. 한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네놈들은 다 모가지인 줄 알아.”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깡패들은 궁시렁거리며 저마다 피웅덩이에 떨어진 지폐를 줍거나, 시체를 끌고 갔다. 나는 계속 이동해 로비로 향했다.

“발렛파킹은 10 데스달러 되겠습니다.”

보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하자, 나는 그의 주머니에 12 데스달러를 찔러주었다. 

“잘 마른 건초를 먹여주쇼.”

그는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할리를 끌고 저쪽으로 향했다. 나는 회전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순간 직원들의 시선이 전부 내 쪽으로 쏠리는 걸 느꼈다. 나는 그대로 프런트로 돌진해서, 탄띠에 꽂혀 있던 명함을 내밀었다.

“이 사람이 보내서 왔는데.”

 프런트 직원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다른 프런트가 손을 전화기로 가져가는 것 같더니, 명함을 받은 직원이 그를 말렸다. 그들은 한참 동안 자기네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쑥덕거리다가,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내게 열쇠를 내 줬다.

“방은 1903호입니다. 즐거운 투숙 되십시오. 체크아웃은 원하실 때 하셔도 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방은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지나치게 푹신해서 누우면 스프링이 등에 닿는 것 같은 착각까지 주는 침대에, 깨끗한 물이 무한정 나오는 수도꼭지와 욕조, 우물이 하나씩 갖춰져 있었다. 나는 우물에 담겨 있는 물을 조금 마신 다음, 바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6

 매드닥의 말대로 일 주일 정도는 얌전히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놈은 가족이 죽고 나는 불구가 되었던 그 사건 이후로도 무수히 악행을 저질렀으며, 목에 걸린 현상금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치외 법권인 이곳으로 도망쳐온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와 그 똘마니들이 공포와 돈, 쾌락으로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여긴 그야말로 놈들의 소굴이었다.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사는 게 열 받는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쌈짓돈까지 다 내줬는데도 얻은 정보들은 별 볼일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놈이 하는 짓과는 다르게 선주민 유적보존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서 거기에 돈을 엄청나게 들인다거나, 팬티는 항상 똑같은 곳에서 산다던가, 그런 팬티와 모자가 커다란 방 하나를 채울 만큼 있다던가 하는 정도의 가십거리들. 딱 하나 건질만한 것이 있었다면, 평소에는 경계가 삼엄한 소굴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늘 오전 9시 데스 베이거스를 떠난다는 정보였다. 자성이 강한 모래폭풍 덕분에 비행기는 뜨지 못하고, 사실상 나를 제외하면 도로를 통해서 이곳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놈이 나타날 곳은 한 곳으로 정해져 있었다. 기차역.

“음.”

나는 총을 집어 들어 다시 점검했다.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작동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놈을 보자마자 벌집으로 만들고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것뿐이었다. 식은 죽 먹기였다. 시계를 보니 결행까지는 2시간가량 남아있었다.

“이렇게 혼잣말하는 버릇이 참 안 좋지...... 이 일이 끝나면 사람이라도 사귀어봐야겠군.”

중얼거리며 탄띠에 총을 넣고, 뒤로 누웠다. 하지만 등이 채 침대에 닿기도 전에 콩 볶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졌다. 

“이건 또 뭔......”

방 안으로 시커먼 형체가 서넛 굴러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뺨 옆으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급한 대로 탄띠를 챙겨 일단 테이블을 넘어뜨린 뒤 그 뒤에 숨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테이블이 격렬하게 떨렸다. 

“Good morning. Breakfast is ready, son.(해석: 오늘 해는 보지 못하고 죽겠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총잡이.)”

건너편에 있는 놈 중 하나가 말했다. 다행히 화장대 쪽에 있는 거울이 놈들의 움직임을 훤히 비추고 있어 네 놈이 토미건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가죽 팬티만 걸친 거구의 근육남들이었다. 거울 속에서 놈들은 탄창 하나를 비우고는 열심히 갈아 끼우는 중이었다. 나는 바로 나와, 차례대로 놈들의 머리니 팔다리에 총알을 하나씩 박아줬다. 불구가 된 놈들이 바닥에 뒹구는 걸 확인하며, 나는 탁자 앞으로 기어 나왔다. 

“네놈들이 끝이냐?”

나는 팔 한쪽이 없고, 몸이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놈에게 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몸 상태가 나아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실패해도 넌 이제 죽었어, 총잡이! 너는 빌리의 얼굴도 보지 못할 것이다......”

놈은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이었다. 

“하여간 이놈의 도시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 쳐들어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겠군.”

더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놈들에게 다 알려져 있을 것이었고 더 단단히 무장한 놈들이 쳐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선수를 치는 편이 나았다. 나는 방문을 열고 복도로 향했다. 

“아주 이 시간대부터 바빠 죽는구만......”

엘리베이터는 모두 만원이었다. 나는 계단을 택하기로 했다. 

“Come on, don't be shy!(해석: 총잡이, 거기 서라!”)

“Let’s be friends! (해석: 얌전히 죽어!)”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토미건 든 근육덩어리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놈들을 머리 없는 시체로 만든 뒤, 나는 로비를 나섰다. 

“내 말.”

나는 옆에 있던 벨보이에게 말했다. 

“저기 세워 두었습니다.”

이제 이런 건 거의 일상이라는 것처럼, 그는 주차장 구석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뛰어가서 할리를 탄 뒤 나는 시계를 봤다. 역까지는 최대로 달리면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I’m so excited!(해석: 빌리는 너 같은 촌뜨기 따위에게 꼴리실 분이 아니다!)”

“놈을 잡아!”

빌리의 가죽팬티 광신도들이 쫓아왔다. 어찌나 급한지, 데스어로 떠들지 않는 놈들까지 있었다. 끈질기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아무데나 대고 총알을 갈겨대는 놈들에게 응사하며, 나는 전력으로 역을 향했다.

“죽어라 총잡이!”

“I’m going to die!(해석: 이 일이 끝나면 애인과 결혼할 거다!)”

 놈들은 골목에서, 쓰레기통에서, 맨홀 뚜껑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만일 놈들의 조준이 형편없지 않았다면 지금쯤 바닥에 누운 지저분한 시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여하튼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저 멀리서 역사 건물이 보였다. 역 앞은 빌리를 조금이라도 보려는 놈들 덕분에 붐볐다. 

“빌리! 이쪽 좀 봐줘요!”

“날 따먹어줘요!”

나는 적당한 곳에 할리를 세운 뒤 놈들을 헤치고, 빌 리가 기차를 타는 플랫폼으로 향했다. 어차피 똑똑한 애니까, 일이 끝나면 따라와 날 태우고 도망갈 수 있을 것이었다.

“젠장, 그 놈 잡아!”

“죽기 싫으면 저리 비켜!”
놈들은 내가 인파 속에 숨자, 허공에 대고 총을 쏴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리거나 이리저리 뒤엉켜서 도망갔다. 하지만 놈들은 인파에 직접 대고 총을 쏠 배짱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저 멀리 플랫폼에 있는 빌리를 보았다. 가죽 팬티 광신도 둘과 함께 기차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가운데, 나는 총을 뽑아 정확히 놈의 이마를 겨눴다. 옆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에 엎드리는 놈들도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하지만 총알은 맞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총알은 놈의 주변에서 기묘하게 궤도를 틀어 다른 곳에 박혔다. 몇 발을 더 쐈지만 마찬가지였고, 놈은 경비원들에게 이끌려 열차를 타고 있었다.

“엿됐다......”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전력으로 뛰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뒤에서 역무원들과 경찰이 쫓아오며 소리를 질렀다.

“테러리스트다! 놈을 잡아!”

돌아갈 길도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어본 것 중 가장 빠르게 뛰어, 속도가 붙는 열차의 뒷부분을 붙잡고 매달렸다. 열차 맨 뒤의 자물쇠를 총으로 박살내고 안으로 굴러들어가자, 뒤에서 총알이 날아와 불꽃을 튀겼다.

문을 닫아버리고, 나는 앞으로 향했다.

#7

안은 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를 습격했던 가죽 팬티 광신도들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빌리는 이 열차를 아예 전세를 낸 모양이었다.

“암살조는 대체 뭘 한거야!”

“놈을 죽여!”

탄 놈들은 내 쪽으로 도약했지만, 의자 덕에 움직임이 제한되는 마당에 쏘기 좋은 표적 이상이 되진 못했다. 총이 불을 뿜었다. 놈들은 바닥에 몸 어딘가를 잃은 채로 널브러졌다.

“빌리가 있는 곳에 가게 할 수는......”

한 놈이 내 바짓단을 잡고 매달렸다. 나는 다른 쪽 발로 놈의 팔을 힘껏 밟았다. 팔 안쪽에서 허옇고 뻘건 것이 튀어나오며, 놈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다음 칸도, 그 다음 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서 이런 놈들에게 발목을 잡힐 수는 없었다. 어차피 달리고 있는 열차 위였고, 열차를 세우더라도 사막 한 가운데서 놈이 도망갈 방법 같은 건 그리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계속 향했다. 바닥에 탄피를 잔뜩 흘리고 몸에는 피칠갑을 하면서. 보이는 놈들을 닥치는 대로 쏘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나는 마침내 고풍스러운 문 앞에 다다랐다. 위에는 VIP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총만 있으면 자물쇠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물쇠를 박살내고 들어가자, 안에서 진한 땀냄새와 밤꽃냄새가 풍겼다. 고급 사교클럽의 오락실 같은 인테리어 내부에서, 수많은 근육남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난입한 내 존재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때리고 뒹굴기 바빴다.

“Oh Yeah!”

“Fuck you!”

물론 빌리를 찾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의 눈부신 미소와 아름다운 몸은 이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는 근육남 둘을 옆구리에 끼고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가 이쪽을 쳐다봤다. 나는 그에게 총을 겨눴다.

“Oh, 실물로 보는 건 그 때 이후로 처음이군. 안 그래 새끼고양이?”

그는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근육남을 하나 자기 앞으로 데려와 몸을 가렸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근육남들은 빌리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는 건 아니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덩치도 산만한 주제에 계집애들처럼 굴지 마! 나는 이놈만 죽이면 되니까 당장 꺼져 새끼들아!”

내가 소리치자, 그들은 몹시나 질서정연하게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는 나, 빌리, 그리고 그가 방패로 삼은 근육남, 그리고 구속복을 입은 대머리만이 남았다. 근육남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봐요, 제발 날 죽이지 말아요......”

“닥터 하워드. 그렇게 이 친구를 제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나? 지금쯤이면 새끼고양이의 도려낸 엉덩이를 내가 받아봤어야 하잖아. 자네는 정말 무능력하기 짝이 없군.”

빌리가 말했다. 구속복 입은 대머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살려주세요!”

근육남이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글쎄요, 빌리. 제가 그렇게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엉덩이에 집착하지 말고 놈을 빨리 죽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대머리, 닥터 하워드가 말했다. 그는 기묘하게 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에 있는 털은 눈썹까지 포함해 전부 밀어버린 탓에 표정을 읽을 수도 없었다.

“자네가 내 몸의 메인터넌스만 담당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자네 머릿가죽을 벗겨 콘돔으로 썼을 거야. 물론 나는 콘돔을 쓰지 않지만, HAHAHA!”

빌리가 말했다. 대머리는 입꼬리를 기괴하게 말아 올렸는데, 대충 웃는 거랑 비슷한 의미인 것 같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근육남은 애원했지만, 빌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듣고 있으니 정말 짜증이 나는군......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나, 빌리?”

내가 말하자, 빌리는 여전히 그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전혀 동요도 없었고, 자기가 죽는다는  실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 무력한 사내들에게도 총을 쏠 셈인가? You는 살인마야, 총잡이. 가냘픈 여자애한테도 총을 쏘고, 긍지 높은 전사가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를 쏴 죽였지......”

빌리가 말했다. 더는 참아줄 수 없었다. 총성과 함께, 근육남과 빌리의 머리가 동시에 증발해 사라졌다. 바닥에 뇌수와 피, 그리고 한때 잘생긴 얼굴이었던 것이 잔뜩 흩뿌려진 뒤, 두 구의 죽은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빌리에게 대고 탄창을 비웠고, 놈의 시체는 총에 맞을 때마다 여기저기 튕겨 다니며 늙은 호모처럼 부속품을 질질 흘렸다.

“이 소똥이나 퍼먹는 시골뜨기야! 내 최고걸작에 뭐 하는 짓이야!”

닥터 하워드가 말했다. 나는 놈을 무시했다. 팔다리도 못 쓰는 놈이 총을 들고 있을 리도 없었고.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개자식아. 안녕이다.”

“고소해 주마! 고소해 주겠어!”

 뒤에서 대머리가 소리쳤다. 나는 열차를 세우기 위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좀 먼 길이 되겠지만, 어차피 할리도 열차를 따라오고 있을 테니 상관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자,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붙잡고 있는 것처럼.

“대머리, 뒈지고 싶지 않으면 헛수작은......”

나는 발밑을 보고 경악했다. 분명히 머리가 날아가 죽었을 터인 빌리 더 게이키드가, 바닥에서 상반신만 자라나온 것 같은 기괴한 꼴이 되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온통 널브러져 있던 몸의 다른 부속품들도 그의 몸 주위에 소름끼치는 곤죽이 되어 모여들고 있었다.

“......양이. 영화 같은 거 보면 말야, 꼭 주인공을 마무리하지 않은 나쁜 놈이 된통 엿먹지 않아?”

빌리가 말했다. 트랜스젠더 때와 똑같은 현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절벽도 없었고, 이제 도망갈 곳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스피드로더도 다 떨어진 뒤였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허겁지겁 장전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새끼고양이......넌 이미 졌어.”

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놈에게 대고 탄창을 비웠다. 총이 불을 뿜을 때마다 놈의 몸에서 튄 육편과 뇌수가 VIP룸 여기저기를 칠했다. 하지만 빌리는 멈추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는 모두 써서, 몹시 기괴한 모습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총에서 짤깍거리는 소리밖에는 나질 않았다. 놈은 이제 내 앞에 서 있었다. 몹시 흉한 모습으로, 아직도 재생하면서. 이내 산산조각이 나서 뒹굴던 그의 몸 부속품은, 다시 한 곳으로 모이더니 기괴한 고깃덩어리 형체가 되었다. 그리고는 내가 공포로 지켜보는 가운데 천천히, 천천히 다시 몸을 구성해 나타났다.

“죽어, 이 괴물새끼야!”

 이제 장전하기에는 거리도 너무 멀었다. 나는 총을 거꾸로 잡고 놈에게 내리쳤지만 간단히 잡혀버렸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너는 지나치게 운이 좋았던 것 같아.”

그는 한쪽 팔을 손날을 세워 치켜들더니 내리쳤다.

“이런 씨......”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사방에 피가 튀며 빌리의 하얀 팬티와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그의 몸에 점점이 붉은 자국이 찍혔다. 

“씨발......”

눈앞에 큰 고기토막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빌리의 것도 아니고, 근육남의 것도 아니었다. 오늘 아침 입고 나온 셔츠가 입혀진 채로, 손아귀에는 내 총을 쥐고 있었다. 이제야 고통이 없는 팔을 통해 타고 올라왔다. 나는 입 밖으로 신음을 흘렸다.

“새끼고양이도 보는 것처럼, 나는 이제 죽을 수 없는 몸이 되었지. 그리고 더 굉장한 일을 하려는 참인데, 너 따위에게 죽을 이유가 없지...... 그리고 닥터 하워드. 자네는 내가 그 정도로 죽을 줄 알고 있었던 건가? You의 피조물에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 건가?”

“걱정해 줬던 거라고 생각해 달라고.” 

“마음만은 감사히 받지. 새끼고양이......겁먹었군. 정말 흥분돼.”

놈의 고간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지금 널 당장 따먹었으면 좋겠군. 게다가 그 표정.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는 그 표정이 너무 좋아...... 비록 귀여운 제인과 메히칸들, 조를 끔찍하게 죽였어도 난 널 좋아할 수밖에 없어.” 

빌리는 여전히 그 눈부신 미소를 띄운 채로 걸어왔다. 주마등이 스쳤다. 놈의 눈에서 욕정과 탐욕이 끓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네가 더 괴로워하며 진창에 뒹구는 모습을 보고 싶어. 네가 절망에 빠져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꼴을 두고두고 보고 싶어. 정말 사랑해, 총잡이. 하지만...... 과일은 농익었을 때 따먹어야 맛이 좋은 법이지. 새끼고양이......”

빌리는 입술을 핥으며,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프로포즈는 집어치워!”

나는 그의 고간을 걷어찼다. 뭔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놈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고통에 의식이 오락가락했다.

“AAAAAH! Oh my shoulder...... 여전히 애교 없기는 마찬가지군.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 더 기분이 좋구나, 새끼고양이.” 

 하지만 놈은 빨리도 바닥에서 일어났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이 괴물 새끼야!”

 놈에게 다시 발길질을 날렸다. 하지만 빌리는 그걸 간단히 막아버리고, 내 머리채를 잡았다.

“이건 제인의 몫.” 

놈의 주먹이 콧대를 주저앉혔다. 얻어맞고 넘어지자, 부츠 신은 발이 몸 여기저기를 뭉갰다. 

“이건 칠리의 몫.” 

구둣발로 얼굴을 걷어차이며, 눈이 저절로 감겼다. 감긴 눈으로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들어 시야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이건 콘의 몫.” 

목구멍을 타고 부러진 이빨과 피가 흘러내렸다. 

“이건 카르네의 몫.” 

이미 문드러지고 뭉개진 뺨을 통해, 놈의 부츠 뒤축에 박차가 달렸다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깨진 이빨이 뺨을 뚫어 구멍을 냈다. 

“이건 제로니모 조의 몫. 이건 돌메이커 보니의......아, 걔는 아닌가? 아무튼.” 

 누운 상태로 옆구리를 걷어차이고 바닥에 뒹굴었다. 의식은 고장 난 형광등처럼, 돌아왔다가 다시 나갔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겨우 눈꺼풀을 벌리자, 놈은 그 눈부신 미소를 내 코앞에 들이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먹고 싶군, 총잡이. 어때? 아프지 않게 해 주지.” 

나는 대답 대신, 입 안에 가득 고인 피를 놈의 얼굴에 뱉었다. 놈은 잠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큰 충격과 함께 불이 번쩍 들더니,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기분 나쁘게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제는 무엇으로 맞았는지, 어디가 부러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놈이 여전히 그 소름끼치는 웃음을 띠고 있으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내 동료들이 그렇게 죽었는데, 당장의 쾌락에 눈이 팔리면 곤란하지. 새끼고양이......”

놈이 팔을 붙잡았는지, 남아 있던 팔이 서서히, 등 뒤쪽으로 젖혀졌다. 그리고 그대로, 팔이 천천히 뒤틀렸다.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내가 볼 일을 마치고, 합중국을 낙원으로 만든 다음 다시 찾아올게. 그때까지 스스로를 탓하고, 자책 속에 망가져 가라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오? 이 정도로 다쳤으면 돌아올 때쯤에는 바싹 마른 엉덩이가 되어 있겠군......”

“안 돼, 이 개자식아! 차라리 날 죽여라! 당장 죽이라고! 오, 맙소사. 하느님 아버지, 어떻게 이런......” 

입에서 아무 소리나 튀어나왔다. 터진 입술과 빠진 이빨들 덕분에, 뭐라고 말하는지 나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결말이었다. 팔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비틀렸다. 뼈가 안에서 부러지고, 부러진 조각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이 그대로 찾아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지르고 또 질렀다. 하지만 놈은 놓아줄 생각 따윈 없었다. 여기까지 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놈이 아주 가볍게 팔을 툭, 하고 당기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훨씬 보기 좋군. HAHAHA! 네가 그렇게 찾은 하느님 아버지도 그러셨잖아? 자살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어떤 힘들고 무서운 일이 있어도 자살하면 안 돼.” 

놈은 내 다리를 잡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꺼풀은 이제 부어오르다 못해 뭉개져 있었다. 몇 바퀴를 돈 뒤, 나는 ‘쏘아져 나갔다’. 

“네 모험은 여기서 끝이다, 새끼고양이.” 

 빌리가 섹시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날았다. 이내 충격과 함께, 의식이 산산이 흩어졌다.

#E

 한참 뒤, 나는 눈을 떴다. 목숨이 붙어는 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붙어만 있었을 뿐, 금방 죽어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분명히 할리는 달려오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뒤는? 

“제기랄......”

사막의 모래가 끓어올랐다. 몸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피가 말라붙으며, 쇠비린내를 풍겼다.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아지랑이에, 이미 혼미한 의식이 점점 더 멀어졌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어서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열기가 잦아들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끼는 환각에 불과할 것이다.

“다시 만날 거라고 했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뒤로 할리의 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눈을 뜨자, 뿔 달린 머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나마 혼미한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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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계속 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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