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칭: '유일 황제'
가족 관계: 할아버지('선량제' 루이 1세), 할머니(아비네의 마리),아버지(샤를), 둘째 삼촌(루이), 셋째 삼촌(아비네의 앙리), 어머니(볼로네의 샬롯), 남동생(리옹의 장), 이부 여동생(샬롯), 아내(아퀴텐의 마리안느), 장남('존엄제' 필리프 1세), 차남(올레즈의 샤를 3세), 삼남(페펭. 요절.), 사남(기욤. 요절.) 장녀(펭의 프레데리카), 차녀(라이엘기스의 마리), 삼녀(로레즈의 샬롯), 작은 할아버지(라이엘기스 대공 '강철' 로베르), 그외 고모 6명.
생몰년도: 통합력 75년~통합력 138년
제위 기간: 통합력 80년~ 통합력 121년
'그가 바랬던건 대륙에서 유일한 황제는 레이먼의 황제뿐이란걸 증명하고 싶었다는것이다. 물론 애초에 성공할 수 없었던거였지만 말이다.' - '유일황제 샤를에 관한 소고'
그대가 그곳에서 예전부터 살고 있었다는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그대는 야수신을 믿으면서 어째서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건가? 대륙 중북부의 광야는 야수신이 사자족에게 선물로 나눠주신 땅이다. 그러한 야수신의 뜻을 거부하고서 어찌 야수신을 믿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유일황제' 샤를, '소렌의 난'의 주동자인 소렌을 처형하기전 나눈 대화.
개요
샤를 2세, 혹은 '유일황제'샤를은 레이먼 제국의 3대 황제이자, 레이먼 제국의 '황제절대자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유년기
그는 '선량제' 루이 1세의 장남인 샤를이 죽으면서 남긴 두아들들중 장남이다. 루이가 죽은뒤 그가 왕위에 올랐을때 그는 너무 어렸기에 본래 어머니인 '볼로네의 샬롯'이 섭정을 맡아야 했으나, 그녀는 국정에는 관심이 전혀없었기에, 그녀는 섭정직에서 밀려나고 루이의 동생이자 라이엘기스 대공인 '강철'의 로베르가 섭정이자 황제의 후견인이 된다. 로베르는 당시 제국의 대표적인 '황제 절대자주의'(당시 대륙내 3황제시대-티겔, 아라스, 레이먼에서 동시에 황제를 칭할때-에 반발해 대륙내 진정한 황제는 레이먼뿐이며 이는 신이 보장해준거라고 여겼던 사상.)의 신봉자였고, 한편으로는 이 황제절대자주의를 국가의 방향으로 삼기위해서 샤를에게 이에 입각한 교육을 한다. 이는 이후 그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한편, 섭정직에서 밀려나 궁에서 사치와 향락으로 즐거움을 탐하고 있던 샬롯은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당시 황궁에서 일하고 있던 예술가중 한명인 '알베르'와 서로 사랑에 빠진것도 모자라 사생아까지 낳게 된것. 이둘은 이런 관계를 끝내 숨기려고 했으나 결국 만삭의 모습을 궁에 찾아왔었던 알베르의 친구였던 '앙드레'에게 들키고 만것이다. 앙드레는 알베르와 비밀을 죽을때까지 지킬걸 약속했으나, 결국 앙드레의 시종이 앙드레의 일기장에서 그가 가진 비밀을 털어놓았던걸 보아 유출되고 만다. 이 문제는 당시 그녀의 아버지였던 볼로네 공작 보두앵과 황제의 할머니인 마리 태후를 격분시켰고, 태후로써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수많은 귀족들이 이문제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알베르는 궁에서 추방당하고, 샬롯은 본래 살던 푸아튀르 궁전에서 쫓겨나 아쥬르 궁전에 사실상 유폐당하고 만다. 이후 샬롯은 이번엔 그곳 시녀들과 염문을 터뜨리는등 여러가지 사고를 터뜨리다가 샤를이 장성하고 나서야 푸아튀르 궁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샬롯의 스캔들은 계속되었는데, 이때부터는 샤를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변호해서 샬롯은 계속 푸아튀르 궁전에 머물 수 있었다.)
이후 그의 나이가 20세가 되었을때, 그는 정식으로 대관식을 열어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통합력 95년) 국정을 잡자마자 그는 황제절대자주의에 따른 통치를 천명하고, 우선은 전통의 적이자 당시 북티겔 왕국의 영역의 고토를 차지하고 있던 태겡 대공국을 멸망시키고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티겔 제국을 굴복시키것과, 동부대륙에서 황제는 오직 레이먼의 황제뿐이란걸 온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한다.(이를 보고 당시 아라스의 황제였던 블라디밀은 '대륙의 유일황제라도 될 심산인가?'라고 비꼬았는데, 현재도 쓰이는 그의 호칭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1,2차 티겔 원정
그가 당시 북쪽에서 흥기하고 있던 아라스제국보단 티겔 제국을 먼저 공격한 이유는 우선 아라스제국을 치려면 그곳의 추위때문에 겨울이 되면 원정이 힘들어지며, 아라스 제국과 레이먼 제국 사이에는 험준하기로 악명높은 '터그퍼 산맥'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티겔은 패권국이 된 이후 적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봉신관계를 맺었던 다른 국가들(상인연합, 라이겐프름 대공국, 서부의 사냥꾼들, 오옥스 공국, 그외 태겡대공국 출신 귀족들.)과 갈등관계였기에 그들의 관계를 역이용하면 간단하게 패권국으로써의 위치를 상실할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이에 샤를은 티겔과 동맹관계였던 츄프 왕국의 대귀족이었던 그리즈레이 대공 브세보로와 반다고 대공 블라디밀에게 당시 왕령지였던 땅중 일부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반란을 동시에 일으키도록 사주했고, 그틈을 타서 티겔에 공세를 취했다. 당시 티겔의 황제였던 '계윤'은 즉시 병력을 소집해 대응에 나서려했지만, 옛 태겡 대공국출신 호랑이족 귀족들은 이에 소집령을 거절하고 레이먼제국에게 성문을 열어줬으며,(물론 이들은 얼마 안가 샤를에게 숙청당한다.) 이에 계윤은 별수없이 슈데옹등 아직 티겔이 점유하고 있던 옛 북티겔 왕국령라도 지키기위해 병력을 슈데옹에 주둔시킨다. 그리고 슈데옹 인근에서 두군대간의 결전이 벌어지는데, 이 회전에서 계윤의 군대는 레이먼군을 격퇴하고 레이먼 제국의 공세를 일시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슈데옹 조약에서 레이먼 제국은 슈데옹등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북티겔왕국령 지방중 대다수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샤를은 이정도에서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통합력 99년. 슈데옹 전쟁.)
이후 샤를은 전전대인 샤를 대제때의 규칙(사자족들의 고토에는 사자족들만이 존재할 수 있다.)을 들어 옛 태겡 대공국출신 호랑이족 영주들을 숙청하고 대대적인 호랑이족(과 라이거일족) 추방작업을 벌여 그곳에 사자족들을 이주시키는 작업을 실시한다. 이규칙은 샤를의 전대이자 할아버지였던 루이 1세때 폐지되었던 규칙이었기에 반대가 상당했으나, 그의 작은 할아버지이자 왕실의 큰어른으로써 상당한 권력을 지녔던 라이엘기스 대공 로베르가 그의 조카손자를 도와 이작업을 밀어붙였다. 이 작업으로 인해 샤를은 대대적으로 호랑이족들의 격분을 받게되고, 추방작업도중에 벌어진 3차례의 대규모 폭동과 함께, 티겔 제국 서남부의 숲지대를 차지하는 '사냥꾼'들과, 제국 북서부에 라이거일족들의 국가인 라이겐프름 대공국을 대대적으로 자극하게 된다. 결국 이 두국가는 오옥스 공국까지 설득해서 티겔의 황제와 함께 '티겔 협약'을 맺어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통합력 103년.)
한편 이에 이대로 티겔이 레이먼을 다시 격파하고 패권국으로의 위치를 공고히한다면 지금까지 상인연합이 가지고 있는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그리고 만약 티겔이 본격적으로 패권국이 되어 상인연합에 간섭을 시작한다면 친레이먼 정책을 주장한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위협받을거라 여긴)상인연합 대시장 '한규석'은 통합력 104년에 레이먼과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대시장의 배신'.) 티겔과의 전쟁에서 군사통행권을 몰래주는 협약을 맺었다.
샤를은 이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슈데옹 조약에서 티겔과의 8년간의 휴전을 약속했기에 당장에 공격하는것은 레이먼 제국의 운신 폭을 좁히는것이었기에, 우선은 섣부른 공격은 자제하면서 아퀴텐 공작 루이의 딸이었던 마리안느와 혼인했다. 당시 레이먼 제국은 주전론자가 대부분이었던 북부와 주화론자가 대부분이었던 남부의 정치적 대립이 상당한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주전론자들의 우두머리였던 '강철대공' 로베르가 후견인을 맡을 정도로 북부와 관계가 깊었던 샤를 황제가 남부의 우두머리였던 아퀴텐공작 루이의 딸 마리안느와 혼인했던건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한편, 샤를은 장인이자 그의 먼친척이었던(루이의 할아버지였던 아퀴텐-리옹의 '강인공' 앙리 4세는 라이엘기스가의 일원으로써, 라이엘기스 대공 로베르 2세의 동생이었던 렝스의 '부귀백' 피에르의 손주였다.) 루이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고, 사석에서 그에게 존대를 하면서 그를 왕국의 재상으로 임명했을정도다. 자신의 정적이었던 자가 이런 대접을 받는것에 대해 그의 작은 할아버지인 강철대공은 이를 살짝 언짢아 했으나, 이를 통해서 남부의 귀족들을 황제의 장인을 통해서 반발을 줄일 수 있기에 딱히 지적할 필요는 없다 여겼다고 한다.
마침내 통합력 107년, 티겔과의 휴전협정이 끝나고, 더이상 거리낄 것이 없어진 샤를은 장인인 아퀴텐공을 설득해 남부파의 지지를 이끌어내 추가 병력을 얻어내고, 그외 귀족들과 샤를의 직할군까지 합쳐 원정군은 최소 4만 5천에 이르렀다.(일부 사서에선 샤를의 군대의 총합을 무려 10만으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샤를은 우선 중간지점인 엘레인에 군대를 모은뒤, '강철대공' 로베르를 총지휘관으로 삼고 대시장이 미리 보낸 길잡이를 통해서 메말 사막을 넘은뒤, 상인연합쪽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티겔 제국의 수도인 티겔시로 진입하려했다. 그러나 여기서 상인연합 내 다른 시들(대표적으로 북부의 센타이그만 시)은 오히려 샤를이 행한 호랑이족 추방 조치에 대해서 깊은 분노를 표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타이그만에서 대시장의 공문이 미리 내려졌다고 해서 이들은 오히려 그걸 따르지 않고 레이먼 제국군의 통행을 거부했고, 결국 레이먼 제국은 이들과 군사적 분쟁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규모의 차이때문에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들의 지연때문에 결국 레이먼 군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슈데옹으로 가던 티겔군이 레이먼군의 의중을 읽고 티겔로 돌아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
한편, 이는 상인연합내외부에서 타이그만의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히 실추시켰는데, 우선 상인연합이란 체제를 대륙 중부의 수많은 도시들의 동등한 연합체라는걸 인지하지 못한 레이먼 제국 내부에선 상인연합의 우두머리인 타이그만시에 대해서 '자신들의 봉신들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국가가 무슨 힘이 있다고 협상을 하려드나?'식으로 무시하기 시작했고, 상인연합의 다른 시 내부에선 다른 시의 의중은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적과 손을 잡았다면서 타이그만시와 대시장을 비난하는 여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연유로, 레이먼이 한창 센타이그만을 공성중이던 108년 2월에 센타이그만 시장의 대리인이(시장은 당시 도시를 수비중이었다.) 신청한 긴급 도시 총회의는 소속 도시 18개중 17개 도시가 참여하면서 시작되었고,(개회하려면 정족수의 3분의 2인 12개시의 시장이나 대리인이 참석해야한다.) 회의 의제였던 대시장 한규석의 탄핵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결국 한규석은 자리를 내려놓았고, 도시 연합의 지도자는 법에 따라 4개의 대도시(타이그만, 버무, 타이그랑, 라이츠)의 시장들의 연합인, '대도시 연합회'와 '도시 총의회'가 공동 통치하는걸로 하게 되었고, 대시장 선거가 다시있을때까지 타이그만을 임시로 다스리게 된 '타이그만 시장'은 한규석의 정적이었던 김형호가 선출 되었다. 김형호는 한규석의 정적답게 레이먼 제국과 체결한 밀약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당선된 날 센타이그만의 함락과 도시의 약탈, 그리고 시장의 전사 소식을 전해들은 김형호는 당시 타이그만에 머물던 샌타이그만 시장의 대리인과 그의 수행원들에게 이를 알리고 유감을 표한뒤, 상인연합소속 전도시의 대 레이먼 전쟁에 참여를 골자로 한 안을 총의회에 제출한다. 보통 공동통치시기엔 대도시 연합회에 먼저 제출된 안이 형식적으로 도시 총의회에서 통과되는 형식이 대부분이라 이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법상에 별 하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김형호는 이 결의안을 밀어붙였고, 이 결의안은 결국 총의회에서 통과된뒤 대도시 연합회에서 2차로 통과되어 결의된다. 김형호의 이 결정에 대해선 현재까지 논란거리인데, 김형호의 비판자는 대도시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반 레이먼쪽으로 가는걸 들어 대도시 연합회에서 결의한뒤 이후 도시총의회에서 처리 하는게 더 빨랐던 역사적 사례를 들어 너무 느리게 처리했다고 비판하며, 김형호의 옹호자들은 김형호가 평소에 대도시만이 도시냐면서 소도시들의 권한 확대를 주장했던걸 들어 소도시들의 권한 확대를 위한 결정적 결단을 내려줬다고 평한다.(실제로 이 일 이후 대도시 연합회의 권한은 점차 축소되고, 도시 총의회의 권한은 점차 확대된다.)
한편, 샤를은 상인연합에서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지도자를 탄핵했으며(샤를과 원정을 따라나선 샤를의 중신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못해 한참을 상인연합 사절에게 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밀약도 효력이 다했다는 소식을 듣고, '찬탈자' 김형호를 몰아내고 한규석을 다시 대시장에 올린다면서 상인연합에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이후 김형호는 현재병력으론 레이먼의 대군을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한 김형호는 티겔에 원군을 청하면서 한편으로는 상인연합과 대대로 앙숙관계였던 호래니 자유시 연합에도 원군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절이 얻어낸 답변은 티겔 제국군은 미적미적 시간을 끌면서 제대로 답을 하지 않았으며, 일부 티겔의 중신들은 상인연합을 버릴패로 쓴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호래니 자유시 연합역시 오랜 앙숙이었던 상인연합에 지원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답변이 돌아오게되었다. 이와중에 유서깊은 도시중 하나인 버무까지 함락되어 파괴되자, 시장은 싸워봤자 연합이 전멸하는 미래뿐이라 여기고 레이먼 제국과의 강화를 하자고 도시 총의회에서 논의해보지만, 라이츠시와 타이그랑시, 그리고 샌타이그만시와 버무시의 난민들이 격하게 반대해 결국 실패하고 만다.
한편, 샌타이그만과 버무를 함락시킨 샤를은 해당 시들을 함락시키는데 시간을 너무 끌었으며,(샌타이그만 시는 40대1의 병력차이를 뜷고 3달이나 걸려서 함락되었으며, 버무시 역시 5달이나 걸렸다.) 사막때문에 보급역시 수월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빠른 속도로 타이그만을 함락시켜 상인연합의 기를 꺾어버릴 필요가 있다 여겼고, 이에 타이그만시쪽으로 병력을 집중시켜 이동한다. 그러나 상인연합의 중추였던 타이그만시는 쉽게 함락되지 않았고, 반년동안의 총공세에도 도시의 함락에는 실패했다. 한편, 여전히 상인연합에 공세를 가하던 샤를은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됀다. 티겔 왕 계윤이 레이먼 제국의 군대가 상인연합쪽에 집중된 틈을 타 북상해 어느새 아퀴텐근처까지 돌파했다는 소식과, 북쪽의 아라스 제국이 터그퍼 산맥을 넘어 라이엘기스를 직접 공성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샤를에게는 이제 장인이 있는 곳인 아퀴텐과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라이엘기스까지 두 주요도시가 위협받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샤를은 우선 상인연합과 화평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상인연합과 타이그만에서 화친을 맺게된다.(1차 타이그만 조약)(상인연합은 티겔 제국의 봉신국이었지만, 독자적인 외교권과 행정권, 군사권을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이런것도 가능한것.) 이 협약에서 상인연합은 티겔대신 레이먼 제국에 공물을 바치면서 속국이 되게 되었으며 레이먼군이 메말사막을 넘게 도와주면서 레이먼군의 통행권을 인정해주고, 대신에 상인연합의 자유무역권을 인정받는 조약이었다. 이조약에 몇몇 도시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미 타이그만에 모여있던 시장과 대리인들 모두 오랜 공성전으로 지쳐있었기에 결국 화친을 맺는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편, 상인연합의 길잡이들을 통해서 메말사막을 통과해 북상한 레이먼군은 우선 남부를 공격중이던 티겔군과 맞붙게 된다. 이 두 제국의 군대는 아퀴텐 근처 부르 평원에서 맞붙게 되고, 여기서 티겔군은 레이먼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왕 계윤과 사냥꾼의 대군주, 라이겐프름 대공등 주요 지휘관들까지 전부 포로로 잡히게 되고, 이후 계윤은 점령지를 통째로 반환한뒤 '티겔의 황제'에서 '티겔의 왕'으로 격하되는게 골자이며, 그외에 라이겐프름 대공국과 오옥스 공국등 주요 봉신국들의 독립의 조항이 있는 '아퀴텐 조약'을 샤를과 체결하게 되었다.(이에 대해 지나치지 안냐는 레이먼 내부의 신중론이 있긴 했지만, 샤를과 로베르등 주전파가 정국을 장악한 상태에서 그말은 오히려 '황제절대자주의에 대한 부정'=반역으로 여겨졌기에 섣부르게 입밖에 내지 못했다.)
이후 샤를은 즉각 북상해 라이엘기스로 갔고, 전군이 도달하기전, 라이엘기스에 작은 할아버지 로베르를 미리 보냈다. 라이엘기스에 로베르가 도달한뒤, 라이엘기스성엔 더더욱 격한 공성전이 벌어졌고, 한번은 화살이 로베르의 가슴에 꽂혀 로베르가 급하게 이송되기까지 했다.(다행히 심장에 꽂히진 않아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이 부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로베르는 사실상 전장에서 은퇴해야만 했다.) 로베르가 이송되고 라이엘기스가 아라스제국군에게 함락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레이먼 본대가 도착했고, 아라스제국군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3차 티겔 원정.
아퀴텐 조약과 라이엘기스 공방이후, 샤를과 라이엘기스를 주축으로 한 군부는 티겔을 완전히 제압해서 대륙 중부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이에 장인인 루이 공작을 설득해 티겔에 2차 공세를 가할 준비를 했고, 통합력 115년에 2차 원정을 가한다. 부르 회전에서의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티겔은 레이먼에게 철저하게 박살났고, 결국 티그레 조약에서 레이먼제국에게 복속되게 된다. 한편으론 오옥소공국과 라이겐프름 대공국도 이 조약에서 레이먼 제국의 속국이 된다.
아라스 원정, 그리고 몰락.
부르 회전과, 라이엘기스 공방에서의 승리는 샤를과 그의 후원자인 로베르 대공의 위신을 하늘끝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비록 로베르가 공방도중 입은 상처로 인해 사실상 전장에선 은퇴했지만, 아직까지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그의 아들인 소小로베르가 그의 아버지의 대장군직까지 물려받았기에,(이 세습에 대해 남부의 또다른 대표자였던 투앙 공작 '오만공'기욤등이 반발했지만, 소 로베르는 그전부터 강철대공을 따라 여러 군공을 세운 자인데다가 황제의 절친한 친우이기까지 했기에 결국 소 로베르의 대장군직 임명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군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인정받았다.
이후 샤를은 아라스 제국을 굴복시켜 완전한 '유일황제'를 노리게 되었고, 원정을 위해 샤를은 자신의 장녀인 프레데리카와 대륙 북서부에 있는 펭 왕국의 리샤르 2세와 결혼시키기로 펭 왕국의 섭정인 당고모 '라이엘기스의 마리안느'와 협의했고 통합력 117년에 결국 둘의 결혼식을 올리는데 성공한다.(결혼식 당시 리샤르의 나이는 겨우 5살이었으며, 프레데리카의 나이는 9살이었다고 한다. 뭐...정략결혼에 나이가 크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프레데리카는 결혼식을 올린 후 신부수업을 받기위해 펭으로 바로 떠났고, 마리안느는 그 대가로 앙두르의 '검은뱀' 기욤 백작이 이끄는 8000의 군사를 당조카에게 지원해 줬다. 이후 츄프왕국과 불가침 협정을 서로 체결하고, 대신 그대가로 그리즈레이 대공과 반다고 대공을 츄프 왕과 서로 '화해'시켰다.(정확히는 휴전 강요. 반다고 대공과 그리즈레이 대공의 반란은 이시기가 되면 장기화되기 시작해 10년간의 피튀기는 내전이 되어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통합력 118년 5월에 샤를은 티겔 왕과 라이겐프름 대공, 상인연합, 오옥스 공국에도 각각 소집령을 내리고, 그외 귀족들에게도 소집령을 내렸다. 총병력 최소 6만 7천, 몇몇 사서에선 20만으로까지 기록하는 이전쟁에서 레이먼 제국군은 초반에 아라스 제국군 최소 8만(몇몇 사서에선 30만)규모의 병력을 트베르 회전에서 격파하고 아라스제국의 수도 노브모스코프를 함락하는등 승승장구했으나, 아라스제국이 수도를 모스코프로 옮기면서 결사항전을 시작하고, 한편으로는 본격적인 겨울철이 오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자, 레이먼 제국군의 공세는 둔화되기 시작한다. 게다가 보급로를 봄~가을까지 북쪽 산맥에 숨어있던 북부거인들이 습격해 약탈을 하기 시작하면서 보급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아라스제국의 잔당 귀족들이 복속을 거부하고 결사항전의 태세로 나오자 갈수록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샤를과 소 로베르는 악전고투하면서 모스코프 인근까지 진입하려 했으나, 모스코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르그라드 공방'에서 패배해 공세를 지속할 여력을 상실했고, 레이먼 제국의 점령지에 흰곰족들이 '올레그의 반란'을 기점으로 대규모 민중봉기를 일으키면서 보급로마다 설치해둔 레이먼의 주둔지를 하나하나씩 파괴하자, 샤를 황제는 앞뒤로 포위당하게 되어버렸다.
샤를이 포위되어 버리자, 그의 협력자들은 한명한명씩 슬금슬금 발을 빼게 되는데, 우선 기욤 백작이 이끄는 펭왕국군은 북부거인족들로부터 보급로를 지키러간다고 해놓고선 그대로 배를 타고 아프반 반도로 도망가 버렸으며, 티겔 왕 계윤과 라이겐프름 대공 카롤리나가 보낸군대는 오히려 아라스제국에게 포위당하자 그에게 '투항'한뒤 아라스 황제의 군대가 되어 샤를과 싸웠으며,(전쟁이 끝난뒤 이들중 일부는 돌아갔으나, 일부는 여전히 아라스에 남았고, 아라스 제국의 군대소속이 된다.) 상인연합이 보낸 군대는 알렉산드르그라드 공방에서 패배하고 후퇴하던 도중 아라스 제국군에게 포위당해 항복했고, 전쟁이 끝난뒤 상인연합에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뒤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퀴텐 공작 루이가 이끄는 부대는 사위를 배신하고 포위망이 촘촘하지 못한틈을 타 하이엔 지방을 통해서 돌아가 버렸으며, 그외 귀족들도 대부분 도망쳐버렸고,(몇몇 귀족들은 도망치다가 눈때문에 길을 잘못들어 그대로 거인족들에게 전멸해버리거나, 산맥을 건너는 도중 아라스 제국군에게 걸려서 -아라스 제국군은 사자족들의 군대에게는 관용없이 칼로 처리했다.- 전멸하기도 했다.) 결국 샤를 곁에 남은건 오옥스 공국의 황소족들과 소 로베르가 이끄는 라이엘기스 대공국군, 그외 몇몇 북부귀족들과 자신의 직할군 뿐이었다.(이마저도 대다수가 굶거나 얼어죽거나 도망쳐버려서, 남은 수는 약 2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국 샤를은 후퇴했고, 그과정에서 쫓아간 아라스 제국군에게 잔여군마저 대파당해 대부분의 군대와 지휘관을 잃고(소 로베르도 이과정에서 전사했다.)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돌아왔다.
아라스 제국군은 곧장 남하해서 하이엔 지방을 장악하면서 천천히 남하하기 시작했고, 결국 샤를은 120년에 아라스와 협상을 체결해 상 하이엔 지방과 일부 터그퍼 산맥 이남지역을 아라스 제국에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했으나,(하이엔 조약) 이번엔 계윤의 아들인 티겔 왕 '복수왕'계하가 이끄는 공세를 맞게 된다. 티겔과 라이겐프름, 그외 상인연합과 오옥스 공국까지 포함한 이군대는 순식간에 레이먼으로 달려갔고, 그 군세는 순식간에 레이먼을 포위했다.(티겔 독립전쟁.) 이 전쟁은 그때까지도 살아있던 강철대공이 목숨을 바꿔 5만대 1만이라는 정말 답없는 군사차이를 겨우 격퇴해내서 레이먼 자체의 몰락은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이전쟁으로 인해 레이먼은 옛 상티겔 왕국의 영역 대부분을 돌려줘야 했고, 라이겐프름 대공국등 티겔로부터 뺏어냈던 속국들을 모조리 티겔에게 돌려줬어야 했다. (2차 타이그만 조약.)
이후 샤를은 지속된 패전과 그에 따른 국력 상실로 인해 북부의 주전파 귀족들과 남부의 주화파 귀족들에게 모조리 인망을 잃었고, 그의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가 100년넘게 모아온 정예병들을 모두 잃었으며 국고가 동이났다는것에 국정에 의지를 완전히 놓게 되었다. 결국 왕위를 장남 필리프에게 양위하고 아내 마리안느와 함께 레잉에 있는 알베리아 궁전으로 은둔하게 된다.
퇴위 뒤
그가 퇴위할때 필리프의 나이는 겨우 16세였기에 섭정이 필요했으며, 이에 강철대공의 장남인 기와, 선황의 장인인 아퀴텐 공작 루이, 마지막으로 선황의 당고모인 펭 왕국 섭정 마리안느가 서로 경쟁하게 된다.(형식적으론 펭왕국은 레이먼 제국의 속국이었다.) 이 셋의 경쟁끝에 결국 루이가 제국의 섭정직을 맡게 되며, 이는 기등 북부의 주전파가 필리프 1세와 내내 다투는 이유중 하나가 됀다. 오죽하면 일부 북부파 귀족들은 기에게 샤를을 복위 시키거나 샤를의 동생 리옹 공작 장을 황위에 추대하자는 건의까지 했을 정도이다.(기 본인이 거절한데다가, 샤를과 장 둘다 황제직에 미련이 없었기에 실행되지 않았다.)
샤를은 퇴위한 뒤 우울증에 빠져서 술을 몸에 달고 다녔다고 하며, 이는 아내인 마리안느와 어린 두아들인 기욤과 페펭이 전염병으로 전부다 죽어버리자 더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이후 그는 술을 더더욱 몸에 달고 다녔다고 하며, 그나마 그의 이부 여동생인 음유시인 샬롯과의 교류만으로 나름대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샬롯과의 관계에 대해선 후술.)
그러나 그의 딸들이 년단위로 각자 사망하고,(라이엘기스의 마리가 133년 사망, 로레즈의 샬롯이 134년 사망, 펭의 프레데리카가 135년 사망.) 결국 그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음유시인 샬롯마저 138년 5월에 죽어버리자, '신은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는거냐!'라고 울부짖었다고 하며, 그대로 호수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했으나, 그 상황을 시녀가 보게되어 죽기직전에 구조 되었다. 이후 더더욱 술독에 빠져 살면서 아예 방문을 걸어잠구고 칩거하다가, 한달뒤 아들 필리프 1세가 티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뒤 개선식을 열고 그의 궁전으로 가서 아버지를 뵈러 가다가 문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걸 확인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해 방문을 강제로 연 결과, 사망한것을 확인하게 된다. 죽은뒤 레이먼에 있는 메시네 묘지에 묻혔다.
총평
그의 평가는 티겔과 아라스에선 '광인'으로 취급되며, '유일황제'라는 그의 칭호는 '폭군'과 동일시 될정도로 취급이 나쁘다. 그는 '황제 절대주의'에 흠취했있던것과 별개로, '야수신은 각 맹수인들에게 살 땅을 나눠줬으며, 그중 사자족은 중북부의 비옥한 땅을 나눠줬고, 곰쪽에겐 등퍼산맥 너머 동쪽의 땅과 그 북쪽의 땅을, 호랑이족에겐 남쪽의 땅을 정했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졌으며, 그 방식에 따라 중북부에 있던 호랑이족들을 강제로 남부로 추방시키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추방조치에 반발해 폭동을 일으켰던 '소렌'이라는 자와 나눴던 대화는 유명하다.) 그외에도 대륙 중부에 일부 남아있던 하이에나족 주거지도 모조리 중동부로 추방시켰으며, 아라스 원정때는 아라스 토착귀족들을 강제로 추방시키고 거기에 사자족 영주들을 놓으려다가 흰곰족 토착인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인해 폭동을 야기했고, 이게 그의 몰락의 큰 원인이 되기도 했다.
레이먼에서도 전체적으로 그의 평가는 좋지 못한데, 그의 아들이었던 필리프 1세가 재정의 건정성을 되찾고 티겔의 침략을 막아내는데 성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가 멋대로 벌려놓은 전선때문에 국가에 비해 군대가 너무 비대해졌으며, 이러한 문제로 인해 군비가 과다지출되어 국고는 꾸준하게 동이 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샤를 대제와 선량제 루이가 꾸준히 키우고 육성한 정예군들이 대다수 아라스 원정에서 소모되어 버려 그의 아들인 필리프가 물려받은 제국은 해체직전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양위 타이밍도 문제가 되었다. 필리프가 즉위할때는 겨우 11세였는데, 굳이 퇴위할거면 필리프가 장성해서 해도 됐을것을 자신의 정신적인 피폐로 양위를 해 아들에게 최악의 상태의 나라를 떠넘긴 것이 아니냐는 것이 주된 비판이다.
이러한 것때문에 티겔이나 아라스 민담에서 '유일황제'는 항상 악역으로 나오며, 때때로 이시기를 다룬 영웅민담에서 격퇴당하는 역할로 나오는 경우가 잦다. 레이먼의 민담에서 나올때는 '멍청한 높은 사람'으로 나오면서 영웅에게 구출당하는 역할을 자주 맡으나, 후술할 샬롯과의 관계를 다룬 연애 서사시나 민담에서는 '무능하지만 불쌍한 사람', 혹은 '비운의 사람의 대상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부록-이부 여동생 샬롯과의 관계
샤를의 어머니였던 '볼로네의 샬롯'이 예술가 알베르사이에 낳은 딸인 샬롯은 흔히 '음유시인 샬롯'이라고 불리는데, 사자족들의 역사에서 야수신교의 창시자인 '선지자'장에 이어서 가장 유명한 사자족 음유시인으로 잘알려져있다. 그녀는 샬롯이 유폐되는것과 동시에 그녀와 같이 유폐생활을 지내다가, 이후 샤를이 섭정을 마친뒤에 그녀가 황궁에 다시 올때 그녀를 따라왔다.
이후 두 샬롯이 황궁에 돌아온지 3년뒤에 어머니쪽인 샬롯 황태후가 폐렴으로 사망한다. 이렇게 되자 샤를의 유일한 가까운 혈육인 장은 남부의 귀족중 한명인 리옹 공작의 데릴사위로 이미 간 상황이었기에 그의 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혈육은 샬롯뿐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샤를은 샬롯을 아꼈고, 한편으로는 그녀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기에 푸아튀르 궁밖에 그녀가 나가는걸 원하지 않았다.(혹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면서 정원에 산책을 할때도 시녀를 대동했고, 그녀가 어쩌다가 나가는걸 허락해도 항상 호위 무사를 대동하고 나가도록 했다.)
샬롯은 이러한 샤를의 처사에 매우 큰 불만을 가진것으로 보이며, 그녀가 16번째 생일을 맞을때 샤를에게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해달라고 요청했을정도다. 이러한 샬롯의 요청에 샤를은 자신이 그녀를 불편하게 한건 아닌지 후회하면서 그걸 받아들였다고 하며, 궁인근의 정원과 궁밖 마을까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허용해줬다. 그러나 언제나 궁밖으로 나갈때 그녀에게 몰래 미행을 붙였고, 그녀는 이러한 미행을 눈치채고 매우 불편해 했다.
결국 그녀는 더 많은 자유를 찾으려했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레이먼에서 도망쳐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샤를은 처음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군을 보내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다시 레이먼에 데려놓으려 했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녀를 찾는걸 포기하고 그녀의 방랑을 인정했다. 이후 방랑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수많은 귀족들의 궁에서 밥벌레 노릇을 하면서 외설적인 시를 남겼고,(방랑생활을 한다→생활비가 조금 부족하다싶으면 귀족들의 성에 의탁한다→황제가 아끼는 여동생이라 나가라 할수도 없는 귀족은 별수 없이 그녀의 숙식을 허락한다.-강제로 쫓아냈다가 그녀가 황제에게 이르면 골치아파 지니깐.- →거기서 밥을 축내고 묵다가 지겨워지면 돈좀 받아내고 다시 방랑생활을 시작한다.→이하반복....) 가끔은 숙식하던중 그 성의 귀족과 정을 나눠 그 귀족의 사생아를 낳는 일도 있었다.(보통 이런 사생아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알겠다 싶으면 아버지에게 보냈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그냥 아무 대강 추정되는 귀족들에게 건냈다(...) 그녀는 꽤 매력있는 여성이라 그녀와 한밤을 보낸 남성은 꽤많기에 그녀가 아이를 보내도 별말을 못했다고....)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샤를이 가지는 감정은 꽤나 특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후 그녀가 틈이 날때마다 그에게 보낸 편지와 그에 대해 그녀에게 샤를이 보낸 답장은(보통 그녀는 귀족들의 성에 머물때 어느궁에 자신이 있다고 알리고 오빠에게 보냈기에 그녀의 오빠가 답장을 보낼 수 있었다.) 현재도 남아있는데, 보통 학자들은 그둘의 관계가 그저 남매의 관계라 생각하지만, 음유시인들 사이에선 이야기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그둘의 관계를 남매간의 금지된 비운의 사랑이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
한편으로는, 그녀는 귀족이나 평민이나 공평하게 대했는데, 귀족이나 평민이나 그녀가 '대우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 여기면 그녀는 언제나 존대를 하며 대우했고, 귀족이라도 품위없거나 오만한 자에겐 똑같이 오만하게 대했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이후 민담에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낳는 이유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후엔 음유시인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그녀와 그녀의 오빠의 관계를 조명하는 이야기가 생기거나,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웅담이 생기기도 했다.
8/3-내용 보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