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W]아크라이트 사건

노숙까마귀 0 2,664

1. 소개

  949년 2월 8일, 빅토리아의 도시 블랙번에서 FRNAF(자유공화국 해군 비행함대) 소속 비행순양함 FRAS.아크라이트가 공중 폭발한 사건. 이 사건으로 원래 좋지 않았던 컬럼비아-빅토리아 간의 관계는 빠르게 악화되었고, 결국 컬럼비아-빅토리아 전쟁의 발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2. 배경

  940년대 후반, 항공기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부상하면서 비행선 산업은 쇠락하기 시작한다. 이에 비행선 회사들은 두가지 방향을 선택한다. 첫번째 방향은 항공기 산업으로 직종을 바꾸는 것이었다. 빅토리아의 A. N. 볼드윈 로즈 경 항공회사(Sir A. N. Baldwin Rose Aviation Co.)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방향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빅토리아의 비행선 설계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헤르만 K. 아들러(Herman K. Adler)는 "비행유람선과 우편 배달기를 만드는 건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고 칭했다. 항공기 산업으로 전환하는 일은 사실상 맨땅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두번째 방향은 무너져가는 비행선 업게에 남아 이를 살려보려고 최대한 애를 써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게된 수많은 비행선 회사가 이 길을 선택했다. 그 중에는 당시 비행선 업계의 공룡이었던 해밀턴 & 아들러 중공업 유한회사(Hamilton & Adler Heavy Industries Ltd.)도 있었다.

 

  해밀턴 & 아들러는 빅토리아의 사업가 아서 해밀턴(Arthur Hamilton)과 크로이츠 출신 비행선 설계자 헤르만 K. 아들러가 손을 잡고 세운 회사였다. 50년도 안 되는 비행선의 전성기 동안 해밀턴 & 아들러가 제작한 비행선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대륙을 오갔다. 그 중에는 당대 첨단 기술의 집합체라고 불리던 헤븐급 대양 여객비행선도 있었다. 이들은 비행선의 기세가 아직 죽지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거점인 블랙번에 거대한 비행선 박람회를 개최했다. 이것이 949년 블랙번 세계 비행선 박람회였다. 해밀턴 & 아들러는 이 박람회를 사운을 넘어 비행선 산업의 운명을 건 한 수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각 열강들의 비행함대를 참가시켰다. 이로인해 참가한 비행 함대 중에는 컬럼비아 자유공화국 해군 소속 비행함대도 있었다.

 

  자유공화국 해군 비행함대가 이 박람회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극히 적었다. 당시 컬럼비아는 빅토리아의 식민지였던 매플란드와 심한 국경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수확절 봉기, 엠마 랜돌프 사건 등 으로 관계가 악화되고 있었던 터라 빅토리아에서 열린 박람회에 컬럼비아 군대가 참가할 일은 없어보였다. 실제로 컬럼비아 자유공화국 정부는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해밀턴 & 아들러 사의 계속된 설득 끝에 세척의 비행선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당시 컬럼비아-빅토리아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이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였다. 빅토리아와 컬럼비아 양 쪽의 언론은 꽁꽁 얼어붙은 양 국가의 관계가 해동되기 시작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두 달 가까이 되는 박람회 기간 동안 컬럼비아 자유공화국의 세 함선들은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중에서도 제일 주목받았던 것은 비행순양함 FRAS.아크라이트의 대공체계였다. 이는 가상 적국이었던 빅토리아 해군 장교들조차 칭찬할 정도였다. 비행선 산업 당사자들은 아크라이트의 대공 방어망을 보며 전투기가 비행선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3. 경과

  949년 2월 8일, 블랙번 박람회의 폐막식 행사 도중 FRAS.아크라이트의 상부 탄약고가 폭발했다. 이로인해 상부 3번과 4번 주포탑이 그대로 떨어져나갔다. 근처 비행선들이 아크라이트로부터 황급히 떨어지는 동안 균형을 잃은 아크라이트의 선수는 윗쪽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상부 갑판 위의 승무원들은 미끄러져서 비행선에서 떨어졌다. 상부 갑판에서 일어난 화재는 기낭을 타고 하부 갑판으로 옮겨붙었다. 좌측 엔진을 지탱하는 철골이 녹으면서 좌측 엔진이 떨어져나갔다. 이후 얼마 안되어서 아크라이트는 꼿꼿하게 선 채로, 수직으로 추락해 폭발했다. 이 사건으로 아크라이트의 승무원 전원과 관중, 행사 진행 요원 등을 모두 합해 수백여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아크라이트의 탈출용 글라이더가 첫 폭발로 전부 파괴된 것과 떨어져나간 3번 포탑이 관중석에 처박힌게 사망자 증가의 원인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자유공화국 정부, 빅토리아 정부, 해밀턴 & 아들러 모두 큰 충격을 받는다. 빅토리아와 컬럼비아는 각자 자체 조사단을 꾸려 당시 현장, 아크라이트의 잔해,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했다. 이들이 내놓은 결과는 서로 달랐다. 컬럼비아 조사단이 폭발 원인을 누군가의 사보타주라고 발표한 것에 비해 빅토리아 조사단은 폭발 원인을 단순한 사고로 보았다. 두 열강은 이 결과를 두고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양국의 신문들은 상대방 국가가 아크라이트를 폭파시켰다고 주장했다. 자유공화국 내에선 "메리 여왕이 우리 아이들을 죽였네,"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빅토리아에서는 컬럼비아인들을 자해공갈단으로 표현하는 만평이 큰 호평을 받았다. 한순간 해동될 것 같았던 양 국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렀다.

 

4. 결말

  이 사건으로 컬럼비아 자유공화국 내 개전 여론이 높아진다. 결국 949년 봄, 컬럼비아 자유공화국은 빅토리아 연합왕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컬럼비아-빅토리아 전쟁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해밀턴&아들러와 비행선 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아서 해밀턴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949년 겨울을 넘기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블랙번 비행선 박람회를 개최하지 않는 편이 해밀턴&아들러와 비행선 산업에 더 좋은 결과를 불러왔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6. 참고

  • 수확절 봉기: 빅토리아의 식민지였던 험프리 제도의 원주민들이 빅토리아에 지배해 대항해 일으킨 무장 항쟁. 빅토리아 정부는 이 반란을 폭격기, 독가스, 전함의 함포 사격 등등을 동원하며 진압했다. 당시 컬럼비아 정부는 빅토리아의 진압 과정을 "문명에 반하는 만행"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 엠마 랜돌프 사건: 941년 매플란드 여성인 엠마 랜돌프(Emma Randolph)가 자유공화국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사건. 암살이 실패한 직후, 엠마 랜돌프는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재판 이후 942년 처형되었다. 자유공화국 정부는 매플란드나 빅토리아의 사주가 있었다고 주장하였지만 매플란드 총독부와 빅토리아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실제 원인은 미정입니다. 솔직히 정할 생각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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