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세키군』 비평 : 에이하브 선장은 모비 딕의 꿈을 꾸는가

로크네스 6 3970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 나아가 '근대'라 정의되는 사회 문화적이자 역사적인 흐름의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찰 및 측정을 통한 환원주의적 이해라 할 수 있다. 베버는 근대화 과정을 '합리화'(rationalization)-즉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통해 초자연적이고 비이성적인 장막을 걷어냄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설명하였으며, 이는 하버마스의 '근대적 기획'(project of modernity) 개념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즉 이들에 따르면 근대화란 인간의 계몽된 이성에 의지하여 세상을 '합리적으로' 관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우리가 근대화의 표상이라 부르는 다양한 행위들-자연과학의 발달부터 환경 파괴에 이르기까지-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시각에서의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자연과학으로 상징되는 계몽된 인간 이성과 외부 세계, 즉 자연을 분리함으로써 자연을 인간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관측-나아가 정복-의 대상으로 타자화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모리시게 타쿠마(森繁 拓真)의 만화『옆자리 세키군』(となりの関くん)을 읽어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된다. 바로『옆자리 세키군』이 사실은 의인화된 이성과 자연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화자인 여학생 요코이 루미(横井るみ)가 끊임없이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 세키 토시나리(関俊成)의 행동을 관찰할 뿐인 이 이야기는 근대화, 더 정확히는 근대 과학이 이뤄지는 방식에 대한 우화라 보아도 틀리지 않다. 상식적이고 합리적 이성을 지녔지만 호기심이 풍부한 인간인 요코이는 자신의 이성을 통해 옆자리의 세키가 벌이는 기행을 관찰하고 그 룰을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행은 기존의 룰을 깨는 게임(장기, 체스, 바둑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찍이 파인만이 자연과학(특히 물리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체스에 비유한 유명한 구절을 연상케 한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는, 신들이 일종의 체스와 같은 장대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신들이 체스를 두고 있는데, 당신은 그 규칙을 전혀 모르지만, 이따금씩 체스판 한 귀퉁이를 힐끗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관찰로부터 당신은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 어떤 규칙에 따라 말들이 움직이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 당신은 어떤 법칙을, 이를테면 게임판 위에 비숍이 하나뿐일 때, 그 비숍은 항상 같은 색 칸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엔 비숍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이 대각선 이동이라는 것을, 이 법칙이 이전에 이해하고 있던 색깔 보존의 법칙을 설명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한 이후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는 과정과 같다.

 만화 전체에서 요코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연의 표상인 세키는 결코 말을 하지 않기에, 요코이가 세키가 벌이는 게임의 규칙을 알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세키의 책상을 힐끗 보며 이성을 총동원해 논리적인 추론을 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은 종종, 그리고 실제 과학의 역사에서 자주 있었던 일처럼, 크게 빗나가고 만다. 자연의 게임이 가지는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파인만은 체스 게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움직임-캐슬링-이 관측되는 상황으로 비유했고, 『옆자리 세키군』에서는 세키의 게임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하여 기존의 추론은 실패로 돌아가고 요코이(이성)는 세키(자연) 앞에 무릎꿇고 만다. 홀데인의 말처럼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으로 기묘하"며,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자신을 진실과 지식의 재판관이라는 자리에 세우려는 사람은 신들의 웃음소리에 좌초"될 뿐이다. 

 그럼에도 요코이는 관측과 추론을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으며 호기심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신들의 웃음소리와 같이 이성적 추론을 몇 번이고 꺾어버리는 자연 앞에 홀로 맞서는 요코이와 가장 가까운 문학의 등장인물은 아마도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에이하브 선장일 것이다. 많은 비평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거대한 고래 모비 딕은 '모든 것을 파괴하나 정복하지는 않는' 대자연의 상징이며, 에이하브 선장은 그런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표상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에이하브 선장이 단순히 자연에 맞서는 근대의 영웅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비 딕에 대한 그의 집착은 파괴적이며, 그의 광기는 결국 자신의 최후를 불러올 뿐이다. 요코이의 운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유분방하고 통제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는 세키의 게임을 그녀는 계속 관찰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요코이(이성)는 결코 세키(자연)를 지배할 수 없다. 오히려 (스스로도 지적하듯이)피해를 입는 것은 요코이 자신이며, 사실상 작중의 초월적 존재인 세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는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이 지적한 근대의 실패인 셈이다.  

 에이하브 선장이 모비 딕에게 보이는 태도를 단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아마 '애증'일 것이다. 이것은 근대 과학이 자연에, 그리고 요코이가 세키에게 보이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해할 수 없고 파괴적이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은 과학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다. 요코이는 세키의 게임 속에서 고통을 받지만 분명히 즐거움을 느끼며 몰입하기도 한다. 요코이의 친구인 고토(後藤)가 두 사람의 관계를 로맨틱하게 착각(혹은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드러내는 요소이다. 전통적으로 과학과 자연의 관계는 이성애적으로 묘사되어 왔으며, 이 점에서 고토의 낭만화(romanticization)는  정복자 남성으로서의 이성과 정복을 기다리는 처녀 자연이라는 전통적인 비유 도식을 역전시킴으로서 그러한 묘사에 변형을 준다. 에이하브는 자연을 정복하려 하는 듯 보이나, 결국 자연의 변덕스러운 힘에 오히려 정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근대적 사고방식이 가진 한 가지 난점은 인간의 이성을 자연과는 별개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 다시 말해 자연을 '옆자리' 학생의 위치에 두는 철저한 타자화이다. 이러한 타자화에 힘입어 근대 과학은 자연을 관찰하고 지배하려 해 왔지만, 요코이가 철저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다짐하면서도 감정에 쉽게 휩쓸리듯 이성은 결코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비이성적 요소에 의해 지배받으며 판단을 흐려놓는다-때문에 과학과 이성의 표상인 요코이는 결코 세키의 게임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이 『옆자리 세키군』이 그려내는 근대화의 핵심이며, 나아가 근대화가 가지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타자로서 존재하려 하는 한, 우리의 이성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는 한 우리는 결코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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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리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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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Sir.Cold  
paper라는 잡지에서 연재하는 경제학으로 읽는 애니메라고 해서 <파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설정 붕괴와 악순환>같은 재밌는 글이네요. 이런 글 좋아합니다. 정말이에요. 저도 써보고 싶네요 끄끄...
로크네스  
농담삼아 멋대로 써 본 건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Nullify  
--개인적으로는 Set Them Free를 들으면서 리듬타는 요코이의 면모까지 해석했으면 했는데-- 이미 본문만으로 버틸수가 없네요.
로크네스  
애니는 안 봤어요. 엔딩 영상은 재밌긴 하던데...
다움  
~~자, 이제 이 글을 번역해서 작가한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훌륭합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로크네스  
저도 이런 관점으로 읽은 건 아닙니다. 세상에 옆자리 세키군을 보면서 저런 생각을 한다니 말도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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