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노벨 리뷰)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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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알라딘 인터넷 서점

제목: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
지은이: 임경배
일러스트레이터: JJ_1
출판사: 디앤씨미디어(주)=시드노벨


제가 처음으로 읽은 임경배 작가님의 작품은 카르세아린입니다. 카르세아린은 사실 현재 국내 판타지 소설에서 유행하는 시류를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나를 사용하는 소드마스터,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 분명 나이가 많고 지식이 많으며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연령이 굉장히 낮아 보이는 드래곤, 정의나 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용사들이 아니라 각각 자신의 욕망이나 국익을 위해 활동하는 대륙의 영웅들. 지금은 오히려 주류가 되어버린 설정들입니다만 사실 카르세아린은 어떤 의미로 보면 드래곤라자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작품들의 클리셰를 비틀어버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인 주인공이 고결한 이들과 함께 임무에 나서서 결국 훌륭한 일을 해내고 마는 이 작품들과는 다르게(뭐 드래곤라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카르세아린은 초월적인 존재인 주인공이 모험을 나섰지만 많은 이들의 이익과 욕망 때문에 상황은 뒤틀어지고 결국 동족의 멸종과 자기 자신의 봉인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습니다. 임경배 작가님 본인은 이를 해피엔딩이라고 칭했지만요. 그 이후에도 임경배 작가님의 작품들은 자주 봤습니다. 비록 엔딩을 보진 못했지만 더 크리처도 즐겁게 봤고 웜슬레이어도 최소한 출판된 내용까지는 보았습니다. 헬릭스-악마 포식자는 전부 구매해서 모았고 권왕전생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경배 작가님이 라이트노벨에 데뷔를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헬릭스나 웜슬레이어를 기억하면 임경배 작가님은 분명 라이트노벨 시장에서도 멋진 작품들을 써주실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경배 작가님의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는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인지 아니면 권왕전생과 동시 집필을 하셨기에 나온 문제인지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보였거든요. 이유는 임경배 작가님이 카르세아린에서 보여주신 클리셰 비웃기가 이번에는 좀 엉성한 형태로 남발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작품의 스토리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계관에는 마왕이 존재합니다. 마왕은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하지만 무수한 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마왕과 싸웠고 결국 마왕을 쓰러트리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첫 번째 마왕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마왕은 부활했고 다시 용사와 격돌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마족과의 싸움으로 인류도 소울스킬이라는 이능력을 얻었거든요. 그 덕에 두 번째 마왕은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마왕은 다시 한 번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마족들과의 싸움 때문인지 인류는 마족의 특권이던 마법을 손에 넣었거든요. 그 결과 마왕은 소울스킬을 익힌 영검사들과 마법사들의 러시에 사망했습니다. 이 당시 마왕은 “부활하기 싫다.”라고 속으로 생각해버렸죠. 그리고 작품의 스토리가 시작될 무렵, 히로인이자 이번 대 마왕인 레이시가 부활했습니다. 자,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레이시가 부활하자마자 본 것은 혼자 마왕 레이드를 하러온 자밀란 아카데미(마왕에 대비하기 위해서 영검사와 마법사를 키워내는 기관)의 영검학과 학생인 칼스였습니다. 비록 부활한지 얼마 안 돼서 약하긴 하나 명색이 마왕인데 이런 학생에게 밀리기라도 할까요? 안타깝게도 밀립니다. 칼스의 능력은 하필이면 마법사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고리 끊기(마법을 발동할 때 떠오르는 마법의 고리를 끊어버립니다. 요컨대 마법 한정으로 발동하는 원거리 액티브 이능력 무효화 스킬이죠)”이고 마왕이라도 마법사인 이상 칼스에게 당해낼 수는 없었거든요. 거기다가 이 칼스란 녀석은 레이시가 미소녀의 모습이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을 따려고 합니다. 결국 살기 위해서 레이시는 지팡이의 마법만으로 칼스에게 종속의 계약을 겁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닌 지팡이로 한 약식이었고 “레이시가 피해를 입을 경우 칼스도 같은 피해를 입지만 칼스가 피해를 입을 경우 마왕은 고통만을 느끼는 방식”으로 종속의 계약이 뒤엉킵니다. 이 때문에 레이시도 칼스도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죠. 결국 칼스는 자기 목숨 보전을 위해 레이시를 데리고 가기로 하고 레이시도 칼스 말고도 마왕 레이드 파티가 올 거라는 말에 살기 위해 칼스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칼스는 레이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자밀란 아카데미이 입학시키는 동시에 레이시가 마왕의 힘을 되찾으면(부활 당시에는 마왕의 힘을 일부만 얻고 그 외에는 마왕의 힘을 지닌 존재가 자동으로 찾아오거나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마법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레이시의 힘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죠. 이후 한동안은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칼스가 학교에서 받는 취급에 대한 설명(매드독, 즉 미친개라는 별명을 달고 있습니다) 칼스를 라이벌 취급하며 늘 결투를 걸어오는 마법학파 최강자이자 학생회장인 베로니카의 비밀. 칼스가 그냥 한 소리를 멋대로 오해해서 칼스에게 반해버린 영검학과 최강자 라키시아. 이런 잡다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도중 결국 흩어진 마왕의 힘 중 하나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르는 사건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에 칼스와 레이시가 레이드를 떠나고 칼스를 따라가려는 라키시아, 라키시아에게 약점이 잡혀서 따라가게 된 베로니카 역시 동행합니다. 결국 도착한 장소에 있었던 것은 진짜로 마왕의 힘(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던 흑마법사들과 마물)이었고 칼스 일행은 어찌어찌 마왕의 힘을 지니고 있는 마물을 해치우지만 마왕의 힘이 오히려 폭주하게 될 상황이 됩니다. 이에 레이시는 스스로를 희생해서 모두를 구하려고 하지만 레이시를 버리고 갔다고 생각한 칼스가 돌아와서 그녀를 돕고 칼스는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소울스킬, 리버레이터를 사용해서 마왕의 힘을 흩어버립니다. 안타깝게도 마왕의 힘은 소멸해서 계약은 풀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결국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에필로그가 나오는 순간 사실 레이시 이전대의 마왕이 살아있다는 것이 나오게 그녀가 언젠가 레이시를 찾아갈 것이라고 하며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 1권이 끝나게 됩니다.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라는 작품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셋이었습니다. 첫째는 칼스라는 캐릭터. 둘째는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클리셰 비웃기, 셋째는 이 작품 자체의 소재였습니다. 우선 칼스라는 캐릭터에 왜 주목을 했는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다른 라이트노벨이나 서브컬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캐릭터들입니다. 우선 메인 히로인인 레이시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이시는 요약하자면 남들과는 다른 힘과 위치를 지녔지만 사실 속내는 보통 “여자아이”인 캐릭터입니다. 다른 작품에서의 예시를 든다면 세이버(Fate/Stay Night), 야토가미 토카(데이트 어 라이브),  등이 있겠네요. 이들은 강력한 힘이 있지만 일상 면에서는 무언가 어수룩하거나 미묘한 면모가 있고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 이들은 자신을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고 “평범한 여자아이”로 여기고 도와주는 주인공에게 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며 자신이 전투계 히로인이라는 것을 뽐내곤 하죠. 두 번째 캐릭터는 베로니카입니다. 베로니카는 자신의 분야에서는 엘리트이고 남들보다 높은 위치(레이시를 비롯한 캐릭터처럼 초월적이진 않고 현실적인 높은 위치. 예를 들면 학교의 아이돌이라든가, 영재라든가)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무언가 숨겨진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가 많죠. 베로니카의 경우 스스로가 귀족가의 후예라고 뻐기긴 하지만 사실 집안이 이미 망해서 구황작물로 만든 요리로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숙사에서 지낼 수도 없어서 남의 집 헛간에 얹혀살게 되었고 이 집을 주인공이 사면서 주인공과 얽히게 되었죠. 즉, 스스로의 문제를 숨기고 있는 허당 엘리트 아가씨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타작품의 예시로는 토오사카 린(Fate/Stay Night), 아오야마 미오(신만이 아는 세계), 수월(몬스터 프린세스)가 있겠네요. 보통 이런 캐릭터들은 주인공이 약간 귀찮아하면서도 숙이고 들어가 주며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에게 반하게 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마지막 히로인은 라키시아입니다. 라키시아는 주인공보다 훨씬 강한 전투계 히로인인 동시에 주인공에게 “좋아해요! 사랑합니다!”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 메가데레 히로인입니다. 다른 히로인이 주인공에게 다가가면 눈을 부라리고 주인공이 무슨 짓을 하든 호감도가 떨어지질 않죠. 다른 작품의 이런 히로인으로는 냐루코(기어와라 냐루코양)가 있겠네요. 이런 캐릭터들은 보통 주인공이 처음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지만 어느새 주인공 역시 호감을 느끼고 은근히 아껴주게 되지요. 평범한 라이트 노벨의 주인공이라면 이런 히로인들 역시 평범한 루트를 밟았을 겁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주인공이 칼스라는 것이 이 히로인들에게는 재앙의 시작이었겠죠. 대체 칼스가 어떤 캐릭터이기에 그럴까요? 칼스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형적인 라이트 노벨 주인공의 안티테제입니다.


일반적인 라노베 주인공은 사실 신사도를 중시하면서 굉장히 마초적인 성격입니다. 히로인들이 자기보다 얼마나 강하던 어떤 존재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XX는 평범한 여자아이라고!”는 이런 주인공의 행동을 단적으로 요약하는 행동이죠. 그리고 이런 행동에 레이시형 히로인들이 반하게 되고요. 하지만 칼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칼스는 좋게 말하면 상대의 성별과 관련 없이 상대방의 능력에 맞춰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즉, 나쁘게 말한다면 현실에 있을 경우(그리고 작품 속에서도) 여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매너 없는 비호감입니다. 그는 레이시가 미소녀에 알몸인 상태로 나와도 그대로 목을 따버리려고 합니다. 칼스가 마왕으로부터 세상을 구해야한다는 정의감에 불타서 레이시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걸까요? 아닙니다. 만약 마왕인 레이시를 죽이면 레이시 같은 미소녀들이 세트로 알몸으로 포즈를 취해줄 텐데 레이시를 봐줄 필요가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왜 그는 레이시를 보호하기로 했을까요? 이제 와서 그녀가 평범한 여자아이라는 걸 자각해서? 아닙니다. 종속의 계약 때문에 레이시가 죽으면 자기도 죽으니 자기 목 지키려고 그러는 겁니다. 거기다가 이마저도 레이시가 자기 말을 잘 듣지 않자 협박을 해서 자기 말을 듣게 만들었죠. 그 외에도 산에서 내려갈 때 결국 짐을 들어준 것도 남들에게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이며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이 녀석을 붙들어놔야 자기 목이 안전하기 때문이죠. 요컨대 다 자기를 위해서이지 레이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외에 다른 히로인에게도 그는 똑같이 대합니다. 베로니카가 현 상황과 자신의 불쌍함을 얘기할 때 듣기 싫어하며 집도 절도 없다는 그녀를 내쫓으려다가 레이시의 만류와 베로니카에게 잡힌 약점 때문에 그녀를 집에 두기로 합니다. 그마저도 절대 공짜로 둘 생각은 없고 설거지 빨래 등을 하는 식모로 부리기로 결심합니다. 또한 다른 라이트 노벨 주인공들이 라키시아 타입 히로인을 피하면서도 그녀들을 “이용해 먹으려는” 것은 없는 것과 달리 라키시아가 도움을 줄 때는 철저하게 이용해 먹습니다. 비록 그녀의 소울스킬, 헤라클레스가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부유한다고 해도 “짐 들어드릴게요.”라는 말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무거운 배낭을 넘기며 그녀의 돈으로 편하게 여행하게 되자 “편하게 여행하니 좋지.”라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그러면서 라키시아에 대한 호감도는 도저히 오를 줄 모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도움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라키시아를 여전히 싫어하는 게 분명합니다. 이런 칼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는 다른 라노베와는 다른 루트를 탈 수 있었죠. 하지만 이것이 득이었을까요? 실이었을까요? 제 의견으로는 실이었다고 보입니다. 이런 칼스의 성격 자체는 재미있었을지 모르나 이는 초반 뿐. 갈수록 칼스의 행동에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슬슬 이 녀석에게서 비호감만을 느끼게 될뿐더러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도저히 “칼스답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칼스는 이기주의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마지막에는 레이시를 구하기 위해 돌아옵니다. 본인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일까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레이시는 자기가 일단 폭주하는 힘을 이용해서 계약을 해지하고 죽을 테니 도망가라고 말합니다. 즉, 그는 사실 도망가도 살아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시가 못미덥다면서 갑자기 다가와서 목숨 걸고 도움을 줍니다. 만약 그가 갑작스럽게 리버레이터를 사용하지 못했다면 100% 죽은 목숨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렇다고 칼스가 속마음은 착하다는 힌트를 줬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아, 물론 진짜로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그건 남들 시선이 두려워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나마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건 고양이들을 죽이지 못한 것인데 이건 죄책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도저히 이길 상황이 못 돼서 후퇴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칼스란 인물이 마지막에 한 행동은 이 캐릭터가 할 일이 아니라 “스크립트 상 이렇게 짜여있으니 해야지 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억지스럽다고 할까요? 칼스란 인물은 작품 초반부를 재미있게 이끌어주었을지 몰라도 후반부는 이 인물 때문에 이야기가 설득력이 잃어버리게 되었으니까요.


자, 이제 지속적으로 나오는 클리셰 비웃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사실 클리셰는 재미있는 코미디&창작 소재입니다. 대놓고 클리셰들을 모아놓고 웃으라고 만들어놓은 “무서운 영화” 같은 패러디 영화들도 있으며 “스크림”처럼 공포영화들의 클리셰에 대한 얘기를 하며 그걸 이용해서 또다른 공포영화들을 만드는 경우도 있죠. “신만이 아는 세계”는 미소녀 게임 클리셰들을 모아서 그걸로 현실의 미소녀들을 공략한다는 식의 발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도 이런 클리셰를 이용해서 개그씬들을 연출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이 개그들이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라서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에 나오는 클리셰 비웃기 장면을 하나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략. 이전 장면인 228~233 후반부까지는 여탕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칼스는 미래를 소중히 여기는 소년이었다.
당연히(?) 여탕 엿보기 따위를 시도하고 있지도 않았다.
남탕에서 홀로, 묵묵히 목욕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설마 남탕 묘사 따윌 원하는 놈은 없겠지? 있으면 반성해라.”

또다시 이해 못 할 헛소리를 남기며 칼스는 욕탕 가장자리에 머리를 베고 몸을 뉘었다. 그리고 오늘 일을 떠올렸다.

(하략)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 (임경배 作) p. 233~234에서 인용


어떤 방식인지 대충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네, 이 작품은 주로 칼스 가끔씩 서술자가 일반적인 라이트노벨 클리셰에 대해 직접 태클을 거는 방식으로 클리셰 비웃기를 시도합니다. 뭐 서술자가 이런 식으로 그런 식으로 써내려가는 건 둘째치더라도 칼스의 방식은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칼스는 도대체 어째서 제 4의 벽을 허물고 이런 클리셰 비웃기 대사를 직접 하는 걸까요? 이 부분이 딱히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한 번 이런 방식의 개그를 하는 다른 창작물 속 캐릭터들과 칼스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개그를 하는 창작물 속 캐릭터 중 첫째 유형은 데드풀, 믹시즈 피클릭과 같은 “실제 제 4의 벽을 넘나드는 것이 특징인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이미 창작물 속 존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의 작가나 편집자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자기 머리 위에 말풍선이 있다는 걸 알아내거나 지우개를 꺼내서 상대를 지워버리거나 합니다. 즉, 이들은 이런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정당화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칼스는 작중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창작물이라는 걸 아는 것 같지도 않고 바깥 세계와 소통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등장인물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이런 클리셰 비웃기를 할 때만 제 4의 벽을 허물어버립니다. 이것을 보아 칼스가 데드풀이나 믹시즈 피클릭과 같은 존재라고 보긴 힘듭니다. 그렇다면 칼스는 다른 타입의 캐릭터일까요? 둘째 유형은 냐루코(기어와라 냐루코 양)이나 카츠라기 케이마 같은 강한 덕력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창작물 속 존재라는 걸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이 가진 취미, 오덕계 작품들의 클리셰를 현실의 유사한 상황을 보고 그대로 말할 뿐이고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런 이들에게 “현실은 창작물이 아니다.”라고 태클을 걸죠. 어찌 보면 실제 창작물 속 존재들이 이런 대사를 하는 게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칼스가 덕력이 넘치던 캐릭터인가요? 글쎄요. 적어도 작품 내내 칼스가 이런 오덕계 작품을 접한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만화나 이런 작품을 보고 있는 장면은 작 중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특정 창작물을 환호하는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칼스가 덕력이 높은 인물일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무서운 영화”처럼 작품 자체가 코미디라서 이런 제약이 무시되는 겁니다. 이 부분은 그나마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는 평범한(?) 라이트노벨에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 즉, “무서운 영화”처럼 대놓고 개그만을 모은 코미디는 아니라는 거죠. 물론 코미디는 많고 허탈한 내용도 많습니다만 그래도 내용 자체는 평범한 “코믹 판타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코미디라서 그렇다는 것도 부정됩니다. 결국 이런 클리셰 비웃기는 한 두 번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계속되다보니 재미는커녕 “이게 뭐지?”하는 생각만을 들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지속적인 클리셰 비웃기는 아마도 득보다는 실이 컸다고 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제가 이 작품에서 주목했던 건 소재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소재가 뭐가 특별하냐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옛날 옛적에 강력한 마왕이 있었다. 마왕은 (작품 속) 현대에 부활했다. 하지만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인물을 만나 그와 함께 다니면서 마왕이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 뭐, 이것만 보면 흔한 패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저의 눈을 끌었습니다. 첫째는 작품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파워인플레에 대한 언급이고 둘째는 칼스라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존재가 풀려나는 작품들은 과거의 존재가 현대에서도 굉장히 강력한 존재로 그려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말로는 “현대의 기술 덕에 과거의 존재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라는 설명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마왕 같은 특별한 존재들은 그런 법칙마저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의 예시로는 토돌 작가의 “퀸즈 나이트 카엘”이 있겠습니다. 분명 마족보다 세계관 속 현대 병기들이 훨씬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카엘처럼 최고위 악마들에게는 아직 현대 병기는 장난감 수준입니다. 아니 애초에 중간 정도만 되는 마족이어도 어지간한 현대 병기보다 강력합니다. 그러니 이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립서비스로 밖에 보이지 않죠. 하지만 이 작품의 마왕은 진짜로 작품 전체에서 보면 약해졌습니다. 물론 레이시가 완전한 마왕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고려하더라도 인간이 초기 마왕시절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 부활한 초월적이었던 존재, 하지만 현대에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데…….” 어떻습니까? 흥미롭지 않나요? 이런 면이 저에게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둘째로 칼스라는 캐릭터는, 비록 제가 실인 면이 있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실 가끔 가다보면 일부 작가지망생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하면서 아예 기존 클리셰를 파괴하는 인물들로만 작품을 가득 채우는 일들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클리셰 파괴만을 위해 존재하는 작품은 제대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새로운 길을 만들려다가 길 자체를 박살내버리는 식이죠.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는 그걸 클리셰적인 인물들을 이어주는 클리셰 파괴적 인물을 내세우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칼스라는 인물의 특징 덕에 평범한 라이트노벨 히로인의 특성을 갖춘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여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제가 칼스라는 인물이 문제가 있었다고 여길지언정 칼스라는 인물이 존재하는 방식에는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체적은 작품 평가를 말하자면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실망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한 가지 좋지 않은 버릇이 있습니다. 국내 라이트노벨인 “몬스 패닉” 이후에 생겨난 버릇입니다만 1권에서 굉장히 실망한 라이트노벨이라도 2권까지는 사보기로 결심하는 거죠. 이는 제가 몬스 패닉 1권은 별로라고 생각한 반면 2권은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 1권이 얼마나 잘 팔렸는지는 모릅니다. 국내 최대의 서브컬처 위키인 리그베다 위키에는 해당 항목이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는 제가 재미있게 본, 그리고 3권까지 나온 걸로 보아서 상당히 잘 팔렸을 것이 확실한 “검술학교의 연애사정” 역시 항목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제가 아는 건 1월 신작으로 “이단의 마왕과 리버레이터”의 2권이 나온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비록 제가 칼스라는 인물과 지나친 클리셰 비웃기에 실망했을지라도 소재와 칼스라는 인물의 배치에 감탄하게 된 만큼 가능한 빠르게 2권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실망을 했을지언정 기대 역시 굉장히 큰 편이니까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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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paro1923  
'크리쳐' 도 그렇고 옛날에 재미있게 보던 작가였는데, 결국 먹고 살려고 라노베 쪽에 손댄 걸까요...
Papillon  
사실 어느 정도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겠죠. 국내의 초기 판소 작가들 상당수는 서구의 판타지 소설 작가처럼 기존 문화에 영향을 받은게 아니라 던전즈 앤 드래곤즈, 소드월드 같은 TRPG룰이나 슬레이어즈나 로도스도전기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죠(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죠). 그러다가 어느 기점을 거쳐서(묵향, 소드엠페러 등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 당시로 치면 오덕작가들이 잡고 있던 판타지 소설은 일반 대중 작가에게로 넘어가게 되었고요. 최근에는 이 오덕문화 자체가 인터넷 안에서는 "흔한 것"이 되어버려서 다시 영향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요.
임경배 작가님의 경우 사실 웜슬레이어, 헬릭스, 더 크리처 등에서 어느 정도 이런 "슬레이어즈"나 각종 일본 쪽 서브컬처 문화의 특징이 보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서야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저로서는 오히려 특이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아마 권왕전생이 아직 판타지 쪽에서 연재되고 있었던 것이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더군요. 다른 판타지 소설 작가 출신 라이트노벨 작가 분들은 사실 넘어올 당시 연재 중이던 판타지 소설이 없기도 했고요.
함장  
요즘에는 마왕물이 붐이군요. 많이 나오는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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