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다"…발포 거부로 고문당했던 5·18 영웅 故 안병하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 50분 광주 시내에 첫 총성이 울렸습니다.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장교의 M16 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고등학생이던 김영찬 군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이를 신호탄으로 광주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총탄이 빗발쳤습니다. 총탄에 맞고 군홧발에 스러진 시민들의 시신이 거리에 나뒹굴었고, 구덩이에 뒤섞여 파묻혔습니다. 지금까지 공식 확인된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는 사망 154명, 행방불명 65명, 부상 1628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당시 시위 현장을 지키던 경찰은 그러나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던 계엄군과는 달랐습니다. 질서유지 임무에만 충실했습니다. 고(故) 안병하 당시 전남 경찰국장(경무관)이 전두환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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