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대의 새로운 용도

http://s12.postimg.org/nyizpmirx/2777084254_DC51_F1013_C25.jpg

http://s12.postimg.org/nyizpmirx/2777084254_DC51_F1013_C25.jpg

나는 보면대. 늘 악보만 받치고 있었어요. 뭐 나름 긍지도 있었지요.

어느 세월에 연주다운 연주를 하게 될 지 까마득도 했지만 
가끔 악기를 들고 내가 받쳐주는 악보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주인의 모습은 그래도 고무적이었거든요.
지난 겨울 어느날 아침이었어요.주인이 아주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군요. 

평상시와 달리 빤히 보는 그 눈빛에 좀 부끄럽고 민망했지요. 

아,그런데 주인은 느닷없이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들을 들고 오더니 

조심스레 옷걸이에 걸어서 아주 예술적으루다 신중히 우아한 몸짓으로 내 구멍마다 끼우는 거예요.


아... 이게 뭔가요? 명색이 보면대인데 빨래를 널다니요!

악보는 어디 두고 그래도 예술 좀 한다는 나를 건조대로 강등시키다니요. 

어느날 아침 일어났더니 벌레가 되었다는 그레고르 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는 

어느새 나뭇잎 달린 나무처럼 옷가지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어찌나 즐겁던지 싱글벙글하며 연신 나를 바라보는 겁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창작품이라도 감상하는 것 같았어요. 

보면대를 건조대로 만든 건 꽤 쓸만한 아이디어 같았나 봐요. 

하긴 주인을 만난 후 이런 애정어린 눈빛을 받아 보긴 처음이에요. 

연습할 때마다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악보를 보며 인상을 쓰던 주인이 

나를 건조대로 용도변경을 한 뒤로는 미소를 머금고 나를 음미하고 있으니 당혹스러울밖에요.


그런데요. 저도 그 눈길에 세뇌가 된 걸까요? 그럭저럭 건조대도 괜찮아졌습니다. 

양 옆으로 들고 있는 식구의 옷들이 서서히 말라가고 그 말라가는 과정에 참여함이 꽤 근사한 기분이었습니다.

잘 마른 옷을 주인이 씨익 웃으며 걷을 때는 왠지 악보를 받치고 있을 때보다 더 뿌듯하고요.
참, 신기하지요?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내가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모양이라면 보면대든 건조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은 거예요. 

보면대가 격조있어 보일 수는 있어도 주인이 건조대로 쓰겠다면 기꺼이 

보면대사용설명서에 '건조대가능'이라는 추가설명을 더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보면대로 다시 써도 좋고 또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로 다른 용도로 쓴다 하면 

마땅히 따르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계속 나,라고 여기는 고정된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가끔 주인의 뜻에 따라 

거기에서 내려오거나 달라지거나 뜻밖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게 전혀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그 달라짐이 내게서 나를 해방시키기 때문인 듯합니다.

지난 겨울, 보면대에서 건조대로 살면서 느낀 생각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다가오는 봄엔 저도 악보 하나쯤 들고 주인의 연주에 참여하고 싶긴 합니다. 


출처: 찾는이광명교회 홈페이지.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 신고

Author

Lv.1 作家兩班  3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2 Comments
저기요?이게 왜 짤방?그리고 이거 개그포인트 설명좀
아.링크.짤방은 이미지 호스팅사이트를 이용해 HTML로 올려주시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