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짤방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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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잇, 칸고쿠노 군진와 바케모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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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보고 궁금해서 써보니까 확실히 크로미움은 좀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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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바람부는 덕분에 미세먼지 날아가서 깨끗해졌다가
곧 다시 위로 원상복귀됐다네요.
아시아 대기 오염 실시간 확인 : http://aqicn.org/map/kr/
중국 대기오염의 위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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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도 비슷하잖아..
아니 니들이 더 심하잖아
일본에서 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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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앙심이 깊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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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선채로 죽었어 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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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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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캐릭터 상품 甲.jpg
현재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여전히 '단일민족 국가'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20세기까지 한반도는 '한국인'으로 일컫는 단일민족만 살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도 일본인만이 아닌, '아이누 족'이라는 토착 부족민이 살고있었다는 사실을 몇몇분들은 아실것입니다. 이들은 일본인들로 부터 각종 탄압을 받으며, 북쪽으로 쫒겨났고 현재 그 숫자는 매우 감소한 상태이죠. '일본의 아이누 족'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에도 이러한 소수민족이 살았습니다. 이들역시 일본인이 아이누 족에게 했던것처럼, 옛 조선사람들에게 모진 학대와 멸시를 받았기에 수백년이 지나도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이 한반도의 소수민족은 무려 일제감정기까지 기록이 발견되며, 당시 조선인들과 전혀 다른 문화와 풍습, 언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진족'입니다.
흔히들 '여진족'하면, 고려때 강성해서 금나라 세우다가 몽골멸망테크> 이후 조선 4군 6진으로 몇판 싸움> 청나라 건국> 중화민국 이후 한족과 동화로, 한반도와 일절관계 없어 질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4군 6진 개척이후 본래 한반도 최북단에 살았던 몇몇 여진족 부락은 한반도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이들은 당시 조선인들로 부터 갖은 멸시와 핍박을 받으며, 그들과 완전 다른 자신만의 문화를 꾸린채 무려 20세기까지 존재했었습니다.
조선인들은 한반도내 여진족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는데, 재가승이란 '집에서 도를 닦는 승려'란 뜻입니다. 여진족들이 왜 재가승이라 불렀나 하면, 조선시대 스님들은 불교탄압으로 모진 핍박을 받고있었고, 천하디 천한 무리로 속해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를 똑같이(조선 사람 기준으로) 천하디 천하고 핍박을 받는 여진족무리와 동일시 했던것입니다.
어쨋든 함경도및 한반도 최북단의 여진족 무리는 조선사람들의 핍박속에 악착같이 자신들의 문화와 풍습을 유지했었습니다. 당시는 이웃한 친척무리들인 만주족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청나라를 건국해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때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이들은 수백년이 지난 일제감정기 시대에도 여전히 잔존해 있었고, 일제 감정기시대 소설에도 여럿 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일제 감정기 시대의 시인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서는 한반도 북단에 잔존한 여진족 부락을 묘사하며, 이들이 조선인등 타지이방인들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풍습을 지닌것으로 묘사됩니다.
만주족출신 모델 자오첸
1935년 일제감정기, 한반도의 최후의 소수민족인 당시 여진족들의 풍습을 취재한 '동아일보'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1935년 조사동안, 한반도내 여진족 인구는 약 4천명으로 추산되며, 가장 많이 여진족들이 분포했던 곳은 함경북도 회령군 창두동 종암면과 함경북도 온성군 미포면 월파동이다. 여진족이 사는 마을은 '재가승마을' 혹은 '중골'이라 부른다. 이들은 당시(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에게 하층민으로 멸시를 받고있었으며, 여진족 사람과 결혼한 외지인은 반드시 여진족 부락에 편입하도록 하였다. 제사를 지낼때는 성인남성은 참여하지 않았으며, 여자와 어린아이만 참여하였고 붉은 옷을 입었다.또한 마을을 지나가는 전사들이 있으면, 부녀자들이 이들에게 젖을 먹였다고 한다. 여진족 여성들은 대부분이 미인이며 가슴이 매우 컸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시대당시 점차 만주쪽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과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만드며 대동아정책을 펼치는 일본인들에게 이중으로 시달리며서, 그동안 유지해왔던 문화와 풍습에 크나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안가 김일성이 북조선 괴뢰국을 세우면서 한반도내 여진족들을 강제동화시키는 정책으로 일명 '창씨개명'을 요구하였고,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 시대에 이르러서는 여진족들은 완전히 북한 사람들과 동화되어버리고 맙니다.
북한의 김씨왕조가 없애버린 최후의 여진족들은 '한족문화를 받아들여 정체성이 아에 사라진 만주족'과 달리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상당기간 유지했었기에, 만약 현재까지 남아있다면 상당한 인류문화적 가치가 있었을거라 추측됩니다.
20세기까지 단일민족이 아니었던 한반도